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의 진상
전 제주경찰서장, 현 제주도재향경우회장 김영중
□ 시작하며
제주4·3사건은 해방공간에서 새 나라를 건국함에 있어, 미·소, 남·북, 좌·우익의 생사를 건 이념과 체제 선택의 극한적 대결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소련과 북한의 노선을 추구한 남로당의 공산화 폭동·반란은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 당연히 진압해야 할 당위성과 불가피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진압과정에서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도민이 많이 희생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우 잘못된 일이며,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보상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고 해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건국 이후에도 대한민국에‘선전포고’하면서 항적한 남로당의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면책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및 정통성 확립과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해서, 그리고 도민 모두의 진정하고도 영원한 화해를 위해서 그렇다.
□ 제주4·3사건의 정의
1948년 4월 3일 남로당중앙당과 남로당전남도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제주島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남한을 북한 김일성 정권 통치영역에 포함시키기 위하여 일으킨 폭동·반란으로서, 1957년 4월 2일 사건을 완전히 종결시킬 때까지 만9년 간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 제주4·3사건 진행과정
1948년 4월 3일 제주4·3사건 발발 | → | 4개월 12일 간 무장폭력 건국 방해 | → |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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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7개월 17일 간 대한민국에 항적 | → | 1957년 4월 2일 마지막 공비 오원권 생포 제주4·3사건 종결(만 9년) |
□ 4·3사건이 폭동·반란인 이유
1. 1948년 4월 3일 남로당제주島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고 무장 폭동· 반란을 일으켜 1,756명을 살해했다.
2. 남로당제주島당은 1948년 5·10제헌의원 선거 때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유일하게 북제주 2개 선거구 선거를 파탄 내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였다.
3. 1948년 5·10제헌의원 선거 때 선거인 등록율 91.7%, 투표율 95.5%로 국민 절대 다수의 참여와 지지로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남로당제주島당은 8년 7개월 17일 간 항적하였다.
4. 4·3주동자 인민해방군 초대 사령관 김달삼(본명 이승진)은 박헌영 지령에 따라 살인 방화 테러로 지하선거를 실시하여 52,350명 투표지를 가지고 월북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5. 김달삼은 1949년 8월 북한 강동정치학원 출신자 300명으로 구성된 제3병단을 이끌고 태백산지구에 남파되어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하였다. 또한 이덕구는 제2대 인민해방군 사령관으로서, 1948년 10·19여순반란사건 직후인 10월 24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항적했다.
북한은 김달삼과 이덕구에게 국기훈장 2급과 3급을 줬고, 평양 신미동 애국열사묘역에 묘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다.
6. 4·3주동자 김달삼·안세훈·강규찬·고진희·이정숙·문등용은 월북하여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어 북한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7. 6·25전쟁 직후 국운이 백척간두에 처했을 때 남로당제주島당은 각 읍·면 별로 인민군지원환영회를 조직하여 빨치산과 합세, 공세를 강화하고, 북한인민군이 상륙하면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했다.
8. 4·3주동자 안세훈·강규찬·고진희·조몽구 등은 6·25 때 북한인민군과 함께 남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하였다.
9. 제주4·3발발의 주체는 남로당이고 남로당은 조선공산당의 후계체이며 남로당강령은 마르크스 · 레닌 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체제 국가 건설을 목표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건국 이후에도 계속 항적하였다.
10. 남로당제주도당 인민유격대원들은 인공기를 곳곳에 게양하였고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며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하였다.
11.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의 ‘문답 아시아’ 프로 그램에 출연하여‘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전 세계에 천명하였다.
12. 남로당제주島당 대정면당 위원장 이운방은 4·3‘주동자는 빨갱이로 봐야지,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니까. 그들의 우선 목적은 통일조국 건설 이고’라는 증언을 하였다.
13. 제주도민전 문화부장으로 1947년 3·1기념투쟁을 진두지휘한 김봉현이 일본으로 도피해서 김민주와 함께 쓴 책에서도 3회나 4·3은 조선민주 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위한 투쟁이라고 명기했다.
□ 4·3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이전 해결 과제
최근 여러 곳에서 4·3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헌법재판소 결정 기준에 따라 희생자에서 제외되어야 할 4·3주동자인 남로당島당간부 및 핵심요원, 습격 살인 방화에 적극 참여자, 북한인민군, 남파간첩 등의 위패는 반드시 철거되어야 한다. 이는 무고한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배·보상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시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