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2월 6일 유엔 소총회에서 '가능지역 내의 선거실시에 관한 권한'을 유엔 한국위원단에 부여했다. 이 결정에 따라 5월 1일부터 5월 10일 이내에 가능지역인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써 제헌 국회의원선거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10일 대한민국 건국선거를 실시하기로 공포했다. 선거일이 공포되자 남로당은 당원 30만여 명을 동원하여 2월 7일 5・10선거를 반대하는 폭동(2・7폭동)을 일으켰다. 문제의 제주 4・3폭동은 그 2・7폭동의 연장선에 서 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김달삼의 명령에 따라 책임자들은 수산봉, 고내봉, 파군봉 등 오름마다 봉화를 올렸다. 바로 제주4・3사건의 신호탄이었다. 한라산 봉화를 신호로 전도의 빨치산 무장유격대가 일제히 지서를 습격했다. 4⋅3폭동은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시에 무장 습격하는 것을 시발로 1957년 4월 2일 마지막 공비 오인권을 생포까지 만 9년 동안 치러진 내란이었다. 4⋅3폭동의 주체는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이다. 그 남로당 거물 가운데 제주 총책 김달삼과 이덕구가 있다.
김달삼은 4・3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이며, 인민유격대 총사령관이었다. 본명은 이승진(李承晉)이다. '김달삼'은 박헌영 직계로 골수 공산주의자였던 장인 강문석의 가명이다. 강문석은 일제 강점기 중국 상해에서 항일운동할 때 썼던 자신의 가명을 사위에게 주며 제주로 가서 공산혁명을 일으키라고 지시했다. 지시에 따라 김달삼은 4・3폭동을 일으키고 북한정권에 '제주4·3투쟁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보고해 훈장까지 받았다. 4・3이 북한 정권의 지원 아래 일으킨 폭동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48년 8월 2일 4·3폭동 주동자 김달삼 일당은 폭동이 한참 절정일 때 제주도를 몰래 탈출하여 목포를 경유, 해주에 도착하여 8월 21일 개최된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20대 청년 김달삼은 35명의 주석단 선거에서 박헌영, 허 헌, 홍명희 등과 함께 선출되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투표에 앞서 행한 이른바 '김달삼 해주연설'을 하면서 '박헌영에 대한 지지를 밝힌 후, 우리 조국의 인민해방군인 위대한 소련군과 천재적 영도자 스탈린 대원수 만세! 김일성 만세!'를 외치며 연설을 마친다.
해주대회를 마친 김달삼 일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이 되었다. 제주도 출신으로 대의원에 피선된 사람은 김달삼의 장인 강문석, 고경흠, 송성철 등이 있다. 김달삼은 1949년 1월 당시 수상 김일성과 부수상 박헌영 참석하에 거행된 훈장수여식에서 국기훈장 2급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유격대원 300여명을 이끌고 강원도와 경북일원에 침투했지만 1950년 3월 사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무장대를 지휘하고 있는 이덕구도 국기훈장 3급을 받았다.
제주4・3폭동을 논할 때 이덕구도 빠질 수 없다. 이덕구는 4·3폭동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이자 인민유격대 2대 총사령관이었다. 이덕구는 1948년 8월 해주 대표자대회 참가를 기점으로 지도부가 교체될 때 제2대 유격대장으로 군사부 총책이 되었다. 그가 지휘한 인민유격대는 위미리 전투에서 단 한번 실패했을 정도로 지도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4⋅3폭동 등의 공로로 북한은 이덕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고 평양소재 애국열사능에 김달삼과 함께 이덕구 가묘비를 건립해 주었다.
폭동이 절정을 이룰 무렵인 1948년 10월 24일 이덕구는 대한민국이 곧 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제주인민군 사령관 자격으로 도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친애하는 장병⋅경찰이여! 총부리를 잘 살펴라. (중략)침략자 미제를 이 강토에서 쫓겨 내기 위하여, 매국노 이승만 일당을 반대하기 위하여, 당신들은 총부리를 놈들에게 돌려라. 당신들은 인민의 편으로 넘어가라. 내 나라, 내 집, 내 부모, 내 형제 지켜주는 (한라산)빨치산들과 함께 싸우라. 친애하는 당신들은 내내 조선인민의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라”
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이며 제주도인민유격대 총사령관 김달삼과 이덕구는 대한민국 정부를 괴뢰정부, 적, 원쑤라 칭하고 선전포고문과 친소련, 친북한적 삐라를 살포했다. 김일성 정권의 노선에 따른 공산통일을 추구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5・10선거를 파탄 내려는 목적이었다. 그들은 공산전제정치의 실상을 전혀 모르는 순박한 도민들을 선전 선동으로 기만했다. 이반된 민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남한 공산화를 위해 4.3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제주4・3폭동이 항쟁이라면 그 주동자 김달삼과 이덕구는 제주4・3특위에서 희생자의 첫 머리에 등재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희생자 명단에는 그들 이름도 없을뿐더러 그들을 기리는 흔적도 없다. 그들은 북한 정권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김달삼과 이덕구를 평양의 애국열사 묘역에 가묘를 만들었고, 국기훈장 2급과 3급을 각각 수여했다. 반론할 수 없는 이와 같이 분명한 사실은 4・3은 항쟁이 아니고 김일성식 공산통일을 획책한 반(反)대한민국 폭동이며 반란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4・3은 늘 폭동인가? 항쟁인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비슷한 케이스로 광주5・18을 폭동이라 하고, 한편에서는 항쟁이라고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5・18 주변에는 유언비어만 무성하다. 올해는 북한군 개입설로 뜨겁다. 왜 대한민국의 폭동 역사에는 북한정권이 개입되어 있을까? 실제로 광주5・18과 제주4・3이 북한 정권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는 지난번 체널A 방송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탈북녀 김소영의 노래에 잘 나타나 있다.
“제주의 해녀야 별보러 가자.. 광주의 학도야 별보러 가자.. 너와 나의 꿈에도 그리던 별님.. 남녘의 하늘을 밝게 비춘다” 탈북녀 김소영은 "여기서 별이라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래서 남녘동포들을 불러내는 거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제주의 해녀'를 언급한 것은 제주4・3을, ‘광주의 학도'를 언급한 것은 광주5・18을 은유하고 있다. 주민선전용이든 대남선전용이든 이런 선전노래를 보면 제주4・3과 광주5・18은 북한정권과의 관련을 뒷받침하는 이란성 쌍둥이 모습을 하고 있다.
“폭도놈 XX들이 끼어가지고..” 최근 도지사가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발언 두고 말들이 많다.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4・3사건 질문에 답하던 중 "북한에 갔을 때 (북한측이) 영웅묘지나 데리고 가고, 김달삼(남로당 제주도당 책임자, 인민유격대 총사령관), 이덕구(2대 총사령관) 묘지도 보고 왔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우 지사는 "북한에서 영웅시되는 김달삼, 이덕구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며 4・3에 개입해 과잉진압 빌미를 제공한 남로당 잔당 세력"이라고 지적 한 것이다. 일부 거친 표현은 지적을 받을만 하다. 그렇지만 본질을 지적했다고 그 문제까지 비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일성은 대한민국 공공의 적 1호다. 김일성은 노동당 본당으로 남로당을 배후 조정해 제주4⋅3폭동을 일으키고 이에 고무되어 6⋅25남침전쟁을 도발한 장본인이다. 그 앞잡이 지시를 받고 반란을 주동한 김달삼과 이덕구는 제주도 공공의 적1,2호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7년 4월 2일까지 만 9년 동안 제주도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 폭동의 주범이다. 이들을 제주의 도백이 “폭도놈 XX들”이라고 발언했다고 논란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김일성・김달삼・이덕구가 지하에서 좋아서 웃을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