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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비무장지대’를 통해 본 젊은 세대의 인식- 탈존 영화

작성자:

탈존

조회: 5696 등록일: 2017-01-09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전쟁세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를 심리적으로 이용한 북한의 선동과 그에 호응하는 남한의 자생빨갱이들로 인하여 오늘의 혼란이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남북 간에 대치하고 있는 인식을 그린 영화가 있다. 감독의 인식이 곧 젊은이들의 인식과 닮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 영화를 소개한다. 언젠가 이 글을 어딘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요즘의 젊은이들이 빨갱이들의 선동에 손쉽게 넘어가는 이유가 전교조의 거짓교육 외에도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올려본다.
 

  나는 어떤 작품이든 긍정적으로 감상하는 편이다. 애써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얻은 기회인데 감동하지 못하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쉽게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감정이입感情移入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즉 튀는 것이다. 그 튀는 느낌이 왔을 때 이 장면은‘이렇게 표현했더라면…….’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재창조再創造해 보는 것이 내 방식의 감상법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한국영화는 있었다.
  자연스러워야할 인간성이 사상思想과 체제體制에 짓밟힌다는 무개 있는 메시지를 재미있게 다룬 영화, 명필름’제작‘박찬욱’감독의‘공동경비구역JSA : Joint Security Area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한 측 초소에서 한밤중에 발생한 남북한 병사들의 총격사건을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수사하기로 남북 쌍방이 합의함에 따라 스위스군의 법무관 장 소령(이영애 분)이 JSA에 합류하는데, 남북한 당국자들이나 당사자들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수사 끝에 의문투성이였던 사건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두 가지 흐름으로 구성되어있다.
  줄거리는 추리극推理劇 형식을 도입하였고 메시지는 상반된 인식을 대비시켜 전달효과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첫 장면부터 보름달이 뜬 야심한 밤에 부엉이가 등장한다.
  어슴푸레한 달밤에 노란 빛을 발산하는 부엉이의 날카로운 눈.
  이어서 총소리와 동시에 어느 작은 건물 문짝이 총격으로 뚫리는 장면이 지나간다. 곧 이어 활주로에 착륙하는 여객기. 관객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 샷 백Shot back들의 언밸런스unbalance에 본능적으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추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다.
 
  “이미 범인은 자백을 했어. 누구냐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왜 쐈는지를 밝혀야 해. 결과보다 절차가 중요하지. 한반도는 불씨 하나로 몽땅 타버리는 겨울 숲과 같아. 자네의 임무는 완벽한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야.”
  영화 초반에 중립국감독위원회 장군이 장 소령에게 하는 말이다.

  양측 입장을 적당히 아우르라는 의미겠지만 진실을 밝혀야할 젊은 장 소령에게 납득될 리 없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인식차認識差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장 소령의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북한병사들에게 납치됐다가 세 명을 사상死傷시키고 탈출한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이 적을 무찔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어. 빨갱이, 그리고 빨갱이들의 적이야. 중립이 설 자린 없어. 선택만 있을 뿐.”
  한국군 장군이 장 소령에게 한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남쪽의 상급자들 대부분이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지니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밟았으면서도 스스로 뇌관을 해체하고 귀대한데다, 인민군 세 명을 사살한 김수혁 병장을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북한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장 소령이 개성에서 인민군 시신을 조사할 때, 심리전의 일환으로 희생자 가족을 등장시킨 것이나 인민군 최 상위의 남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이 그렇다.
  그것이 6.25를 경험했거나 5, 60년대를 살아온 나이 든 세대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것일까.
  식민지시대植民地時代와 6.25 전쟁의 영향권에서 살았기에 사상, 체제, 정치, 애국심 따위의 개념을 개개의 인간성보다 소중하게 인식하는 세대라고나 할까.
 
  젊은 세대들은 어떤가.
  야간 훈련 중에 적지에서 실수로 지뢰를 밟고 홀로 서있던 이수혁 상병이 때마침 강아지를 찾으러 비무장지대에 들어왔던 인민군 정호진 전사와 맞닥뜨린다. 이어서 나타난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 서로 총을 겨누고 대치하던 세 사람.
  이들의 대사가 재미있다.
  ‘가까이 오지 말랬지?’
  이수혁의 강짜에 오경필 중사와 정호진 전사가 그냥 돌아간다.
  ‘이 개새끼들아! 그냥가면 어떻게?’
  ‘방금 가라고 그러지 않았서?’
  ‘가까이 오지 말랬지 그냥 가라고 그랬어?’
  ‘?’
  이수혁이 울면서 사정한다.
  ‘살려주세요.’
  ‘울기는……, 다 큰 새끼가…….’
  오경필 중사는 지뢰의 뇌관을 해체해서 이수혁을 구해준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휘파람을 부는 오경필 중사의 장난기가 밉지 않다. 해어지면서 정호진 전사가 하는 말, ‘거, 몸조심 하라우야.’적군이라는 개념이 없다.
  오경필 중사의 다소 투박해 보이면서도 느물거리는 캐릭터는 송광호라는 배우를 만나 빛을 발한다. 생명의 은인이 된 인민군과 한국군의 조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성세대였다면 이수혁은 당연하게도 사살됐거나 포로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 이 영화는 전편에 걸쳐 이처럼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감성과 인식차를 극명하게 대비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후 이들의 우정이 발전하는 장면들이 재치 있게 표현된다. 한국군과 인민군 정찰대가 조우遭遇했을 때, 분대장끼리 담배를 나눠 피운다.
 
  뭐, 비무장지대에서 이런 경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오경필 중사가 실눈을 뜨고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휘파람을 부는 모습이 재미있다. 뒷줄에 서있는 이수혁에게 보내는 신호다. 정호진 전사도 침을 뱉으며 신호를 보낸다. 이수혁도 남몰래 미소를 보내고.
  “야! 그림자가 분계선을 넘어왔서. 조심하라우야.”
 
  판문점에서 보초를 서면서 서로 침을 뱉는다던가, 은밀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도 서로간의 적개심이란 없다.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 덕분일까, '저럴 수가?’라는 의심조차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들이다.
 
  이 장면과 교차하며 미군 장교가 관광객들에게 국가보안법을 비웃듯 설명하는 장면이 삽입된다.
  북한사람과 말만해도 사형을 당한다는 국가보안법. 이들의 인간적인 교류와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순수한 인간성을 짓밟는 국가보안법의 비인간적 속성을 강열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대비법對比法이다. 이 모든 상황이 장 소령의 수사과정에서 회상장면으로 전개된다.
 
  물론 이수혁 병장은 오경필을 지켜주기 위해 인민군들에게 납치됐다가 일어난 사고로 진술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들 남, 북한병사들의 우정이 하나둘, 드러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최전방 초소에 근무하는 이수혁과 오경필은 돌에 편지를 매달아 상대편 초소로 던지는 방식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오경필 중사에게 노래 테이프를 보네 주는가 하면‘형님’으로 부를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정호진 전사가 장난삼아 놀러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야심한 밤, 보초를 서다가 졸고 있는 동료 남성식 일병 몰래 북한 측 초소를 방문하는 이수혁 병장. 정작 놀란 쪽은 장난쳤던 정호진 전사와 오경필 중사다.
  “아니? 오란다고 날래 오다니, 이 동무래, 뭐 이런……”
  당혹스러워하는 정호진 전사와 잔뜩 긴장해 있는 오경필 중사의 태도에 어색해진 이수혁은‘안녕히 계세요.’인사를 남기고 돌아선다.
  “아! 그런다고 그냥가면 어떡하네? (갑자기 목소리를 가라앉히며)동지! 잘 왔수다래. 반세기의 오욕을 넘어 통일의 물고를 트기위해 월북한 동지를 환영하며…….”
  나오는 데로 주절거리다가 어색한 분위기에 머쓱해지는 정호진 전사.
  정치적 선전문구가 얼마나 유치한지 관객이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이 역시 인위적인 사상과 자연스러운 인간성을 대비시킨 것.
 
  “거 내 덕분에 살아서 병장계급장도 달아보고……”
  “지뢰 터져서 죽었으면 하사제대요. 내가 독한마음 먹고 지뢰에서 발을 땠어봐. 다 죽는 거지. 따지고 보면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니까.”
  결국 세 사람은 지하벙커에서 술 한 잔씩을 나누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물론 첫 회합에서 서로간의 경미한 트러블이 없을 수 없다. 순간순간 긴장했다가도 슬기롭게 상황을 피하면서 우정의 기초를 다듬는 세 사람이다.
  이수혁 병장이 북측 초소로 놀러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오경필 중사에게 지포라이타를 선물하자 ‘미제美製는 좋은 거라’며 좋아한다.
  “중사 동지는 원수 같은 미제美制 놈들 물건이 뭐 좋다고 그럽네까.”
  질투심이 발동한 정호진 전사가 애꿎은 강아지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내뱉은 말이다.

  이수혁 병장이 정호진을 달래며 포르노 잡지를 선물한다. 기분이 바뀌는 정호진. 셋이 함께 포르노 잡지를 보며 오경필 중사가 하는 말.
  “보라우. 역시 미제라니까.”
  나이든 세대의 시각으로는 미국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북한병사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수혁 병장은 결국 함께 근무하는 전우 남성식 일병까지 북측 초소로 데려 간다.
 
  남성식 일병이 북측 초소를 방문한 이튿날. 두 사람의 대화다.
  “한민족 동포끼리 끝말잇기 좀 했기로 죄졌냐? 불륜을 저질렀냐. 군사기밀을 팔아먹었냐.”
  “뭘 아는 게 있어야 팔아먹지요.”
  “거봐! 그렇잖아.”
  이것이 신세대들의 사고방식일까.
  이 과정에서 감독은 간간히 순찰을 나오는 북측 최 상위의 일관된 인식, 즉 남쪽에 대한 유치한(?) 적개심을 대비시켜 이들의 인간적인 순수성을 강조한다.
 
  이들 네 명의 병사들은 낮이면 거울을 이용해서 모스 부호로 의사소통을 하고 밤이면 권총실탄으로 공기놀이, 외발씨름 등을 즐기며 만남을 지속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끈질긴 체제교육에 따른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북쪽 초소 애들은 우릴 월북시키려고 교육받고 근무한다잖아요?”
  “아냐, 인마. ……내 생명의 은인인데…….”
  오경필 중사를 의심해 보는 남성식 일병과 그래도 우정으로 믿어 보는 이수혁 병장.
 
  이수혁이 오경필 중사들에게 초코파이를 선물했을 때에도 체제에 대한 소속감이 표출된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왜 이런 걸 못 만드나 몰라.”
  오경필의 감탄에 이수혁이 권해본다.
  “형, 안 내려 갈래? 초코파이 실컷 먹을 수 있는데.”
  오경필이 째려보자 겸연쩍어 하며 금방 말을 바꾸는 이수혁.
  “아니면 말구.”
  “잘 들으라우. 내 꿈은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 공화국에서 남조선보다 훨씬 맛있는 과자를 만들게 되는 거이야. 그 때까진 어쩔 수 없이 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그만둡시다. 노인네가 입만 살아서.”
  이들에게도 나름대로 자신이 속한 조국에 대한 소속감이 잠재해 있다는 반증이다.

  총을 맞겨누던 적군과 친구가 될 만큼 이들의 교류를 긍정적으로 그렸던 감독은 그 소속감이라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어느 철학자가 말했듯‘인간에게는 어디엔가 소속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들의 우정에도 전환기가 도래한다.
  인민군을 휴전선 전역에 걸쳐 전진배치前進配置하는 바람에 전군全軍에 비상이 발령됐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상황에 당면한 이수혁 병장은 남성식 일병에게 더 이상 북 초소에 넘어가지 말자고 제안한다.
  “그래도 이 병장님은 한 달 후에 제대할 것이고, 아무래도 작별인사라도 해야…….”
  남성식 일병의 아쉬움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 아쉬움이 결국 비극을 만들게 된다.
 
  작별 인사차 마지막으로 방문한 북측 초소. 피차 마음이 무겁다.
  “지난번에 정말 전쟁하려 했던 거야?”
  “미제 놈들이 폭격한다는데 우린 앉아서 보고만 있니?”
  “그러니까 원자폭탄 같은 거 만들지 않으면 되잖아.”
  “그걸 내가 만드네?”
  “도대체 전쟁나면…….”
  “미국 놈들이 워 게임을 하면 말이야, 이 곳 초소 병사들은 3분 안에 전멸이야. 북남이 함께 쑥대밭이 되는 거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전쟁을 바라지 않기로는 남북한 병사들이 마찬가지. 오경필 중사가 원자폭탄을 만들지 않듯 전쟁 역시 국민들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순간 순찰을 나온 인민군 최 상위에게 이들의 모임이 적발된다.
  순식간에 일어난 총격.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은 최 상위와 정호진 전사를 사살하고 오경필 중사에게까지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탄이 발사되지 않는다.

  오경필은 이수혁과 남성식을 돌려보내며 납치당해서 탈출하는 과정에 사살했다고 말하라며 자신의 어께에 총을 쏘라고 한다. 이 또한 체제體制와 순수인간성의 충돌이다. 자연스러운 인간적 교류가 경직된 체제인식에 짓밟히는 순간이 아닌가.
 
  장 소령의 수사는 집요했다. 남성식 일병은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한다는 말에 투신자살을 기도하고야 만다.

  남 일병의 투신에 흥분하여 장 소령의 목을 조르는 이수혁. 결국 이수혁과 오경필 중사를 대질심문으로까지 몰고 가는 장 소령. 남 일병의 자살기도 테이프를 보고 자제력을 잃은 이수혁 병장에게 일부러 폭력을 행사하여 대질심문을 무산시키는 오경필 중사.
  숨 가쁜 샷Shot들이 지나면서 쓰러진 이수혁 병장의 눈에 군화에 밟혀 부서지는 모형이 보인다. 사건경위를 설명하느라 사용했던 관련자들의 모형이다.
  이 순간 화면가득 클로즈 업Close up되는 군화가 무자비하게 느껴진다.
  인간성이 체제에 짓밟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군화로 상징한 것일까.
 
  장 소령은 본국귀환명령을 받는다. 피의자인 남성식 일병을 투신으로 몰아붙인 것만으로도 해고감이라는 경고를 받으면서.
  “자넨 판문점을 몰라. 여기는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 남북이 원하는 만큼 서로의 주장을 끝없이 되풀이 하다가 흐지부지 되는 것을 바라는 곳.”
  중립국감독위원회 장군이 장 소령에게 해준 말이다.

  그럼에도 장 소령은 이임 막바지까지 이수혁 병장을 몰아붙인다. 장 소령은 진실을 이야기 해주면 오경필 중사를 보호할 수 있도록 거짓보고서를 올려주겠다고 제안하는데, 결국 이수혁 병장조차 자살을 택한다. 그 순간 예쁜 장 소령이 얄미워 보인걸 보면‘이영애’가 연기를 잘한 게 틀림없다.

 
 
  우리 영화로는 모처럼 깊이 있는 주제의식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음에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감독의 재치와 창의력이 크게 돋보이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결코 감동할 수 없는,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진하게 남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리얼리티reality의 문제다.
  아무리 한국군의 군기가 빠졌기로,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이 야간근무 중에 북쪽 초소로 수시로 놀러 다니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어떤 곳인가. 얼마 전에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아무리 주적개념主敵槪念이 없어진 시대라지만 당직사관이 야간순찰을 돌거나 이상유무확인 전화라도 하는 군대라면 어찌 두 병사가 함께 최전방 초소를 비울 수 있다는 것일까. 북한 초소에는 최 상위가 수시로 순찰을 도는데 남한 초소는 순찰이 없다?

  후방부대의 초병哨兵조차 이런 식으로 근무할 수는 없다. 이는 숨을 쉬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고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 한 가지 의문. 미군 공보장교가 남의 나라 헌법을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관광객들에게 부정적으로 소개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얼떨떨하다. 자칫 외교문제가 될 만큼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감독의 국가보안법 지지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문점 근무 중에 남북의 주인공들이 서로 남몰래 장난치는 인간적인 모습과 국가보안법의 비인간적인 속성을 대비하여 충격효과를 얻고자 했다면 기술적으로 서툴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장 소령과 중립국 장군이 수사과정의 어려움을 의논하는 장면을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장군이 장 소령에게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장면을 그들의 장난과 대비하여 삽입했더라면 같은 효과를 얻으면서도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한국군 병사들의 자살이다.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한다는 말에 투신자살을 기도한 남 일병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친구 없이 지내다가 군에 입대했다는 내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수혁 병장의 자살은 아무래도 샷이 튀는 느낌이다.

  별 생각 없이 적 초소를 들락거릴 만큼 자유분방한 사람이, 더구나 장 소령이 안아주면서까지 비밀을 지켜주기로 약속한 마당에 자살을 한다?
  자신이 정호진 전사를 죽였다는 장 소령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남성식 일병의 투신자살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장 소령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과 오경필 중사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판단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정신이 없어서? 갑자기 책임감 있는 군인으로 변신했기 때문에?
  어쩌면 수사 받는 과정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기분에 순간적으로 자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살을 할 정도라면 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장 소령이 끝내 사실을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면 그나마 자살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차라리 그 편이 집요하게 진실을 밝히려했던 장 소령의 성격과도 부합하지 않는가.
 
  어차피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정치적인 주장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감각이 뛰어났음에 진실은 모른다는 것일까.
  소설이나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란 현실적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비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는 판타지fantasy나 S.F 작품들을 실감하며 감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야 자연스럽다. 그것이 인력引力이라는 물리법칙을 적용받는 원리다. 분수라는 특별한 장치를 쓰지 않는 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흐른다고 표현했다면 이게 바로 리얼리티의 부재다.

  그러나 작품은 작가가 창조해낸 세상이요 우주다. 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면 된다. 반지의 제왕’이나‘스타워즈’처럼 말이다. 최소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 안에서나마 모순은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리얼리티에 실패하면 감동 역시 없다. 감정이입感情移入과정에서 스파이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실패를 했다고 들었었다.
  당연한 일이다. 관객들이 많이 봤다고 꼭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감독은 주제를 한가지로만 가져가야 했다. 선동가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감독이 되고자 한다면 이 영화 곳곳에 내제되어 있는 반미, 친북좌경 등, 감독의 사상체계를 무리하게 끼어 넣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가 사실감을 훼손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JSA는 깊이 생각할만한 중후한 메시지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에 실패한 그저 재미있는 영화 정도로 기억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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