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추념일 지정의 문제점과 선결과제
-홍석표 (제주자유수호협의회 회장)
1948년 5월 10일에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가 있었습니다. 제주4.3은 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이 일으킨 폭동입니다. 4.3반란을 일으킨 남로당은 공산당의 후신이었고, 1948년 4월 3일 시작된 4.3폭동은 마지막 빨치산 오원권이 체포되는 1957년 4월 2일에야 끝났습니다. 남로당의 인민유격대는 9년 동안이나 제주도에서 대한민국에 저항했던 것이 제주4.3의 본질이었습니다.
제주4.3사건이 발발한지 어언 65년이 흘렀습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거액을 들여 4.3진상조사를 하였지만, 왜곡되고 편향된 진상조사로 인하여 4.3사건의 진상은 더욱 진실과 멀어졌습니다. 요새 젊은 친구들에게 제주4.3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면, 마을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인 사건이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4.3진상은 4.3의 진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4.3의 성격을 규명할 때 폭동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3은 총을 들고 지서를 습격하고 사람들을 살해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폭동이기 때문입니다. 좌파 단체에서는 제주4.3을 민중항쟁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제주4.3을 민중항쟁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황당한 주장입니다. 4.3이 민중항쟁이라고 주장하려면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민중항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4.3의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남로당원이었습니다. 제주도의 남로당원은 공산주의자들이습니다.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좌익 3당이 합당을 하여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 남로당이 탄생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는 조선인민당이나 남조선신민당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조선공산당이 남로당으로 이름만 바꾸게 되었고, 제주도의 남로당은 곧 조선공산당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이 4.3을 발발시키는 주인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주4.3의 정확한 본질은 공산폭동이었습니다.
좌파에서는 제주4.3이 단선 반대를 위해 봉기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 역시 황당한 주장입니다. 제주인민해방군 사령관이었던 김달삼 이덕구는 북한으로부터 국기훈장을 수여했고 평양 애국열사능에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김달삼과 남로당 제주도당 주요인사들이 북한에서 열리는 해주인민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월북하였습니다.
이 때 이 사람들이 북한으로 가지고 간 것이 제주도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와 남로당 지하선거에서 투표한 5만 2천장의 투표 용지였습니다. 이 투표용지는 남한사람들을 겁박하여 투표하게 만들고, 북한으로 가져간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투표용지였습니다. 제주4.3사건이 단선반대를 위해 봉기했다는 주장은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단선 단정 반대를 위한 것이었다면 북조선 단정에도 반대해야 옳은 것입니다. 북조선 건국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투쟁하고, 대한민국 건국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한 것이 4.3폭동입니다. 4.3폭도들은 단선 반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 반대를 외친 것입니다.
남로당의 강령에도 나와 있지만 남로당은 처음부터 한반도에 공산주의 통일 국가 건설을 목표로 만든 당이고 이 목표를 한 번도 바꾼 일이 없습니다. 정세에 따라 유리하면 합법투쟁을 하다가 상황이 불리하면 지하로 숨어서 불법투쟁을 전개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전략과 전술면에서 변화는 시도했지만 공산통일국가 건설이라는 근본 목적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좌파정권 들어서 4.3특별법이 만들어졌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4.3에서 군경을 대표하여 사과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사과인 것입니까? 그렇다면 인민유격대가 자행한 살인 납치 방화에 대해서는 누가 사과할 것입니까? 화해와 상생이라는 것은 양쪽의 사과와 용서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발간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일방적 편파적으로 작성되어 왜곡과 좌편향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4.3 정부보고서 서문에 국무총리는 4.3의 성격규정을 후세 사가의 몫으로 넘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4.3 정부보고서 말미에는 ‘4.3은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사건’이라고 4.3정부보고서 작성단은 표기해 놓았습니다. 국무총리가 유예시킨 4.3의 성격을 그 부하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4.3의 성격이 학생들에게 교육되고 있고, 일반인들은 4.3의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3추념일 지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날을 추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자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입니다. 1990년대까지는 제주4.3은 4,.3폭동, 4.3반란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4.3 반공유족회와 4.3 좌익유족회가 합동 위령제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4.3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여년 만에 제주4.3의 역사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이제는 국가추념일을 지정하여 4.3폭동의 주모자들에게까지 경배를 올려야 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4.3평화공원에 모셔진 위패들 중에는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될 위패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이런 위패들을 우선 정리하고 왜곡된 4.3의 진상도 바로잡고, 4.3의 성격도 제대로 규명된 후에야 추념일 지정을 거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4.3추념일 지정에 앞서서 제주4.3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시정한 후에 추념일 지정을 거론하라고 대한민국 정부에 요구하는 바입니다, 4.3 추념일을 지정하라는 요구는 좌파들의 요구입니다. 제주4.3에서 우파들의 요구는 계속 묵살되어 왔습니다. 좌파들의 요구는 계속 들어주고 우파들의 요구는 계속 묵살하는 것이 4.3의 화해와 평등입니까.
4,3유족회나 4.3평화재단, 좌파단체들은 제주4.3을 민중항쟁이라 주장하고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들은 제주4.3 진상조사에서 성격규명을 뒤로 미뤘기 때문입니다. 제주4.3사건의 성격을 우선 명확하게 규명해야 민중항쟁이고 억울한 피해자라는 모순적인 주장이 없어집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들을 바로 잡아야 4.3에 대한 추념이 가능한 것입니다.
제주4.3의 진정한 화해와 상생으로 가기 위해서는 4.3에 대한 5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정부는 서둘러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4.3의 성격 규명, 4.3평화공원의 좌편향, 4.3정부보고서의 왜곡, 4.3에 대한 인민유격대 측의 사과, 4.3추념일 날자 변경, 이 다섯가지는 우선 해결한 다음에 추념일 지정이 맞는 순서입니다.
4.3추념일 지정에 대한 선결과제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1. 선 4.3의 성격 규명, 후 4.3추념일 지정이 순서이다,
4.3정부보고서에는 4.3의 성격 규명을 후대로 미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4.3공원에는 글씨가 없는 상징적인 백비가 누워있습니다, 4.3 성격 규명도 안되어 있는데 덮어놓고 추념일을 지정하여 큰절부터 올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추념일 지정을 위해서는 정부고서에서 보류된 4.3의 성격 규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선 성격규명 후 추념일 지정은 정당하고 순리적인 요구입니다,
2. 4.3평화공원의 좌익골수분자들을 분리해야 한다,
4.3추념일이 지정되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층이 줄줄이 4.3공원의 위패에 절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4.3공원의 위패에는 4.3폭동 당시 납치 살인 방화를 일삼았던 인민유격대 고위층들도 있습니다, 남로당 고위간부, 월북자, 북한인민군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위패에 대통령이 절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자들을 골라내어야만 4.3추념일 지정이 정당화될 것입니다, 지금 4.3평화공원의 위패에 대하여 정밀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4.3공원의 위패 약 20% 정도가 4.3폭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이나 선동 역할을 했던 사람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3. 4,3진상조사보고서를 다시 써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4.3진상조사보고서는 왜곡과 날조로 얼룩져 있습니다, 남로당 공산폭동인 4.3을 통일을 위한 민중항쟁으로 변장시켜 놓았습니다, 우파 4.3위원들은 탈퇴해버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의 4.3보고서는 좌익에 의한, 좌익을 위한, 좌익의 4.3보고서가 되어 버렸습니다, 노무현 보고서가 있다면 당연히 박근혜 보고서도 있어야 그들이 주장하는 화해와 평등인 것입니다, 왜곡과 날조의 보고서 대신 진실과 역사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4. 인민유격대 측의 사과도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제주에 내려와 대한민국 군경의 잘못에 대해 대뜸 사과해 버렸습니다, 좌파 대통령이라면 좌익의 만행에 대해 사과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이 좌파 대통령은 군경의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4.3의 양쪽 주인공이 군경과 인민유격대인데, 당연히 인민유격대의 만행에 대해서도 사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4,3의 모토는 화해와 상생입니다, 양쪽의 사과가 있어야 화해와 상생이 되는 겁니다, 인민유격대를 대신해서 지금의 4,3유족회도 좌익의 만행에 대해서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4.3유족회는 걸핏하면 '이승만 학살자'를 주장하는 좌익 유족회이기 때문입니다,
5. 4월 3일을 피하여 지정하자, 4월 3일은 폭동 기념일이다,
제주인민유격대는 4월 3일을 기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4월 1일도 좋고 4월 5일도 괜찮은데 폭동 날짜는 4월 3일이었습니다, 4월 3일은 외국으로 망명 갔던 레닌이 러시아 혁명에 성공하면서 러시아에 귀환한 날입니다, 레닌이 점령군처럼 돌아왔듯이 제주인민유격대도 오름에 봉화를 올리며 점령군처럼 제주도의 지서들을 습격했던 것입니다, 이 날을 추념일로 지정하자고 추진하는 생각은 수상한 생각입니다. 4,3추념일은 다른 날로 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당연한 처사입니다, 폭동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자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었는데 1954년 9월 21일입니다. 이 날자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섯가지 사항은 4.3추념일이 지정되기 전에 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제주4.3사건에 추념일 지정이 어울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4.3에 대한 성격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주4.3사건에 대한 성격규명은 지난 4.3진상조사에서 보류되었습니다. 4.3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추념일을 지정하여 절부터 올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4.3추념일이 국가적으로 지정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4.3평화공원에는 공산국가 건설에 매진하던 사람들의 위패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반공의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다가 돌아가신 유족들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의 대통령이 저런 위패에 절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문제점들을 덮어두고 4.3추념일을 지정하게 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제주4.3은 공산폭동인 것도 진실이고, 진압 와중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도 사실입니다. 제주4.3 추념일 지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4.3추념일 지정에 앞서서 진실은 인정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은 다음에 추념일 지정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요구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부처는 이런 문제점들을 헤아려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제주4.3 추념일 지정에 대한 현명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홍석표 (제주자유수호협의회 회장)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