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고르며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아간다. 장미가 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세상사 모든 애증(愛憎)과 격정(激情)과 원망(願望)을 놓아두고 장미를 감상할 참이다. 그동안 참으로 하늘만큼 애쓰고 분노하였다.
지난 가을 따사로운 10월 어느 날에 갑자기 핀 한 송이 장미를 기억한다. 사철장미도 아닌 것이 뜻 아니 하게 피어 있어 놀란 적이 있다. 장미도 피어보고는, 자기가 필 계절이 아니었음을 알고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 장미만이 아니다. 남도(南道)엔 가끔씩 철모르는 벚꽃이 필 때도 있다.
세상의 이치란 아주 간명하다. 자기가 있어야 할 때와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한 구분만 할 줄 안다면 인간의 삶은 그리 힘들지 않다. 시기와 곳을 잊고 날뛸 때, 우리는 개인과 전체의 갈등과 파란(波瀾)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과 내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꿈을 일으키고 떠나야 할 때를, 주어진 분수(分數)로 이해하고 긍정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인격이다.
그래서 나는 인격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미 떠나야 할 때이기에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떠나간 것이고, 촛불도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장미 핀 뜨락에서 무엇이 찾아올 때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나 역시 썩은 보수에 대해 진절머리를 친 적이 많다. 존재가 생멸(生滅)하는 시기와 장소를 망각하고, 언제까지나 때를 붙들고 자리를 차고 앉아 있기만을 바란 세력들이다. 변화하는 계절과 움직이는 삶의 터전에 대한 인식과 허허로운 양보를 모르던 인간들이다.
내일 필 꽃을 위해 화단을 양보할 줄 모르던 그들을 사람들은 기득권이라 하였다. 나는 그들의 탐욕과 노욕(老慾)을 경멸하였다. 나 역시 노인이기에 경멸을 줄 자격이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 어느 해외동포가 남긴 말을 되새겨 본다.
“남(南)은 썩었고, 북(北)은 미쳤다.”
지난 전두환 이후 노태우에 이르는 군사정권 때 발생한 부정부패는 필설(筆舌)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처참함 그대로였다. 독재에 대한 충성에 대한 대가는 부정부패에 대한 눈감음이었다. 그래서 너나없이 부패의 대열에 섰던 것이고, 망국의 염려를 자아낸 것이었다.
반면 북의 김일성 독재정권은 1인 숭배체제로 미쳐갔다. 인간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神格化)는 지배자와 인민 다 함께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동포가 남긴 이 말을 현 시국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남(南)을 지지하는 기득권은 썩었고, 북(北)을 찬양하는 주사파는 미쳤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보수는 썩었고, 진보는 미쳤다.”
장미가 피는 뜨락은 더럽지 않다. 거름을 주어도 보이지 않게 준다. 화단에 냄새나는 거름더미를 쌓아놓고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 조국의 화단에도 썩은 보수의 쓰레기는 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광인(狂人)들이 장미 핀 화단을 지배해서도 안 된다.
가위를 들고 이 꽃 저 꽃을 잘라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장미꽃밭을 너와 나의 동의 없이 자기가 원하는 꽃만을 남기고 잘라댈 수는 없다. 그것을 그들은 국가대청소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곧 붉은 장미만을 남기고 하얀 장미와 노란장미, 검은 장미는 우리의 화단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호흡을 고른다. 북을 찬양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 청와대를 점령하고 있다. 그때 우리는 폐족청산을 말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장미꽃밭이 그들의 손에 있다. 그들의 손에는 소위 개혁이라는 이름의 전정가위가 들려져 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법 위에 서고 있다. 기간제 교사의 순직처분은 규정을 벗어난 행위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라는 것은 강요에 해당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지금까지 안 부른 게 아니다. 다만 부르기 싫은 자는 안 불러도 된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두 함께 부르라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은 5.18 유공자가 누구인지 명단을 발표해서 국민적 의혹을 해결해야 한다. 왜 국가 변란을 획책한 이석기가 5.18 유공자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민주는 다양성의 세계이다. 자연은 종의 다양성을 위해 진화를 거듭한다. 그러나 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1인 지배체제에 대한 강요만이 있을 뿐이다. 북녘 땅에는 김씨일가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를 추종하는 주사파와 진보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곧 장미꽃밭에 그들의 주관에 의한 난도질이 시작될 것이다.
썩은 꽃과 가지는 잘라주어야 하나, 그러나 진보좌파는 썩은 가지가 아니라, 자기들과는 색깔과 향기를 달리하는 건강한 보수의 꽃마저 제거하려 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체제와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다시 호흡을 고른다. 곧 장미는 피어 흐드러질 것이다. 그리하여 꽃을 피우지 아니하는 썩은 가지가 눈에 띌 것이다. 그리고 담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장미도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진보의 가치에서 벗어난 하얗고 어여쁜 꽃들, 담벽 위에 핀 넝굴장미들을 보호해야 한다.
호흡을 고르고 우리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역사를 수놓은 모든 의병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일어나야 할 때와 지켜야 할 곳, 목표하는 대상과 터전을 잘 알고 있다.
또한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일어서는 의병도 없다. 다만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주사파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할 일은 자유민주를 지키는 일이며, 자유대한민국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며, 민족의 실제를 지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우리는 지키고 변화해야 하며, 민족의 영광을 위해 진화(進化)를 거듭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꽃밭을 향해 나아간다. 후회는 없다. 다만 내 곁에 선 너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다. 드디어 시기가 오면, 호흡을 고르고, 이윽고 단전(丹田)에 힘을 넣고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2017. 5. 18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