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05년 4월 8일 각의(閣議)에서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관계되는 주변 열강의 양해가 필요했다. 당시 미국은 의화단 사건 이후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대한 반발로 일본에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일본이 러시아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하려고 했다. 한편으로 미국은 당시 아시아권에 강압적이었던 일본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것 역시 바라지 않았다.
1905년 7월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William H.Taft)는 필리핀 시찰 때 일본을 방문했는데 일본이 대만을 발판으로 남하하여 필리핀을 지배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특히 1898년 일본이 필리핀의 독립주의자 아키날도(Emilio Aquinaldo)를 원조했다는 사실은 일본의 필리핀 지배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를 틈타 수상 가쓰라 다로(桂太郞)는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정치공학적 구도가 양자의 의견 일치로 흐르면서 그 해 7월 29일 다음과 같은 협정을 맺게 된다. 첫째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 침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미국의 지배를 확인한다. 둘째 동아시아의 평화유지를 위하여 영, 미, 일 3국이 실질적인 동맹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일본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미국이 인정한다. 태프트는 이 내용을 신임 국무장관 루트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태프트-가쓰라 비밀협약의 실체다.
당시 루스벨트는 중국의 문호 개방을 위해 러·일 두 나라의 세력 균형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 기간 중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 요구와 랴오둥 반도 조차권(租借權) 양도 요구, 그리고 남만주 세력권 요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성립된 태프트-가쓰라 비밀협약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게도 실질적 조선에 대한 보호권 확립을 위한 조약 체결과 함께 나아가 그 이상의 주권 침탈 행동도 취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은 셈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을사늑약의 명분, 경술국치의 신호탄이었다. 19세기 말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한창이었던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와 맞물린 조선말,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로지 정치 파벌 싸움에만 메달린 결과는 비참했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던 대한제국의 종말은 일제 36년이라는 굴욕의 역사를 자초했다. 그리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김일성의 정치야욕으로 시발된 6·25남침 침략전쟁을 당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국제정치 역학구도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전략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기회있을 때마다 미국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자중지란으로 인한 외교적 명분이 성립된다면 제2‘태프트-가쓰라 비밀협약’은 언제나 그 가능성은 열려있다. 반미봉일(反美封日) 등 고립무원으로 가는 문재인 정권, 정치적 IMF를 자초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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