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반란이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양민의 희생을 불러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사건과 관련 제주도에는 두 개의 유족회가 있다. 하나는 제주4.3사건의 진압과정에서 국가의 과잉진압의 잘못과 함께 또다른 가해자이자 대량희생의 원인제공을 한 남로당의 과오도 밝혀져야 한다는 ‘제주4.3정립유족회'이고, 하나는 남로당의 폭동, 반발,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이를 지적하면 거부감을 보이는 기존의 '제주4.3희생자유족회'이다.
그 양립된 입장의 한 가운데에 반란 주동자들이 희생자로 둔갑되어 봉안돼 있는 불량위패들이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 있는 위패들에 대한 옥석(玉石)을 구분해야 한다는 4.3정립유족회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간 국가추념일 지정에 앞서 주동자와 억울한 희생자를 분리시키는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세간의 목소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실제로 희생자 유족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폭도, 반란군들이 옆에 나란히 봉안되어 추모받고 있는 사실에 분개하고 납득할 수 없다면서 조속히 시정을 바라고 있다.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와중에 4.3은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무장반란의 중심에 서 있는 1대 폭도사령관 김달삼과 2대 사령관 이덕구에 이은 김의봉 3대 폭도사령관, 이원옥 북한인민군 사단장 등이 희생자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데 위령제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해 머리를 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자들이 버젓이 위패봉안실에 있는 한 국가차원의 배상, 보상요구 또한 설득력이 없다. 이런 자들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은 물론 대통령도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4.3사건의 전 기간 동안 일부 경찰과 군인 그리고 서청의 횡포와 인권유린은 분명히 존재했다. 이들은 북한에서 공산당으로부터 탄압 등 그 실상을 체험하고 월남한 사람들이었다. 반공주의자였던 이들에게 당시 도민 대다수가 자의와 타의에 의해 남로당에 호의적이라는 인식도 한몫했다.
어쨌튼 이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부각시켜 남로당의 공산통일 무장반란 행위를 은폐, 호도, 미화, 지지, 면책되는 본질 왜곡은 천부당 만부당이다.
군경의 과잉진압 행위 때문에 남로당의 4.3무장반란사건의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무고한 많은 희생을 결코 부정하거나 기리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출구가 필요하다.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바란다면 접근법에 있어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어야 한다. 4.3에 대한 주장이 대안도 없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계속된다면 민선 6기 도정에도 부담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다. 원희룡 지사는 틈만나면 4.3의 완전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대량희생의 원인제공을 한 남로당의 과오 역사를 지우고 미화시키려는 접근법을 방임한다면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기본적인 조건이 성립되려면 화해와 상생의 샘물이 흐르는 길로 인도하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해법이 절실하다. 원희룡 지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원희룡 지사는 60% 지지 속에 담겨진 도민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제주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그 야심찬 야망의 연장선에서 봐도 4,3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그 정치생명과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인 해법이 필요하면 정치력을 발휘해 양자, 실무위원장이 포함된 삼자간 대화의 장(場)을 마련해 주는 역할도 한 방법이다.
대통령이 당당하게 4.3추모제에 참석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성격 규명에 의한 4.3평화공원내 남로당 수괴급 불량위패 제거부터다. 원희룡 지사는 결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