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계획하고 시행할때 우리 국민에게 영웅들이 많았다.
1.추진력이란 정부의 강압정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거의 빼았기시디피한 당시의 농민들은 2013년 7월에 방영된 8시의 KBS인터뷰 뉴스에서도 원망 한마디 하지않는다.그들 전부는 당시 무슨 마음으로 대대로 이어오든 농지를 거의 강제적으로 수용당하고도 지금도 당시의 정부정책에 원망을하지 않을까?바로 국가와 나라사랑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2.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같은시기 일본의 비슷한 고속도로의 건설경비를 비교한것은 우리의 건설비가 일본보다 30%는 싸다는 것이다.여기서 발생되는것은 지금과는 전혀다른 인건비 발생의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 감독으로 파견된 사람들은 대부분 총알이 빗발치는 월남전에서 경험을쌓은 현역 공병 장교들이었다.이 공병장교들은 그야말로 군대식으로서 물불을 가라지 않았다.이들의 군대식 추진력이 없었다면...?
3.민간 기업들도 여기에 한몫 거드는데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대부분을맡아 공사하던 현대건설의 정주영회장은 우리가 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것은 주판을 엎어놓고 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민간기업이 주판을 엎어놓고 공사를 한다는것은 기업의 사활을 건다는 것인데,지금같으면 절대로 있을수없는 말이다.
4.공사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수백명 사망했기에 그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아마도 추풍령에 있는것으로 알고있다.
당시 공사에서 가장 난코스인 당제터널 구간의 터널 공사에서 같이 일하던 형이 발파사고로 죽었는데 지금도 원망을하지 않는것은 그만큼 나라사랑의 마음이라고 본다.이토록 지금의 6~70대의 노년 세대들의 마음속에는 국가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고 본다.
5.이제 국가와 나라를 버리고자 발버둥치는 세력들의 행태를 짚어보자.공사당시 굴삭기 앞에 들어누워 공사 반대를 주장하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진은 영원히 사라지지않을 기록이 될 것이다.당시 김대중은 말했다 [차도없는 나라에서 고속도로가 왠말이냐 그땅에 보리를 심으면 그것이 얼만데....]
이러던 김대중이 고속도로 개통이 되자말자 누구보다 먼저 드라이브를 즐겼다는 끔직한 사실은 무었을 말해주는가?
6.본래 박정희는 이 경부고속도로를 왕복 8차선으로 구상했지만 당시 야당의 극렬한 반대로인해 4차선으로 축소했는데 결국 뭔가?차츰차츰 차선을넓혀 천안까지 8차선 대전까지 6차선이 되지않았는가?본래 박정희가 구상한 8차선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던가는 다시한번 거론하자면 당시의 땅값과 지금의 땅값을 비교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이토록 김대중을 비롯한 그의 세력은 우리 역사상 두고두고 역적질을 한것으로 역사책에 기록해서 후손에게 알려주어야 마땅하다.
결론:경부고속도로 공사에서 땅을 수용당한 농민들,죽음을 불사한 우리의 근로자들,공사에 참여한 기업들 그들 모두는 영웅이다.비단 경부고속도로뿐만이 아니라 1960년대의 경제에서 포항제철의 박태준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대우의 김우중 한진의 조중훈등 이런 영웅들을 탄생케하고 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함으로서 지금 우리가 그 열매를 따먹고,우리의 젊은이들이 세계의 젊은이들과 당당하게 겨룰수있게한 밑바탕에는 바로 박정희라는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박정희 그는 영웅이다]라는 한마디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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