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는 80년대 유명했던 개그맨이다. 김병조의 교양강좌가 제주시에서 열린다고 문자가 오더니 며칠 후에는 전화까지 왔다. 제주시 종친회장님이다. 꼭 나오란다. 내가 행사를 몇번 주최해 봤더니 행사 주최자의 심정을 알고도 남는다. 행사에 손님이 없을까봐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김병조는 80~90년대에 주말에 '일요일밤의 대행진' 단독 앵커를 7년이나 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김병조는 유재석보다 한 급수 더 높다고 할 만 하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에서 공동으로 진행하지만 김병조는 단독으로 진행했으니까. 그때 시청율이 70%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유명한 개그맨의 강좌라서가 아니라 행사에 머리수 보탤 마음으로 강연장에 나갔다. 출석부에 이름 적고 조금 듣는 척하고 나올 심사였는데 강연이 청산유수다. 듣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개그맨 김병조는 우리와 같은 광산김씨 종친이었다. 그래서 참석자들도 전부 광산 김씨들이다.
참고로 광산김씨에 대해 말하자면, 광산은 지금의 전라도 광주시 변두리 동네다. 웃대로 올라가면 광산김씨는 신라왕 김알지에 이른다. 광산김 시조 김흥광은 신라 45대 신무왕 세째 아들로, 난리를 피해 경주를 떠나 광산에 은거하게 되었다.
김알지에서 더 올라가면 역사적으로 흉노족 휴도왕이 나온다. 휴도왕은 중국 한무제 당시 활동했던 인물로, 한 무제는 한나라의 강력한 왕이었고 흉노족을 막기 위해 북쪽으로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다. 한 무제는 귀순한 휴도왕 태자에게 김씨 성을 하사했고, 이 태자가 김일제로 한 무제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유라시아 벌판을 휘젓던 우리 조상이 섬나라 시골구석으로 밀려온 것은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입도시조 김윤조가 제주로 들어온 것은 고려말, 요승 신돈 암살 거사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멸문지화를 피해 여기로 숨어든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광산김 이야기는 나중 기회로 돌리고.
김병조는 전남 장성 출신으로 조선대 평생교육원 명예원장이었다. 김병조는 연예인 생활을 접고 한학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개그맨답게 김병조의 강연은 청강생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자기 내력과 집안 사정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거기에 명심보감의 구절들을 섞어 나갔다.
김병조는 지독하게 가난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남들 웃기는 것은 더욱 잘했다고 한다. 서울대를 갈 사람은 광주일고를, 육사를 갈 사람은 광주고를 선택하는데, 가난했기에 학비가 안 드는 육사를 가고자 광주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병조의 재능을 알아본 담임선생님이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강력 추천하는 바람에 거길 택했다고 한다. 육사 들어갈 실력이었기에 4년 동안 장학생으로 다녔단다.
김병조에게는 누나가 하나 있었다. 누나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는 누나를 불러놓고 집안이 가난해 둘 다 중학교에 보낼 처지가 안 되니 진학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김병조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다. 어찌 그런 사정이 김병조에게만 있었을까. 나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었으니.
내가 기억하기로는 김병조가 전성기일 무렵, 김병조는 정치적 멘트도 서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김병조는 전두환 지지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중, 연예인 게스트 명단이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에서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을 섭외하던 차, 개그맨은 이주일, 김형곤, 김병조가 후보 명단에 들었다고 한다. 이 명단을 대통령에게 올리자 전두환은 김병조를 점지했다고 한다. 행사 주최자는 정치적 멘트도 부탁했다고 한다. 전당대회였기에 당연히 여당은 띄우고 야당은 비하하는 멘트였다. 행사에서 이 멘트를 하고 나서 누가 기사를 쓰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세상이 뒤집어졌고 전두환을 옹호하던 호남인의 운명은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닌가. 당대 제일의 개그맨을 학자의 길로 가게 만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돈도 많이 벌었고 딴따라보다는 학자가 나으니, 김병조는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했다.
어릴 적 고향에는 자기 집안을 멸시하는 이웃집이 있었단다. 김병조 집안은 학자풍에 뼈대가 있었지만 가난했고, 그쪽 집은 힘도 세고 무식했지만 부자였다고 한다. 오랜 세월 아버지는 이 집으로부터 멸시를 당해 왔는데, 개그맨 시절에 아버지가 또 그런 멸시를 당해 김병조에게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그러자 김병조는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제가 돈을 보내 드릴테니 논 스물 네마지기를 사세요, 절대 기죽지 마세요. 김병조가 논 스물 네마지기를 사라고 한 것은 그 집안의 논이 스물 세마지기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김병조 집안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발전시킨 정통세력이면서 데모만 하던 빨갱이 세력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 판이니, 김병조 같은 똘똘한 정치인이 하나 나와 쓰러져가는 보수우파에게 논 스물 네마지기를 사주면서, 나라를 발딱 일으키는 그런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강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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