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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심리 전략·전술을 통한 공산화통일의 야욕을 드러내는 북한!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을 보면 조선 노동당은 남조선 미제의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세계의 자주화와 평화를 위하여,세계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위해 투쟁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노동당 규약에 쓰인 내용처럼 북한은 민족, 자주라는 용어를 사용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는 하나,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 주한미군철수등 북한은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주장하여 민족정서를 자극시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내부적으로 북한은 공산화통일이라는 기본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없이 불변적 진리처럼 고수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내외적으로 이처럼 이중성을 띄고 있는 이유는 바로 북한이 대남 심리전을 한반도 공산화 전략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육군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참모부 심리전계획과의 김용만 육군 소령은 2003년 7월의 북한의 대남 심리 전략 전술의 실체와 대응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김 소령은 남‧북한을 통일해 북한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북한의 최대 목표이며 대남 심리전략‧전술도 이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고 있다며 겉으로는 위장의 평화 심리전을 구사하면서도 암암리에 무력 남침을 감행하는 이른 바 외담내타(外談內打)라는 이중적 대남 심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문제는 김소령이 주장한 이 문제가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그대로 먹혀드는 세월이고 또 현실이라는 것이다.
모택동과 김일성이 주장한 [민족]은 목적달성의 수단에 불과
북한의 대남 심리 전략은 사실상 역사적 배경의 중국 공산당 전략과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1921년 창당된 중국 공산당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소련공산당과 나란히 한쪽의 영수적 위치(領袖的位置)를 차지하였다. 1925년 국공합작을 실현시킨 쑨원(孫文)이 사망을 하게되고 그 뒤 실권을 장악한 장제스(蔣介石)는 공산당 세력을 타도하는 군사행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1927년 함께 북벌(北伐)을 개시하였던 국민당의 공격으로 당세(黨勢)가 점차 위축되었고 코민테른과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연이어 실패하자 공산당이 와해되는 위기에 몰렸다.
바로 이때 중국공산당 정책에 반대 입장을 취했던 모택동(毛澤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모택동은 장제스에 비해 상당한 약자로 출발했으나 중국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기만과 모략을 근간으로 한 통일전선 전술의 교묘한 심리전략ㆍ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모택동이 기반으로 한 통일전선 전술은 민족의 이름으로 다가가 민족정서를 자극함으로써 심리적 동조를 획득했다.
2차대전말기 시작된 국공내전(國共內戰)은 당시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는 것이었고,그러기 위해서는 내전을 중지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램 이라고 생각한 모택동은 그것을 간파하고 [국공합작을 통한 항일전]을 주장함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얻고 나아가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이 외에도 항ㆍ일 운동 등의 외세배격 주장을 통한 민족주의 세력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함으로써 지지 기반세력을 확대시킨 우군화 공작(友軍化 工作)도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사례인 것이다.이렇듯 모택동은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민족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민족정통성을 지닌 유일한 지도자임을 부각시킴으로서 민중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다.
결국 그들은 민족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지만 그들의 민족은 목적달성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즉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민족과 모택동이 주장하는 민족공조는 동일한 것임을 역사는 잘 말해주고 있다.
북한 김가 일족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는, 국가보안법폐지, 주한미군철수, 고려 연방제와 통일등 모택동의 그것과 동일한 민족공조를 자행해오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같은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의 실체를 파악하여 이를 분쇄하고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한반도의 자유통일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한반도의 문제는 위에서 거론했다시피 3대 세습왕조인 북한에서 민족의원흉 김일성이 추구하던 노선을 김정일과 조손인 어린아이 정은이가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이것은 무었을 말하는가?결국 민족이란 이름으로 또한번 한반도를 지옥의 아수라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다.이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한다.1950년 6월같은 악몽을 8000만민족 그 누가 원한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