와사등(瓦斯燈)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 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
[瓦斯燈]
1939년 남만서점(南蠻書店)에서 간행된 김광균(金光均)의 제1시집. B6판, 67면. 1946년 정음사(正音社)에서 재판되었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이 <오후(午後)의 구도(構圖)> · <해바라기의 감상(感傷)> · <외인촌(外人村)> · <와사등(瓦斯燈)> · <설야(雪夜)> 등 2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음사 간행 재판본에는 <설야>가 빠져 26편이 실려 있다.≪와사등≫은 김광균의 대표적 시집인 동시에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시운동(mordernism詩運動)의 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시 가운데서도 특히 <외인촌> · <와사등> · <설야>는 그의 초기시적 특성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외인촌>은 현란한 색채어의 공감각(共感覺) 이미지로 채색되어, 이미지의 제시는 선명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고 다만 그와 같은 풍경을 조감(鳥瞰)하고 있는 시인의 고독한 시선이 느껴질 뿐이다.<와사등>의 경우에는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독이나 문명비판적 목소리가 담겨 있어 주지시적 면모를 보이고는 있으나 여기서도 역시 감상성(感傷性)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그의 대표시로 꼽히는 <설야>는 기지에 찬 비유나 현란한 이미지보다는 서정적 분위기의 표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서정시인인 김광균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소재와 시인의 정감이 완전히 융합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시적 긴장감의 결여라든지 비유의 남용으로 인한 의미의 불필요한 중첩 등 구조적 결함이 지적될 수 있다.그러나 서정성과 현대성의 조화 내지 융합을 지향하는 그의 의식이 이 작품에서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이 시는 수사(修辭)의 남용이나 언어유희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던 당대 모더니즘운동이나 김광균 자신의 다른 시들에 비하여 퍽 이색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갈은 서정성과 현대성의 조화는 주지적 서정시(主知的抒情詩)라고 붙리는 한국 현대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김광균의 ≪와사등≫을 평가함에 있어서 당대의 사회현실을 새로운 서구시(西歐詩)의 수법으로 형상화시켰다고 하는 긍정적 관점에서 그 시사적 의미를 찾아야 하지 감상을 바탕으로 한 사이비 모더너즘이라는 부정적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사등 [瓦斯燈]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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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金光均]
호는 우두(雨杜). 1914년 1월 19일 경기도 개성 태생. 송도상고를 졸업했다.중학시절인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 누님」을 발표하였고, 이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옛생각」, 「병(病)」 등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35년부터 『조선중앙일보』에 「황혼보」, 「사향도」, 「오후의 구도」, 「외인촌」, 「창백한 산보」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36년에 서정주(徐廷柱)‧오장환(吳章煥) 등과 더불어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7년에는 『자오선』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8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어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39년 발간한 첫 시집 『와사등』에는 「오후의 구도」, 「외인촌」, 「설야」 등 1939년까지 창작된 초기 시들이 실려 있다.광복 후에는 「노신」(1947), 「황혼가」(1947) 등을 발표하는 한편, 『와사등』 이후 광복까지의 작품을 주로 모은 두번째 시집 『기항지』(1947)를 간행하였는데, 「추일서정」과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더니스트로서의 특질이 잘 나타나 있다. 1948년 이후에는 건설실업공사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제3시집 『황혼가』(1957, 1969)를 펴낸 이후 시작활동을 완전히 중단하였으나, 1986년 『추풍귀우(秋風鬼雨)』를 펴낸 것을 비롯하여 『임진화(壬辰花)』(1989) 등의 시집을 잇달아 펴내면서 시 창작에 대한 집념과 열성을 보여주었다.한국 현대시사에서 볼 때 그는 정지용(鄭芝溶)‧김기림(金起林)‧신석정(辛夕汀)‧장만영(張萬榮)‧장서언(張瑞彦) 등과 함께 모더니즘 시인에 속한다. 특히 그는 1930년대 후반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이미지스트이다. 그는 도시적 감수성과 문명비판적인 지성을 가지고 인간의 서정적 내면 공간을, 참신한 비유적 기교와 세련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한 시인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광균 [金光均]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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