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갈 때는 갈 값이라도....그래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호구지책이 있어야 하는 게 정답이다. 둘째 딸 내외가 졸지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한 것은 작년이다. 이런 수속 저런 수속을 밟다가 프랑스어 연수를 받아야 한다며 약 반년을 캐나다에 있다가 왔다. 솔직한 심정으로...얄미운 사위 놈보다 딸년이 더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중국에서 그리고 영국에서의 유학생활이 몸에 익은 탓이리라. 그래서 ‘절대 안 돼!’라고 반대를 못 하겠다.
어쨌든 귀국을 했으니 무위도식 할 수는 없다. 마누라는 나름의 경험을 살려 남대문에 자그만 가게를 하나 차려 주었다.(오히려 생각보다 비전이 있다. 정말 잘 돼서 이민을 안 갔으면 좋겠고...)그런데 문제는 쌍둥이다. 딸아이는 가게를 하고 사위는 직장을 다니고, 쌍둥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 어렵게(이미 철이지나...)유아원을 찾아 그곳으로 보냈는데 그곳 끝나는 것과 딸아이의 가게 끝나는 게 타이밍이 엇갈린다. 말인 즉 가게도 불안하고 쌍둥이도 불안하다는 거다. 남들 한참 영업하는데 가게 문을 닫고 오는 게 편치 않은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는 좀 거리가 있다. 가게도 쌍둥이도.....
이런저런 고심 끝에 쌍둥이를 이곳 천등산 자락으로 데리고 왔다. 나와 마누라가 딸 내외를 위해 고생 좀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우리 부부를 정말 잘 따르지만, 그것 보다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면소재지에 조그만 성당이 있다. 꽤 역사가 깊다고 들었다. 성당은 유아원과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원장수녀님을 두어 차례 만났다. 뿐만 아니라 고물고물 쌍둥이가 놀 방도 구경했다.
쌍둥이는 지난 16일(토요일)이곳으로 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든가? 쌍둥이 언니‘수아’가 감기로 며칠 째 병원에 다니던 때다. 그런 반면 동생 주아는 멀쩡했다. 월요일인 18일부터 등원을 시키겠다고 원장수녀님과는 약속이 되어있다. 토요일 밤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이 되자 이번엔 멀쩡하던 주아가 기침과 고열에 시달린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이곳 보다는 대처인 충주K대부속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그 길로 원장수녀님을 만나 뵙고 쌍둥이의 사정 얘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다. 아예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다음 주 월요일(25일, 오늘이다)부터 등원 시키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주아의 병치레가 길어진다. 일주일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도 고열이다.(물론 그제도 병원을 다녀왔고 다른 약을 조제 했음에도...)그런 가운데 나 마저 어제부터 고열과 함께 밭은기침이 막 나온다. 몸이 몹시 무겁다. 그예 쌍둥이를 유아원에 보내지 못했다. 우선은 주아가 아직 고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의 이런 곡절이 있는 사이 쩌~어거~ 배역의 땅에서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다. 박창신의 소식 말이다.
내가 이 썰을 풀기 전 두어 시간 전 마누라에게 한 얘기였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아원에 보내도 될까? 잘못하면 바로 빨/갱/이가 될지도 모르는대? 그리고 원장수녀님 쩌~어거 아랫동네 사람인데..?”, “글쎄!?”마누라도 캥기는 모양이다. 어쨌으면 조으까이? 갈등(葛藤), 진짜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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