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세상'을 염원하며...
세계 속의 흐름이나 작금의 한국의 세태를 보자면 실로 안타까운 심정이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 하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안타까운 심정에 속 뜻을 내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에, 딱딱한 글이지만 우리의 이해를 함께하고자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적어본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으로 와서부터 회귀할 때까지의 삶을 추구해 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이념 속에 갇혀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동서양의 철학사상을 비롯 종교적 이념까지도 통틀어 보건대, 우리 '배달민족'의 건국 이념만 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의 통치이념은 '민주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으나, 실제론 법치에 의한 '자본주의'란 말이 더 어울린다 하겠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란 탈을 쓰고 자본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은, '홍익인간 사상'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홍익인간사상'을 간단하게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으나, 핵심을 찾아보자면, '환웅'께서 '배달국'을 건국(BCE 3897년)하고, 통치 이념으로 하늘로부터(환인) 받은 것이 '홍익인간' 사상이다.
이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 이 사상과 배치된 통치를 한 국가는 예로부터 거의가 멸망했거나 세속민들에게 불명예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마침 '조갑제 닷컴'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글이 실려 있기에 아래와 같이 첨부한다.
<2013년6월19일 조갑제닷컴에서 펌>
제목: "더럽게 망해가는 북한과 아름답게 망한 통일신라"
역사는 더럽게 망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고, 베니스와 新羅처럼 아름답게 망하는 나라는 例外(예외)임을 보여준다. 북한정권도 지저분하게 망해가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 敬順王(경순왕)은 백제의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와 신라의 경애왕을 죽인 뒤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경순왕 9년(서기 935년) 왕은 나라를 고려 王建(왕건)에게 바치려고 회의에 붙였다.
마의태자는 이렇게 말했다(三國史記).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天命(천명)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충신, 義士와 함께 民心을 수습하고 스스로 굳게 하다가 힘이 다한 후에 포기할 것인데 어찌 1000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경솔히 남에게 줄 수 있습니까.
" 이에 경순왕이 말했다.
"이와 같이 외롭고 위태로운 형세로는 保全(보전)할 수 없다. 강하지도 못하고 또 약하지도 못하여 무고한 백성만 간과 뇌를 땅에 바르는 것이니,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간과 뇌를 땅에 바른다'는 말은 原文에 '肝腦塗地(간뇌도지)'라고 적혀 있다. 무고한 백성들이 전쟁에 휘말려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절실하게 그린 것이다. 경순왕의 말에서 '강하지도 못하고 약하지도 못하다'는 말이 흥미롭다. 나라를 지킬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폭싹 망해버릴 정도로 약하지도 못하니 王族(왕족)들이 구차한 목숨을 근근히 이어가면서 백성들만 고생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경순왕은 후계자인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시하고 고려 王建에게 항복할 뜻을 전했다. 그해 11월에 王은 백관을 거느리고 경주를 떠나 송도(개성)의 태조에게 귀순한다. 마차, 牛車, 말이 30여리에 잇달아 도로가 막히고 구경꾼이 담장과 같았다. 경순왕은 王建으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경주를 食邑(식읍)으로 받았고 경순왕 백부의 딸을 王建에게 시집 보냈다. 여기서 난 사람은 고려 현종의 아버지가 된다.
신라의 귀족들도 고려에서 重用(중용)되었다. 경순왕이 싸워서 망하지 않고 스스로 귀순함으로써 백성과 귀족들이 亡國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삼국사기의 著者 金富軾(김부식)은 이렇게 평했다.
〈경순왕이 태조(왕건)에게 귀순한 것은 비록 마지 못한 일이나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때 만약 죽음으로써 힘껏 싸워 항거하다가 힘이 꺾이고 형세만 궁급함에 이르렀다면 반드시 그 종족은 멸망되고 무고한 백성에게 해만 끼쳤을 것이다. 현종은 신라의 外孫(외손)으로 寶位(보위)에 올랐고 그 후 大統(대통)을 이은 자가 모두 그 자손이었다. 어찌 음덕의 보답이 아니겠는가〉
金富軾 또한 신라 귀족의 후예였다.
나라가 망하면 왕족과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동서고금의 사례에서 보는 바이다. 신라처럼 싸우지 않고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왕이 스스로 결단하여 귀순함으로써 그 스스로는 물론이고 귀족과 백성들을 살린 예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고구려는 지배층의 自中之亂(자중지란), 백제는 지배층의 부패가 심각했다. 두 나라가 싸워서 망한 것은 一見 장렬하게 보이지만 그 후유증은 當代의 사람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싸워서 망하든지 끝장을 확인할 때까지 가서 망하면 망하는 쪽에서 남는 것이 없다. 따라서 접수하는 쪽에서는 물건과 노예를 줍듯이 하니 예우해줄 이유가 없다. 신라 경순왕은 군사적, 경제적 餘力(여력)이 있을 때 귀순하니 王建으로서도 대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신라 지배층이 고려의 지배층으로 전입함으로써 신라사람들은 고려시대에도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다. 邊太燮(변태섭) 교수는 '韓國史通論'에서 고려 성종期 국가체제가 확립되었을 때의 지배세력은 "지방호족 출신으로 중앙관료가 된 계열과 신라 6頭品 계통의 유학자들이었다"고 썼다. 成宗 때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데 主役이었던 유학자 崔承老(최승로)는 신라 6두품 출신 귀족이었다. 그는 28개조의 개혁안을 成宗에게 제시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와 유교 정치이념을 확립했다.
북한 김정은은 이런 경순왕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망하고 김정은 집단이 斷罪(단죄)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이다. 여력이 있을 때 손을 들 것인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을 때 항복할 것인가의 선택만 남았다. 김정은이 대오각성하여 대한민국에 귀순한다면 적어도 그와 親族, 그리고 측근들의 안전은 보장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는 그의 운명이 의자왕이나 차우세스쿠보다 나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헤어질 때, 죽을 때, 해산할 때, 망할 때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삼국통일로써 韓民族이란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 공동체의 활동공간을 한반도에 설정했던 신라는 망하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라정신 속에 있는 실용정신, 자존심, 그리고 관용과 지혜 덕분일 것이다. 에밀레鐘에 새겨진 銘文(명문)에 나오는 '圓空神體(원공신체)'란 말이 새삼 생각난다. "둥글고 속이 빈 것이 하나님의 本性"이라는 의미이다. 원만하고 겸허하면서도 강력한 존재가 新羅였다.
-2013년 6월19일 조갑제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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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조갑제 닷컴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더라도 강력한 왕권이 존재하여 '위민정치'를 펼치던 시기에는 군신 간은 물론이고 백성도 편안한 생활을 영위해 왔지만, 왕권이 쇠락한 틈을 타서 신권이 득세한 시기에는 '이합집산'에 '이전투구'의 정치현실을 보여 망국의 길로 치닫게 됐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멸망은 험난한 중원에서 뼈가 굵은 연개소문이 을지문덕과 같은 장군들보다도 더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량한 자손들과 대신들의 '자중지란'으로 이전투구를 일삼아 멸망하였고,
고려는 오랜 세월에 걸쳐 투쟁하였으나 결국엔 몽골(원)제국에 굴하게 된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제국 '원'에 의해 굴복한 나라 중 고려가 유일하게 '국체'를 보존하는 국가이자 또한 '원'으로부터 가장 사랑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훌륭한 왕을 배출하지 못한 고려왕조는 신권에 휘둘리고 신전의 '혹세무민' 등에 기인하여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결국 태어나지 말아야 할 '비겁한 조선'이 탄생하게 된다.
조선 왕조의 역사 중에서 삼 분의 일에 해당하는 성군 시대를 제하면 조선은 시작도 끝도 가장 창피하고도 처참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전주)에 의해 세워졌으나 다시 이씨(이완용: 본관 우봉)로 말미암아 패국의 인장을 날인 하게 된다.
여기서 조선을 낮게 치부하는 까닭은 건국의 명분이 지극히 불경하고 백성들의 피를 가장 많이 흘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실권을 잃은 왕은 수많은 충신들을 죽이거나 귀양을 보냈으며, 신권은 끊임없이 왕권에 도전하여 왕권을 농락하고 태동에서부터 사대주의에 충실한 부끄러운 신권은 패망의 그날까지도 '사색당파'의 '아전인수'격 '이전투구'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감추고 싶은 불통 역사의 한 시대였다.
작금의 한국 위정자들의 정치 행태가 어찌 이리도... 마치 조선조의 썩어빠진 당파전쟁이 되살아나는 듯하여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거기다 백성은 말문이 트여 어디를 가도 저잣거리의 싸움질이다. 여기다 학력은 세계에서도 Top이나 인격이 실종된 미숙아를 낳아서 인간 구실을 할지가 의문이고 보니, 교육현장도 개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시점에 '홍익인간'의 뜻을 살려 나와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로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인간, 그런 사회,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따지고 보면 한민족 대통합의 기치를 내세워 '위민정치'를 펼쳤던 천 년 제국의 통일신라야말로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며, 그 마지막 또한 위민을 근간으로 한 위대한 결정으로 신라는 영원히 찬란한 역사에 빛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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