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실체에 대한 얘기
꿈이란 것은 사실 우리의 육신과 같이 함께 살고 있는 혼백[魂魄 = 넋] 중에 천기와 가장 맡 닿은 혼이 인간의 몸을 잠시 이탈하여 [수면] 다른 미지의 세계와 미래에 대한 것을 보고 온 것이 바로 꿈이란 것이다. 인간의 몸은 혼[魂 = 하늘의 기운]과, 백[魄 = 땅의 기운]의 중간인 것이 바로 육체[人 = 사람]인 것이고,
그래서 인간을 표현하길 하늘과 땅과 중간에 있다고 해서, 천지인[天地人]또는 천인지[天人地]라고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한다면 사람은 혼과 백으로 둘러싸인 그냥 구조물인 집에 불과한 것이고, 인간의 육신을 혼백이 떠나가면 육신은 그냥 빈껍데기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육신의 삶이 끝이 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혼과 백은 바로 우리의 육신을 지배하는 전능자가 되는 것이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은 본래의 정신세계인 혼백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란 것이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인간 자체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고 하나의 소우주란 것이다.
물론 본래 인간의 정신세계인 혼백을 만들어낸 분이야 말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육신은 태어나면서부터, 혼백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서 말하고 웃고 울고,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끼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백은 자기가 찾아들어간 육신의 집속에서 살다가 육신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에 혼백은
소리 소문 없이 그 육신에서 이탈해서, 다른 영적 세계로 홀연히 떠나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육체에서 혼백은 이탈하는 것이고, 또다시 영혼인 혼백은 다른 육신을 빌어서 새로운 세상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수많은 선현[先賢]들이 우리 인간들은 본래 어디에서 왔고, 또 생명이 다하면 어느 곳으로 가는지에 대하여
아직도 그 어느 것도 밝혀낸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과 생명환경 분야의 철학을 한다는 사람들도 인간 본래의 고향과 다음 생에 대한 것을 속 시원히 풀어 본적이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인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이고 숙제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동안 역학을 배우면서 근 50 년간 그 문제에 대한
화두를 갖고서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것은 무엇이며? 우리들이 본래 어디에서 오고 가는 것인지에 대하여 필자가 때로는 꿈이란 세상을 주유[周遊]하면서 얻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육신을 지배하는 혼백의 고향이 어디인지 찾아본 것이다. 물론 필자의 이런 글을 보시는 분들은 생각하길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가
잠꼬대를 하는 것으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수많은 시간동안 온갖 고통과 희노애락을 겪어 보면서, 얻은 결과가 바로 꿈속의 세상이 우리의 본래 고향이란 것을 알아낸 것이다. 여러분들이 밤이나 낯에 잠을 자면서 수없이 겪어본 사실이 있을 것이다. 바로 꿈속에서는 그 어떤 고통을 당해도
절대로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즐거움도 배부름도 모를 것이다. 그냥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뿐이지, 꿈속에서 실제로 살아 있을 때 같이 육체에 대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 육신과 혼백은 잠을 잘 적에 만은, 영[靈]과 육[肉]이 분리되었기에 전혀 아무런 맛과 신경 조직에 변화를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중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수술시간동안 마취상태에서 수면을 몇 시간 동안 하여도, 전혀 꿈을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약물이란 물질로 우리의 혼백까지 잠을 재웠기 때문이다. 갑자기 기절한 사람도 기절한 순간만은, 전혀 꿈이란 실상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혼백도 갑자기 육신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엉겁결에 당하는 일이라서, 미쳐 육신을 이탈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 피해가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꿈이란 것은 우리 육신을 다스리는 혼백들이 자기들의 집인 육신을 잠시 떠나서 다른 세계를 보고 오는 시간이고, 혼백들이 보고 온 것을 영상으로
우리 육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뇌파에 기록해둔 것이 바로 꿈이라고 필자는 정리를 해본다. 그리고 필자가 오랜 세월동안 꿈이란 존재에 대하여, 수없는 기록들을 남겨 두고서 그것을 체계화 한 것이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꿈과 영적인 능력이 중후[重厚]한, 영 매자[靈媒者]들이나 심령술이 뛰어난 도인들의 꿈의 세계는 제각각이란 것이다.
그중에 몇 가지를 요약해 보면,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꿈을 꿀 적에는 꿈에서 보이는 물체들이 현실적으로 투영은 되지만, 그 꿈의 형상과 색깔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꿈을 꾸면서, 꿈의 형상과 색깔이 투명하지도 않고 색깔자체가 불투명하고 꿈을 꾸어도 잠을 깨고 나면, 그 순간에 무슨 꿈을 어떻게 꾸었는지 조차
기억이 희미할 적이 있다. 그런데 신을 공접[供接]하는 무속인들 같은 경우나, 신기[神氣]가 많은 사람들은 거의가 현실과 똑같은 천연색으로 꿈을 꾼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거의 현실처럼 앞날에 일어날 일들이 먼저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 같이 그대로 투영[透映]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를 직접 드나들면서 보고 오는 분들은 고행과 수련을 거친, 심지어는 죽음도 불사하면서 엄청난 과정을 겪은 영 능력자들은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몇 일이나 몇 달, 또는 몇 년, 몇 백 년 후까지 모두 먼저 보고 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신의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자유자재로 이승과 저승과, 또는 과거와 미래까지
볼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차원인 미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특권과 ? 능력까지 전수 받았다고 바야 한다.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자나, 우리나라 선지자분들인 도선국사와 남사고나 토정 이지함 선생님이나, 사명대사와 서암 대종사[西菴 大宗師]같은 고승 대덕[高僧 大德]분들은 이미 삼세[과거 현세 미래]를 모두 다 알고 계셨던
영 능력자라고 바야 할 것입니다. 필자도 많은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몇 달 정도까지는 대충 감을 잡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천기인 까닭에 함부로 발설하지 못한 다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꿈에 대한 편견을 같지 말고 꿈을 적절히 이용을 해서, 우리의 생활환경에 접목을 한다면 때에 따라서는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고, 미래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용이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다만 지나친 욕심으로 남들보다 먼저 세상을 알려고 과욕을 부린다면, 결국은 하늘에 대한 역천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서 자기의 운명을 단축한다는 것입니다. 무속인 들이나 심령술사들이나, 영 능력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타고 날 적부터
신의 계시에 의한 운명임도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신을 공접 해야 할 운명인대도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길로 나갈려고 한다면, 결국은 자기 운명이나 가족사도 불행해진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고, 태어날 적에 하늘에서 주어진 운명이 점술사나 영 능력자나 무속인 들의 사주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발휘해서 남들에게 튀어 볼려고, 맹목적으로 신의 영매자[靈媒者]가 되고 져 한다면, 그 또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을 공접한 영매자들도 조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물질과 금전에 구속되어,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는 결국은 신의 노여움을 받아서 자기의 목숨을 재촉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불상한 사람들에게 항상 선행을 베풀겠다는 각오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꿈은 우리 인간들에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다음부터는 필자가 직접 꿈을 꾸면서 일어난 일들과 명산대찰[名山大刹]과 산중기도[山中氣道]수행 중에 일어난 기이한 일들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꿈의 실체에 대한 얘기 2 부
꿈이란 것은 지난번에 필자가 정의하길, 꿈은 우리 인간들의 영혼인 혼백[魂魄]이 잠시 육신을 이탈하면서, 다른 세상을 보고 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얘길 한바가 있었고, 사람에 따라서 꿈의 형상과 색깔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한바가 있습니다. 즉 일반 사람들은 꿈을 꿀 적에는, 꿈의 형상과 색깔이 그냥 어둡고
밝은 색깔이 아닌 불투명 하거나 꿈에서 깨어나면 금방 무슨 꿈을 어떻게 꾸었는지 조차 분간이 되질 않지만, 도력이 높거나 신기[神氣]가 높은 사람들은 거의 우리들이 일상에서 평소에 보고 듣는 것과 같이, 천연색으로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심적인 관상을 보려면, 꿈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필자는 그 사람의 운명을 알아봅니다. 더욱이 일반인들은 전혀 접해보지 못한 꿈의 세계를 역학을 오래 하거나 기도수행을 많이 한, 도인들이나 영적인 능력을 가진 영 능력자들이나, 무속인들 같은 사람들은 꿈으로서 자기 운명과 상대방의 운명을 먼저 점치면서, 국가의 변란을 먼저 알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말에
어른들이 흔히 말씀하시길, 꿈은 낯에 꾸면 개꿈이고 닭이 울기 전에 꾸는 꿈은 참 꿈이고, 새벽에 꾸는 꿈은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특히 흉몽대길[凶夢大吉]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꿈은 해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꿈을 꾼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들이 무언가 소원을 이루려고 할 적에는
거의 용꿈이나 불이 나는 꿈이나, 곡식을 집에 갖고 들어오는 꿈과 물 꿈과 조상님들을 보거나 똥 꿈을 꾸거나, 자기가 죽어 보이고 송장을 보는 꿈을 가장 좋은 길몽[吉夢]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꿈을 꾸면서 과연 얼마나 그런 꿈이 우리 일상생활에 맞아 떨어 졌는지는, 사실 아직 통계로 나온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은 꿈으로 끝내야 할 것입니다.
경도 역술원 역학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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