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재평가는 다룰수 없는 성역인가? 알다시피 5・18사태는 10・26에 따른 정치불안과 사회혼란의 틈새에서 역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정치공학적인 메카니즘이 작동되었다. 이와 맞물려 각종 유언비어가 확대 재생산되는 등 많은 변수들이 뒤엉킨 한국사의 비극적 정치사건이었다. 5・18사태는 규명해야 하는 정치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고 말았다. 성격상 진상규명 바탕 위에서 얼마든지 변하고 바뀔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에 의한 평가로서 역사적 사실까지 규제 하겠다는 발상은 또 무엇일까?
일찍이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H, Carr)는 '역사이론서' 혹은 '역사철학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는 또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이며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역시 그 연장선에서 보면 5・18사태에 대한 재평가 담론이 설득력은 얻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상식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라면 그 어떤 경우라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재평가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6・25남침의 경우도 한때 북침설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소련 붕괴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침설은 사라졌듯이 5・18광주사태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재평가해야 함은 당연하다. 최근 5・18사태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대령박사(필명 역사학도)의 '역사로서의 5・18'에 언급된 광주지역 운동권 총책 윤한봉의 수상한 동선과 관련한 내용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윤한봉이 5・18사태가 일어나기 두 달전(3월)부터 광주시내와 주변에 배치된 무기고 습격을 위해 사전답사를 했다는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윤한봉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윤한봉은 1947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5・18광주사태 주모자로 지목돼 수배생활을 했다. 1981년 4월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숨어 35일을 연명해 미국으로 밀항했다. 1993년 5・18사태 수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수배가 해제되자 귀국했는데, 이후 5・18기념재단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재미교포 역사학자 김대령박사는 80만 페이지 기록에 달하는 5・18 관련 자료를 7년간 조사하면서 발견한 윤한봉의 5・18 무장계획에 관한 구술녹취록을 자신의 저서 '역사로서의 5・18' 한부분에 담았다. 그런데 유네스코 등록을 위해 5・18재단측에서 윤한봉 5・18 존재감의 중요성을 감안, 그 구술녹취록도 의도치 않게 자료의 한부분으로 유네스코에 보낸 것이다. 문제는 당시는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부분이 최근 탈북자 특수부대원 증언과 맞아떨어지면서 현재 광주사태의 가장 큰 증거로 되버린 것이다.
녹취록 윤한봉의 증언 일부다.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인자, 요즘은 지도가 아주 세밀한 지도까지도 나오는데, 당시에는 만 오천분지 일 지도를 가지려면 신분이 확실한 사람 외에는 그걸 못 사게 되어 있었어. 살 때. 단파 라디오 사는 것하고 비슷해가지고. 그 지도를 인제 박화강씨, 그때 광주매일인가 있었는데 지금 한겨례 지국장 하다가 그만 뒀는데. 그 화강이 형한테 부탁을 해가지고 내가 만오천분지일 광주 지역 지도를 구해가지고..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총, 다이너마이트 이런 무기들이 필요하지 않냐"
“그러니까 예비군 무기고가 어디가 있고, 다이너마이트는 어디에 있구나 이런 것들 좀 파악하고 도청을 어떻게 점거하기 위해서 도청 주변의 도로를 어떻게 어디 쪽으로 몰려들고 포위를 해야 하고 등등 고런 작전도 세우고 좀 그래야겠는데. 그래서 이제 지도를 구한 거예요. 지도를 구해가지고 이를테면 지원동, 지금은 소태동 쪽인데 거기 나가다보면 거기 채석장이 있었어요. 다이너마이트 창고도 있고. 현장 답사도 하고. 양림동 파출소 뒤에 있는 무기고부터.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다니면서..”라는 내용이 있다.
이 녹취록은 2006년 2월 자신의 자택에서 행한 3차 구술 녹취문에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다. 여기에는 정세분석, 광주항쟁에 대한 예감과 준비, 광주항쟁 발발과 피신, 도피생활, 김대중 등에 관련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이 구술은 나중에 탈북자들이 당시 목포,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고정 간첩 조직망이 확보돼있었으며, 전남민청협이 중심인 광주 운동권에 무기고 위치를 확보하고 무장봉기의 시기를 기다리라는 지령을 내려 특수부대와 함께 작전을 시작했다는 증언과 일치하면서 인증샷 역할을 하고 있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 성립할 수 없 듯 전제를 무시한 논리와 주장은 궤변이요 억지에 불과하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이념, 모든 사상, 모든 논리는 어떤 전제위에서 이루어 진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을 전제로 공산주의의 이론을 폈고, 토인비는 문화권간의 갈등을 전제로 '도전과 응전'이란 테제의 사관을 폈고, 수학자 유클리드는 유한공간을 전제로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전제와 명분이 수긍되어야 한다. 5・18민주화 운동의 전제는 무엇이었을까?
3・1절은 맨몸으로 저항하며 대한독립을 요구했고, 4・19는 부정선거에 대한 민주적인 저항운동이었다. 어느 민주화 운동 역사에 무기고를 탈취하고, 군장비업체를 습격 장갑차와 화포가 동원되고, 총칼을 앞세워 해방구화 시킨 기록이 있는가? 또 "전두환 찢어죽이자?" "김대중 석방해라?" 과연 이런 구호로 무기고 탈취를 정당화시키고 민주화의 거대담론을 담아낼 수 있는가? 최근 5・18성역화 재갈물리기가 정당, 단체, 언론 등 전방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5・18,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