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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지
한라산은 알고 있다.
묻혀진 4․3의 진상
〈소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중심으로〉
文 昌 松 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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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쪽
차 례
◇ 〈권두언〉
한라산은 알고 있다. 묻혀진 4․3의 진상
〈소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중심으로를 펴내면서〉....3
◇ 일러두기 .........................................................................................................7
◇ 간추린 4․3전과 당일 상황 요약 ..............................................................9
◇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사본
。 조직면〈조직의 시발과 발전 과정 및 조직 현세〉 ........................16
。 작전면〈제1차 ~ 제6차 작전〉...............................................................29
。 투쟁면〈각면별〉
제주읍(경찰지서 삼양, 화북, 외도)
3월 18일 ~ 7월 9일 ...............................................................34
애월면(경찰지서 구엄, 애월)
4월 3일 ~ 5월 8일 .............................................................40
한림면(경찰지서 한림, 저지)
3월 20일 ~ 7월 21일 .............................................................46
대정면(경찰지서 대정, 모슬포, 무릉)
4월 3일 ~ 6월 30일 ...............................................................51
안덕면(경찰지서 화순=안덕)
4월 10일 ~ 6월 15일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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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면 5월 10일 ~ 6월 28일 ............................................................56
서귀면 5월 22일 .....................................................................................57
표선면 5월 10일 ...................................................................................58
남원면(경찰지서 남원)
4월 3일 .....................................................................................58
성산면(경찰지서 성산포)
4월 3일 ~ 5월 10일 ...................................................................59
구좌면(경찰지서 세화)
4월 3일 ~ 5월 24일 ...................................................................60
조천면(경찰지서 조천, 함덕)
4월 3일 ~ 6월 15일.......................................................................62
전도 면별 전과 일람표 .....................................................................73
。 국경과의 관계
관계 시작과 경위 ........................................................................................75
4․3투쟁과 국경과의 관계 ........................................................................75
그 후의 연결 ......................................................................................77
국경으로부터 우리에 대한 원조 경위 ...................................................80
국경의 토벌 작전과 이로 인한 군의 피해 .............................................83
◇ 생소한 낱말 풀이 ..........................................................................................87
◇ 4․3주모자 및 국경 세포책 인적사항 .................................................92
◆ -영인본-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99-146
◇ 편집후기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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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頭言〉
한라산은 알고 있다. 묻혀진 4․3의 진상
〈소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를 중심으로〉를 펴내면서
文 昌 松
두보(杜甫)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였던가?
내 나이 70을 넘겼으니 예로부터 흔한 나이가 아니고 보면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셈이다.
이제 노을진 언덕길에 서서 주마등과도 같이 뇌리를 스쳐 가는 지난날의 인생 역정을 되돌아보면 민족 수난기에 태어나서 일본군으로 중국 대륙을 전전하던 일이며 가까스로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었으나 이차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는 바람에 뜻을 펴 보지 못하고 조국 해방을 맞이하였던 일 그리고 귀국 후 민족 진영의 일원으로 극심한 좌익 세력에 맞서 정치투쟁을 벌이던 일과 미군정 경찰이 되어 3․1사건 및 4․3사건을 겪으며 정부 수립의 감격을 맞던 일 또는 6․25 민족 비극과 4․19를 거쳐 5․16, 10․26, 5․17, 6․29 등 수 많은 정치 변혁을 목격하였던 일 등 등 감격과 환희와 보람의 순간들도 있었지마는 대부분이 사선(死線)을 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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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던 파란만장이 세월이었고 격변의 시기였다.
이 모든 추억들이 덧없는 인생사요 남가일몽(南柯一夢)이기에 남은 여생 되도록 잊으며 초연하게 지내 왔고 더구나 우리 고장 미증유의 비극인 4․3사건에 대하여는 자기 과시나 주관적인 해명으로 오해될까 봐 언급 자체를 자제하며 침묵으로 일관하여 왔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세대가 바뀌어진 지금에 와서는 4․3사건에 대한 세론이 비등해지면서 제각기 시각에 따라 백화제방(百花齊放)식으로 무책임한 발언과 주관적 해석 내지 증언들을 쏟아 놓으며 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책임은 일언반구도 언급됨이 없이 일방적으로 미군정과 정부를 탓하고 마치 사태 수습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인 양 힐난함으로써 사건을 체험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 인식을 그르치게 유도하는가 하면 심지어 지난해에는 국정교과서 시안이라고 하여 4․3폭동 사건을 민중 항쟁 사건으로 왜곡하는 일부 학계의 발표를 보기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쓰라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으로서 잘못 인식되어 가는 사회 현실을 더 이상 그대로 외면만 한다는 것이 사건의 진상을 영영 묻어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될 뿐만 아니라 일찍이 반공 전선에서 애국 동지들의 위훈을 모독되게 할 개연성마저 없지 않으므로 이 진실만은 꼭 밝혀야겠다 싶어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그 동안 소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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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오던 소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라는 그들이 작성한 압수문건 사본을 재구성하거나 사견을 보태지 아니하고 내용 그대로 공개하여 4․3사건에 대한 사회의 올바른 인식이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반세기전 건국 과정에서 야기된 이 사건은 공개문건을 일별(一瞥)하면 자명하겠지만 1948년 4월 3일 남로당(南勞黨)에 의하여 저질러진 이래 주모자 대부분이 그 해 8월 2일 목포를 경유 해주로 월북하였고 잔류 당책(黨責)과 유격대 사령관 역시 뒷해 4월과 6월에 소탕됨으로써 대세가 진압된 듯 싶었으나 6․25동란 발발과 함께 재산 잔당(在山殘黨)의 준동(蠢動)은 다시금 치열해져서 1957년 4월 마지막 잔당 생포로 마무리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소요된 사건인 만큼 공개문건만으로 전체 실상을 말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나 사건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났으며 초기 진상은 어떠하였는지와 과연 이 사건은 민중 항쟁 사건이었는가 아니면 좌익 폭동 사건이었는가를 가늠하는 자료로써는 족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사건에 왜 많은 사람들이 협종(脅從)하게 되었으며 이로 말미암은 엄청난 피해와 사건 수습 과정에서의 옥석(玉石)을 구분(俱焚)하는 폐단은 어떻게 초래되었는지 당시의 정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끝으로 나의 소망이 있다면 진실은 진실대로 반드시 정립되어야 하겠지만 4․3사건은 어느 누구의 잘잘못 이전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슬픔이요 아픔이었기에 많은 세월이 흐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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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 와서는 시비곡직을 초월한 화합 차원의 대책 마련에 모든 예지가 모아져야 하겠고 지금까지 어느 쪽에 위치하였던지 간에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날의 체험과 부정적인 마음에만 계속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서로 미래를 위한 밝고 성숙된 마음으로 전환하여 슬픈 역사의 앙금이 하루 빨리 가실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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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이 책은 4․3사건 진압 과정에서 압수된 소위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이하 투쟁보고서로 약칭)에 의하여 사건 준비과정 및 초기 진상을 밝히는 책자이다.
◇ 이 투쟁보고서는 1948년 3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의 상황을 조직, 작전, 투쟁 등으로 구분 총괄적으로 또는 지역별, 날짜별로 자세하게 수록하고 있으며 국방경비대 제9연대 와의 연계 관계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 이 투쟁보고서 원문은 국한문 혼용의 종서체이나 사본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국문 (한글=작성자 주) 횡서체로 바꾸는 동시 맞춤법이 틀린 곳은 바르게 고쳐 전재하였고 등사 불명으로 판독이 불가능한 곳은 등사불명이라 표시하였다. 다만 인명(人名), 지명 (地名)등 고유명사와 특수 용어에는 한자(漢字) 토를 달았다.
◇ 이 투쟁보고서는 다소 왔다갔다한 점이 있으므로 사건 전과 당일 상황만은 원문 소개에 앞서 요점을 간추려 보다 분명하게 정리하였고 생소한 낱말들도 말미에 풀이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유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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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투쟁보고서 내용 중에는
。 체계도는 있으나 책임자 이름은 어느 한 곳에도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그 인적사항을 나름대로 수집하여 낱말 풀이에 이어서 첨가하였다.
。 그리고 사건 당시 제주도는 도(島=지금의 시군에 해당)에서 도(道)로 승격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로당에서는 여전히 전라남도 당부 산하 도당(島黨)조직으로 그 지령에 따라 운영되어 온 것으로 되어 있다.
◇ 이 투쟁보고서는 1948년 8월 2일 4․3사건 주모자 김달삼(金達三)이 일행 5명과 함께 목포 경유 해주로 월북하여 같은 해 8월 25일 소위 조선최고인민회의대의원 선출을 위한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행한 보고 내용인 것으로 추측된다.
◇ 이 투쟁보고서 원문 내용을 참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명치 못하지만 영인본을 말미에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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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4․3전과 당일 상황(요약)
1. 기초 준비 단계
1) 1947년 3․1사건 직후 남로당 전라남도 당부 지시에 따라 제주도 당부에서는 3․1 사건 당시의 각급 선전 행동대 활동을 기초로 각 면 당부 직속 자위대를 조직하게 되었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2) 3․1사건 직후 모슬포 주둔 국방경비대 제9연대 제1차 신병 모집 시 대정(大靜)출신 동무 고승옥(高升玉)등 4인을 프락치로 입대시킨 다음 그 해 5월 경 내도한 중앙 올구 이명장(李明章)동무를 통하여 전라남도 당부에 가서 그 지도 문제와 활동 방침을 지시하여 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직접 수차에 긍하여 지시를 요청하였으나 하등의 회답이 없었으므로 독자적인 선(線)을 확보 대정면당부(大靜面黨部)를 통하여 지도하여 오던 중 프락치 1명은 일본으로 탈출하고 1명은 군기대로 전속된 이래 반동의 기색이 농후하였으므로 나머지 2명에 대하여서만 지도를 계속하여 왔었다.
2. 무장 반격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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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8년 3월 중순경 전라남도 당부에서 제주도 당부로 올구이(李)동무를 파견 무장 반격 지령과 함께
2) 기위 부식(扶植)한 국경(國警)프락치는 도당부(島黨部)에서 지도할 수 있으니 무장 반격에 국경(國警)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여 왔다.
3. 도당부(島黨部)의 준비 및 실행계획
1) 도당부 상위(島黨部 常委)에서는 이상 도(道)당부의 지령을 받고 같은 해 3월 15일 도 (道) 파견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하여
첫째 당의 조직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
둘째 단선(單選)단정(單政) 반대 구국투쟁의 방법으로 전도민을 궐기시켜 무장반격을 전개하기로 하고 그 준비 및 실행계획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2) 준비 기간
3월 15일부터 3월 25일까지(후에 4월 2일까지 자동 연장)
3) 준비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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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상임(島常任) 특히 투위(鬪委) 멤버로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를 조직하고
(2) 투쟁에 필요한 200명 예정의 자위대를 조직하며
(3) 보급과 무기 준비 및 선전 사업 강화 등 책임을 분담 준비하기로 하였다.
4) 준비 상황 점검
(1) 준비 기간을 넘긴 3월 28일 재차 회합하여 준비 상황을 점검한 결과
(2) 병력은 조직 대상 13면(추자면까지 포함) 중 구좌(舊左) 성산(城山) 서귀(西歸)
안덕(安德) 추자(楸子) 등 5면을 제외한 제주(濟州) 조천(朝天) 애월(涯月) 한림(翰林)
대정(大靜) 중문(中文) 남원(南元) 표선(表善) 등 8개 면에서
① 유격대(遊擊隊=톱 부대) 100명
② 자위대(自衛隊= 후속부대) 200명
③ 도군위(島軍委) 직속 특경대(特警隊) 20명 등
합계 320명 병력이 편성 완료되었는데 조직 체계는 도투위(島鬪委) 군사부(軍事部) 밑에 도군사위원회(島軍事委員會)를 두고 위원장(委員長=軍責겸무) 총사령관(總司令官) 부사령관(副司令官)이 있으며 각 면투위(各面鬪委) 군사부(軍事部) 밑에는 각면군사위원회(各面軍事委員會)를 두어 위원장(委員長=軍責겸무) 총사령(總司令) 참모(參謀)가 있어서 자위대(自衛隊) 및 유격대(遊擊隊)를 통솔 지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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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 편제는 10인 1소대, 2소대 1중대, 2중대 1대대로 편성되었다.
(3) 무기(武器)는
① 구구식소총(九九式小銃) 27정(挺)
② 권총(拳銃) 3정(挺)
③ 수류탄(手榴彈=다이너마이트) 25발(發)
④ 연막탄(煙幕彈) 7발
⑤ 기타는 죽창(竹槍)으로 준비가 완료되었다.
(4) 한편 3월 20일경 한림면경 새별오름(新星岳) 공동묘지에서 전원 67명에 대한 합숙훈련도 실시되었다.
5) 실행계획
(1) 거사일시
4월 3일 오전 2시 ~ 4시 사이
(2) 거사 대상과 책임 분담
① 반동의 아성인 제주읍 성내 특히 감찰청(監察廳=현 경찰청)과 제1구서(第1區署= 현 제주경찰서)는 국경(國警)이 담당 분쇄하고
② 도내(島內) 14개 경찰지서는 유격대(遊擊隊) 및 자위대(自衛隊) 400명을 배치 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③ 한편 국경(國警) 프락치에게는 무장 반격에 동원 가능한 병력 수를 사전에 문의 한 결과 800명 중 400명은 확실성이 있고 200명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반동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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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장교급으로서 하사관까지 합쳐도 18명이므로 이들만 숙청하면 문제없으니 병력 동원에 필요한 차량 5대만 보내달라는 요청과 함께 만약 배차가 안될 때에는 도보로라도 습격에 가담하겠다는 연락이 있었으므로
④ 즉시 국경(國警) 공작원인 도상위청책(島常委靑責)을 파견 감찰청(監察廳) 및 제1구서 습격 지령과 함께 차량 5대를 보내는 외에
⑤ 거점 분쇄 연락병으로 학생특무원(學生特務員) 20명을 성내(城內=제주읍내)에 침투시켰다.
4. 4․3 당일 상황
1) 감찰청(監察廳) 및 제1구서(第1區署) 등 거점 분쇄는 국경(國警)이 투쟁 불참으로 실패 하였고
2) 도내(島內) 14개 경찰지서 습격 대상 중 외도(外都) 구엄(舊嚴) 애월(涯月) 한림(翰林) 대정(大靜) 남원(南元) 성산(城山) 세화(細花) 함덕(咸德) 조천(朝天) 삼양(三陽) 화북 (禾北) 등 12개 경찰지서는 유격대(遊擊隊) 및 자위대(自衛隊) 350명을 투입 계획대로 습격을 감행하였다.
※ 국경(國警) 무장 투쟁 불참 사유
도상위청책(島常委靑責)이 습격 지령을 전달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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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國警) 프락치를 만나러 갔던 바 프락치 2명은 영창(營倉)에 수감 중이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횡적(橫的)으로 문상길(文常吉) 소위를 만나 본 결과 국경(國警)에는 문 소위(文少尉)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직속의 정통 조직과 고승옥 하사관(高升玉 下士官)을 중심으로 하는 제주 출신 프락치 등 이중 세포로 되어 있어서 얼마 전에 고 하사관(高 下士官)으로부터 앞으로 있을 무장 투쟁에 경비대를 동원 참가하여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중앙 지시가 없어서 거절하였다는 대답이었으므로 직접 재삼재사 동참을 요청하여 보았으나 여전히 중앙 지시가 없다고 거절하여 결국 국경(國警) 동원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거점 분쇄도 실패하였다.
3) 4․3 당일 피해 상황
(1) 인명피해
① 경찰관 사망 10명
② 경찰관 부상 4명
③ 경찰관 가족 사망 3명
④ 경찰관 포로 1명
⑤ 반동 사망 4명
⑥ 반동 부상 3명
⑦ 반동 가족 사망 3명
⑧ 반동 가족 부상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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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서청 사망 7명
⑩ 반동 포로 4명
(2) 재산 피해
① 경찰지서 완전 소각 1동
② 경찰지서 반 소각 2동
③ 경찰지서 반 파괴 3동
④ 반동 가옥 소각 2호
(3) 노획품
① 군도(軍刀) 1정(丁)
② 칼빈 소총 7정(挺)
③ 44식 소총 1정(挺)
④ 공기총 1정(挺)
(4) 인민유격대 사망 4명
※ 이상 요점 정리 내용을 포함한 4․3 이후의 처절한 사건 전개 과정 및 국경(國警)과의 관계 등 자세한 내용은 공개문건인 투쟁보고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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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본 -
〈극비〉(極秘)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濟州道人民遊擊隊 鬪爭報告書)
一. 조직면(組織面)
〔조직의 시발(始發)과 발전 과정 및 조직 현세(現勢)〕
1. 조직(組織)의 시발(始發)
① 조직(組織)의 동기(動機)
제주도(濟州道)에 있어서 반동(反動) 경찰을 위시한 서청(西靑), 대청(大靑)의 작년 3․1 및 3․10투쟁 후의 잔인무도한 탄압으로 인한 인민의 무조건 대량 검거, 구타, 고문 등의 금년 1월의 신촌(新村)사건을 전후하여 고문치사 사건의 연발(조천=朝天=지서에서 김용철=金用喆=동무, 모슬포=摹瑟浦=지서에서 양은하=梁銀河=동무)로써 인민 토벌 학살 정책으로 발전 강화되자 정치적으로 단선(單選), 단정(單政)반대, UN 조위(朝委) 격퇴 투쟁과 연결되어 인민의 피 흘리는 투쟁을 징조(徵兆)하게 되었다.
3․1투쟁에 있어서의 각급 선전(宣傳) 행동대(行動隊)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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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기후(其後)의 자위대(自衛隊) 조직의 기초가 되었으며 3․1투쟁 직후 도당(道黨)의 지시에 의하여 각 면(各面)에 조직부(면당=面黨) 직속 자위대(自衛隊)를 조직하게 되었으나 별로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기후(其後) 사태가 거익(去益) 악화됨을 간취(看取)한 도상위(島常委)는 3월 15일 도(道) 파견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을 개최하여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수단으로서
둘째 단선(單選), 단정(單政) 반대 구국투쟁(救國鬪爭)의 방법으로서
적당한 시간에 전 도민(全島民)을 총궐기(總蹶起)시키는 무장반격전(武裝反擊戰)을 기획 결정,
25일까지를 준비 기간으로 하여 도상임(島常任)(특히 투위=鬪委 멤-버)으로써 군위(軍委)를 조직 투쟁에 필요한 자위대(自衛隊) 조직(200명 예정)과 보급, 무기 준비, 선전 사업 강화에 대하여 각각 책임을 분담
예정 기간을 넘어 3월 28일 비로소 재차 회합을 가져 기간(其間)의 준비 사업에 관한 각자의 보고를 종합 검토한 결과, 4월 3일 오전 2시-4시를 기하여 별항의 전술 하에 무장 반격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음.
② 4․3 투쟁(鬪爭) 직전(直前)의 조직 정세(組織情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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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체계(組織 體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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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세력(組織勢力)
Ⓐ 병력면(兵力面)
① 유격대(遊擊隊) 조직면(組織面)
13면(추자면=楸子面=까지 포함)중 구좌(舊左) 성산(城山) 서귀(西歸) 안덕 (安德) 추자(楸子)의 5면을 제외한 제주읍(濟州邑) 조천(朝天) 애월(涯月) 한림 (翰林) 대정(大靜) 중문(中文) 남원(南元) 표선(表善)의 8개면에 유격대(遊擊隊) 조직, 도(島)에는 군위(軍委) 직속의 특경대(特警隊)를 편성
② 인원수(人員數)
A. 유격대(遊擊隊) 100명
B. 자위대(自衛隊) 200명
C. 특경대(特警隊) 20명
계 320명
③ 병기(兵器)
99식 소총 27 정(挺)
권총 3 정(挺)
수류탄(다이너마이트) 25 발(發)
연막탄 7 발(發)
나머지 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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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차 조직 정비(組織 整備)
(4․3투쟁 직후)
① 체계상(體系上)의 정비(整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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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병력상(兵力上)의 정비(整備)
전 유격대(遊擊隊)를 250명으로 정리(이것은 4․3투쟁시 유격대(遊擊隊=톱 부대)와 자위대(自衛隊=후속 부대)와이 공동 작전의 결과, 투쟁 종료 후 다 같이 상산 (上山)하여 공동 생활을 하기 까닭에 일상생활 상의 혼란과 보급 문제로 인해서 250 명으로 정리 강화하여 나머지는 하산시켰음. 그러나 그 후 재차 병력 확충의 필요성을 느껴 전원 400명 정도로 확충시켰음.
3. 제2차 조직정비(組織整備)
(5․10투쟁 직전에 착수하여 직후에 완료)
① 동기(動機)
엄격한 규율과 치밀한 기밀 확보 그리고 신속한 행동을 보장하기 위한 작전상의 필요에 의하여 각면(各面) 투위(鬪委) 군사부 직속의 각 유격대(遊擊隊)를 도사령부 (島司令部) 직속으로 편성하게 되었음.
② 체계상(體系上)의 정비(整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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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대 3인
3분대 1소대( 10명 )
2소대 1중대( 23명 )
2중대 1대대( 49명 )
2대대 1연대( 110명)
③ 병력(兵力)
3개 연대로서 370명(이 중 특무부=特務部 20명 함(含)) 특경(特警)을 해체하여 사령부 각 부문에 전원 배치하였음.
4. 제3차 조직 정비(組織整備) (5월 말일)
① 동기(動機)
국경(國警)의 대량 입도(入島)(약 4,000명)와 그의 포위 토벌전이 전개되자 충돌 회피와 비합법 태세 강화의 필요상 인원을 대량 감소 정리하게 되었음.
② 체계상(體系上)의 정비(整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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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인원 정리(人員整理)
370명을 240명으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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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4차 조직 정비(組織整備)(6월 18일 착수)
① 동기(動機)
새로운 투쟁에 대비하여 조직의 시급한 정비, 강화가 긴요하게 되었음.
② 체계상(體系上)의 정비(整備)..........이하 등사 불명..........
③ 병력(兵力)
1지대(支隊)가 3소대로 편성되며 1지대(支隊) 인원수는 60명, 4개 지대 합계 240명에 도사령부(島司令部) 26명으로서 총계 266명임.
6. 제5차 조직정비(組織整備)
(6월 18일부터 착수하여 7월 15일 정비 완료 현재는 이 제5차 조직 정비에 의하여 편성 되어 있음. 다음 ①의 조직 현세에서 상세히 진술키로 함.)
① 조직 현세(組織現勢) (7월 15일 현재)
㉮ 당면 조직 문제의 중점
ㄱ. ...........이하 등사 불명 ............
ㄴ. 강력한 당의 정치적 지도 통제
ㄷ. 엄격한 규율 확립
ㄹ. 치밀한 기밀 보장
ㅁ. 행동의 신속화
ㅂ. 신축성과 기동성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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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쪽
② 현조직 체계(現組織體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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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쪽
③ 현병력(現兵力)
ㄱ. 인원수(人員數)
각급 지도부(各級指導部) 35명
통신대(通信隊) 34명
유격대(遊擊隊) 120명
특무대(特務隊) 312명 (단 ............. 18자 등사 불명)
계 501명
병기(兵器)
㊀ 소총 -
M1 6 정(挺)
칼빙 19 정(挺)
99식 117 정(挺)
44식 4 정(挺)
30년식 2 정(挺)
계 147 정(挺) 주=1정 계산 착오 (148정= 작성자 주)
㊁ 소총 탄환(小銃彈丸) -
M1 1,396 발(發)
칼-빙 1,912 발(發)
99식 3,711 발(發)
44식, 30년식 721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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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쪽
계 7,740 발(發)
㊂ 경기관총(輕機關銃)(일본제) 1 정(挺)
㊃ 척탄통(擲彈筒) 2 문(탄환 8 발(發))
㊄ 수류탄 43 발(發)
㊅ 다이너마이트 69 발(發)
㊆ 신호탄 2 개(發)
㊇ 군도(軍刀) 16 정(丁)
㊈ 권총 6연발 1 정(丁)
8연발 6 정(丁)
10연발 1 정(丁)
계 8 정(丁) 탄환 계(計) 119 발(發))
㊉ 기타 라이깡 103 발(發)), 지뢰 라이깡 8 발(發)), 야포탄환 4 발(發)) 등
④ 주의(注意)
㉠ 각급 정치부원은 상급 정치원 소속, 최상급 정치부원은 도당책(島黨責) 소속임.
㉡ 특무대(特務隊)는 지대(支隊) 정보과 소속
임무 - 정보 수집, 개인 테로, 군(軍) 활동에 호응 보급의 원조 등
조직 - 각면에 특무대장 1명과 연락원 수명을 두며 그 외에 3인 1분대, 1소대 (10명)로 하고 1개 부락에 1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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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정도로 조직하되 특무대원은 세포로부터 제외한다.
㉢ 사령부 및 지대를 사령관(지대장)과 정치부원과 작전참모(작전교육과책)의 3인 으로써 최고 지도부 구성함.
㉣ 각 지대 중 특무대(特務隊)는 각면 각부락에 주둔하되 지대 지도부 통신대 각 유격대(遊擊隊) 소대는 지대 지도부 중심으로 밀집 생활함.
二. 작전면(作戰面)
① 제1차 작전(作戰)
(3월 15일 이후 4월 2일까지의 약 18일간)
4․3(사건) 투쟁을 위한 조직 준비(자위대=自衛隊)와 병기 준비 그리고 정보 수집 기간이었음.
이 기간 중에 있어서 적의 집합적 탄압(集合的 彈壓)과 조직의 여지없는 파괴 속에서 극비합법리에 유격대(遊擊隊=톱부대) 100명과 자위대(自衛隊=후속부대) 200명 계 300명과 무기 소총, 권총 합계(合計) 30정(挺) 확보에 성공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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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쪽
가장 중요한 수류탄과 휘발유탄을 구입 못해서 이것이 4․3 투쟁에 실패의 결정적인 한 원인이 되었음.
② 제2차 작전(作戰)
(4월 3일 이후 4월 20일까지의 약 18일간)
4월 3일 오전 2시 ~ 4시를 기하여 8․15 해방 이후 제주도 초유의 무장 반격 투쟁을 전개, 작전면에 있어서 제주도 반동의 아성인 제주읍(濟州邑) 성내(城內) 특히 감찰청(監察廳)과 제1구서(第1區署) 분쇄는 국경(國警)에게 담당시키기 위하여 성내에 20명의 학생 특무원(特務員)을 연락병으로써 침입시키고 나머지 14개 지서에 400명을 배치하였으나 결국 별지와 같이 국경(國警)의 투쟁 불참가로서 거점 분쇄는 실패하고 나머지 14개 지서 습격 계획 중 12개 지서 습격에 전면적으로 성공하여 여좌(如左)한 성과를 획득하였음.
① 지서 습격 수 12개 지서
(외도(外都), 구엄(舊嚴), 애월(涯月), 한림(翰林), 대정(大靜), 남원(南元), 성산 (城山), 세화(細花), 함덕(咸德), 조천(朝天), 삼양(三陽), 화북(禾北))
② 아부대 350명
③ 적에 준 타격
㉠ 지서 소각 및 파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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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쪽
㊀ 지서 완전 소각
㊁ 지서 반 소각
㊂ 지서 반 파괴 주 : 이상 지서 소각, 파괴 수는 투쟁면 통계 참조
㉡ 경관 - 사망 10명
동 부상 4명
경관 가족 사망 3명
경관 포로 1명
㉢ 반동 - 사망 4명
동 부상 3명
반동 가족 사망 3명
동 가족 부상 1명
서청 사망 7명
반동 포로 4명
㉣ 반동가옥 소각 2호(戶)
④ 노획품(노獲品)(무기뿐)
군도(軍刀) 1 정(丁)
칼빙 소총 7 정(挺)
44식 소총 1 정(挺)
공기총 1 정(挺)
⑤ 우리의 희생 사망 4명
이후 진영을 정비하면서 주목표를 지서 습격에 두고 일면으로는 견제 작전으로서의 신경전을 극력 강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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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쪽
③ 제3차 작전(作戰)
(4월 20일 이후 5․10직전까지)
조직 수습과 확대 강화의 엄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부락 주둔을 개시, 동시에 반동 숙청에 주력
④ 제4차 작전(作戰)
(5․10부터 5월 26일까지)
각개 격파의 전술로서 주력 부대를 2 그룹으로 편성 5․10 당일에는 각 부락을 유격하면서 투표 보이코트전을 전개(주로 남부=南部), 그 후 세력을 집결하여 함덕(咸德)과 저지(楮旨)의 2 지서를 완전히 습격 소각.
안덕(安德)지서 습격 완전 성공 직전에 경관 6명 즉사케 하고 퇴각.
대정(大靜)에서 적 기동대차 3대(약 60명)을 복병전으로 습격 경관 14명을 즉사케 하고 또 특기할 것은 국경(國警)에서 1개 소대가 대정(大靜)지서를 습격 경찰관 5명을 즉사케 한 후 산으로 탈출하는 등 적을 여지없이 분쇄하고 적의 심리를 서늘케 하는 대투쟁이 매일같이 계속 전개, 제주도의 4․3사건 이래의 구국 유격전은 이 기간에 있어서 최고도의 앙양과 진출 그리고 전과를 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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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쪽
⑤ 제5차 작전(作戰)
(5월 27일부터 6월 18일까지)
약 4,000명의 병력으로써 국경(國警)과의 충돌을 피하며 그들의 포위 토벌전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동시에 일면으로는 국경(國警) 내부의 충돌 특히 대내 최고 악질 반동인 박진경(朴珍景) 연대장 암살과 탈출병 공작을 추진 그 동안 쓰라린 퇴격전술(退擊戰術)에 의하여 상당한 우리 쪽의 피해도 있었으나 6월 18일 오전 3시경을 기하여 대내(隊內)에서 박연대장(朴聯隊長)이 암살되자 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6월 17일까지의 제4차 공격을 최후로 산 공격(山 攻擊)을 단념 이 후 주로 중산촌 부락을 습격하면서 그들의 퇴격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전술은 여기에 성공을 보게 되었음.
⑥ 제6차 작전(作戰)
(6월 19일 이후 현재)
국경(國警)에서 철거 전술(撤去戰術)을 쓰기 시작하자 우리는 각처에 분산되고 있는 조직을 질적면에서 정비 강화하고 정치부원의 확립에 의한 교육의 강화 일상생활의 규칙화에 의한 규율 강화 등에 주력하여 현재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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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쪽
三. 투쟁면(鬪爭面) (각면별=各面別)
(1) 제주읍(濟州邑)
3월 18일 -
도련리(道蓮里) 악질 향보단(鄕保團)을 습격 이를 해산시킴과 동시에 반동 가옥 3호(戶)를 완전 파괴시킴과 반동 7명을 부상시켰다.
4월 1일 -
영림서원(營林署員) 2명을 포로 동 4일 개전시킨 후 석방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삼양(三陽), 화북(禾北), 외도(外都) 3지서를 일제 습격
삼양(三陽)지서 -
경관 6명, 아부대 16명, 소지 무기 99식 소총 1정(挺), 다이너마이트 2발(發), 휘발유탄 4발(發), 상호 접전 지서 정문까지 육박 가라스(유리=작성자 주)를 죽창으로 파괴시켰으나 적의 발포 극심하고 응원대가 올 것을 염려하여 퇴격(退擊). 상호 피해 무
화북(禾北)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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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쪽
경관 5명 아부대 14명이 99식 소총 1정(挺), 다이너마이트 4발(發), 휘발유탄 4발 나머지는 창(槍)을 가지고 4개 부대로 편성하여 습격, 처음에 전선(電線) 2개소를 절단 육박하면서 수류탄 1발(發) 투척 그것이 지서 내 램프에 연소하여 지서 완전 소각, 경관 1명 도주, 급사(給仕) 1명 즉사, 1분대는 경관 사택을 습격 경관 부부를 숙청하고 거기서 카-빙 소총 1정(挺) 압수, 1분대도 경관 사택을 습격 수류탄을 투척한 결과 경관 1명 부상
외도(外都)지서 -
경관 6명, 아부대 14명이 99식 소총 1정(挺), 다이너마이트 3발(發), 휘발유탄
3발(發) 나머지는 창(槍)으로써 습격 경관 1명 숙청 후 퇴각, 귀도 중(歸途 中) 노형리(老衡里) 부근에서 적 기동대와 부딪쳤으나 약 5분간 접전 후 이를 격퇴 시켰음.
4월 4일 밤 -
아부대 30명으로 영평리 상동(寧坪里 上洞) 대청(大靑) 사무소 습격 사무소 완전 파괴 문서 일체 압수 대청(大靑) 동원부장(動員部長) 1명 숙청. 반동 2명에게 중상을 주고 돌아오는 도중 월평리(月坪里) 거주 경관의 집을 습격하였으나 경관 부재 중임으로 가옥 파괴한 후 가옥 약 4분지 1 소각, 의류 다수 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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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쪽
4월 8일 -
4인 1조로서 이호리(梨湖里) 대청 거두(大靑 巨頭) 1명 숙청
8인 1조로써 삼양(三陽)지서 제2차 습격하였으나 사전 발각으로 퇴각
4월 12일 -
4인 1조로 오라리(吾羅里) 거주 악질 경관 송원화(宋元和)부친을 숙청 후 동 가옥 소각
4월 14일 -
외도(外都)지서 제2차 습격, 송칠(宋七) 동무 유도작전(誘導作戰) 지도하다가 희생당하였음.
4월 16일 -
화북(禾北)에서 동무 5명이 경관과 대청원(大靑員)에게 포위당했으나 권총으로 경관 1명을 즉사케 한 후 전원 무사히 탈출
4월 18일 -
삼양(三陽)지서 제3차 습격, 경관 16명, 아부대 22명이 총 6정(挺)으로써 습격하였으나 사전 발각으로 적 기동대에 봉우(逢遇) 퇴격(退擊), 아부대원 1명 희생
4월 19일 -
외도(外都)지서 제3차 습격 수류탄 투척한 결과 개 1명 부상 지서 반파괴
4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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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쪽
월평리(月坪里)에서 엿장사로 가장한 스파이 2명 숙청
4월 27일 -
리구장(里區長) 집에서 개가 식사 중이라는 정보에 접하여 아부대 16명이 이를 포위 하였으나 개는 도주해 버리고 반동 구장(區長) 1명을 포로해다가 숙청
4월 28일 -
노형리(老衡里) 2구에서 적 기동부대 22명과 아부대 20명이 약 6시간 접전 후 이를 격퇴시켰음. 개 3명 부상, 개 모자 1개, 문서 다수, 카-빙 탄창 2개, 카-빙 탄환 9발 (發), 백미 1두(斗) 등을 노획
5월 1일 -
개 7명, 반동 2명이 화북리(禾北里) 3구에 침입하여 탄압하려는 것을 아부대원 20명이 포위 도주하는 개들을 추격, 반동 1명 숙청
5월 3일 ~ 7일까지 -
동(東), 서(西) 각 지구에 아부대 각각 1대대씩 주둔 1개 대대는 본부 근무
노형리(老衡里)에서 “엿장사로 가장한 스파이 2명 숙청, 오라리(吾羅里) 2구에서 반동 3명 숙청, 오라리(吾羅里) 2구에서 적 기동부 약 30명과 20분간 접전 후 적의 타부대에게 포위당해서 퇴각 상호의 희생 무. 월평리(月坪里)에서 4월 4일 소각하다가 남은 개집을 완전 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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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쪽
6일 본부 근무 대대가 출동하여 동대대(東大隊)와 합류 7일 화북리(禾北里) 반동 4명, 삼양리(三陽里) 반동 1명, 삼양리(三陽里) 2구 반동 2명, 삼양리(三陽里) 3구 반동 2명, 도련리(道蓮里) 1구 반동 2명 계 15명 숙청
5월 6일 -
서대대(西大隊) 상산(上山)하는 도중 적 기동대 약 30명과 조우(遭遇) 약 8시간 접전 후 이를 격퇴, 2명 즉사, 우리대원 2명 희생
5월 7일 -
죽성리(竹城里)에서 반동 3명 숙청
5월 8일 -
삼양리(三陽里)로 화북(禾北)에 이르기까지의 전선(電線) 완전 절단, 아침 죽성(竹城) 반동 거두(巨頭) 가옥 4호(戶) 소각, 반동 11명 숙청, 고다시 반동 집 2호(戶) 소각, 반동 가족 2명 숙청, 아라리(我羅里) 1구 반동 가옥 2호(戶) 소각, 반동 가족 2명 숙청
5월 9일 -
농교(農校)에 수류탄 투척하여 적에게 위협을 주었음
5월 10일 -
도두리(道頭里) 반동 4명 숙청
동일 읍사무소(선거 투표 장소)에 수류탄 2발(發) 투척 투표를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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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쪽
5월 15일 경 -
오현중학교(五賢中學校)에 수류탄 1발(發) 투척하여 맹체파괴(盟體破壞)를 방지
5월 18일 -
화북리(禾北里) 반동 1명 숙청
5월 25일 경 -
2시 특무대원(特務隊員) 3명이 단선(單選) 을지구(乙地區) 당선자(當選者 주: 당시 북제주군 갑․을선거구 선거는 유효투표수 미달로 무효가 되고 뒷해에 재선거가 실시되었음) 한림면(翰林面) 출신 양병직(梁秉直)의 아지트를 습격하였으나 실패, 대원 1명 피검(被檢)
6월 14일 -
표선(表善) 반동 1명을 회천(回泉)에서 숙청
7월 9일 -
월평리(月坪里)에서 엿장수로 가장한 스파이 2명 숙청
이외에 반동 숙청 31명
이상 제주읍(濟州邑) 합계(合計)
㊀ 지서 습격 수 7 회
지서 소각 수 1
동 파괴 수 1
개 사망 5 명
개 부상 5 명
개 가족 사망 3 명
㊁ 반동 숙청 수 66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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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쪽
반동 가족 숙청 수 4 명
반동 부상 수 9 명
경관 가옥 소각 수 2 호(戶)
반동 가옥 소각 수 9 호(戶)
동 파괴 수 3 호(戶)
㊂ 무기 노획 수
카-빙 소총 1 정(挺)
동 탄창 2 개
동 탄환 9 발(發)
㊃ 전선절단(電線切斷) 349 개소
도로파괴 140 개소
교량파괴 1 개소
㊄ 우리의 피해
대원 3명 전사
(2) 애월면(涯月面)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구엄(舊嚴), 애월(涯月) 양 지서를 습격
구엄(舊嚴)지서 -
개 9명, 아부대 120명이 99식 소총 4정(挺) 다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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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쪽
마이트 5발(發), 나머지는 죽창으로써 습격
우선 숙청 대상 반동 1명에 대하여 아부대원 약 5명식 배치, 지서에는 약 40명 배치, 처음에 지서를 향하여 다이너마이트를 투척하고 그 폭발음을 신호로 일제 습격하기로 하였으나 애월(涯月)지서 습격 부대가 정각 약 30분 전에 습격하여 버리고 더욱이 구엄(舊嚴)과 애월(涯月)간의 전선절단(電線切斷)을 하지않았기 때문에 애월(涯月)지서에서는 구엄(舊嚴)지서에 전화로 응원을 요청하였음으로 사전 발각이 되 지서 내부에는 개 3명과 향보단원(鄕保團員) 2, 3명이 있었고 나머지 개 6명은 집에 있었다.
다이너마이트 투척에 적은 지서 내에서 발사 시작 우리 부대에서도 이에 응전 하면서 일보 일보 육박, 이 때 악질 개 송원화(宋元和) 집에 배치한 분대는 송 (宋)을 잡고 단창(短槍)으로 찔렀으나 단창(短槍)을 빼자 송(宋)은 도주, 다른 분대는 반동 2명과 반동 가족 3명을 숙청하고 가옥 2호(戶)를 소각한 후 소학교 (小學校)에 집합하여 지서에서 울리는 사이렌을 듣고 인항가(人抗歌), 적기가 (赤旗歌)를 고창(高唱)하면서 지서 습격 응원으로 출동, 지서 습격 부대와 합류 하여 새 공격으로 들어갔으나 약 30분 후 외도(外都)지서의 기동대가 옴으로 퇴각 우리의 피해 2명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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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쪽
애월(涯月)지서 -
아부대 약 80명이 습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지서장 송달호(宋達浩)에게 경상을 준 후 퇴각
4월 5일 -
오전 4시 50명으로써 애월(涯月)지서를 제2차 습격하였으나 정보 부정확으로 퇴각
4월 7일 -
장전리(長田里)에서 반동 2명 숙청
4월 9일 -
금덕리(今德里)에서 반동 1명 숙청
4월 11일 -
아침 10시부터 구엄(舊嚴)지서 개들과 기동대의 혼합부대 약 30명이 광령(光令) 2구를 습격하여 청년들이 전부 산으로 도피하는 것을 추격 상산(上山).
아부대에서는 이 정보를 접수하여 12시부터 천안악(天安岳)에 복병(伏兵). 놈들은 숯막을 소각시키면서 점진(漸進) 상산(上山), 오후 1시부터 접전(천안악에서) 아부대 병력은 1중대(21명)가 99식총 6정(挺), 카-빙 총 1정(挺)을 가졌다. 접전 1시간 후 이를 격퇴
전과(戰果) = 개 3명 즉사(이 중 1명은 서북 악질 경관으로 2월에 조천(朝天)지서에서 김용철(金用喆)동무를 고문치사 시킨 놈) 카-빙 총 1정(挺), 동 탄창 2개, 동 탄환 95발 (發), 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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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쪽
300원, 수류탄 1발(發), 백미 4승(升)을 노획 우리 피해 전무
.....................중간 9행 중복 생략..................
4월 11일 -
오후 11시 애월(涯月)리 가두(街頭)에서 특무원(特務員)3명이 권총 1정을 가지고 복병 (伏兵) 통과 중인 적 4명(개 3명, 대청원(大靑員) 1명)을 기습, 개 1명 즉사, 개 1명 부상, 대청원(大靑員) 1명 부상 동시 애월(涯月)지서에 수류탄 1발 던져 지서를 부분적으로 파괴하였다.
4월 18일 -
곽지리(郭支里)와 금성리(錦城里)에서는 각각 반동 1명식 숙청(계(計) 2명)
4월 21일 -
구엄(舊嚴)지서 제2차 습격
개 11명 부락민 전부가 향보단(鄕保團)으로써 지서를 경비. 아부대 2개 중대 오전 3시 부터 공격 개시 약 1시간 접전 후 퇴각. 개 1명 부상
4월 24일 -
외도리(外都里)지서원 5, 6명이 하귀리(下貴里) 부락 향회를 소집 개최한 후 귀환할 것을 대기하기 위하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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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쪽
부대 1개 소대가 하귀리(下貴里) 1구와 3구 사이에 복병(伏兵) 적이 도달함에 발포하자 적은 도주
4월 27일 -
외도(外都)지서원 10명이 하귀(下貴) 1, 2구에 침입하여 쌀 공출을 시킨 후 미수동(味水洞)에 집결, 마차 1대에 쌀을 싣고 외도(外都)를 향하여 남쪽(산쪽)에는 인민 50명을 동원하여 차를 호송시키고 개들은 안전지대인 북쪽으로 통과하고 있음을 하귀(下貴) 1, 2구 간에서 아부대 1개 중대가 발견 복병(伏兵), 인민들이 있음으로 난사(亂射)를 삼가 공포 1발 (發)을 쏘자 인민들은 모두 도피 시작 개들은 도피하려는 인민을 붙잡고 방파제 (防波堤)로 하면서 외도(外都)로 도주 개 1명에게 즉사, 1명에게 경상(輕傷)시키고 쌀 전부를 탈환하여 전부 인민에게 반환하여 주었다.
5월 6일 -
서귀포(西歸浦) 장춘관(長春館) 기생(서청과 결탁한 스파이)외 1명 포로 숙청
5월 7일 -
적 50명이 (조병옥=趙炳玉의 친위대) 경기관총 1대를 가지고 수산(水山), 장전(長田), 소길(召吉), 상귀(上貴)를 탄압하기 위하여 침입. 오전 9시 상귀(上貴)를 탄압하고 수산(水山), 장전(長田)을 경유 소길리(召吉里)로부터 귀환하는 것을 아부대 2개 중대가 소총 12정(挺)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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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쪽
가지고 장전(長田), 소길리(召吉里) 사이에 소나무밭 안에서 포위 접전, 먼저 차를 향하여 수류탄을 던졌으나 3발(發)이나 불발로 인하여 적은 전투 태세를 갖추어 난사,
시작 4발(發) 차 수류탄이 기관총에 명중 폭발 기관총 파괴, 그때까지 아부대에서는 수류탄수(手榴彈手)가 전면에 진출하고 있었음으로 위협 정도로 산발(散發), 수류탄수 (手榴彈手) 퇴각 후 응전 오후 5시까지 약 5시간 접전 후 적 기동대차 2대가 오자 적은 그 힘으로 구엄(舊嚴)지서에 퇴각(이 응원대를 목표로 하귀리(下貴里) 미수교(味水橋)를 파괴하려다가 자위대(自衛隊) 동무 2명이 희생당하다)
전과(戰果) = 적 토벌대장 이하 4명이 즉사하고 중경상자와 사망자를 응원대차 2대에 태우고 나머지 응원대는 도보로 돌아갔는데 그후 판명된 바에 의하면 22명이 사고 그 중 10명 사망 12명 중상으로 추측됨
아부대의 피해 중상 1명(2일 후 사망) 경상 1명.
5월 8일 -
하귀리(下貴里) 파군봉(破軍峰)에서 적 기동대차 3대와 아부대가 접전.
약 1시간 후에 적을 격퇴, 외 14명 반동 숙청
전과 계(戰果 計) = - 지서 습격 4회, - 경관 사망 수 16명,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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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쪽
부상 수 16명
㊀ 반동사망 24명, 동 부상 1명, 반동 가족 사망 3명, 동 가옥 소각 2호(戶)
㊁ 무기 노획 - 카-빙 1정(挺), 동 탄창 2개, 동 탄환 95발(發), 수류탄 1개
㊂ 우리 피해 3명 사망, 1명 경상
㊃ 전선절단(電線切斷) 6개소, 도로파괴 7개소, 교량파괴 2개소
(3) 한림면(翰林面)
3월 20일 경
새별오름 공동묘지에서 전원 67명 합숙 훈련 중 애월(涯月)지서원 1명, 서청(西靑) 2명, 구엄 대청원(舊嚴 大靑員) 6명 계(計) 9명이 미명(未明)에 취사장을 습격하였음으로 아부대에서 응전 발포 1발(發)로 적은 도주, 추격 도중 동무 1명 경상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한림(翰林)지서, 저지(楮旨)지서, 한림(翰林)여관, 신창(新昌)여관, 매립지(埋立地)여관과 기타 반동 집을 일제 습격
한림(翰林)지서 -
개 7명에 대하여 아부대 15명 (99식 총 1정(挺),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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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쪽
이너마이트 12발(發), 가소린탄 12발(發)을 배치
한림(翰林)여관 -
개 7명에 대하여 아부대 6명(99식총 3정(挺), 군도(軍刀) 1본, 나머지 창(槍))
신창(新昌)여관 -
서청(西靑) 7명, 아부대 15명 (군도(軍刀) 1본, 나머지는 창(槍), 99식총 1정(挺))
각 경관급 반동 가택에 나머지 31명 배치
전투상황(戰鬪狀況) -
우선 매립지(埋立地)여관에서 개 1명, 대청(大靑) 1명 숙청, 그 다음 신창(新昌)여관 에서 서청(西靑) 7명을 숙청하자 한림(翰林)여관에 숙박했든 기동대와 접전하게 되었다.
이어 각지에서 투쟁 전개 1명은 사택에서 숙청, 면장(面長) 1명과 독촉(獨促) 최고 간부 1명에게 각각 부상을 입히고 한림(翰林)지서 습격부대는 타부대가 적 기동대와 접전하는 총성에 동무들이 전부 도피하여 총수(銃手) 1명만 남아서 투쟁 불가능
저지(楮旨)지서 습격은 직전 푸로파카-트의 발생으로 사전 중지
전선절단(電線切斷) 4개소, 도로파괴 2개소 전투 완료 후 집합 지정 장소 미마루동산에 전원 집합 거기를 출발해서 금악(今岳)까지 무장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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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쪽
단행, 금악(今岳)에서 반동 소지의 일본도(日本刀) 1정(丁) 압수. 오전 9시 아지트에 귀환하자 저지(楮旨)지서원 6명과 경찰 후원회원 25명이 금악(今岳)을 습격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수하여 즉시 출동 접전 후 차(此)를 격퇴시키고 후원회원 3명을 포로하여 개전시킨 후 석방
4월 8일 -
오전 4시 저지(楮旨)지서 습격, 적은 개 13명에 후원회원 70명. 아부대 18명(99식총 5정 (挺), 군도(軍刀) 5본(本), 휘발유탄 5발(發), 나머지는 창(槍))
접전 40분 후 적의 탄환 전부 소비케하고 적을 부득이 퇴각케하여 돌격, 지서 완전 소각, 후원회 간부 완전 숙청(3명), 피검자 7명을 완전 탈환,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면서 무장 시위를 단행
우리의 피해 - 동지의 총으로 1명 희생, 1명 중상
4월 9일 -
오후 5시경 적 기동대 약 25명이 산(山) 아지트 부근에 습격하였음으로 20분간 교전 후 이를 격퇴
4월 16일 -
오전 2시 전선절단(電線切斷) 7개소, 도로파괴 3개소
5월 12일 -
저지(楮旨)지서원과 반동 합하여 15명이 우리 아지트에 침입, 아부대에서 응전태세를 갖추자 적은 도주, 지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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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쪽
귀환 후 개 4명 탈출 도주
5월 1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전선(電線)을 57개소 절단하고 도로 2개소 파괴한 후 오전 7시를 기하여 저지(楮旨)지서를 제2차 습격 적 4명, 아부대 60명(99식총 13정(挺), 수류탄 15 발(發), 기타 창(槍)) 지서를 포위 습격하자 적은 무저항 도주, 개 3명 즉사, 지서 완전 소각, 피검자 30명 완전 탈환, 반동 12명 숙청, 반동 가옥 112동(棟) 소각, 금악 (今岳)에서 반동 2명 완전 숙청
귀덕(歸德) 2구에서 2명 명월 하동(明月下洞)에서 각각 숙청 반동 가옥 6호(戶) 소각
5월 14일 -
오후 1시 한림(翰林)지서 습격. 적은 개 7명, 서청(西靑) 14명 계(計) 21명 . 아부대는 60명 외 동명(東明), 명월(明月), 자위대(自衛隊) 30명 참가 합계(合計) 90명(총(銃) 13정(挺), 수류탄 90발(發), 다이너마이트 9발(發), 군도(軍刀) 1본(本), 기타 창(槍))
접전 2시간 후 지서 토치카까지 육박하였으나 때마침 적 기동대를 실은 차 1대가 오고 서로는 국교(國校)에 주둔하고 있는 국경(國警) 약 50명이 달려옴으로 아부대가 협격 (挾擊)당하게 되어 퇴각, 적 개 5명, 반동 7명 합계(合計) 12명 숙청. 서청(西靑) 숙박소 소각. 우리 피해 4명, 4명 부상 (군도(軍刀) 2본(本), 99식소총 1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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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쪽
(挺)(사용 불가능)분실 국경(國警)에게 압수당함)
5월 14일 -
밤 8시 적 개가 국경(國警) 소대장을 학살하고 이간 정책으로서 이를 인민군(人民軍)에 전가시키려고 하다가 음모 발각, 국경(國警) 1개 소대가 지서를 습격 지서를 향하여 기관총을 난사함으로 지서원 전부 어선(漁船)으로 비양도(飛揚島)로 도주, 국경(國警)은 지서에 돌입하여 문서 전부 소각
5월 15일 -
전일 희생당한 우리 동무에 대해서 인민장(人民葬)하도록 국경(國警)에서 인민에게 자유를 주었음으로 리민(里民) 전부 모여 인민장(人民葬) 거행
6월 6일 -
정오 12시반 저지(楮旨) 개 12명과 반동분자 50명이 금악리(今岳里)를 습격 아부대 1개 소대(10명)로써 접전 15분 후 이를 격퇴. 개 2명 즉사(이 중 1명은 기관총수)
부기(附記) 한림(翰林)지서 습격 시에 개의 총에 대청(大靑) 한림 위원장(翰林 委員長) 즉사
7월 21일 -
엿장사로 가장한 스파이 1명 산간부락(山間部落)에서 숙청
전과 계(戰果 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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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쪽
一. 지서 습격 수 4회 지서 소각 2
一. 경관 사망 수 12명
一. 반동 사망 수 42명, 동 부상 2명, 동 포로 3명, 가옥 소각 84호(戶)
一. 전선절단(電線切斷) 64개소, 도로파괴 7개소
一. 무기 노획 일본도(日本刀) 1본(本)
一. 피검자 탈환 39명
一. 우리의 피해 희생 5명, 부상 6명(完全治療), 99식총 1정(挺), 일본도(日本刀) 2본 (本) 분실
(4) 대정면(大靜面)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대정(大靜)지서를 습격(대정면(大靜面) 대청(大靑) 사무소 동).
대정(大靜)지서 개 6명. 아부대 7명(총 2정(挺), 군도(軍刀), 1본(本), 대검(帶劍) 3본 (本), 철창 1본(本)).
포위 직전 오발로 인하여 사전 발각되었으나 개 2명뿐 숙직 중이었음으로 나오지 않았음. 아부대에서 2발(發) 사격 후 총 고장으로 퇴격. 개 1명 즉사
대청(大靑) 사무소 -
(제주도 최고 반동 강필생(姜必生) 집) 특무원(特務員) 2명이 침입 수류탄 1발(發) 투척하여 강필생(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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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쪽
必生)이와 그 가족 1명에게 각각 부상을 주고 퇴각
4월 18일 -
대정(大靜)지서 제2차 습격, 적은 개 10명. 아부대는 11명. 약 15분간 교전 후 성벽 (城壁)을 지서로 오인해서 휘발유탄 2발을 투척 결과 정세 불리로 퇴각
4월 27일 -
동일리(東日里) 반동 거두 1명 숙청
4월 28일 -
아부대 8명으로써 면사무소 습격 반동 직원 1명 숙청 1명 부상, 연락 불충분으로 인하여 동무 직원 1명 희생
4월 28일 -
안성리(安城里) 반동 구장(區長) 집 습격 구장(區長)에게 중상을 주다
4월 30일 -
모슬포(摹瑟浦)지서 습격, 아부대 15명
후면으로 아부대를 배치하고 전면으로 국경보초(國警步哨) (동무)를 배치, 측면으로는 여관 2층에 특무대(特務隊)를 2명 배치, 특무원이 지서를 향하여 황린탄(黃燐彈) 투척 폭발음을 신호로 일제 포위 습격하기로 작전했으나 황린탄(黃燐彈) 불발로 인하여 퇴각
5월 1일 -
신평리(新坪里)와 영락리(永樂里)에서 각각 반동 1명식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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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쪽
5월 4일 -
무릉(武陵)지서 습격. 적은 개 12명. 아부대는 30명. 약 20분 접전 후 지형불리로 인하여 퇴각. 동무 1명 희생
5월 5일 -
보성리(保城里) 반동 1명. 영락리(永樂里) 반동 고술생(高戌生)외 가족 2명을 숙청, 동 가옥 1호(戶) 소각
5월 20일 -
밤 12시를 기하여 국경(國警) 제2연대에서 (주 : 제9연대가 아닌가 사료됨.(국경(國警) 과의 관계 기록 참조) 1개 소대(43명)가 탈출, 대정(大靜)지서 습격. 개 4명 즉사케 하고 지서장(支署長)을 부상, 급사(給仕) 1명을 즉사케 한 후 서귀포(西歸浦)로 향하였음
5월 21일 -
아부대에서 재차 대정(大靜)지서를 습격. 카-빙 2정(挺), 전화기를 노획
5월 23일 -
면사무소를 습격. 문서 일체와 철창(鐵槍) 15본(本)을 노획
동일 보성리(保城里) 반동 고달진(高達珍) 가옥 소각, 일과리(日果里) 반동 강병국 (姜柄國) 숙청
5월 26일 -
무릉리(武陵里) 인향리(仁鄕里) 네거리에 아부대 13명 복병(伏兵), 적 기동대차 3대에 개 약 60명이 타고 오는 것을 기습, 아부대에서 약 50발(發)을 발포 적이 응전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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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쪽
세를 갖추며 기관총 3대로 난사함으로 약 15분간 교전 후 퇴각
전과(戰果) 개 즉사 14명, 부상 11명, 철갑(鐵甲) 1개, 배낭 1개, 카-빙 총 탄창 1개 노획
5월 28일 -
무릉리(武陵里) 2구 스파이 (우리 동무 8명을 학살케 한 놈) 1명, 여자 스파이 1명, 엿장수로 가장한 1명을 숙청
6월 25일 -
구억리(九億里) 반동 2명 숙청
6월 30일 -
무릉리(武陵里)에서 고산리(孤山里) 출신 반동 목사가 강연 순회함을 발견하여 숙청
전과 계(戰果 計 주 : 경찰관 사망자 수 18명 및 동 부상자 12명 집계 누락)
㊀ 지서 습격 6회(1회는 국경(國警)) 지서 소각 1, 반동 사망 14명, 동 부상 3명, 동 가족 사망 2명, 동 부상 1명, 동 가옥 소각 2호(戶)
㊁ 무기 노획 카-빙 총 2정(挺), 동 탄창 1개, 전화기 1개, 배낭 1개, 철갑(鐵甲) 1개, 철창(鐵槍) 15본(本)
㊂ 우리의 피해 동무 1명 희생
㊃ 전선절단(電線切斷) 10개소, 도로파괴 7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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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쪽
(5) 안덕면(安德面)
4월 10일 -
아부대 8명 덕수리(德水里) 대청(大靑)사무소를 습격.
사무소 완전 소각 후 반동 1명에게 부상을 주다
4월 하순 -
동광리(東廣里) 반동 1명 숙청
5월 10일 -
동광(東廣) 광평(廣坪) 상천(上川) 선거사무소를 습격.
광평리(廣坪里)는 완전 보이코트. 다른 부락은 경비로 실패
5월 24일 -
미명에 화순(和順)지서를 습격. 적은 개 20명. 아부대는 20명. 지서를 완전 포위하여 돌격 직전에 동으로 공차(空車)가 옴을 국경차(國警車)로 오인 퇴각. 개 6명 즉사, 반동 1명 숙청, 면사무소, 대청(大靑)사무소(겸 식량영단=食糧營團 사무소) 소각
6월 15일 -
창천리(蒼川里)와 상창리(上蒼里)에서 각각 반동 1명식 숙청(창천리(蒼川里) 반동은 독촉위원장=獨促委員長)하고 물품 다수 압수하여 돌아오는 도중 적 토벌대 약 15명과 접전 약 15분 후 아부대에서 퇴각 상호 피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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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쪽
추이(追而) 적끼리의 총에 대청원(大靑員) 1명 즉사, 3명 부상
전과 계(戰果 計)
㊀ 지서 습격 1회
㊀ 개 사망 6명
㊀ 반동 사망 6명, 동 부상 5명
㊀ 반동 가옥 소각 2호(戶) (면사무소와 대청(大靑)사무소)
㊀ 전선절단(電線切斷) 3개소, 도로파괴 1개소
(6) 중문면(中文面)
5월 10일 -
아부대 10명이 하예리(河猊리) 선거사무소를 습격. 투표함 파괴 후 선거를 완전 보이코트
5월 하순 -
면내(面內) 반동 6명 숙청, 개 2명에게 부상
6월 10일 -
도순리(道順里) 반동 1명 숙청. 지서 급사(給仕) 1명을 포로 하였으나 틈을 타 도주
6월 하순 경 -
국경(國警) 중문(中文) 주둔부대 내 동무들로써 면내 최고 반동 박찬오(朴贊五)를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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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쪽
6월 28일 -
개 토벌대 60명이 아지트를 습격하였으나 아부대에서는 이를 국경(國警)으로 오인 하여 무저항 퇴각. 동무 1명 피살, 99식총(사용불능) 1정(挺), 동 탄환 20발(發), 일본도(日本刀) 3정(丁), 수류탄 5발(發) 다이너마이트 2발(發), 모포(毛布) 10매, 천막 1매, 피복 다수를 소각 압수당하고 식기 20개, 식부(食釜) 2개, 천막 1매를 파괴당하다
전과 계(戰果 計)
㊀ 선거사무소 습격 1, 동 파괴 1
㊀ 반동 사망 8명, 부상 2명
㊀ 전선절단(電線切斷) 5개소
㊀ 우리의 피해 동무 1명 피살
㊀ 99식총(사용 불능) 1정(挺), 동 탄환 20발(發), 일본도(日本刀) 2본(本), 수류탄 5발(發), 다이너마이트 2발(發), 모포(毛布) 10매, 천막 2매, 식기 20개, 식부(食釜) 2개, 피복 다수를 소각, 압수당하다
(7) 서귀면(西歸面)
5월 22일 -
서홍리(西烘리) 반동 6명 숙청, 동 1명 부상, 물품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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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쪽
노획
동일 - 동홍리(東烘里) 반동을 1명 포로로 하였으나 탈주(脫走) 당하다
전과 계(戰果 計)
반동 사망 6명, 동 부상 1명
(8) 표선면(表善面)
5월 10일 -
아부대 10명 가시리(加時里) 습격. 선거사무소를 습격하여 투표함을 파괴하고 선거를 완전 보이코트. 반동 3명 숙청, 반동 가옥 1호(戶) 4동(棟) 파괴
(9) 남원면(南元面)
4월 3일 -
아부대 10명 99식총 2정(挺)으로써 남원(南元)지서를 습격
전과(戰果) - 개 1명 즉사, 동 1명 부상, 반동 1명 사망, 급사(給仕) 1명 사망, 카-빙 총 2정(挺), 공기총 1정(挺), 탄환 55발(發), 개 복(服) 다수 노획, 지서 반 소각
그 후 반동 1명 부상, 반동 가옥 2호(戶) 소각, 1호(戶) 파괴, 관공리(官公吏) 부상 1명, 전선절단(電線切斷)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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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쪽
개소(5키로매-터)
부기(附記) 남원(南元)지서에서 적끼리의 총에 서청(西靑) 개 1명 즉사
전과 계(戰果 計)
一. 지서 습격 1회, 동 소각 1(반소)
一. 개 사망 1명, 동 부상 1명, 관공리(官公吏) 1명 부상(급사(給仕)), 동 사망 1명, 전선절단(電線切斷) 3개소 (5키로매-터)
一. 무기 노획 카-빙 총 2정(挺), 공기총 1정(挺), 탄환 55발(發), 경관복 다수
(10) 성산면(城山面)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아부대 약 40명이 99식총 2정(挺)으로써 성산포(城山浦)지서를 포위 습격. 포위에는 완전 성공하였으나 우선 프락치 1명을 구출하려고 소극적 전법을 취한 것과 그 다음 가지고 간 총 전부가 고장이 나서 지서 가라스(유리= 작성자 주) 기타 건물 일부를 파괴한 후 적의 난사로 말미암아 퇴각
5월 10일 -
수산리(水山里) 선거사무소를 습격. 반동 가옥 소각,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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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쪽
동 2명 숙청, 단선(單選) 완전 보이코트
(11) 구좌면(舊左面)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아부대 약 40명이 99식총 2정(挺)을 가지고 세화(細花)지서와 면내(面內) 최고 반동 김대홍(金大洪)의 집을 습격. 지서에서는 그 때 숙직 중이든 서북계(西北系) 악질 경관 1명과 맹렬한 격전 끝에 이를 죽이고 카-빙 총 1정(挺), 44식총 1정(挺)을 노획, 지서를 소각하려고 했으나 석유가 없었음으로 불성공(不成功) 반동 김대홍(金大洪)의 집을 습격한 바 대홍(大洪)이가 권총 1발(發)을 발사하는 바람에 비겁(卑怯)을 느껴 퇴각
5월 9일 -
밤을 기하여 아부대 10명이 송당리(松堂里)를, 11명이 동복리(東福里)를 각각 습격. 송당리(松堂里)에서 반동 구장(區長) 처 1명, 반동(대청(大靑) 간부) 1명을 숙청, 그들의 가옥 4호(戶)를 소각, 동복리(東福里)에서 반동 1명 숙청, 반동 가옥 1동 소각, 반동 집 내의 미싱, 의류, 기타 다수 몰수, 그리고 송당리(松堂里), 동복리(東福里)의 선거사무소를 각각 습격 파괴
5월 10일 -
------------------------------------------------------------------------ - 61쪽
아침 덕천리(德泉里) 선거사무소를 습격하여 투표함을 파괴하고 반동 가옥 1동 소각
5월 11일 -
아부대를 2개 중대로 나누어 구좌면(舊左面) 일대 하도(下道), 상도(上道), 평대(坪垈), 한동(漢東), 월정리(月汀里) 외 1개 리를 습격 상도리(上道里)에서 반동 2명 숙청, 반동 가옥 1호(戶) 소각. 평대리(坪垈里)에서 면사무소를 습격 완전 소각, 반동 가옥 2호(戶) 소각. 한동리(漢東里)에서 반동 2명 숙청, 2명 부상, 반동 가옥 2호(戶) 소각. 월정리(月汀里)에서 반동 가옥 1호(戶) 소각, 기타 다른 리(里)에서 반동 가옥 1호(戶) 소각
5월 23일 -
하도(下道), 상도리(上道里) 반동 7명 숙청
5월 24일 경 -
아부대 약 20명이 김녕(金寧)지서 습격 약 30분간 신경전으로 발포하다가 작전 계획에 차이가 생겨 퇴각. 상호 피해 무
전과 계(戰果 計)
一. 지서 습격 2회
一. 개 사망 1명(서북계 악질)
一. 반동 사망 13명, 동 부상 2명, 동 가족 사망 1명, 동 가옥 소각 13호(戶), 관공서 습격 1회(면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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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쪽
소), 동 완전 소각
一. 무기 노획 카-빙 총 1정(挺), 44식총 1정(挺), 기타 노획 물자 다수
(12) 조천면(朝天面)
4월 3일 -
오전 2시를 기하여 조천(朝天), 함덕(咸德) 양 지서를 일제 습격
조천(朝天)지서 -
아부대 약 40명이 99식총 2정(挺)으로써 포위전은 완전히 성공했으나 사전 발각으로 퇴각
함덕(咸德)지서 -
아부대 약 40명이 99식총 2정(挺)으로써 포위 습격. 먼저 서내(署內) 1명 프락치 에게 연락하여 탈출케 한 후 그 소개로 개집을 습격하여 개 1명을 포로했든 바 그 처가 지서로 달려가면서 고함을 지름으로 인하여 사전 발각되어 퇴각
귀도(歸途)에 대청원(大靑員) 3명을 포로로 하고 (아지트에 귀환한 후 개전시킨 후 석방) 뒤이어 서청(西靑) 숙사를 습격, 서청(西靑) 5명 중 4명을 총살하고 서청(西靑)에 취사(炊事)해 주든 1명은 송당리민(松堂里民)이었음으로 개전시킨 후 인민군(人民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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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쪽
취사번(取士番)으로 채용
4월 8일 -
밤 조천(朝天)지서를 제2차로 강습(强襲). 아부대 약 40명이 카-빙 총 4정(挺), 99식총 4정(挺), 황린탄(黃燐彈) 2발(發)을 가지고 습격하였으나 정보 불충분으로 적에게 배후 공격을 받아 황린탄(黃燐彈) 1발(發)을 투척하여 지서를 부분적으로 파괴시키고 개 2명을 즉사케 한 후 퇴각
우리의 피해 동무 2명 희생
4월 14일 -
미명 교래리(橋來里) 주둔 적 기동대 약 50명을 아부대 40명으로써 포위 습격. 개 2명을 즉사시키고 지형 불리로 퇴각
4월 14일 밤 -
조천면(朝天面) 조천(朝天)지서를 제3차로 습격. 수류탄을 투척하여 지서를 부분적으로 파괴, 내부를 수라장(修羅場) 시키고 개 7명과 서청(西靑) 2, 3명을 행방불명케 함
4월 15일 -
밤 대흘리(大屹里) 반동 부영호(夫榮豪)를 숙청 그 가옥 1호(戶)를 소각, 반동 가족 1명을 포로로 했다가 후일 석방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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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쪽
밤 선흘리(善屹里) 반동 부용화(夫龍化) 숙청
4월 17일 -
신촌리(新村里) 반동 진장섭(秦長燮=충청도 출신 한민당계 교원), 김문봉(金文峯) 급 그의 처 외 3명 숙청. 김영아(金榮我)(교장) 부상
4월 20일 경 -
이로부터 약 1주일간 계속해서 함덕리(咸德里) 대청(大靑)과 지서에 대하여 아부대 7명 급 약 15명이 99식총 10정(挺), 카-빙 총 1정(挺)으로써 신경전을 전개하다.
첫날 밤 아부대 10명이 군도(軍刀) 2본(本), 권총 1정(挺), 99식 7정(挺)을 가지고 함덕리(咸德里) 향보단(鄕保團) 경비소를 습격하여 향보단원(鄕保團員) 13명을 포로로 하여 그 중 대청원(大靑員) 1명을 숙청하고 나머지는 개전시키고 전부 석방. 그 2일쯤 후 아부대 약 7명이 99식과 군도(軍刀)를 가지고 함덕리(咸德里)에 돌입하여 함덕리(咸德里) 거리에서 경비하는 대청원(大靑員) 2명을 포로해서 1명은 숙청, 1명은 개전시킨 후 석방, 또 반동 가옥을 습격하였는데 반동은 도주해 버리고 도주하는 그의 처 1명을 숙청, 이로 인하여 그 익일(翌日) 함덕리민(咸德里民)들은 자발적으로 인민대회(人民大會)를 개최하고 대회 석상에서 대청(大靑) 향보단(鄕保團)을 해방시켰음. 그리고 이 신경전 기간 중 2일만에 한번씩 봉화(烽火) 투쟁을 전개, 일방 그 당시 북촌리(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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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쪽
里)에 대한 탄압이 혹심하여 날마다 함덕(咸德)지서 개와 대청원(大靑員)들이 북촌리 (北村里)를 습격하였음으로 다시 내습할 것을 대기하여 아부대 약 12명이 약 3일간 매일 우중(雨中)에 함덕리(咸德里)와 북촌리(北村里)간의 도로 근방에 복병(伏兵)하고 있었으나 결국 개의 내습이 없음으로 퇴각
4월 말일 경 -
밤 신흥리(新興里) 악질 경관 김태배(金太培) 집을 습격, 그 가옥 1호(戶) 2동을 완전 소각. 조천면(朝天面) 오름밭 악질 반동 1명 숙청, 그 가옥 1호(戶) 완전 소각
5월 초순 -
조천(朝天)리 반동 1명에 부상, 와산(臥山) 반동 1명 숙청, 그 가옥 1호(戶) 소각
5월 7일 -
전일 함덕리(咸德里) 대청(大靑)을 해산시킨 뒤 이들로써 자위대(自衛隊)를 조직하고 그들의 과거의 오류를 청산하기 위하여 첫 번 투쟁으로써 함덕(咸德)지서 개를 숙청 하기로 결정, 비무장 자위대(自衛隊) 약 10명이 복병(伏兵)하고 한행도(韓行道) 동무 에게 개 2명을 유도해 오도록 지령했든 바 마침 거리를 순회하는 개 2명을 발견 한 (韓) 동무는 개에게 술먹으러 가자고 권유하여 이들을 주점으로 대려가서 술을 먹을 때 다른 자위대원(自衛隊員= 그 전 대청원=大靑員) 3명도 이에 가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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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쪽
틈을 엿보았으나 개들은 종시 총을 손에 쥐고 있었음으로 틈을 타지 못하여 결국 복병 (伏兵)한 지점까지 이를 유도해 다가 한(韓) 동무가 개의 뒤에서 개 2명의 총 2정(挺)을 한 손에 하나씩 양손에 붙잡고 미리 결정했든 암호 고기 낚으러 가자를 외치자 복병 (伏兵)했든 우리 자위대원(自衛隊員)들은 일제히 이를 포위하여 포로해다가 숙청하고 카-빙 총 1정(挺)과 44식총 1정(挺)을 압수
5월 8일 -
전일의 투쟁에 이어 함덕리민(咸德里民) 노인과 부인들은 거리에서 개들의 통과를
대기하고 있든 바 마침 개 1명이 무장하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 노인 1명이 백수(白手)로 개에게 접근하여 개의 총을 붙잡고 양심이 있거든 이 총을 놓으라하자 거리에 있든 리민(里民)들이 개를 완전히 포위하고 일제히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양심이 있거든 총을 놓으라고 외쳤다. 개는 네 놓겠읍니다하고 총을 내 버리고 도주 하려는 것을 부인들이 달려들어 이를 구타하는 도중, 마치 적 기동대차가 통과하다가 총을 난사함으로 리민(里民)들은 개에게만 부상만 주고 99식총 1정(挺)만 탈취하여 퇴각.
우리 쪽 피해 전무
5월 8일 ~ 9일까지 -
전면(全面)에 걸쳐 각리간(各里間)의 자동차 도로 8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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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쪽
를 파괴 차단
5월 10일 -
대흘리(大屹里) 1구에 투표함을 가지고 온 서청(西靑) 3명을 숙청, 또 서청교원 (西靑敎員) 1명 숙청
5월 14일 -
오후 4시를 기하여 함덕(咸德)지서를 습격 지서 내에 개 6명, 아부대 약 50명 (카-빙 총 2정(挺), 44식총 1정(挺), 99식총 33정(挺), 수류탄 10발(發)) 이 중 25명을 3개 소대로 편성하여 1개 소대는 서쪽 대로(大路), 1개 소대는 동쪽 대로(大路), 1개 소대는 지서 후방 퇴각로에 각각 복병(伏兵), 나머지 26명은 지서 전면(前面)을 2면으로 완전 포위 성공, 그러나 지서 내에는 동무들 가족 4명이 피검되어 있음으로 이를 구출하기 위해서 처음은 신경전, 위협전으로서 개시, 우선 감시대(監視臺)에서 감시하든 개에 향하여 발사 이를 죽이고 나자, 그 총 소리에 비로소 지서 내에서 포위 당한 것을 알고 지서원 소집 명령을 하면서 발포 시작, 그래서 아부대에서는 지서를 향하여 간간 산발(散發)하며 수류탄을 던졌다.
지서 내의 인민을 구출하기 위해서 격전으로 나가지 못하고 위협 정도로 밖에 공격을 하지 못했음.
전면 포위 부대는 점진(漸進), 지서 최근 거리까지 육박하여 지서 내로 향해서 인민들은 나오라고 외치자 지서 내에서 부인 1명이 인민입니다고 하면서 나오는 것을 동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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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쪽
명이 이를 구출하려고 접근해 본즉 그는 지서에 숙박했든 개의 처였음으로 당장에 사살해 버리고 또다시 인민은 나오라고 외치자 그 때야 감금당했든 인민들이 자신으로 유치장 문을 처 부시고 지서 밖으로 4명이 뛰어 나오자 동무들은 아부대의 뒤에서 대기하든 인민들에게 이를 넘기고 지서 인접 가옥 인민들을 피난시킨 다음 그 후 일제 맹공격을 개시하여 지서 옆에 있는 개 숙사를 방화하고 황린탄(黃燐彈)을 투척 지서 내에 명중 폭발 이로써 개들은 일부는 부상당하고 발사를 중지하자 우리 부대 일부는 지서 내에 돌입하여 부상당해서 자빠진 개 3명을 총살하고 지서 내의 문서와 무기 등을 압수해서 무장 부대는 개가(凱歌)로 귀도(歸途) 그리고 지서 내에 아부대 돌입하고 있을 때, 마침 동쪽으로 차 1대가 질주해 오는 것을 복병(伏兵)했든 동무들이 발견했으나 그 차가 버스였음으로 객차로 오인해서 발사하지 않고 통과 시키다가 본 즉 차창으로 총구가 보임으로 그때야 개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맞지 않고 자동차에서도 총을 난사하면서 지서 앞까지 박진 (迫進)하여 정차할 기세를 보이다가 우리 쪽 기세에 놀래서 그대로 속도를 가하여 서쪽(성내)으로 질주하는 것을 동무들은 우선 차를 정차시키려고 발사하자 운전수의 양완(兩腕)을 관통 부상시켰으나 조수가 다리로 운전하며 그대로 서쪽으로 질주하는 것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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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쪽
쪽의 복병(伏兵)부대도 처음은 객차로 오인해서 발사하지 않았다가 총구가 보인 후에야 수류탄을 던졌으나 맞지 않아서 결국 도주시키고 말았다.
무장 부대가 지서에 방화한 다음 개선(凱旋)해 버리자 지서가 잘 타지 않는 것을 본 리민들은 속고(粟고)를 지서 내에 집어 놓고 또다시 방화하자 천정(天井) 위에 숨었든 개 1명과 숙직실 장방 속에 숨었든 개 1명이 화기에 못 견디어 나오는 것을 리민들이 발견 포로하고 또 이웃 집 돼지 집 속에 숨었든 개 1명을 발견 포로해다가 계(計) 3명을 숙청하였는데 그 중 지서장은 극악질로써 리민들에게 대하여 말할 수 없는 악행을 하였기 때문에 리민들의 극도의 원한의 대상이었음으로 리민들은 죽어 쓰러지고 있는 지서장 사체를 발견하여 돌멩이로 지서장 두부(頭部)를 때려 부시고 사체를 지서 내에 담아 놓아서 방화하여 완전 소각하였다.
그리고 무장부대는 개선 도중(凱旋途中) 반동 가옥 3개소를 습격하여 반동 3명을 숙청하고 그 가옥을 3호(戶) 각 소각하다.
이날의 전과(戰果) =
개 사망 6명, 동 가족 사망 1명, 반동 사망 3명, 지서 급 동 숙사 완전 소각, 반동 가옥 3호(戶) 소각
㊀ 무기 노획
44식총 2정(挺), 30년식총 2정(挺), 카-빙 총 2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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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쪽
(挺), 카-빙 총 탄환 50발(發), 38식총 탄환 800발(發), 군도(軍刀) 3본 (本), 황린탄(黃燐彈) 4발(發), 수화기(受話器) 1개, 수류탄 4발(發) 나팔 (喇叭) 2개, 등사판 1개
㊁ 기타 현금 1만 3천원, 개 의복 3착, 문서 다수 압수
㊂ 피검자(인민) 4명 탈환
㊃ 우리의 피해
동무 1명 동지 총에 부상(후 완전 치료)
5월 15일 -
전일 함덕(咸德)지서 전멸을 알고 기동차(機動車)가 함덕리(咸德里)에 내습, 사체를 싣고 퇴각. 이 때 경관 1명이 99식총 1정(挺) 동 탄환 80발(發)을 가지고 투항, 인민군 (人民軍)에 편입
동일 -
오후 9시를 기하여 군(軍) 주최로 면인민대회(面人民大會)를 3개소 (와흘=臥屹, 대흘2구= 大屹2區, 선흘리=善屹里)에서 개최하여 무장 시위와 봉화(烽火) 투쟁을 단행하다.
5월 16일 -
조천면(朝天面)지서원 3명이 99식 1정(挺), 30년식 총 1정을 가지고 인민군(人民軍)에 투항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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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쪽
5월 17일 경 -
조천(朝天)리 양천동(揚天洞) 반동 7명 숙청
5월 26일 -
조천(朝天)리 물가에서 총을 물가에 두고 옷을 벗어서 세탁을 하고 있는 개 1명을 자위대(自衛隊) 동무 8명이 발견 포위하여 포로로 하고 오는 도중 서청(西靑) 엿장수 스파이가 보아서 지서에 통보하자 개들이 출동, 동무들은 포로 개를 대리고 피하려고 하자 개가 도주하기 시작하고 지서 개들이 추격하여 옴으로 동무들은 총과 탄환대 (彈丸帶)만 가지고 퇴각(총은 99식총)
6월 15일 경 -
북촌리(北村里)에서 우도(牛島) 연평(演坪)을 떠나 성내(城內)로 가다가 역풍을 만나 북촌항(北村港)에 기항한 개 2명과 기타 신분 불명의 수인을 싫은 어선 1척을 발견하여 자위대(自衛隊) 동무들이 배를 내리고 뭍으로 올라오는 개를 포위 개 1명이 카-빙 총으로 모(某) 동무의 가슴에 대여 겨누자 그 동무는 손으로 총을 붙잡고 밑으로 눌음과 동시에 탄창을 빼어 버렸다. 개는 발사했으나 들어 있는 탄환은 1발뿐이었고 발사한 탄환은 그 동무의 양다리 사이를 통과하여 뒷 지면(地面)에 박아지고 말았다. 이에 나머지 개 1명이 또다시 총에 탄환을 넣으려고 하는 것을 권총을 가졌든 동무가 발사하여 개 2명을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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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쪽
선중(船中)의 개가 가족과 신분 불명의 사람 약 10명은 포로(그 후 국경(國警)에게 아지트를 피습당했을 때 포로들은 탈주(脫走)당하다,) 카-빙 총 1정(挺), 99식총 1정 (挺) 노획. 기타 반동 숙청 10명
종합 전과(綜合 戰果)
㊀ 지서 습격 5회, 동 소각 1, 동 파괴 1.
㊀ 개 사망 15명, 동 부상 1명, 동 가족 사망 4명, 동 투항 4명, 탈출 1명, 동 행방불명 7명
㊀ 반동 사망 38명(중 서청(西靑) 8명 포함), 동 부상 2명, 동 포로 17명(중 서청 (西靑) 1명), 동 행방불명 3명(전부 서청=西靑), 동 가족 사망 2명, 동 가족 포로 2명, 동 가옥 소각 7호(戶)
㊀ 무기 노획
카-빙 총 6정(挺), 99식총 5정(挺), 44식총 4정(挺), 30년식총 2정(挺), 황린탄(黃燐彈) 4발(發), 수류탄(手榴彈) 4발(發), 군도(軍刀) 3본(本)
주 = 카빙총 탄환 50발(發)과 38식총 탄환 800발(發) 집계 누락
㊀ 기타 다수 압수
㊀ 전선절단(電線切斷) 500여 개소, 도로 파괴 8개소
㊀ 우리의 피해 동무 2명 희생, 2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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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쪽
(13) 전도 면별 전과(戰果) 일람표
|
전
과
종
류 |
지
서
습
격
수
|
동
파
괴
수
|
동
소
각
수
|
개
사망
수
|
개
부
상
수
|
개
가족
사망
수 |
개
가족
부
상
수 |
개
투
항
자
수
|
관
공
서
습
격
수
|
동
소
각
수
|
동
파
괴
수
|
반
동
사
망
수
|
동
부
상
수
|
동
가족
사
망
수 |
동
부상
수 |
동
가
옥
소
각
수 |
동
파
괴
수
|
경
관
가
옥
소
각
수 |
|
제주읍 |
7 |
1 |
1 |
5 |
5 |
3 |
|
|
|
|
|
66 |
9 |
4 |
|
9 |
3 |
2 |
|
애월면 |
4 |
|
|
16 |
16 |
|
|
|
|
|
|
24 |
1 |
3 |
|
2 |
|
|
|
한림면 |
4 |
|
2 |
12 |
|
|
|
|
|
|
|
42 |
2 |
|
|
84 |
|
|
|
대정면 |
6 |
|
1 |
|
|
|
|
|
|
|
|
14 |
3 |
2 |
1 |
2 |
|
|
|
안덕면 |
1 |
|
|
6 |
|
|
|
|
|
|
|
6 |
5 |
|
|
2 |
|
|
|
중문면 |
|
|
|
|
|
|
|
|
1 |
|
1 |
8 |
2 |
|
|
|
|
|
|
서귀면 |
|
|
|
|
|
|
|
|
|
|
|
6 |
1 |
|
|
|
|
|
|
표선면 |
|
|
|
|
|
|
|
|
|
|
|
3 |
|
|
|
|
4 |
|
|
남원면 |
1 |
|
1 |
1 |
1 |
|
|
|
|
|
|
1 |
1 |
|
|
|
|
|
|
성산면 |
1 |
1 |
|
|
|
|
|
|
|
|
|
2 |
|
|
|
1 |
|
|
|
구좌면 |
2 |
|
|
1 |
|
|
|
|
1 |
1 |
|
13 |
2 |
1 |
|
13 |
|
|
|
조천면 |
5 |
1 |
1 |
15 |
1 |
4 |
|
4 |
|
|
|
38 |
2 |
2 |
|
7 |
|
|
|
합 계 |
31 |
3 |
6 |
56 |
23 |
7 |
|
4 |
2 |
1 |
1 |
223 |
28 |
12 |
1 |
120 |
7 |
2 |
주 = 원문 등사불명으로 투쟁면-각면별 집계를 전재하였음.
대정면 내 경관 사망자 18명과 동 부상자 12명 및 화북, 대정, 남원 등 각 지서 급사 사망자 3명 통계 누락
--------------------------------------------------------------------------
-74쪽
|
전
과
종
류 |
반
동
포
로
수
|
동
가족포로
수
|
전 선 절 단
수
|
도로파괴
수
|
교량파괴
수
|
무기노획
카빙총 |
동
카빙총탄창 |
동
카빙
탄환 |
동
38식 탄환
|
동
수류탄
|
동
일본도
|
동
전화기
|
동
철창
|
동
철갑
|
동
배낭
|
동
공기총
|
동
44
식 총
|
동
99
식총
|
동
38년식총
|
동
황린탄
|
기타
피검자탈환 |
|
제주읍 |
|
|
349 |
140 |
1 |
1 |
2 |
9 |
|
|
|
|
|
|
|
|
|
|
|
|
|
|
애월면 |
|
|
6 |
7 |
2 |
1 |
2 |
95 |
|
1 |
|
|
|
|
|
|
|
|
|
|
|
|
한림면 |
3 |
|
64 |
7 |
|
|
|
|
|
|
1 |
|
|
|
|
|
|
|
|
|
39 |
|
대정면 |
|
|
10 |
7 |
|
2 |
1 |
|
|
|
|
1 |
15 |
1 |
1 |
|
|
|
|
|
|
|
안덕면 |
|
|
3 |
1 |
|
|
|
|
|
|
|
|
|
|
|
|
|
|
|
|
|
|
중문면 |
|
|
5 |
|
|
|
|
|
|
|
|
|
|
|
|
|
|
|
|
|
|
|
서귀면 |
|
|
|
|
|
|
|
|
|
|
|
|
|
|
|
|
|
|
|
|
|
|
표선면 |
|
|
|
|
|
|
|
|
|
|
|
|
|
|
|
|
|
|
|
|
|
|
남원면 |
|
|
3 |
|
|
2 |
|
55 |
|
|
|
|
|
|
|
1 |
|
|
|
|
|
|
성산면 |
|
|
|
|
|
|
|
|
|
|
|
|
|
|
|
|
|
|
|
|
|
|
구좌면 |
|
|
|
|
|
1 |
|
|
|
|
|
|
|
|
|
|
1 |
|
|
|
|
|
조천면 |
17 |
2 |
500 |
8 |
|
6 |
|
50 |
800 |
4 |
3 |
|
|
|
|
|
4 |
5 |
2 |
4 |
4 |
|
합 계 |
20 |
2 |
940 |
170 |
3 |
13 |
5 |
209 |
800 |
5 |
4 |
1 |
15 |
1 |
1 |
1 |
5 |
5 |
2 |
4 |
43 |
--------------------------------------------------------------------------
- 75쪽
四. 국경(國警)과의 관계
(1) 관계 시작 경위
1946년의 본도 3․1투쟁(주= 소위 3․1 및 3․10 투쟁은 1947년임) 직후 때마침 본도 주둔 제9연대가 신설되어 제1차 모병이 있음으로 이에 대정(大靜) 출신 4동무 (고승옥=高升玉, 문덕오=文德五, 정두만=鄭斗萬, 류경대=柳京大)를 프락치로써 입대시켰음.
그 후 5월에 내도(來島)한 중앙 올구 이명장(李明章) 동무에게 이것을 보고하여 지도 문제와 활동 방침을 남도(南道)에 가서 지시하여 주도록 요청한 바 있었으나 그 후 아무런 지시도 없었고 내도(來島)한 올구를 통해서 재삼재사 프락치 지도에 관한 시급한 지시를 요청하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음.
그러나 도당부(島黨部)에서는 이것을 포기할 수 없어 독자적으로 선(線)을 확보하였음.
그 후 대정면(大靜面)당을 통하여 경상적으로 연락을 확보하였으나 좌기 프락치 4명 중 정두만(鄭斗萬) 동무는 조직이 없이 탈출하여 일본으로 도피, 류경대(柳京大)는 군기대(軍紀隊)에 전근이래 반동의 기색을 띄게 되었음.
(2) 4․3 투쟁과 국경(國警)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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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쪽
3․1투쟁 직전(주=4․3투쟁 직전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에 내도한 도(道) 올구 이(李)동무의 상도편(上道便)에 국경(國警) 문제에 대한 시급한 대책을 요청하였든 바 이(李)동무는 재차 3월 중순에 내도함과 동시에 무장 반격에 관한 지시와 아울러 국경(國警) 프락치는 도당(島黨)에서 지도할 수 있으며 이번의 무장 반격에 이것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야 된다고 언명하였음.
이 지도를 중심으로 4․3(사건) 투쟁의 전술을 세우는데 있어서 감찰청(監察廳)과 1구서(1區署) 습격에 국경(國警)을 최대한으로 동원하고 나머지 각 지서는 유격대(遊擊隊)에서 담당하기로 양면작전을 세워 즉시 좌기 프락치에게 연락을 부치고 동원 가능 수를 문의한 바 800명 중 400명은 확실성이 있으며 200명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 반동은 주로 장교급으로서 하사관(下士官) 합하여 18명이니 이것만 숙청하면 문제없다는 보고가 있었음. 동시 만일 경비대가 동원된다면 현재 1연대(聯隊 주=9연대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에는 차(車)가 없으니 차(車) 약 5대만 돌려주면 좋고 만약 불가능하면 도보(徒步)로라도 습격하겠다는 말이 있었음.
이 보고를 중심으로 즉시 4․3투쟁에 총궐기하여 감찰청(監察廳)과 1구서(1區署)를 습격하라는 지령과 아울러 자동차 5대를 보냈음.
그런데 의외에도 4․3 당일에 국경(國警)이 동원되지 않음으로 이것을 이상한 일로 생각하고 있든 바 4월 5일에 상도(上島)한 도(島) 파견 국경(國警) 공작원(도상위청책=島常委靑責 동무)의 보고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진상이 판명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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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파견원이 최후적 지시를 가지고 국경(國警) 프락치를 만나러 갔든 바 프락치 2명은 영창(營倉)에 수감(收監)되어 없었음으로 할 수 없이 횡적(橫的)으로 문상길(文常吉) 소위를 만났든 바 이 동무의 입을 통해서 국경(國警)에는 이중 세포가 있었다는 것, 그 하나는 문(文)소위를 중심으로 해서 중앙 직속의 정통적 조직이며 또 하나는 고승옥(高升玉) 하사관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출신 파락치로의 조직이었음.
그래서 4․3투쟁 직전에 고하사관(高下士官)이 문(文)소위에게 무장투쟁이 앞으로 있을 것이니 경비대(警備隊)도 호응 궐기해야 된다고 투쟁 참가를 권유했든 바 문(文)소위는 중앙 지시가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거절한 바 있었다고 함.
이 말을 듣고 도(島) 파견 국경(國警) 공작원은 깜짝 놀랐으나 이렇게 된 이상 어찌할 수 없으니 제주도 30만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고 또한 우리의 위대한 구국항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어코 참가해야 한다고 재삼재사 요청하였으나 중앙지시가 없음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결국 거절당했음.
이리하여 4․3투쟁에 있어서의 국경(國警) 동원에 의한 거점 분쇄는 실패에 돌아갔음.
(3) 그 후의 연결(聯結)
기후(其後) 올구를 파견하여 문(文)소위와 정상적인 정보 교환을 하여 오든 바 4월 중순에 이르러 돌연히 부산(釜山)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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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대 1개대대가 내도(來島)하여 산부대를 포위 공격하게 되었음으로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된다는 긴급 연락이 있어 군책(軍責)이 직접 파견되어 문제를 수습하기로 되었음.
군책(軍責)과 문(文)소위가 만난 결과 국경(國警)의 세포는 중앙 직속이므로 도당(島黨)의 지시에 복종할 수 없으나 행동의 통일을 위하여 밀접한 정보 교환, 최대한의 무기 공급, 인민군(人民軍) 원조 부대로서의 탈출병 추진, 교양자료의 배포 등의 문제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더욱이 최후 단계에는 총궐기하여 인민과 더불어 싸우겠다고 약속하였음.
또 9연대 연대장 김익렬(金益烈)이가 사건을 평화적으로 수습하기 위하여 인민군대표(人民軍代表)와 회담하여야 하겠다고 사방으로 노력 중이니 이것을 교묘히 이용한다면 국경(國警)의 산(山) 토벌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 4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전후 2회에 걸쳐 군책(軍責)과 김(金) 연대장과 면담하여 금반 구국항쟁의 정당성과 경찰의 불법성을 특히 인민(人民)과 국경(國警)을 이간시키려는 경찰의 모략 등에 의견의 일치를 보아 김(金) 연대장은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음(제1차 회담에는 5연대 대대장 오일균(吳一均)씨도 참가 열성적으로 사건 수습에 노력했음).
그 후 5월 7일에 내도(來島)한 중앙 올구는 국경(國警) 프락치에 대한 지도는 도당(島黨)에서 할 수 있다고 언명하였기에 국경(國警)과의 관계는 복잡화하여지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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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결정적인 약점을 가져오게 되었음.
그 후 5․10 투쟁까지는 국경(國警)으로부터 아무런 공격도 없어 우리의 활동에는 크나큰 이익을 가져왔다.
5․10 제주읍에서 도당(島黨) 대표로써 군책(軍責), 조책(組責) 2명과 국경측(國警側)에서 오일균(吳一均) 대대장 및 부관(副官) 9연대 정보관 이(李)소위 등 3명과 계(計) 5명이 회담하여
㊀ 국경(國警) 프락치에 대한 지도 문제
㊁ 제주도 투쟁에 있어서의 국경(國警)이 취할 바 태도
㊂ 정보 교환과 무기 공급 등 문제를 중심으로 토의한 결과 다음의 결론에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음.
Ⓐ 국경(國警) 지도 문제에 있어서 일방에서는 도당(島黨)에서 지도할 수 있다고 하며 일방에서는 중앙 직속이라고 함으로 결국 이 문제는 해결 불가능하다.
그럼으로 도당(島黨)에서 박은 프락치만은 도당(島黨)에서 지도하되 행동의 통일을 위하여 각각 소속 당부의 방침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협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제주도 치안에 대하여 미군정과 통위부(統衛部)에서는 전면적 포위 토벌 작전을 지시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행되면 결국 제주도 투쟁은 실패에 돌아가고 만다.
그럼으로 국경(國警)에게서는 포위 토벌 작전에 대하여 적극적인 사보타-주 전술을 쓰며 국경(國警) 호응 투쟁에 관해서는 중앙에 건의한다. 특히 대내(隊內) 반동의 거두 박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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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珍景) 연대장 이하 반동 장교들을 숙청하지 않으면 안된다.
Ⓒ 최대의 힘을 다하여 상호간의 정보 교환과 무기 공급 그리고 가능한 한도 내에 있어서의 탈출병(脫出兵)을 적극 추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4) 국경(國警)으로부터 우리에 대한 원조 경위(援助 經緯)
(탈출병=脫出兵을 중심으로)
㊀ 3월 25일 경 한림면(翰林面) 협재리(狹才里)에 와 있든 해경(海警) 중에서 동무 1명이 99식총 5정을 가지고 탈출 인민군(人民軍)에 입대 그 후 4․3투쟁 후에 기관장(機關長)으로부터 조명탄통(照明彈筒) 1정(挺)과 동 탄환 7발(發)을 보내어 왔음.
㊁ 4월 중순 경 문(文)소위로부터 99식총 4정(挺), 오일균(吳一均) 대대장으로부터 카-빙 탄환 1,600발(發), 김익렬(金益烈) 연대장으로부터 카-빙 탄환 15발(發)을 각각 공급 받음.
㊂ 5월 중순 5연대 통신과 동무로부터 신호탄(信號彈) 5발(發) 공급받음.
㊃ 5월 17일 경 오일균(吳一均) 대대장으로부터 M1총 2정(挺) 동 탄환 1,443발(發), 카-빙 총 2정(挺), 동 탄환 800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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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공급받음.
㊄ 5월 20일 문(文) 소위 지시에 의하여 9연대 병졸 최(崔) 상사이하 43명이 각각 99식 총 1정식을 가지고 탄환14,000발(發)을 트럭에 싫어 탈출, 도중 대정(大靜)지서를 습격, 개 4명, 급사(給仕) 1명을 즉사시키고 지서장에게 부상시킨 후 서귀포(西歸浦) 경유 상산 (上山)하려고 했으나 그 연락이 안되어 결국 22명은 피검(被檢), 탄환 다수 분실 혹은 압수당하고 겨우 4, 5일 후에야 나머지 21명과 아부대와 연락되었음(이 때에는 각각 99식총 1 정(挺)식과 99식 탄환 100발식 만이 남아 있었음). 이 때 연락이 안된 원인은 문(文) 소위가 우리에게 보낸 연락 방법과 탈출병(脫出兵)들이 연락한 연락 방법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든 것에 기인한다.
㊅ 5월 21일 대정면(大靜面) 서림(西林) 수도(水道) 보초(步哨) 2명이 99식총 3정(挺)을 가지고 탈출 인민군(人民軍)에 입대
㊆ 5월 말일 애월면(涯月面) 주둔 5연대 병졸 4명이 각각 M1총 1정(挺)식 가지고 탈출 인민군 (人民軍)에 입대
㊇ 5월 말일 9연대 고승옥 상사(高升玉 上士) 이하 7명이 카-빙 총 1정(挺)과 99식총 7정(挺)을 가지고 탈출 인민군(人民軍)에 입대
㊈ 6월 초순 대정(大靜)에서 9연대 상사(上士) 문덕오(文德五) 동무 99식총 1정(挺) 가지고 탈출 인민군(人民軍)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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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㊉ 6월 20일 대정면(大靜面)에서 해경(海警) 1명이 99식총 2정(挺)을 가지고 탈출
7월 1일 대정(大靜)에서 서림(西林) 수도(水道) 보초(步哨) 10명이 99식총 11정 (挺)을 가지고 탈출 인민군(人民軍)에 입대
7월 12일 대정(大靜)에서 9연대 병졸 1명이 99식총 1정(挺)을 가지고 탈출
7월 14일 9연대 병졸 2명 탈출. 이 중 1명은 산(山)까지 왔다가 비겁하여 도주
7월 18일(주 = 6월 18일을 7월 18일로 오기한 것이 아닌가 사료됨 = 작전면 제5차 작전 기록 참조) 6연대 이정우(李禎雨) 동무는 오전 3시 박진경(朴珍景) 11연대장을 암살한 후 M1소총 1정(挺)을 가지고 상산(上山) 인민군(人民軍)에 입대
7월 24일 9연대 병졸 1명 99식총 1정(挺), 동 탄환 10발(發)을 가지고 탈출, 인민군 (人民軍)에 편입
7월 초순 M1 1정(挺)을 가지고 1명 탈출
계(計) 一. 탈출병수 52명, (피검된 22명과 도주한 1명 제외)
一. 무기
총 = 99식총 56정(挺), 카-빙 3정(挺), M1 8정(挺)
합계(合計) 67정(挺)
一. 탄환만의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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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1,443발(發), 카-빙 총 탄환 2,415발(發)
계(計) 3,858발(發)
一. 기타 무기
조명탄통(照明彈筒) 1정(挺), 동 탄환 7발(發)
신호탄통(信號彈筒) 5개
주(註) = 전기 탈출병 52명 중 그 후의 국경(國警) 작전에 의하여 1명 피살, 3명 피검 되고 현재 48명이 인민군(人民軍)에 편입되고 있음
(5) 국경(國警)의 토벌 작전과 이로 인한 군(軍)의 피해
㊀ 국경(國警)의 토벌 작전
5․10 단선(單選) 직전 미군정과 통위부(統衛部)는 김익렬(金益烈) 제9연대장과 오일균 (吳一均) 제5연대장을 육지부로 보낸 후 악질 반동 장교 박진경(朴珍景) 중령을 11연대 장으로 임명, 병력을 2연대 500명, 3연대 300명, 4연대 200명, 9연대 800명, 5연대 1,500명, 6연대 500명 계(計) 3,800명을 증가, 이를 15개 중대로 편성하여 포위 토벌 작전을 개시
제1차 공격 - 5월 27, 8일 2일간 산록(山麓) 습격
제2차 공격 -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의 4일간 제주도를 4개 지대(地帶)로 나누어
제1지대(地帶)는 한림면(翰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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面) 금릉리(金陵里)로부터 출발 구좌면(舊左面) 종달리(終達里)에 도착,
제2지대(地帶)는 한림면(翰林面) 음부동(音富洞)으로부터 출발 성산포에 도착,
제3지대(地帶)는 한림면((翰林面) 금악(今岳)을 출발 성산면(城山面) 온평리(溫平里)에 도착,
제4지대(地帶)는 대정(大靜)으로부터 온평리(溫平里)에 도착
제3차 공격 - 6월 3일부터 각 지구별(地區別)로 각 부락 주둔
제4차 공격 - 6월 13일부터 동 17일까지 5일간 한라산 백록담을 중심으로 포위 토벌 공격
㊁ 우리의 피해
(작성자 주 = 원문에도 번호가 들쭉날쭉인데 이는 발생 일자 순으로 부여한 듯하다)
⑫ 6월 29일 국경(國警)에게 서귀포(西歸浦) 주둔 부대 아지트를 포위 습격당했으나 군의 피해는 없음
① 5월 17일 광평리(廣坪里)에서 대원 1명 중상 당하고 포로로 해서 그 후 경찰에 넘기기 때문에 학살당했음(연락원)
⑥ 5월 말 경 대정(大靜) 아지트 부근에서 대원(연락원) 1명 학살
④ 5월 27일 대정(大靜) 주둔군 아지트 피해, M1총 1정(挺), 99식총 1정(挺), 군도 (軍刀) 2본(本), 고무신 20족, 전화기 1개, 쌀 2입(叺), 천막 2개, 의류 20종을 압수 당함
⑮ 7월 4일 대정(大靜) 아지트 부근에서 해경(海警)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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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병 1명 피검. 국경(國警) 탈출병 1명 피검
⑧ 6월 13일 제주읍(濟州邑) 아지트 피습. 군도軍刀) 5본(本) 철갑(鐵甲), 창(槍) 다수 압수당하고 그 후 국경(國警)은 계속 아지트에 주둔하여 탐사한 결과, M1 탄환 850발(發), 99식총 4정(挺)(사용 불가능), 지뢰 5개, 신호통(信號筒) 2개, 척탄통 (擲彈筒) 탄환 18발(發)을 압수당함.
⑦ 6월 7일 도사령(島司令) 정보부원 1명 제1지대 경리책 1명 국경(國警) 탈출병 1명 계(計) 3명이 오등리(梧登里)에서 피검, 이 중 정보부원은 경찰에 넘어갔다가 후일 석방됨.
⑨ 6월 14일 도사(島司) 레포 2명이 월평리(月坪里) 위에서 피검되었다가 후일 석방
⑭ 7월 초순 제1지대 제1부대 연락원이 월평리(月坪里) 위에서 피검되었다가 후일 석방
③ 5월 24일 애월(涯月) 군(軍) 레포 2명이 두모(頭毛)에서 피검되었다가 후일 석방
⑩ 6월 17일 애월(涯月) 아지트 피습 피해 무
② 5월 21일 아부대원 2명이 국경(國警) 탈출병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 남원리 (南元里)에 복병(伏兵) 중 경관차가 질주하여 오는 것을 국경차(國警車)로 오인하고 손을 들고 차에 접근하여 본 즉 경관 차였고 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음으로 할 수 없이 개에게 달려들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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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총을 빼었으나 결국 다른 개의 총에 학살당했음
⑬ 7월 초일 국경(國警)에게 추격당하여 아부대원 5명이 신촌리(新村里)에 피해 있든 바 개에게 습격당하여 4명 피검(그 중 2명 부상, 이 중 1명은 국경 (國警) 탈출병). M1총 1정(挺), 동 탄환 8발(發), 의류품 약간을 개에게 압수당함
⑪ 6월 21일 대흘리(大屹里) 아지트를 국경(國警)에 포위 습격당하여 전원이 무사히 피하기는 했으나 비장했든 카-빙 총 1정(挺), M1 탄환 35발(發), 카-빙 탄환 15발發)을 국경(國警)에게 압수당함.
⑤ 5월 27일 선흘리(善屹里)에서 국경(國警)에게 포위당하여 지대(支隊) 간부 2명을 포로 당하다(그 중 1명은 후일 석방되고 1명은 경찰에게 인계 당하다)
⑯ 6월 16일 월평리(月坪里) 위에서 지대원(支隊員) 2명이 피검되었다가 후일 석방 되다.
⑰ 6월 18일 도사령부(島司令部) 간부 1명 조천면(朝天面) 선흘리(善屹里)에서 피검되었 다가 후일 석방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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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낱말 풀이
◇ 반동(反動)
그들(남로당)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 UN조위(朝委) UN조선위원단의 약칭
즉 국제연합 한국 임시 위원단을 말함.
1947년 11월 14일 유엔 총회에서는 미국이 제안한 한국 임시 위원단 설치안이 가결되고 그 위원국으로 호주, 캐나다, 중국, 엘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이 지정되었는데 이 위원단은 남북한을 여행 관찰하면서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인구 비례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수립하며 미소 점령군도 가능하면 90일 내에 철군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1월 8일 서울에서 활동을 개시한 한국 임시위원단은 북한 활동을 위하여 입북을 요청하였으나 소련군이 거부하였으므로 유엔총회 임시 위원회에 이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결과 1948년 2월 19일 다시 이 문제를 검토하게 되었는데 미국은 남한에서 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므로 캐나다, 호주 등 반대가 있었으나 같은 해 2월 26일 미국안이 31 대 2, 기권 11로 가결되어 한국 임시위원단은 같은 해 3월 12일 재차 내한하여 그 해 5월 10일 안에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그 감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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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주도 2개 선거구를 제외한 전국에서 198명의 제헌의원을 선출 헌법 제정과 함께 대통령을 간접 선거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 자위대(自衛隊)
남로당 리(里) 세포원 중 열성 분자로 조직된 기초 전투요원
◇ 올구
공산당 용어로서 조직과 편성자를 뜻하는 말인데 계급 의식이 박약한, 미조직 대중 가운데 잠입하여 관헌과 자본가의 눈을 속이며 동지를 만들고 노동조합과 무산정당 기타 결사를 만드는 운동에 종사하는 자.
※ 여기서는 남로당 중앙당 내지 전라남도 당부에서 파견되어 온 조직 지도자를 지칭함.
◇ 세포
좌익단체 특히 공산당이 비밀운동에 이용하는 조직의 기초 단위로서 지역적 공장적 또는 대중 단체 내에 부식하는 것을 말함. 각 세포는 5 - 10명 정도의 소단체이고 세포회의와 세포대표가 있는데 이 세포대표로서 지방위원회가 조직되고 이것이 중앙기관의 통제를 받는다.
◇ 국경(國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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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의 약칭
◇ 해경(海警)
해안경비대(海岸警備隊)의 약칭
◇ 서청
서북청년회(西北靑年會)의 약칭.
해방 후 공산당을 반대하여 월남한 38 이북 출신 청년으로서 서북지방 출신을 주축으로 조직된 청년단체
◇ 대청(大靑)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의 약칭.
해방 후 우익 청년단체로 조직되었던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과 광복청년회 등이 통합되어 대동청년단이 되었다.
◇ 향보단(鄕保團)
미군정청에 의하여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 대한 남로당의 조직적인 반대투쟁에 대비하여 경찰지서 단위의 각지역에 55세 이하 청장년으로 조직된 경찰 보조 단체인데 5․10 선거 직후인 5월 22일자로 해산되었다. 그 후 민보단(民保團)이 조직되었음.
◇ 개
그들이 경찰관을 비하해서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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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경비대 토벌작전이 본격화되자 복장 색에 따라 경찰관을 검은 개, 국방경비대원을 노랑 개로 구분 지칭하기도 하였다.
◇ 프로파카-드
선전, 전도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사전에 알려졌거나 누설된 경우를 뜻한다.
◇ 아지트
과격한 노동쟁의 또는 공산당 등이 비합법운동을 지도하고 선동하는 본부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도본부, 선동본부, 은가(隱家) 등을 의미함.
또 관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전전 이동하므로 이동본부라고도 한다.
※ 여기서는 남로당 제주도당부 또는 유격대가 이동하며 숨어사는 곳을 말한다.
◇ 프락치
공산당 용어로서 각종 단체에 들어가 그 단체를 공산주의화하는 기관 또는 개인.
※ 여기서는 남로당 제주도당부에서 국방경비대 또는 관공서에 잠입시킨 자를 말함.
◇ 남로당(南勞黨)
남조선 노동당의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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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1월 13일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과 남조선신민당(南朝鮮新民黨) 및 인민당 (人民黨) 등 3당이 합당하여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을 결성하였다.
이에 앞서 북에서는 같은 해 8월 30일 북조선공산당(北朝鮮共産黨)과 조선신민당 (朝鮮新民黨)을 통합하여 북조선노동당(北朝鮮勞動黨)을 결성하였는데 약칭 북로당 (北勞黨)이라 하였다. 모두 소련 점령군 작용에 의한 것이었다.
◇ 스파이
간첩을 말한다. 적의 영역 안에 들어가 비밀히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자를 말함.
※ 여기서는 그들의 정보를 캐기 위하여 잠입한 것으로 지적된 사람을 지칭함.
◇ 레포
정보통신원, 레포-타의 준말.
사회 운동 단체에서 각지의 지부 또는 반(班) 기타 미조직 지역의 상황을 알기 위하여 정보원을 두는데 여기서는 연락원을 말하는 것임.
◇ 보이코트
불매동맹 또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에 대하여 보복의 수단으로 절교, 배척하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5․10선거 투표를 배척, 방해함을 말함.
◇ 숙청(肅淸)
불순분자를 제거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그들의 노선에 반대하는 자를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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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주모자 및 국경 세포책 인적사항
◇ 남로당 제주도당부 투쟁위원회(南勞黨 濟州島黨部 鬪爭委員會)
。 위원장(委員長)
안세훈(安世勳 = 일명 안요겸(安要謙)), 조몽구(趙夢九), 김유환(金유煥= 작성자 주 = 유→流 밑에 土 자), 강규찬(姜圭燦), 김용관(金容寬)의 순
。 군사부장(軍事部長) 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軍事委員會 委員長)
군책(軍責) 유격대 총사령관(遊擊隊 總司令官)
김달삼(金達三), 김성규(金成奎=임시대리), 이덕구(李德九)의 순
。 조직부장(組織部長)
이종우(李鍾雨), 고칠종(高七鍾), 김민생(金民生), 김양근(金良根)의 순
。 선전부장(宣傳部長)
김윤환(金潤煥), 김석환(金錫煥)의 순
。 보급부장(補給部長) 또는 병참부장(兵站部長)
김귀환(金貴煥)
。 총무부장(總務部長)
이좌구(李佐九), 김두봉(金斗奉)의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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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부장(情報部長)
김태진(金泰珍)
。 청년부장(靑年部長)
강대석(姜大錫)
。 여성부장(女性部長)
고진희(高珍姬)
。 농민부장(農民部長)
김완배(金完培)
。 회계부장(會計部長)
현유복(玄有福)
※ 이상에 열거한 주모자 중 안세훈(安世勳), 강규찬(姜圭燦), 김달삼(金達三), 고진희(高珍姬) 등은 1948년 8월 25일 해주 인민대표자대회에서 소위 조선최고인 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김용관(金容寬)은 1949년 4월 20일 경찰 토벌대에 의 하여 사살되었으며 조몽구(趙夢九)는 후일 체포되어 실형을 살고 출옥 향리 표선면 성읍리에서 거주하다가 사망하였다. 단, 2명의 군사부장을 제외한 김유환(金유煥) 등 14명의 행적은 미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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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쪽
◇ 특히 4․3 주모자 중 역대 군사부장(軍事部長) 또는 군사위원회 위원장(軍事委員會 委員長), 군책(軍責), 유격대 총사령관(遊擊隊 總司令官)
。 김달삼(金達三)
본명 - 이승진(李承晉)
출신 - 남제주군 대정읍 하모리
연령 - 4․3당시 25 - 26세 정도
학력 - 1. 일본 경도(京都) 성봉중학교(聖奉中學校) 졸업
2.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 전문부(專門部) 중퇴
경력 - 1. 대구 10․1 폭동사건 가담
2. 대정중학교(大靜中學校) 교사
3. 남로당 제주도당부 군사부장 군사위원회 위원장, 군책 또는 유격대 사령관으로 4․3사건 주동
4. 1948년 8월 2일 목포 경유 월북 그 해 8월 25일 해주 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제주 유격대 투쟁 상황을 보고하여 절찬을 받았고 월북한 주모자 일행 및 장인 강문석(姜文錫)과 함께 소위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당선됨과 동시 국기훈장(國旗勳章) 2급으로 서훈됨.
5. 한편 월북 후 1949년 8월에는 강동정치학원(江東政治學院) 졸업생 300명을 영솔 유격대(遊擊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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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쪽
제3병단장(第三兵團長)으로서 부사령관 남도부(南道富 = 본명 하준수(河準洙)) 와 함께 동해안 태백산(太白山)으로 침투 준동하다가 국군 토벌대 공세에 밀려 잠시 북으로 퇴각 다시 766부대를 조직 동해안으로 침투 부산으로 진출 중 1950년 3월 국군 토벌대에 의하여 사살됨.(시체는 유격대 제3병단 작전참모 임창원=林昌源이 확인함.)
※ 참고 사항
1. 소위 조선인민유격대는 지구별로 3개 병단으로 편성되었는데 오대산 (五臺山)지구를 제1병단, 지리산(智異山)지구를 제2병단, 태백산(太白山) 지구를 제3병단으로 불렸다.
2. 제1병단장은 이호제(李昊濟)로 강동정치학원 졸업생 360명으로 편성되었고
3. 제2병단장은 이현상(李鉉相)으로서 지리산(智異山) 백운산(白雲山) 조계산 (曺溪山) 덕유산(德裕山) 일대에서 활동하던 게릴라들로서 6연대서부터 9연대까지 4개 연대로 구성되었으며
4. 제3병단장은 기술한 바대로 김달삼(金達三)이었다.
。 김성규(金成奎)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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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쪽
。 이덕구(李德九)
출신 -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
학력 - 1. 일본 대판 일신상업학교(日新商業學校) 졸업
2. 입명관대학(立命館大學)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 입대
경력 - 1. 해방 후 일본 육군 소위로 귀국 조천중학교(朝天中學校) 교사
2. 김달삼(金達三) 김성규(金成奎)에 이어서 남로당 제주도당부 군사부장 군사위원회 위원장, 군책, 유격대 총사령관으로 준동하다가 1949년 6월 7일 경찰 토벌대에 의하여 사살됨.
◇ 국경 내 남로당 세포책
。 문상길(文常吉)
출신 - 충남
학력 - 군사학교 졸업
경력 - 1.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 하사관으로 제주에서 복무
2. 국경(國警) 제9연대 소위로 복무하면서 남로당 중앙 직속 세포책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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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쪽
3. 4․3폭동 때에는 제주도인민유격대에 정보 제공, 무기탄약 공급, 탈영병 조장 등 적극적인 방조 활동을 하였고
4. 특히 국경(國警) 제11연대장 박진경(朴珍景) 중령 암살사건 주모자로 군법 회의에 회부되어 총살형에 처하여짐.
。 오일균(吳一均) 소령
경력 - 1. 국경(國警) 제5연대 대대장(大隊長)
2. 4․3사건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여 정보 제공과 무기 탄약의 공급 및 탈영병 조장 등 많은 영향을 끼쳤다.
3. 최남근(崔湳根) 김종석(金鍾碩) 등과 함께 상급 장교로서 남로당에 비밀 가입하여 부대내 세포 확대를 위하여 활동하다가 여순반란사건(麗順反亂事件)을 계기로 숙군이 단행될 때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 고승옥(高升玉)
출신 - 남제주군 대정읍 출신
경력 - 1. 국경(國警) 제9연대 제1차 모병 때 남로당 제주도당부 프락치로 입대
2. 4․3 당일에는 영창(營倉) 수감(收監)으로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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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쪽
폭동에 미참
3. 1948년 5월 말일 상사(上士) 계급으로 일행 7명과 함께 칼빈소총 1정과 99식소총 7정을 휴대 탈영 입산하여 유격대 가담, 이후는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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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쪽부터 146쪽까지 게재된 영인본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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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쪽
편집 후기
◇ 이 책자가 엮어지기까지는 오랜 상흔을 다시 건드리는 것 같아 무척 조심스럽기도 하였으나 막상 편집을 끝내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결 홀가분하다.
◇ 그 동안 4․3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하여 각계의 노력이 계속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아직 진실 발견에는 이르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겨 왔었다.
◇ 그래서 나는 오랜 생각과 망설임 끝에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4․3 수습 과정에서 얻어진 문건을 중심으로 더 꾸미거나 보탬이 없이 내용 그대로의 실상을 이 한 권의 책자에 담아 내어놓게 되었다.
◇ 여기에 인용된 문건은 비록 사건 초기의 문건이긴하나 그 주동자들에 의하여 투쟁 실적을 자세히 기록한 보고 내용인 만큼 그 신빙성이 적확함은 물론 사건 성격과 처절한 진행 과정 등 당시의 정황을 여실히 재조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되리라 확신한다.
◇ 따라서 이 한 권의 책자가 오래 묻혀졌던 4․3의 실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밝혀 주는 증거가 되고 또한 왜곡되어 오던 사건 인식을 바로 잡는데 유용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편집자 망외의 보람이 되겠다.
편 집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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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면
한라산은 알고 있다.
묻혀진 4․3의 진상
1995년 8월 10일 인쇄
1995년 8월 15일 발행
발행인 文 昌 松
제주시 용담2동 2679-4
인쇄사 대 림 인 쇄 사
제주시 삼도1동 804 - 14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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