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학에 대한 논점[論點]
지금까지 22 회에 걸쳐서 사주학 성명학 관상학 궁합법에 대한 기초적인 역학을 역학전서란 거창한 타이틀을 앞세워서 주저 넘게도 논객넷”신문에 연재를 하였지만, 사실 역학전서란 책의 주제에 들어 가는 내용은 사실 엄청난 상식과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초 소생은
지금 현대인들에게 맞는 역학으로 재구성 편집하여 남녀노소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다 쉽게 보실 수 있도록 편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서점에 나온 역학의 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사주학 성명학 관상학 풍수학이 주제이고 부록으로는 궁합법이나
꿈 해몽법등 많은 내용들이 집합체를 이루었지만, 필자가 여기 신문에 개제한 내용들은 여러분들이 그동안 가장 보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던, 사주학 성명학 관상학 궁합법에 대한 것을, 누구라도 우리나라 국어인 한글만 알면, 손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하면서
이해가 가도록 쉽게 요약[要略]편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은 풍수학은, 이번 저의 역학 전서에서는 올리지 않을 가 합니다. 물론 옛것을 숭상하고 계승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나, 시대의 변화[變化]에 따라서 이제는 그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이 숭상해오던 문화가
천대받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세월의 변화에는 역시 피해갈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50년 전 100년 전에는 보통 부모님들의 상을 당하면, 보통 7 일장내지 9 일장으로 장례를 치루고서 소상 대상이란 삼년상을 치루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던 효자들은
부모님의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서 살아 계시는 것 같이 삼년상이 끝날 때 까지 효를 다하던 그때 그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삼일장에서 삼우제도 지내지 않고, 매장 일에 묘소에서 탈상을 하는 것이 현대의 장례법이라면 굳이 명당을 찾아서 수많은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돌아가신 조상님과 부모님들에게 효를 다할 자손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풍수지리에 대한 것도 사실 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돈 많고 권력 높은 분들은 아직도 조상님들과 부모님들의 묘자리를 보고 명당을 찾아서
효성을 다 한다는 것은, 사실 조상님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들의 권력과 현제의 부를 이어 가기 위한 방편과 욕심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시자, 전국에서 이름난 풍수 학자를 모셔다가 묏자리를 보면서, 장례를 치룰 적에
묘소 현장에 개토[開土]를 하면서 이상하게 생긴 돌이 여러 개 나오자, 그 풍수학자와 각 언론 기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다는 말이 전직 모 대통령의 묘터자리가 봉황의 날개자리고, 그곳에서 출토된 돌이 봉황의 알이라고 하면서 그 터는
천하의 대 명당이고 길지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만약에 그곳이 길지라고 한다면, 또한 그곳에서 봉황의 알과 같이 생긴 돌이 묘 자리에서 출토가 되었다면, 그 명당의 기를 살려주고 유지할려면 그 돌은 파내지 말고 다시
그 자리에 묻어두고서 돌아가신 분의 유해는, 그 자리에서 조금 물러나서 매장을 한다면, 그래도 그 기운을 조금은 받을 것이지만, 이미 그 터에서 나온 돌을 여기 저기 분산해서 햇볕을 보이거나 바람을 씨 운 다면, 이미 그 묘 터의 정기는 죽었다고 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학자들은 항상 조그만 물체나 형상을, 보드라도 세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학에서는 상생과 상극을 가장 중요시 한다면, 인력으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묘 터조차 제대로 바로 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입니다.
죽은 사자[死者]의 천년 안식 터인, 묘 터는 하늘이 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명당 터는 일자무식꾼의 목동[木童]들과 산꾼[심마니]들이 더 잘 잡는다고 합니다. 즉 추운 겨울산과 들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속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바람이 없는
아늑한 곳에 나무꾼들이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명당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일자 무식꾼들인 목부와 촌로들이 묘 터와 집터를 가장 잘 잡았다고 합니다. 이름 있는 명당 터는 내가 잡고 싶다고 잡혀지고 이름난 풍수가라고 명당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묘 터나, 집터는 주인들의 선대[先代]조상님들이 좋은 성덕[性德]을 쌓아야만, 명당 터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높다고 해서, 명당 터를 다 얻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이씨 조선 건국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에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이성계가 어느 마을을 지나가다가 헌집에 들어가서 헌 석가래 세 개를 짊어지고서 그 집을 나오는데, 갑자기 길가에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지고 닭이 소리 내어 우는 꿈을 꾸고서는 자기가 깨어 보니, 이것은 길몽이 아닌 흉몽으로 알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무학 대사를 찾아가서, 자기가 꿈을 꾼 내용을 무학 대사에게 얘길 하면서 그 꿈을 해몽해 달라고 했더니, 무학 대사께서 하신 말씀이 헌집에 석가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면, 그것은 썩은 나라[고려]를 무너뜨리고 왕[王]이 되는 것이고,
꽃이 떨어지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이고, 거울이 깨어진다는 것은 장군의 명성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닭이 시끄럽게 울었다는 것은 닭은 원래 우는 소리가 꼬끼요 하고 울기에 고귀할 귀자[貴字]이니, 그것은 당신이 앞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면서 왕이 될 것이니, 앞으로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고 덕을 쌓으라고 무학 대사께서 꿈 해몽을 해 준 것이고, 마침 세월이 흘러서 이성계는 썩은 고려 474년의 왕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씨조선을 건국하였고, 왕이 된 다음에
무학 대사를 왕사[王師]로 삼으셨다. 그리고 조선 개국과 동시에, 새로운 도읍지[수도]를 선택 할 적에, 무학 대사께서는 한양 천도는 골육상잔[骨肉相殘]의 흉지이니 한양 천도를 말렸지만, 태조 이 성계는 그 당시 권력 서열 2위인 정도전의 한양천도를 받아 드린 것이고, 결국은
무학 대사의 선견지명과 예언이 적중한 것이고,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그야말로 피 흘리는 골육상잔의 역사를 500년간 이어온 것도 우연은 아니란 것이다. 이방원이가 태조를 도와서 건국한 조선이지만, 왕[王]씨 고려의 수많은 권신들을 비롯해서 후환을 없에기 위해서
왕씨 후손들을 거의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것은, 결국 천리를 어긴 업보로 바야 한다. 그래서 묘 터나 집터의 명당은 좋은 자리를 얻는 것 또한 엄청난 선대 조상님들의 후덕한 인심에서 얻어진 것으로 바야 할 것이다. 이런 좋은 운을 받기 위한 것은
선대의 공덕도 중요하지만, 본인들의 선행 또한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적선지가[積善地家]는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자기들의 분수도 모르고서 좋은 명당과 묘 터를 얻을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는 결국 하늘이 판단하실 문제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분수를 알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 보다가 선행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살아야만 복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혜안[慧眼]이 높은 풍수가라도 하늘은 장소에 따라서, 그 사람들의 선행과 그들의 업장[業障]에 따라서 좋은 터를 내려 준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풍수에 대한 것은 여기 더 이상 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집터나, 묘 터도 이제는 자연 환경과 인간에 맞는 친화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도 역술원 역학 심리상담사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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