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 호 나포 사건
1968년 미국의 푸에블로 호(USS Pueblo, AGER-2)가 북한에 의해 나포된 사건이다.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 호는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 40 km 거리의 동해상(동경 127 °54.3 ', 북위 39 °25 ')에서 업무 수행 중
북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었다. 이때 1명이 사망하고 13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원산 해안 기점으로 12 마일을 벗어나는 공해라고 주장하며 승무원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와 제7함대의 구축함 2척을 출동시켰다.
1968년 12월 23일 미군 육군 소장 길버트 우드워드가 미국 정부를 대표하여 북한 영해 침입 및 첩보 행위를 인정하고
재발방지와 사과하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사건 발생 후 열한 달이 지난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여든두 명과 유해 한 구를 송환했다.
푸에블로 호는 현재 평양의 대동강변에 전시되어 있으나, 미국 해군은 현재 푸에블로호를 취역 함정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면 선체를 미국에 반환하겠다는 언론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미국측은 북한 영해를 침범 하지 않았다고 주장 했으나 선원들을 석방 시키는 조건으로 영해 침범을 인정 하였다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板門店 도끼 殺人事件) 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 군인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8·18 도끼 만행 이라는 명칭이 함께 쓰인다.
1970~80년대에는 북괴도끼만행 이라는 명칭이 대한민국의 언론에서 쓰이기도 하였다.
사건의 발생
사건에서 문제가 된 미루나무는 공동경비구역에서 25년생 15m 높이의 나무로서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는 데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국제 연합군측 주한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Arthur Bonifas) 대위를 위시하여
소대장 마크 배럿(Mark Barret) 중위 등 2명과 부사관과 병[1]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국제연합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린 미루나무의 전지작업을 하는
대한민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박철 중위와 다른 장교 1명, 그리고 15명의 부사관과 병이 나타나 작업 중지를 요구하였다.
미루나무의 위치가 잠정적 관할선에 따라 국제연합군 측에 속했기에 보수작업을 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한 보니파스 대위는 경비중대장 직권으로 작업을 계속 지시하였다.
인근 초소의 북한군 부사관과 병 20여명은 경비 병력을 요청받고 트럭을 이용하여 도착하였다. 박철 중위의 작업 중지 재요청을 보니파스 대위가 거부하자 박철의 공격명령에 따라 북한군 부사관과 병들은 트럭에 실어 가지고 온 곡괭이, 몽둥이와 함께 노무자들이 작업으로 쓰던 나무 밑에 놓인 도끼 등을 빼앗아 휘두르며 기습 공격하였다. 이들은 국제연합군측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집중 공격을 가하여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가 이마에 중상을 입고 피살되었으며, 주한 미군 부사관과 병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와 부사관과 병 4명 등이 중경상을 입었고, 국제연합군측 트럭 3대가 파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