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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과 천재 -탈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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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존

조회: 5531 등록일: 2017-12-24

훌륭한 음악을 감상하노라면 때로는 영혼을 흔드는 엑스터시ecstasy를 경험한다. 흔히 음악을 신神의, 혹은 영혼의 언어라 일컫지만 과연 그렇다고 공감하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아그네츠카 홀란드Agnieszka Holland’감독의 ‘카핑 베토벤’이 그런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이 말해주듯 ‘베토벤’보다 오히려 그의 악보를 카피해 주는‘안나 홀츠’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베토벤의 정신세계를 관객들에게 이끌어 내어 보여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무엇보다도 치밀한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퍼스트신first-scene부터 펼쳐지는 자연과 음악을 조화시킨 서정적인 장면들, 범상치 않은 음악가들의 파행跛行, 등장인물들의 강도 높은 갈등, 이 모든 장면들을 고전적인 색조로 심도 있게 표현함으로써 러닝타임 104분 동안 관객들을 긴장으로 몰아간다.
아울러 철저하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베토벤 심포니 9번의 선율은 이미 긴장의 포로가 되어버린 관객을 라스트신last-scene까지 풀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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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음악의 도시 비엔나.
청각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 심포니 9번을 작곡하는 베토벤(에드 헤리스Ed Harris扮)은 초연에 앞서 연주용 악보를 카피해 줄 인재를 찾던 중 음악학교 우등생 안나 홀츠(다이엔 크루거Diane Kruger扮)를 추천받는다.
여성이라는 점이 달갑지 않았지만 첫날 만남에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간파하고, 스스로 악보를 수정한 그녀의 천재성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베토벤의 무례하고 독선적인 횡포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을 가슴 깊이 이해하는 안나, 결국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열면서 두 사람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혼의 세계를 교감해 나간다. 드디어 9번 교향곡 초연의 날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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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는 천재는 없다.
천재들은 대체적으로 괴벽하거나 기행을 일삼는 편이다.
베토벤 역시 그렇다.
베토벤의 악보를 카피하는 ‘슐렘머’는 ‘베토벤은 야수野獸.’라고 정의한다. 카피가 잘못됐다며 슐렘머를 닦달구질 하는 베토벤의 모습이 과연 야수라 할 만큼 난폭하다.
예의 없고 난폭한 만큼이나 청결에 관심조차 없는 베토벤이다. 청소를 하지 않아 집안에 쥐가 들락거린다. 그의 인생 자체가 음악이기에 다른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 뿐이 아니다. 그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느낌이 올라오는 데로 지껄일 뿐이다.
안나가 자신의 악보를 고쳤을 때 비꼰 말이 이렇다.
“내 악보를 고쳐? 그건 자네가 20년에 불과한 삶의 경험으로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 평가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느님, 세상을 훌륭하게 창조하신 거 같아요. 전 특히 남아메리카가 좋아요. 마젤란 해협은 고명에 두셨고, 반면에 아프리카는 제 취향보다는 좀 두꺼워요. 아시아는 비율이 전혀 안 맞고요. 이걸 전부 다시 만드셔야 될 것 같아요.”
안나가 수정한 내용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듯 모질게 면박을 주는 베토벤이다. 역시 세상살이에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이다.
수녀인 안나 고모는 베토벤을 ‘가톨릭의 불명예, 파문당한 거나 다름없는 주정꾼, 불명예스러운 이단자.’로 비판한다. 이 또한 베토벤이 당시의 엄격한 교리에 길들어지지 않았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나 앞에서 거침없이 옷을 벗고 씻는가 하면 엉덩이 보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예의범절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의 모습이다.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창조가 가능한 것일까.
길들여진다 함은 고정관념固定觀念에 안주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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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겨내지 못한 천재는 없다.
베토벤이 심포니 9번을 작곡할 당시,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불행한 시기였다. 귓병이 심각하게 진전되어 보조기구가 없으면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강하기 다시 이를 데 없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이라 할 귓병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모든 열정을 퍼 붙는다. 안나가 조카 ‘칼’을 비판하자 베토벤이 불같이 화를 낸다.
이에 안나가 사과하자 베토벤은 더욱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다.
“공격할 때는 사과를 하지 마! 맞서 싸워!”
“선생님은 항상 그러시잖아요!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모욕하고!”
“맞아. 좀 낮군.”
베토벤의 터무니없는 공격에 안나가 격렬하게 반격하자 오히려 납득하는 베토벤이다.
가혹한 운명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베토벤의 정신세계다.
드디어 교향곡 9번의 초연. 그러나 베토벤은 조카 칼이 오지 않았다는 말에 크게 실망한다. 아울러 귀가 악화되어 전혀 들리지 않아 지휘할 자신마저 없어졌다.
베토벤은 안나에게 피토하는 심정으로 토로한다.
“모두가 내가 침묵 속에서 사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아. 내 머릿속엔 소리로 가득 찼어. 절대 멈추지 않아. 신은 내 마음을 음악으로 감염시켰어. 그리곤 귀머거리로 만들었어. 내게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간 거야. 그것이 신의 사랑인가?”
이건 차라리 절규다. 그런 베토벤에게 안나는 자신이 박자, 강약, 리듬, 반전,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지휘하도록 설득 한다.
오케스트라 속에 숨어서 그의 지휘를 돕는 안나의 리드lead는 그야말로 신들린 모습이다. 교향곡 9번의 강렬하고 섬세한 선율과 어우러진 다이엔 크루거의 리드 연기가 압권이다.
안나 홀츠 역役과 베토벤 역을 맡은 연기자들은 음악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그토록 멋진 신들린 연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천상의 소리라며 아우성치는 관중들이지만 그들의 우레 같은 박수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베토벤과 신들린 안나가 신이 준 운명에 도전하여 일궈낸 인간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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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외롭다.
천재라 일컫는 베토벤 역시 혈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베토벤의 권고에 반항하는가 하면 삼촌의 돈이나 훔치는 파렴치한이 조카 ‘칼’이다. 칼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베토벤의 독선에 진저리를 친다.
슐렘머가 안나에게 했던 말이다.
“예전엔 젊은 여자를 위해 작곡도 할 만큼 로맨틱했어. 그런데 변했지. 이제는 마치 영혼이 귀먹은 것처럼 대중의 소리를 전혀 듣지 않아.”
귓병이 심해질수록, 음악적 경지가 높아질수록 괴벽과 파행은 심해져만 간다. 음악을 통해 이미 하느님과 막역지우가 됐다고 생각하는 베토벤이 일반 대중들의 평가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이쯤 되면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서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심포니 9번을 발표한 이후부터 베토벤은 순수음악純粹音樂에 집착하지만 그 영혼의 소리가 대중에게 이해될 리 없다. 그토록 열정을 다하는 음악에서조차 외로운 것이다.
“이 음악에는 시작과 끝이 없어. 그저 흐를 뿐, 사라진 주제 뒤에 또 다른 주제가 나타나는 거야. 패턴 따위는 없어.”
그러나 그에게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다.
“자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줄 알아? 지난 몇 년간 두려움 속에서 살았어.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외롭게. 그런데 신이 자넬 보내 준 거야. 내 정신을 악보음절을 통해 자네에게 풀어놓았어. 자네는 내 해방의 열쇄였던 거야.”
천재의 외로움, 그것은 너무나 고고하기에 올 수밖에 없는 필연이다.
자신의 음악을 진실로 이해하는, 그리하여 함께 숨 쉬고 공감하고 감동하는 안나를 만났을 때 비로소 외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베토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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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깨달음으로 하느님의 세계를 느낀다.
베토벤이 안나가 자신의 악보를 고친 후 친구를 만나 한 얘기다.
“그녀가 내가 쓴 곡을 바꿨어. 이해할 수 있나? 이번 교향곡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야. 이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할 거야. 새로운 형식, 새로운 언어,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녀가 내게 온 거야. 그분이 그녀를 보냈으면 어쩌지? 혹시 어떤 계시가 아닐까? 그분과 함께할 시간이 됐다는 계시……”
그의 작곡은 언제나 하느님의 메시지와 관련 있다. 그는 숲을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대자연을 위해 산다.’고 말할 만큼 자연을 사랑한다.
베토벤에게는 햇살비치는 호숫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숲, 그 모든 자연의 경이로움이 음악으로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순수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안나에게 베토벤은 이렇게 말한다.
“난 추한 것과 오물주머니 창자에 음악의 문을 열거야. 인간이 창자를 통하지 않고 어떻게 신성함에 다다를 수 있겠어? 신이 사는 곳은(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머리가 아니고 여기야. 창자가 머리보다 깨달음에 더 가까이 있어. 발바닥에 똥을 뭍이지 않고 어떻게 머리를 구름 속에 둘 수 있겠어!”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기 못하는 안나에게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해를 못하겠지. 그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건 신의 언어야. 이걸 하라고 신이 자넬 나에게 보내주었어. 자넨 신의 비서야.”
베토벤이 운명하는 날, 결국 안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게 된다. 깨달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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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악성樂聖이라 지칭한다.
이 영화는 그 지칭에 공감하게 해준다. 인간들이 정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모럴moral에 길들여졌다면 베토벤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악성인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음악은 물론 베토벤 심포니 제9번 D단조 작품 125 칸타타cantata다. 이 곡은 1824년에 완성했는데 고금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 때까지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본다면 교향곡 제9번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합창 외에도 3악장에 있어야할 스케르초를 2악장에 넣거나 2악장에 들어가던 아디지오 몰토에 칸타빌레를 3악장으로 돌리는 식으로 변화를 준 것이 특이한데, 아마도 4악장을 돋보이게 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마지막 4악장에 1, 2, 3악장의 주요 주제를 재현시킨 구성도 그 당시에는 쉽게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교향곡 제9번의 백미는 4악장이다. 4명의 독창자와 혼성 4부 합창이 함께 있는 제4악장은 오케스트라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모든 고난을 물리치고 환희를 노래하는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에는 드라마가 있다.
심포니 5번 ‘운명’과 피아노콘체르토concerto 5번 ‘황제’ 등, 이들 작품 모두 고통과 회한, 나락과 환희, 좌절과 부활이 극명한 콘트라스트contrast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불우하고 고통스러웠던, 그러나 운명과 싸워 이긴 불꽃같았던 삶과 다름없는 그의 음악세계……. 신은 우리에게 삶의 감동을 전하려고 베토벤에게 그리도 혹독한 운명을 점지하신 것일까.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클래식음악의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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