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70돌을 앞두고 제주도민이 생각해야 할 문제
=억울하고 외롭게 죽어간 이들을 위령(慰靈)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현 길 언 (소설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살아남은 자는 마땅히 죽은 자의 고통과 한을 이해하고 그 영혼을 진정으로 위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염치(廉恥) 없는 사람이 된다.
오늘 날 한국 사회에는 죽은 자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처럼 치사한 일은 없다. 죽은 자를 추모하거나 위령한다는 것은 그 죽은 자의 처지로 돌아가 그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고 죽은 자와 함께 하는 것이다. 국립묘지에서 나라를 지키려다가 돌아가신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일은 그 전쟁터의 상황을 바로 알고, 죽지 않고는 나라를 지킬 수 없는 그 절박한 처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애쓰려는 마음을 순간이나마 갖는 일이다. 광주에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에 묻힌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이들을 추모하는 길은 그들이 군부독제의 막강한 세력과 맞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상황을 이해하고, 약하면서도 옳고 강한 시민의 힘을 회복하여 이 나라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것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거나 합창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다. 호남의 표를 갖고 대통령 만들기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한 일들은 오히려 5.18의 숭고한 영령들의 정신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쓰는 일이어서, 오히려 영령들의 넋을 외롭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일은 그 분이 그 부엉이 바위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정직하고 순수한 심정으로 헤아리면서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에 품었던 그 심정을 살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습니다”는 식으로 촛불혁명으로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노 대통령은 ‘죽음의 정치’를 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일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 세력화해서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는 일과는 전혀 다르다.
세월호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꽃다운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일은, 그들이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며 그 고통과 두려움과 안타까움과 세상에 대한 원망을 이해하고 다시는 그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상 운항 규정을 철저히 점검 보완하고, 해상 운항 질서를 확립하며, 해상여객 운항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국민의 안전을 위한 모든 조치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팽목항으로 달려가 ‘고맙고 미안하다’는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다든지, 많은 예산을 들이면서 조사 활동을 하였는데, 아직도 다 하지 못했고, 유독 청와대 7시간에 집착하는 것, 특조위 위원장을 누구로 하느냐는 것이 정쟁화되었고, 대로변에 천막을 쳐 농성하고, 세월호 해상 사고와는 관계가 없는 듯한 일로 해야 할을 뒤로 미루는 것은 정말 살아있는 자들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일도 아니다.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서 70년 세월이 흘렀다. 70년, 2대를 지나고 3대째 접어들고 있다. 그 때 제 조부님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제 조모님의 폭도들에 의해 무참히 창을 맞아 피를 많이 흘린 때문에 돌아가셨고, 스믈 살도 채 안된 두 분 삼촌은 폭도로 몰려 한분은 생사를 모르고 한 분은 제 할아버지 앞에서 유가족들의 분노에 의해 죽어갔던 그 때가, 그 분들이 그 사태를 만나지 않았어도 이제는 모두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없는 연륜이 되었을 것이고, 그 때에 9살이었던 나도 이제 80에 접어들고 있으니,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될 사건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 사건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아니 4.3 사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때문인지 의기양양하고 위세를 부리는 이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우리는 4.3 사건의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건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좌도 우도 없었다. 그저 살아났다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원수지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끼리도 어울려 지냈다. 왜냐면 그 사건은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겪어오는 동안에 제주 사람들은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그 어떤 철학적 담론보다도 값진 삶의 현장을 체험했다. 그래서 사건을 겪고 나자 제주사람들은 상당히 현명해졌다. 이해심도 넓고 깊어졌다. 해야 할 말도 참았다. 왜냐면 그 험한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감하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왜 이리 경망스러운가? 죽은 자를 위로한다면 이렇게 시끄럽고 경망스러워서는 안 된다.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일은, 남로당의 꼬임에 넘어가서 무의미한 싸움터에 나가야 했던 그들의 마음, 좌도 우도 아닌 힘없는 백성으로 난리 통에 쫓겨 여기저기로 떠돌다가 굶주리고, 총 맞고, 병 얻어, 산야에서 죽어가던 그 약한 백성의 한스러움, 죄도 없는데, 폭도라는 누명을 써서, 분노의 제물이 되어서 죽어간 2만여 명 중에, 진성 남로당원들을 제외한 1만9천 여 명의 피해자들의 한을 제대로 알아야, 살아남은 자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여 “당신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나라의 혼란을 틈타서 분란을 일으킨 자들과 정치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죄 없이 죽어갔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다시는 이 땅에 이념의 싸움으로 순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각오가, 진정으로 그들의 외롭고 한스러운 넋을 위로하는 일이다.
변변치 못한 조상의 자식이 후에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거나, 세상 형편이 바뀌어 권력이라도 잡게 되면, 못난 자일수록 잘난 채하면서, 조상의 족보를 바꾸는 일들을 한다. 그렇다고 변변치 못한 처지로 세상에서 한스럽게 살았던 그 조상이 양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자는 여전히 변변치 못한 신분으로 살다가 죽었을 뿐이다. 그 족보는 살아있는 자손이 자기를 위해 만든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 족보를 바꾼 자손들은 조상의 고단하고 아픈 삶을 일부러 외면하려 하고, 잘 살게 된 자신의 처지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오만스럽게 살아갈 것이다. 그 족보를 바꾼 일이 조상을 위한 일이 아니라. 순전히 지금 자신을 위한 일이다. 족보를 바꾸는 일은 조상의 고단한 삶을 외면하고 살아있는 자기를 위하면서, 조상을 외면한 불효막심한 처사이다. 사람이 제대로 되었다면, 족보를 만들기 전에 조상의 고단한 삶과 그 아픔을 가슴에 안고, 비록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괄시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형편이라면, 지금 주변에서 조상과 같이 어려운 사람, 소외된 사람을 대하면, 조상을 생각해서 그들은 진정한 이웃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그것이 조상을 위하는 일이다. 족보를 바꾸어 양반행세를 하면서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하대하고 멸시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는 정말 “못되먹은 사람”이다.
지금 제주4.3의 비극을 말하는 제주 사람들 중에는 조상의 아프고 고달프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한다면서, 그들에게 거창한 이름으로 새로운 족보를 만들어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대한 ‘통일일꾼’으로, 불의에 항거한 ‘정의로운 투사’로, 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평화운동가’로 미화하면서 그 자손으로서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4.3사건으로 세상을 등진 불쌍한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요란스럽게 벌이면서 세력화하고 있다. 도지사도 국회의원도 도의회의원도 교육감도 제주 사회의 권력세력은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손벽을 치고, 우리에게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꿈에도 다시 이런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1948년 4월3일을 기념하여 거창한 행사를 전국적으로 벌리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염치없고, 세상 분수를 모르는 처사인가?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는 정치 세력에 의해 ‘제주 4.3을 추겨 세우는 북’을 치니 얼씨구 춤을 추는 격이다.
이래서는 죄 없이 죽어간 영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한번 따져봐야 한다.
2. ‘4.3 희생자’는 대부분 ‘피해자’들이다.
“우리는 희생자가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제주4.3사건 때 죽은 원혼들의 아우성).
제주 4.3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4.3사건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간과해 버렸다. 이것은 제주 사람들의 무식이나 아니면 전후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눈앞에 이해관계에 치우친 것을 알고 있는 중앙 정치세력의 숨겨진 의도라고 생각한다.
‘희생자’의 개념은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데 필요한 제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희생되었다’는 개념은 ‘고귀한 가치와 이념을 위해서 제물이 된 경우’를 의미한다. 즉 그 가치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애를 썼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경우이다. 좀 더 이 4.3사건과 관련하여 말한다면, ‘4.3희생자’는 “4.3사건 때에 제주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하여 애쓰며 노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면 “4.3사건을 일으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거나. 본의는 아니었지만 남로당의 회유에 넘어가 당원이 되고, 무장대원이 되고, 특무대원이 되어서 활동하다가 죽은 사람”만이 ‘4.3희생자’에 해당한다. 아마 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2만 여 명 중에서 ‘희생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1천 명 정도가 될 것이고, 그 나머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모두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개념을 분명히 구분하지 않는다면, 먼 훗날 4.3사건 때 죽은 2만 여명이 모두 공산주의사회를 신봉하는 남로당원으로 한반도에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래도 괜찮는지 제주도민에게 물어야 한다. 나의 두 분의 삼촌, 그리고 외삼촌, 이모부도 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분들도 결코 ‘희생자’가 아니고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4.3특별법의 개정 논의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처음에 국회에서 제주도 출신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모호한 개념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소위 야당이었던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이 되자 그 노련한 정략가의 역사의식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이런 식으로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제 주장에 대해서 혹자는 ‘언어의 유희’라고 비판할 것이다.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법률 용어는 가장 정확한 언어이어야 한다. 희생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오히려 ‘희생자’로 한 것이 도민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면서, 중앙 정치세력의 은밀한 의도에 희말려 들어가는 것이다.
김 대중 대통령은 제주4.3특별법이 통과되자 이 법의 본질을 ‘인권법’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를 만드는 기획단에게 ‘보고서는 이념문제를 떠나서 인권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 대통령 모두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어떤 세력이 무슨 의도로 이 사건을 일으켰느냐는 문제를 떠나서 인권을 강조한 것은 다 그 의도가 숨어있다. 이 사선이 남로당이 38선 이남에도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유엔 감시 하에서 실시하는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해서 일으킨 반란 이라는 점을 묻어두고, 그 진압 과정에서 야기된 토벌대의 반 인권적 문제에 더 비중을 두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건의 본질인 “남로당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서 일으킨 반란”이라는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도가 은연중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진압한 미 군정과 겨우 국가 체제를 만들어 독립국가를 이루어낸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는데 더 역점을 두도록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더 한발 나가서 보고서를 만드는 기획위원들에게 제주 4.3의 문제는 고려대 강만길 교수와 같은 (소위) 진보적인 학자의 역사의식으로 본받으라고 직접 주문했다. 더구나 제주 4.3평화공원이라는 명칭도 강만길 교수가 “4.3사건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통일운동이라는 점에서 ‘평화공원’을 고집하면서 명칭이 정해져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역사 정치의식을 따져봐야 한다. 그 분들 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정부를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라고 말해 왔다. 그렇다면 이 4.3사건이야 말로 그 분들의 정치의식과 딱 드러맞는 사건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제주4.3 사건으로 죽은 제주도민의 넋을 위로하는 공간이 특정 정파의 정치이념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제주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넒은 땅에 화려한 비석으로 장식된 내 가족 내 친지의 이름을 보면서 흐뭇해 하고 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그 시국에 죽은 사람들, 아니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 날, 남로당에 의하여 치안을 담당한 12개의 지서를 습격하고, 선거 관리 일을 맡은 우리의 이웃과 친척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던 그 비극의 날을 추념한다는 것부터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다면, 제주의 산야에서 억울하게 죽은 제주 사람들이 일어나 죽은 자를 추념한다는 명분으로 잔치를 벌이는 자들을 향해 “너희가 미쳤구나! 4.3사건을 알기나 하냐? 내가 어떻게 죽은 줄 아느냐? 내 원통함과 슬픔을 팔아서 그렇게 큰 소리치면서 살아도 되느냐”고 호통을 칠 것이다.
어디 이름을 ‘평화공원’이라고, 구실을 붙이면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화해 상생’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화해 상생’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특별법을 개정하면서,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악법이 어데 있는가? 그 진상보고서가 어떻게 통과되었는가. 그 과정을 안다면, 이런 어린아이 장난과 같은 법안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보고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이 있으면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논쟁하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보고서를 보완하는 것이 옳고, 문제가 없다면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한 자를 설득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것을 보안법으로 규제할 때에 그것이 악법이라고 주장하던 그 사람들이 이러한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부터가, 이 나라에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도저히 제 정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현재 제주 4.3사건을 역사적인 진실성을 외면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행태의 한 부분을 정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제주43.사태 때 죽은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피해자’이다. 그러므로 ‘제주43평화공원’은 ‘제주4.3피해자의 위령공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고, 그 비석들은 모두 위령탑이어야 한다. 정말 4.3사건의 비극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우리는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처지를 제대로 알고, 그 영혼에 대해서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진정한 위령이다. 4월 3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날이라고, 우리 조상의 삶을 온통 빼앗아간 원통한 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누가 빼앗는가? 공산주의 이념이고 중안정치 세력들이다. 변방 주변지역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뼈저린 아픔을 당하게 되었다는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4.3추념일 날 대통령이 올 것을 기대하고, 혹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된다고 좋아 할 것이 아니다. 제주4.3이 권력화되어 함부로 남용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원통하게 죽은 자들에 대한 살아있는 자로서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만 성토함으로 끝나는 것으로 한을 풀려고 해서도 안된다. 미군정과 이승만을 성토한다면,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스타린과 김일성과 박헌영도 끼어서 성토해야 명분을 만들 수 있지 않는가. 그러한 정도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의도가 숨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제주사람들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왜 미국과 이승만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스타린과 김일성돠 박헌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니, 이상하지 않는가? 38선 이북에 소련의 꼭두각시 정부 김일성이 없었다면, 남로당의 지도자 박헌영이 없었다면, 이 두 세력을 비호하는 소비에트 스타린이 없었다면, 제주 4.3사건이 일어났을까?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책임과 이승만의 책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스타린 김일성 박헌영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겉모양으로라도 제주4.3을 바로 인식하게 된다.
왜 제주사람들은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모두들 권력 앞에서, 추겨주는 북소리에 왜 그리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왜 4.3사건 때 죽은 사람들을 모두 희생자로 만드는가? 제주 사람들은 분단을 획책하는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운 민족주의자. 민족 통일을 염원하는 자. 부정과 불의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추겨 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3. 중앙 정치세력의 의도를 알고 춤을 추자.
“앞으로 우리가 20년을 집권해야만 적폐는 완전히 청산될 수 있다”. (20년 집권 기획론자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대한민국 건국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입장이다.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를 근간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사학자들의 역사 인식의 문제가 아니고, 고도한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개헌 논의에서, 집권당이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상당히 진보적인,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 국가에 다가가는 헌법을 만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헌법 제4조에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고, 현행 헌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공무원에 대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경제를 강조하는 내용이 더하여 졌다. 더구나 헌법 전문에는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 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명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2월 2일자 조선일보)
이 헌법이 만약 통과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기에 상당한 변화가 초래할 것이다. 그러면서, 여당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20년 집권 계획이 실현된다면, 앞으로 20년 후, 아니 10년 후의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미리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현재 국회 정당별 의석 수로는 개헌안이 국회 통과가 어려우니까, 지방 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려는 계획도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일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지만, 이러한 발상이 정치권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바는 청와대와 정부 각 기관에 80-90년대 운동권 인사들이 실세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그 주류가 학생운동 당시에 주사파 들이다.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므로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에 과거 주사파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주사파는 대한민국 국기를 부정하였던 이념집단이었으므로, 이제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나는 지금도 주사파이다.”라든가. “과거 민주화운동을 할 때에는 전략적으로 주사파에 매료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든가. 자신의 이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국가의 심장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정치도의라고 생각한다. 대통령도 이들에게 권유해야 한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들이 걱정하고 알고 싶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나는 주사파다’ ‘지금은 내가 주사파가 아니다’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주사파 이력을 묻는 의원에게 얼굴을 붉히며 불쾌하다고 했다. “내 젊음은 민주주의를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자부한다.”라고 답변했다.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고, 비서실장 개인의 생각이다. 이제 그는 공인이다. 대통령 다음으로 국가권력의 중심에서 일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은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그냥 덮어두고, ‘색깔론’ 운운하면서 피해간다면 문제가 된다. ‘색깔론’이 왜 나쁜가? 국가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국민에 대한 도리를 기피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사상도(思想圖)이다.
그들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이승만의 독제를 비난한다. 이승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그를 친일파로 매도한다. 이승만이 친일파라면 날아가는 까마귀도 웃을 것이다. 그는 일본을 가장 미워했다. 국제법상에 없는 ‘이승만 라인’을 태평양에 그어놓고 일본배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면 모두 잡아왔다. 지금 중국어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는 다르다. 그 당시 국력이 허약했는데도 그렇게 강경하게 대처했다. 우리는 산지항 동부두에 잡혀온 일본 어선들을 많이 보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승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처럼 일평생을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이 어데 있는가? 국민이 원하니까 군말없이 빈손으로 부인만 데리고 하와이로 떠났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힘을 두려워했던 정치세력은 그가 고국에서 죽는 것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타향에서 나라를 걱정하며 죽었고, 어느 기념관 하나 스스로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독제자라고 한다. 그것은 사사오입 삼선개현 때문이다. 그 개헌은 그가 대통령을 더 해먹기 위해서 했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에 의하며, 소위 사사오입 개헌이 되면서 비로소 대한민국헌법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헌법으로서 제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제헌국회에서 만든 헌법은 상당부분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았다는 것이다. 친일파라는 것은 당시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 경험자를 기능인으로 썼던 것이다. 초대 내각의 구성을 보면, 그는 다 방면의 인재를 입각시켰다. 사회주의자라고 자타가 인정했던 조봉암도 임각시켰다. 국가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각 분야의 인재를 고루 등용했던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지방자치제를 1950년대에 단행해서 면 단위까지 자치제를 도입했다.
이승만을 거부하는 것은 1948년 5.10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진 제헌국회에 의해 헌법이 제정되고, 국가 체제가 완비되어 그 해 8웗15일 자유민주주의 의회 정치와 시장 경제를 주축으로 하여 세워진 ‘대한민국’을 수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부는 분단을 획책했고, 미제국주의 조종에 의해서 수립되었고, 친일파 정부라는 구실을 붙여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라고 혹독하게 매도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정부는 수립되었다. 그것도 국민이 직접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의회에서 헌법을 만들고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뭐라고 트집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제주도에서는 남로당의 무장세력이 주축이 되어 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는 그것도 전도적으로 모든 도민이 참여하여(?) 봉기(?)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라고 매도하는 세력으로서는 제주 4.3사건은 상당한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통해서 이 사건의 정당성을 여러 가지 방법과 술수를 동원하여 인정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중앙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이념을 정당화하는데 제주43사건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죽은 2만여 명의 제주사람들을 ‘희생자’로 만들었다. 무엇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인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내면으로는 민족 분열을 획책하는 단선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사회주의 민족 통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희생했다’는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희생자’라는 사실을 동의할 것인가? 제주 4.3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제주도민 중에 여기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희생자’라는 다소 명예스러운 호칭에 좋아할 것이 아니다. 더구나 ‘희생자’라는 명예로운 훈장만 달아준 것이 아니라. 이 제주 4.3의 정신을 교육하고 선양해양 한다는 것까지 법률로 정해놓았다. 그리고 4.3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해서 4.3평화공원을 만들었다. 반란의 날에 그들을 추념하는 행사판을 매년 벌인다. 그들의 죽음은 안타깝고 한스럽지만, 그들은 고귀한(?) ‘희생자’아 아니고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행사는 위령(慰靈)제가 되어야 한다. 4.3에 대한 교육은 이념의 폭악성과 개인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내용으로 고육해야 한다. 뭣도 모른 학생들에게 역사를 왜곡시켜 증오와 반목을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4.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라는 문서
진상보고서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정치이념과 역사의식, 그리고 그들의 국정지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문서’가 되었을 뿐, 4.3의 역사적인 실체를 밝히는 역사서가 아니었다.
이미 국회에 제출했다는 4.3특별법 개정안에 의하면, 이 정부보고서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을 법률로 금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국민의 학문의 자유를 법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이것 역시 코메디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안을 제출하는 그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이다.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집권세력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 때문인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정치문서이지만, 정치문서로서도 너무나 허술하게 만들어진 조잡한 문서이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왜 그런 문제를 스스로 지니고 있는가? 그것은 역사적 진실을 해명하려는 의지는 없고, 반 역사적인 정치문서를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정치문서로서 이 보고서의 의미는 미리부터 설정하고, 그것을 억지로 짜맞추는 식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흠을 스스로 갖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의도하는 핵심 주제를 처음부터 마련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집필했다.
제주4.3사건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미군정의 억압과 경찰의 남로당에 대한 과잉 탄압,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에 대한 도민의 저항이다. 그런데도 미군정은 이 승만 추종세력을 동원하여 이 사태를 무자비하게 진압함으로 많은 주민이 희생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해서 미국과 이승만 정권은 책임을 져야 한다.
보고서는 애초부터 이러한 전제에서 작성하려고 했다.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1) 내용의 오류 (2) 자료의 편향성 (3) 반 역사적인 집필 태도 (4) 자료 조사의 미흡 (5) 보고서 채택의 비 민주성 등 4.3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한 문서로서 갖추어야 할 필수 사항을 외면하여 만들었다.
이러한 부실한 보고서에 대해서 논의를 금한다는 것은 이 보고서가 그만큼 부실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 대한 논의는 희생자(?)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오해이다. 이 보고서의 문제를 지적하고 논의를 확산시키려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인적 물적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해를 입은 제주도민이 결국에는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위하여 희생되었다‘는 ’불명예‘를 씻어주려는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을 당하여 제주도민의 명예가 무엇이가를 다시 생각하면서, 우리 선배와 조상의 아픔을 우리가 짊어지고 가지 않고 외부의 힘에 의해서 해소될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주도민은 ‘희생자’가 아니고 ‘피해자’이며, 살아있는 자들은 좀 더 겸손히 그 사태를 정직하게 생각하면서, 허울 좋은 거짓 ‘명예’에 빠지지 말고, 죽은 자의 영혼을 진정으로 위령해야 한다. 이것이 살아남은 자로서의 최소의 예의이고 인간으로서 염치를 유지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