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4.3추념일 지정 신중해야 폭도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무리를 빗고 있다.
동영상 촬영 편집 장재균▲[사회] 500만 야전군 의장 지만원▲전 국방군사연구소 전사부장 나종삼▲올인코리아 대표 조영환▲4.3사건 유족 오균택▲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제주자유수호협의회 본부장 홍석표▲자유논객연합 회장 김동일▲자유논객연합 상임위원 오을탁9월 2일 월요일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제주4.3 추념일 지정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를 주관하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국민모임'은 우파단체들의 연대체로서 지난 8월 7일에는 안전행정부 앞에서 제주4.3 추념일 지정 규탄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우파인사들과 유족회가 모인 ‘역사와 추모의 위원회’의 제안1.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전 국방군사연구소 전사부장 나종삼씨,2. 제주4.3사건 좌익세력의 왜곡수법, 올인코리아 대표 조영환,3. 내가 겪은 제주4.3, 4.3유족 오균택,4. 제주4.3 희생자 결정심의에 관한 문제점 전 제주경찰서장 김영중씨,5. 제주4.3 추념일지정의 문제점과 선결과제 제주자유수호협의회 회장 홍석표, 500만야전군 지만원 의장의 사회자유논객연합 김동일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주4.3사건에 대한 좌익정권의 의도적인 왜곡을 바로잡자는 우파인사들과 억울한 피해자들인 순수유족회가 모여 ‘제주4.3역사와추모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할 예정이다. 억울한 피해자 유족들에게는 추모가 필요하고 국가에는 왜곡되지 않은 제주4.3의 역사가 필요한 이상, 위원회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자는 제안을 함으로써, 제주4.3사건을 놓고 좌우익 간에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4.3사건에 대한 이해당사자들 간에 소통이 트여질지 주목된다. 노무현 좌익정권이 작성한 4.3정부보고서와 건립한 4.3평화공원은 좌편향성 문제로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4.3정부보고서에는 이념을 배제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좌익의 시각으로 쓰여졌으면서도, 입으로는 '4.3 성격규명을 후대에 미룬다'고 평가를 보류한 상태에서, 제주4.3 추념일 지정 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현재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성격이 좌편향적으로 규정된 상태에서, 추념일을 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좌경화로 조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제주4.3사건당시 인민유격대와 직접 관련자 상당수가 회생자로 신고 되었음을 확일 할 수 있다.1. 남로당제주도당 경리부장(회계부장) 현복유(현보규) 조천면 신흥리 출신, 조천중학원 교장일 때 부교장이 2대 인민유격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였다. 현복유의 영향으로 마을의 많은 청년들이 인민유격대가 됐고 희생됐다. 1949년 6월29일 사형선고를 받았다.2. 남로당제주도당 선전부장 현호경 성산명 성산리 출신으로 남로당 목포시당 책임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1949년 6.월30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3. 남로당제주도당 부위원장, 간부부장 이신호(일명 이신우) 대정면 하모리 출신 3.1 총파업사건으로 6월 징역형을 받았고 48년 11월 총살됐다.4.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사령관 이덕구 후임 김의봉, 조천면 와흘리 출신 48년 5월 말 3차 조직정비 때 3지대장(1지대장 이덕구, 2지대장 김대진, 5지대장 오00)이었으며, 이덕구 후임 사령관이었다. 경찰과 전투 중 총을 맞고도 도주하다 물장올에서 숨진 시체로 발견,5.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환식, 조천면 북촌리 출신 일제 때 해군 준위로 늘 포켓에 권총을 넣고 다녔고 고향 집에 휴식차 내려왔다가 마침 북촌 포구에 입항한 우도선적 배에 타고 있던 우도지서 주임 양태수 경사 등을 살해한 인민유격대 김진태 등을 지휘했다. 관음사 전투 책임자로 전투를 벌이 자결했다.6. 북한 인민군 사단장 이원옥, 조천명 북촌리 출신 47년 가을 입산하여 연락임무를 띄고 48년 10월 북한으로 갔다. 6.25 때 인민군 사단장으로 7000명을 인솔하고 내려와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7. 남로당제주도당 위원장 김달삼 비서실장 박태전, 제주읍 영평리 출신 남로당제주도당 구국투쟁위원회 위원장 강규찬 비서로도 활약, 귀순해 그의 제보에 따라 무기를 숨김 아지트에서 발견한 무기는 남초등학교 2개 교실을 가득 찰 분량이었다. 2연대 군인들과 함께 제주를 떠난 그는 월북했다. 후일 일본에서 그를 본 사람(고봉식 전 교육감)이 있었는데 그만큼 북한에서 일본을 왕래할 정도의 실력자였다.8. 남로당 서남부지역 인민유격대 총책 고두옥, 중문면 중문리 출신, 9연대 탈영병 애원면에서 서귀면까지 6개면 무장대 책임자로 활동,9. 제주지검 프락치 검사보 이재만, 애월면 신엄리 출신, 애월초등학교 교사, 해방 후 미군정 통역관으로 일하다 제주도에서 처음 시행한 검사보 시험에 합격, 검사보로 있다가 입산 활동 중 검거되어 사형 당함,10. 경찰 프락치 송영창, 제주읍 오라리 출신, 경찰 프락치사건에 연루된 특별수사대원이었다. 사건이 발각되자 자신이 갖고 있던 99시 장총을 갖고 입산했다가 뒤늦게 경찰 토벌대에게 생포되어 총살됐다.11. 끝까지 항거한 인민유격대원 변창희, 제주음 이호리 출신, 마지막 남았던 잔비 5명 중 1명으로 1954년 3월27일 김성규 인민유격대 사령관과 함께 한라산록에서 교전 중 토벌대에 의해 둘 다 사살됐다.12. 북한 인민군(소대장급?) 김기추, 애원면 납음리 출신. 6.25당시 북한 인민군으로 참전,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을 당시 친형 김기전과 고향 출신 경비군인 여럿이 수차 설득했음에도 전향을 거부 포로교환 시 자진원북(필자 증언 채록)13. 북한 인민군 김태봉(김태형 김용남 김민주), 구좌면 덕천리 출신, 조천중학원 재학 시 스승 이덕구 따라 입산, 소년게릴라 활동 중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48년 8월 중순경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6.25 대 인민군에 의해 석방되고, 인민군으로 참전하다가 뒤에 목포형무관으로 근무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지리산에서 빨치산활동 중 미군에 포로가 되었으며, 반공포로 석방 시 석방되어 부산항만 노동자로 종사하다가 밀항 도일하여 김봉현과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를 공편하였다. 그는 2008년 4월3일 제60주년 4.3위령제에 참석하여 위패봉안실을 방문한 때 자신의 위패가 봉안된 것을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한 바 있음,14. 남로당제주도당 지도부 백창원, 애월면 신엄리 출신, 1950년 7월 고승옥 송원병과 같이 북한인민군이 목포까지 왔으니 제주도에 상륙한 이후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허영삼 김성규 등 강경파에 의해 인민재판에 회부 살해된 자,15. 인민재판 주재자 이0택, 중문면 중문리 출신, 일제 때 중문면 서기로 친일파 1948년 5.10선거일 아침 7!8명을 인솔하고 독립촉성국민회 중문면 상예2구 분회장 오대호와 동리 대동청년단장이며,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김봉일과 그 부인 김영옥을 납치, 속칭 거린돌에서 이0택이 인민재판을 주재하여 무참히 살해, 중문면 폭도 총책으로 활동 중 자수하여 지내다 6.25 후 예비검속 때 검속 처형됨,16. 박진경 대령 암살범 강자규 중사, 애월면 상귀리 출신, 1948년 6월18일 박진경 대령 암살을 동조해 사형선고를 받음,이들은 4.3희생자로 최종 결정되었으며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 평화공원에 희생자로 올려졌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국민모임 2013년 9월2일 참여단체 : 500만야전군,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종북척결단, 북한해방연합, 남침땅굴을찾는사람들,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자유논객연합, 제주자유수호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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