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노선이 폭력에 의한 정권쟁탈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노동당 강령과 교시들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남조선 혁명론은 혁명의 성격이 ‘민족혁명'과 '계급혁명’을 동시에 추구하는 혁명이므로 인민정권(공산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폭력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급투쟁은 공산주의 기초이론이다. 또한 행동의 지침이기도 하다. 철저한 마르크스ㆍ레닌의 신봉자였던 계급투쟁론자 모택동도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은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현될 때만이 중지된다”고 했다. 이는 모택동사상에도 나타나 있다.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권장악은 오직 폭력에 의한 방법만이 가능하다” 공산당선언의 마르크스ㆍ레닌주의 기본이론이다. 핵심은 혁명론인데, 완전한 공산주의 건립(무산계급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레닌은 공산주의 책략원칙의 하나로 “강력하고 권력이 있는 적을 타도하기 위해 적 내부의 아무리 작은 분열이라도 이것을 용의주도하고도 교묘하게 최대한 이용해서 자본주의 계급사이의, 모든 이해관계의 알력을 조장한다. 그리고 아무리 동맹들이 임시적이고, 유동적이며, 믿을 수 없고, 조건을 붙이는 경우에도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든 기회를 이용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공산주의 창시자인 마르크스ㆍ레닌이 선언한 공산주의 혁명론의 최종 목표는 세계적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들은 이 목표의 실현과 그들 목적을 위해 폭력에 의지하고 있다. 공산주의 교조(敎條)에 의하면 전쟁과 혁명은 모두 계급투쟁의 가장 격렬한 한 형식일 뿐이다. 계급투쟁이 곧 공산주의 기초이론이라는 방증이다. 언급했다시피 계급투쟁론자였던 모택동이 역설했던 “사회 속에서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계급모순과 계급투쟁은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현될 때만이 중지된다”는 주장과도 일치하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ㆍ레닌주의를 교범으로 삼은 모택동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김일성주체사상도 그 연장선에 서 있다.
제주4.3사건은 김일성주체사상으로 이념무장된 남로당 주구(走狗)들이 일으킨 반란사건이다. '남조선혁명론'의 이름으로 주체사상이라는 방주(方舟)를 타고 제주도에 상륙한 것이다. 노동당 규약 전문에도 “당면 과제는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하는 것이며, 최종 목표는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에 있다”고 남한 사회의 사회주의ㆍ공산사회화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김일성의 꼭두각시 남로당은 4.3사건도 그 혁명의 연장선으로 봤다. ‘민족혁명'과 '계급혁명’을 동시에 추구하는 혁명이므로 인민정권(공산정권)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폭력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오직 폭력적으로 주동한 것이다.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반란이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많은 양민의 희생을 불러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발생부터 54년 수습단계를 걸쳐, 1957년 4월 2일 무장공비 오원권(37세)이 구좌 송당지역에서 생포되면서 만 9년간의 무장폭동은 종료되었다. 이 기간동안 인명피해만 해도1만 여명을 넘어서면서 제주인의 눈물, 아픔, 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참고로 당시 도 전체인구는 약 27만 여명이었고 이 가운데 약 6만 내지 7만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이 남로당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4.3사건이 짧은 기간에 확대재생산된 것은 시대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전략이 주효했던 까닭은 선동에 앞장선 자들 대부분이 신지식인들이다 보니 권위가 실릴만 했다. 당시 공직자들의 비리와 인권침해에 따른 싸늘한 민심과 3.1발포사건도 민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가난에 찌들려 초근목피하고 있던 도민들에게 토지의 무상분배, 무상교육, 부자와 가난한 자 없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순박하기만 했지 사상이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던 도민들은 이런 감언이설(甘言利說)에 현혹되어 그들의 선전ㆍ선동을 무조건 따르게 된 것이다.
4.3사건은 제주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남은 것은 이웃간의 반목과 질시, 분열이었다. 김일성의 주구들 때문이다. 산 좋고 물 맑고 인심좋은 제주에는 삼무, 수눌음, 조냥정신, 괸당 등의 문화에도 나타나 있듯이 소박하고 순박한 제주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주구들은 노동당의 남조선 혁명론에 입각해 “...우리는 조선혁명을 책임진 공산주의자로서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 어느 때든지 한 번은 꼭 그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폭력에 의한 정권쟁취를 외쳤던 공산주의 앞잡이들이었다. 4.3사건, 그 반란의 역사 중심에는 김일성의 꼭두각시들만 있었다. 제주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