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매사에 자신만만한 청년이 있다.
뭐, 청년이라지만 진짜 청년이 없는 우리 동네에서는 50대까지는 청년으로 취급된다. 60대는 중년이고 70대인 내가 비로소 노년초입이다. 아주 괜찮은 동네인 셈이다.
어쨌거나 매사에 자신이 있어서겠지만 동네 모임에 그 청년이 참여하면 특정 사안이 있거나 말거나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청년에게는 막히는 분야가 없다.
관행농업, 자연농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회윤리 등등에서 골고루.
특히 윤리부문에서는 단연 발군이다.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사는 확실한 방법과 해답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친구다.
그래서 누구든 그 청년을 만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긴 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평생을 문화예술행정 분야에서 먹고살았다는 나 역시 전문분야에서조차도 그 친구 앞에서는 꼬랑지 내리기 바쁘다. 내 생각으로는 엄청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건만 그저 응응 해야 빨리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반론을 펴기 시작하면 밤새 떠들어도 부족한 게 시간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 좋은 교육을 받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멀찌감치 그 청년이 나타날라치면 도망칠 궁리부터 하니까 말이다.
어떻든 나로서는 즉각적으로 정답을 찾아내는 청년의 판단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무엇이든 쉽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까지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베트남에서 많은 전투경험을 치루고난 후에 성품이 변한 거다. 아직도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때때로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그런 걸까, 쪽팔리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좀 우둔한 사람이 되고 만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그런 현상은 심해진다.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 청년이 부럽기도 하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그토록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운 것이다. 아마도 나는 늘 생각이 쓸데없이 복잡해서 쉽게 내 판단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 게다.
말하자면 매사에 뭔가 생각하다 보면 문득 반대논리가 생각난다는 거다. 우유부단이라고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좋게 말하면 신중함이 지나친 셈이요, 나쁘게 말하면 엉덩이가 지나치게 무거운 걸 거다.
그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한 번 결정된 일은 뒤돌아볼 정신도 없이, 그 누구도 못 말릴 만큼 몰아치는 타입이면서도 결정하기까지가 그리도 힘겨운 걸 보면 말이다.
그런 내게도 나름대로의 변명거리는 있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사유의 체계를 세우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삶의 체계를 이론적으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고 헤겔Hegel은 '밤에는 모든 암소들의 색갈이 검다.'라고 말했다. 또한 임어당은 '상식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고.
하긴 뭔가를 논증하려다 보면 논리적 사고에 따를 수밖에 없고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언어를 만들어 내야하며 언어를 만들다 보면 논리를 따라야 하기에 정작 논증하고자 하는 사안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왔었다.
그만큼 우리 삶에 정도, 혹은 교과서적인 해답은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늘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결론을 얻기 힘겨워하는 내편 들어주는 말로 느껴져서 키에르케고르와 헤겔이 좋다.
뭐,‘그 말이 왜 그런 뜻이야?’하실 분도 없지 않겠지만, 앞뒤 문맥 다 배놓고 나 편리할 대로 해석한 거다. 나도 정신적인 위로나마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개인적인 대화에서는 덜한 편인데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면 정말이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런 성품이라 그나마 살아남자고 그랬겠지만 직장에서 간부가 되었을 때, 가급적이면 내 생각을 먼저 밝히기보다 부하직원들이나 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편이었다.
앉은 자리가 능력에 비해 무겁게만 느껴져서 엄청 부담스러웠지만 적절한 판단과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 내 일이었기에 남들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방법밖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가 타고난 자질로는 그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실수를 줄일 수 있었기에.
그래서 매사에 잘 보고, 잘 듣고, 소리 내어 알린다는 목표로 성품을 개조한답시고 나름대로는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본성은 어찌할 수 없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내어 알리기는커녕 오히려 침묵 속에 빠질 때가 훨씬 더 많다.
내가 잘보고 잘 듣고 판단했더라도 여전히 내 판단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이 분들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론들이 상기되는 것도 자신감의 결여가 원인일 게다. 이럴 때, 상식으로 돌아가라는 임어당의 말이 내게 많은 위로가 된다.
여하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내 성격으로는 대단한 거다. 그나마 말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글 쓰는 게 많이많이 쉬운 편이다. 아무래도 당장 코앞으로 총알이 날아오진 않으니까.
한 번 뱉으면 주어 담을 수 없는 말과 달라서 글은 여러 번에 걸쳐 수정할 수 있다. 이곳에 올린 글도 이미 한참 지나서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음에도 수시로 다시 읽고 수정하니까.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복잡다단하기 짝이 없는 내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요,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역시 사람은 옳던 그르던, 말이던 글이던, 가끔은 지껄여야 살맛이 나는 건가 보다.
하긴, 카타르시스catharsis나 엑스터시extasy가 따로 있겠는가. 속에 있는 말 쏟아놓으면 되는 일이지.
하지만 요즘은 우리 동네 청년의 용기를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너무나 용감하게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펴는 것을 보고부터다.
나처럼 지나치게 검토를 거듭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쩌면 저처럼 겁이 없을까 싶을 만큼 내키는 대로 일을 벌이는 문재인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김영삼도 말이 앞서서 졸병들을 곤란하게 하다가 IMF까지 불러와서 김대중이가 나라의 기간산업들을 팔아먹도록 만들더니 문재인 역시 기분 내키는 대로 지랄하다가 나라 망칠 궁리를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다짜고짜 원전부터 때려 부수겠다는 걸 봐도 알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