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뜬금없는 얘기를 한다. 어쩌면 기회 있을 때마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우며 살아라!”그리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부연하지 않는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 늙은이가 천수를 다하고 죽기 전 두 아들을 불러 놓고 화살인지 회초린지를 한 묶음 가져오게 하여 꺾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다발의 그것을 꺾지 못하자 이번엔 형제에게 반반씩 나누어 꺾게 하자 쉽게 꺾자“나 죽거든 매사를 이렇게 협조하며 살라!”며 유언을 했고 형제는 아비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의좋게 살았다나 뭐라나.
뜬금없는 나의“도우며 살아라!”라는 외침은 3남매 시집장가 가고 각각 저희 가정을 꾸리며 더 빈번해 졌고 특히 아들며느리에게 한두 번이라도 더 한 것 같다.
어디선가 온 전화를 받는 아내의 표정이 썩 밝지만은 않다. 물론 목소리 또한 평소답지 않게 차분하다. 그리고 마지막, 어쨌든 모든 건 네가 알아서 하라는 조언 내지 충고를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당연히 궁금할밖에....
“누구야?”,
“응~아들!”,
“뭔데...?”
3남매가 나름 안정된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둘째 딸아이가 쌍둥이‘수아 주아’를 출생시켰고. 똑 같은 조건이라면 하나를 키우는 것 보다는 둘을 키우는 게 힘들 것이다. 생활비도 그만큼 더 들것이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아들의 협조로 아들이 영업하고 있는 같은 상가에서 유사한 가게를 하나 차리고 영업을 시작했던 것은 꼭 1년(2월 기준으로) 전이었다.
그런데 영업이익이 나고 돈을 많이 벌고는 둘째 치고 쌍둥이들 육아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상가 규정상 새벽에 가게를 열어야 하는데 쌍둥이는 세상모르고 자는 시간에 출근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사위가 유아원에 데려다 준 뒤 출근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고, 심지어 토요일(쌍둥이 등원 않는 날)은 김포 사부인께서 결근을 해 가며 쌍둥이를 돌보러 오시며 그렇게 1년을 버티는 속에서 돈도 돈이지만 제 어미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쌍둥이를 생각하니 도저히 영업을 지탱하기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동생 가게에서 월급쟁이로 일을 하며 따로 받은 주문은 주문대로 제 몫으로 하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하기 시작 했었다. 것보다 더 큰 특혜는 사위가 하던 쌍둥이 등원을 면제시키고 근 열 시 쯤에 출근을 하여 오후 세 시에 퇴근을 해도 좋다는 혜택을 준 것이다. 이 아비는 그렇게 알고 있었고“도우며 살아라!”라는 나의 교육적 표어가 씨 먹혀듦에 흐뭇해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동생 가게이지만 인간이라면 양심 같은 게 있었을 것이다. 제 대신 엉뚱한 한 아가씨를 해고(사실 그 아가씨 자신도 조그만 가게를 열겠다고 자청(사퇴)한 것이지만,,,,)하고 그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몇 달인가 시간이 흐르며 쌍둥이 어미는 제 동생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뭔데...?”라는 나의 질문에 아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궁금증이 한 단계up된다.
“아!? 뭐냐니까?약간 목소리가 올라간다.
“아가씨 하나를 구해야 한데...”
“요즘 장사도 덜 된다며 아가씨는 왜?”
그리고 갑자기 역정이 확 치밀어 오른다.“이 짜식이....지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거야 뭐야!? 제 누이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도와야지...”,“그런 소리 하지 마욧! 알지도 못하면서...”나의 불만 섞인 역정에 오히려 마누라가 더 역정을 내며 싸울 듯 덤벼든다. “아니!? 이 여자가 왜이래!? ”
아내와 그런 시비(?)를 주고받기 며칠 전 아주 반가운 소식을 하나 전해 들었다. 둘째 딸 아이가 쌍둥이 전용 차량을 하나 샀고 그것으로 등. 하원을 시키게 됐다는. 다른 계절은 관두고라도 북풍한설 몰아치는 평창동 언덕 빼기를 종종걸음으로 앞세우고 뒤세우며‘빨리 가자! 빨리 와라!’라며 소리를 질렀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콧잔등이 시큰해지는데 차를 한 대 뽑았다니 얼마나 축하하고 고마워할 일인가. 더 고마운 것은 제 남편의 사업이 요즘 정말 술술 잘 풀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과 며칠 전 쌍둥이를 위해 차를 샀고, 가족 유일의 장롱면허소지자였든 둘째가 화급히 도로주행교습을 마치고 그것도 미진하여 며느리가 교습 선생 노릇까지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는데 갑자기 가게를 그만두게 되고 다른 종업원을 구한다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고야? 사직이야?”
“선이(딸) 스스로 자청한 거래요”
“그걸 어떻게 액면 그대로 믿어!? 선이한테 전화해!”
나의 이런 태도에 아내는 불쾌한 듯 눈을 홀기며 말을 잇는다.“지 누나 가게 할 때 그 추운 엄동설한에 누나 대신 출근해서 가게 문 열어주고 헬스장에서 시간을 때우고 지 가게 문 연 아이를 의심해욧! 당신 같으면 그렇게 하겠어?” 이건 완전히 싸우자고 덤비는 격이다.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정말 착한 놈이다. 이 아비의DNA를 물려받았으면 성질이 더러워 뻑하면 소리 지르고 할 테지만 정말 단 한 번도 큰 소리 내는 걸 못 봤다. 제 어미를 닮아 항상 고분하고 차분한 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착한 놈이고 남매지간이지만 어쩌다 제 누이의 존심을 건드리지는 않았는지? 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딸년이 부지불식간 그만 둔다고 한 건 아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상가는 같지만 층이 다르고 또 영업 개시 시간이 각각 달랐다. 보통의 상가들은 지각을 하거나 문을 열지 않을 경우 상가 나름의 규칙에 따라 상당한 벌과금이 부과되는 모양이다. 아무리 누나지만 저도 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며느리와 손녀 예솔이가 혹시라도 깰까 까치발로 조용히 출근(사실 서울 집에 갔을 때 몇 차례 목격 했다.) 했을 아들 생각에 갑자기 지금까지 아내와 시시비비 가렸던 게 미안하고 송구하다. “그랬어....... ....? 챠~아~식!”하며 내심 아내의 독한 지청구에도 흐뭇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요즘은 워낙 농번기에 접어들어 그렇지만, 사실 저녁이면 손녀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큰딸네로 쌍둥이네로 며느리에게로 차례로 전화를 하여 끝으로‘사랑해!’라는 말로 하루를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차례로 전화를 하는 가운데 작은 딸과도 통화를 했다.“가게 그만 두는 거, 100% 니 의사가 확실하지?”라는 다짐을 몇 차례 받고야 안심을 했던 것이다.
지난 토요일 아들며느리가 내려왔다. 어버이날은 평일이라 못 내려온다며 미리 다녀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또 예의“도우며 살아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역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부연하지 않는다.
서울 집으로 3남매가 자주 모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의를 다지는 모양이다. 그냥 막연히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이 아비의“도우며 살아라!”라는 무형의 기치 아래 그렇게 모이고 또 우의를 다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사실들을 모두 며느리의 공으로 돌리고 싶다. 자식 놈이 아무리 착하고 제 누나들에게 우호적이라도 제 처를 깡그리 무시하고 누이들과 그런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탐탁지 않거니와 아비 살아있는 동안만 지키겠다는 형식적인 구호일 게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도우며 살아라!”라는 외침에“네~! 아버님!”하며 단호하고 결기 있는 대답을 자식 놈 보다 먼저 하는 걸 보면 속으로 감동이 북 받히며 모든 걸 며느리 공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다.
한창 농번기에 접어들었다. 어제도 모종을 또 일부는 파종을 하였다. 몸은 고달프지만 행복하다. 아직은 초보농사꾼의 결실이 어떨지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 금년 농사는 예년과 달리 잘 지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 나름 자식농사는 훌륭히 지었는데 농사가 좀 덜 된들 어떠하리. 계절의 여왕 5월의 하늘이 눈부시다.
덧붙임,
둘째 딸은 쌍둥이가 스스로 유아원 차량을 타고 다닐 내년쯤에 가게에 다시 나가겠다는 답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