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어린 두 소녀의 죽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더럽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용서와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비극은 해방 이후에 벌어진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부모와 스승과 친구의 가슴에 반동분자의 낙인을 찍으며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는 패륜이 있었고, 어린 소년소녀의 가슴에 혁명의 이름으로 꽂아 넣었던 피 흐르는 대나무창이 있었다.
죽고 죽이는 대상은 내 혈육 내 동포였다. 일제치하 36년의 참극 속에서 그토록 지키고 보호하며 의지하던 내 이웃과 민족을 향해 공산주의자들은 서슴없이 죽창을 꽂아 넣었다. 거기에 제주 4.3이 있었다.
지금 제주 4.3을 일으킨 주동자들이 공산주의자였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김달삼과 이덕구에 대한 정체, 그들이 일본육사를 나온 교사출신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또한 4.3 당시 제주도 내 12개 경찰서를 습격하며 일으킨 사건을 폭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 폭동에서 문정자, 문숙자라는 7살, 9살 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 어린 소녀들을 죽인 자들이 4.3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었음을 설마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잔혹한 전쟁일지라도 서로가 지키는 금기(禁忌)라는 것이 있다. 어린애와 여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금기. 최소한의 휴머니즘이었다. 만약 이를 어길 때는 금기를 깨뜨린 자들은 모든 나라의 공적이 되었다. 그리고 응징을 받고 소멸되었다. 전쟁이 명분을 중시하게 된 이유였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시절, 한반도에서 벌어진 대구폭동, 제주 4.3과 여순반란사건 등 일련의 사건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범민족적이며 범인류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제주 4.3이 만인의 공분(公憤)을 일으켰던 것은, 당시 공산주의자들이 어린아이까지 죽였다는 데 있었다.
6.25 때, 필자(筆者)의 고모 되시는 분의 일가족 몰살에도, 이제 태어난 지 석 달된 어린아이의 죽음이 있었다. 그들은 혁명에 방해가 된다는, 다시 말하면 이 어린아이가 자라서 복수를 한다는 이유로 댓돌에 던져 죽였다. 살았으면 필자(筆者)의 고종사촌형이었을 것이다.
문정자, 문숙자라는 이름의 두 소녀도 같은 이유로 죽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천국,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두 어린 소녀의 가슴에 죽창을 꽂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혁명을 노래하지만, 반민족적인 잔혹한 패륜을 저질렀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을 안다면, 그 시절 죽창을 들었던 공산의 족속과 이름들은 역사 밑으로 숨어야 한다. 그러나 그 후예들이 다시 발호하고 있다. 비록 희생을 말하고 국가공권력을 욕설하지만, 제주 4.3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천하에 둘도 없는 잔혹한 죄인들이었다.
그 죄인의 후예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나온 것이 김대중 노무현 시대였다. 동포의 가슴에 죽창을 꽂던 민족반역자들이 희생자의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정점에 민주당이 등장하고 있었고, 박원순 같은 무리들이 나타나 죄인들을 희생자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국군은 적이 되고 말았다. 인민공화국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종북세력과 민주당, 통진당과 현 새정연에 정권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인민공화국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무리들에게 면죄부를 준 노무현 정권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인민공화국의 역사는 제주 4.3 죄인들을 혁명영웅으로 받들지 모르나, 아직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사면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린 두 소녀의 가슴에 흐르던 피를 잊지 않고 있다. 사면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어린 소녀의 죽음에 분향(焚香)과 강신(降神)의 예를 다할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자, 제주 4.3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이여. 두 어린 소녀를 조상(弔喪)할 수 있는가? 노무현과 친노세력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재학
자유논객연합 부회장, 시인, 자유지성300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자유교원조합 중앙고문, 국가유공자, 데일리저널 편집위원, IPF국제방송 편집위원, US인사이드월드 편집위원, 전추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