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은 여러 역사서를 써 왔는데 그 중 백미는 ‘칼의 노래’일 것이다.
선조는 어찌 보면 불행한 왕일 수도 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도정치를 내세운 조광조를 앞세워 왕권 강화를 하려 했으나 공신들에 의해 실패하고 조광조도 죽이고 만다. 그 뒤 인종, 명종을 거쳤으나 왕권도 확립되지 못했고 국방마저도 굳건하지 않았다.
1590년(선조 23년)에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의 저의를 살피려고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허성을 서장관으로 임명하여 일본에 파견했다.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답서에는 정명가도(征明假道:길을 빌려 명을 정복한다)의 문자가 있어 그 침략의 의도가 분명하였으나 사신의 보고는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 서인을 대표하였던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동인을 대표하였던 김성일은 이에 반대하여 '그러한 정상이 없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 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조신 간에 의견이 분분하였고 동인인 허성마저 황윤길의 명견를 옹호하였으나 당시 정권을 장악한 세력으로서 백성이 동요하면 자신이 향유하던 권력에 초래될 변화를 두려워했던 동인이 주도권을 주도하던 조선 조정은 김성일의 의견을 좇았다.
유약한 선조 역시 일본의 침략이 없을 거라는 김성일의 의견을 따랐다. 이에 앞서 1582년(선조 15년) 12월 병조 판서에 임명된 율곡은 십만 양병설을 주창하였지만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에서 국방은 관심 밖이었다.
‘칼의 노래’에서 첫 구절이 가슴을 저민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섬은 조선의 고을이고 꽃은 백성이다. 조정은 꽃은 가꾸고 돌봐야함에도 착취의 대상이었고 적이 쳐들어오면 자기들 대신 적을 막아주는 방패였을 뿐이다.
명은 일본의 최종 목적이 자국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네 땅에서 명과 싸우는 것 보다는 조선에서 조선군병과 싸우는 것이 유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원병을 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조선을 도우러 왔다는 핑계로 조선을 도우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는 일본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 하여 명군의 노략질이 일본군보다 심했다. 명은 조선으로 넘어 온 처음부터 일본과 뒷거래를 시작한다. 명은 일본군이 명으로 쳐들어오는 것만 막으면 되었기에 조선의 경상도 일부와 호남의 일부를 떼어줄 테니 물러가라고 했다. 이순신도 이 사실을 알았다.
이순신은 모든 싸움에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하여 이길 수 있는 전쟁만 한다.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이순신이 있는 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유언으로 철군하라고 한다. 이에 일본수군은 철수를 시작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저들을 한 놈이라도 살려서 보내면 또다시 쳐들어 올 것을 예견하고 노량진 해전에서 철군하는 일본군을 쳐부수다가 죽는다.
자신이 전쟁을 끝내고 살아도 결국 조정의 당쟁과 선조의 시기심에 희생양이 될 것을 안다. 결국 이 책에서 버려진 섬마다 핀 꽃은 칼로서만 지켜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장군은 살아서 정쟁 속에서 죽기 보다는 자연사 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을 하며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 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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