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는 박효종 교수가 지적했듯이
‘대한민국의 건국자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는가. 혹은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자유와 번영을 가져온 작은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것으로 보는가, 그렇지 않으면‘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나 ‘시작부터 잘못된 나라’로 보는가.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국가를 지키려는 데서 출발한 반공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도〔......〕반공주의는 극우파시즘의 한 양태인가, 그렇지 않으면 도발적인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적화시도에 맞선 방어적 태도인가. 결국 이들 문제들은 한결 같이 국가의 정책이 왼쪽으로 가느냐 오른쪽으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질서를‘좋은 질서〔......〕로 보는가, 아니면 ‘나쁜 질서’〔......〕로 보는가에 관한문제’ 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위상, 남북한의 현실에 입각하여 판단할 문제라고 본다. 주로 민중항쟁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은 해묵은 이념 논쟁을 그만 두라거나 새삼스레 색깔논쟁을 끄집어낸다는 것이다. 1989년 4월 미국 뉴욕 타임스가 냉전의 종언을 고한 것을 시작으로 동서냉전이 종식된 지금 평양에도 가고 쿠바, 중국, 러시아도 다니는 판국인데 케케묵은 이념 논쟁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색깔논쟁을 한다고 타박한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4.3을 거론하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웃음 짓는 가면 속의 성난 얼굴이거나, 논리적 불리함을 면피하려는 계산된 잔재주에 불과하다. 인권침해나 인명피해에 대한 진상만이 진상이 아니다.(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하는 원인과‘동기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것이 옳았는가?’에 대한 진상도 매우 중요하다.
일을 처리하는 순서도 원인을 먼저 찾아내고 결과를 확인하며 최종적으로 누가 옳고 틀렸음을 평가해야 원칙이다. 4.3특별법 입법 취지도 이와 같다. 즉 4.3사건의 진상규명이 선행되고 난 후에, 이 사건 진행과정에서 군경의 불법인권침해행위는 물론 남로당 등 좌익계의 불법인권 침해행위 등 인권침해로 인한 모든 희생자와 기타 피해사실을 밝히는 것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인권피해 상황에 집약하고 그것도 토벌대의 강경성만을 부각하는 편향성을 보였다. 그래서 정부보고서는 진상조사보고서가 못되고 토벌대인권침해 조사보고서가 돼 버렸다.
여기에 기인해서 현재 4.3의 진상을 규명하고 후세들에게 알리겠다고 주장하는 많은 기관단체에서 실시하는 교육이나 영상물 또는 강연에는 시종일관 토벌대의 인권침해 상황만 4.3진상인양(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님) 부각시키고 유격대의 만행이나 남로당의 궁극적 목표, 남로당의 행위, 결과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 단 한 마디 언급이 없다. 이것은 토벌대 인권침해진상일 수는 있어도 4.3의 진상은 될 수 없다.
가시적인 인명피해 사실을 물 위의 빙산이라고 본다면 물 밑에 있는 얼음은 원인이다. 빙산의 진상을 밝히려면 물 위와 아래를 전부 파악해야 옳은 것이다. 이념대립으로 일어난 사건을 규명하면서 이념을 제외시키라는 주장 또한 비논리적이다.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남로당이 북한노선에 동조하여 일으킨 무장폭동이 4.3인데 4.3진상을 규명하자고 주장하면서 이념을 빼라는 것은 억지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이지만 우리는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경제 사회적으로 엄청난 교류를 하면서 이념을 초월하고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 유훈통치라는 사이비 종교 유일신(?)체제이고 한민족이라면서도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처럼 상식을 초월하고 예측 불허한 비정상적 병영국가이다. 이런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이념을 버리고 안보관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월남 패망사(史)에서 보았듯이 국가 안보는 돈이나 무기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생생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대내적으로 백성들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놓고 눈과 귀와 입을 봉할 뿐만 아니라 굶어 죽이는 사회다. 우리에게는 핵과 미사일, 장사정포, 생화학 무기와 20만 명의 특수부대, 잠수함과 땅굴은 물론 많은 간첩을 남파하는 등 끊임없는 무력 도발과 남남갈등을 조장하여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친북좌파나 종북주의자들이 이념이나 색깔론을 논하지 말라는 주장에 대하여 오히려 그들에게 수구적 좌파 종북이념에서 탈피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칼 포퍼는「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20대에 사회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가슴이 빈자다. 그러나 20대가 넘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머리가 빈 자다’라고 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이미 제정한 북한인권법을 자칭 진보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제정을 반대하고 토를 달고, 북한 특권층만 상대하며 북한주민의 처참한 인권침해에 침묵하고, 김일성 왕조의 3대 세습적 독재를 용인 옹호하면서 극히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정통성을 부인하고 가혹한 비판을 자행하는 친북 종북주의자들은 훗날 통일된 후 북한 주민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친북 종북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이야말로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주장한 프랑스 레이몽 아롱이 갈파한‘정직하면서도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파가 될 수 없다’라는 비판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젊은 세대들은 선배들이 해방직후 겪은 극심한 혼란과 정부수립한지 채 2년도 안된 시기에 3년 1개월 동안 지옥 같았던 6.25 참상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6.25전쟁(1950.6.25.~1953.7.27)한국군 전사 137,899명, 실종 24,495명, 부상 450,000명, 민간인 사망 245,000명, 실종 303,000명, 학살 129,000명, 부상 230,000명, 이산가족 760만 명, 유엔군(참전16개국, 의료지원 5개국)전사자 57,933명(미군 54,246명), 부상 481,076명(미군 468,659명), 북한 및 중공군 피해 제외)
대한민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김일성을 암살하려고 암살단을 파견한 사실이 없다. 항공기를 납치하거나 폭파한 일도 없고, 민간인을 납치 살해한 적이 없다. 북한은 6.25때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도 모자라 수시로 만행을 저질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엄청 많이 퍼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으로 주민을 먹여 살리지 않고 핵을 개발하여 우리를 위협하고 대남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 -핵개발이 기아를 초래한다는 것은 1946~47년 소련에서 100만~200만 명, 1958~59년 중국에서 2천만~3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 1990년대 중반의‘자연재해’란 이름의 북한 기아는 인위적인 것이었으며, 실제는 핵개발의‘대가’였다. 아사자 수는 20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6.25 남침 이후(휴전 후) 북한의 주요 도발 상황
① 1958년 2월 16일 승객30명 승무원 3명 미군사고문단원 1명 등 34명을 태운 부산발 서울행
대한민국항공사 소속 여객기 창랑호 공중납치사건
(납치범과 그 가족을 제외한 26명 송환, 미군사고문단원은 살해 후 시신으로 인도)
② 1967년 1월 19일 동해 휴전선 인근에서 명태잡이 어선 200여척의 어로보호 임무수행 중인
우리 해군 650톤급 당포함을 북한이 해안포 수백발을 쏘아 침몰시킨 사건
(승무원 79명 중 사망39명, 부상 40명)
③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 31명이 청와대 습격기도사건
(북한군 사살 28명 생포1명(김신조) 도주2명, 최규식 종로경찰서장 등 민간인 포함 7명 사망)
④ 1968년 10월 30일~11월 2일까지 북한 무장공비 120명을 15명씩 조를 편성, 침투시켜
민간인들을 무차별 살해한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북한군 113명 사살, 7명 생포, 군과 민간인 등 20여 명 사망, 이때 소사초등학교 계방분교
2년생 이승복(10세)군이‘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하였다가 무참히 살해당함)
⑤ 1969년 12월 11일 승객 47명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운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YS-11기
공중 납치사건
(1970년 2월 14일 승무원 4명과 승객 7명 등 11명은 억류하고 나머지 승객은 송환)
⑥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가 육영수 여사 피격 서거 사건
⑦ 1976년 8월 18일 국군장병 5명 미군장병 6명 등 11명이 판문점 주변 시야 장애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⑧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국빈 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암살하기 위하여
북한 테러분자가 아웅산묘지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폭발시켜 정부요인 등 17명 사망,
13명 부상시킨 아웅산 폭파사건
⑨ 1987년 11월 29일 북한은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중동근로자를
태우고 서울로 오는 대한항공기를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공중폭파, 승무원과 승객 115명 전원을
사망케 한 KAL858기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 생포)
⑩ 1996년 9월 18일 북한 특수부대원 25명이 330t급 잠수함을 이용 침투하다가 좌초되자
강릉 안인진리해안으로 침투한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
(북한군 13명 사살, 아군 12명, 경찰과 예비군 각 1명, 민간인 4명 사망)
⑪ 1999년 6월 15일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이를 격퇴한 제1차 연평해전
(북한 함정 2척 침몰, 3척 대파, 아군 피해 무)
⑫ 2002년 6월 29일 북한은 제1연평해전 패전에 대한 보복으로 한일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북한 경비정이 기습공격한 제2연평해전(우리 해군장병 6명 전사 19명 부상)
⑬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주부 피살사건
⑭ 2009년 9월 6일 북한이 황감댐을 고의적으로 무단 방류하여 임진교 부근에서 야영하던
낚시객 6명 실종 사망사건
⑮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해군 46명이 전사하고 이를 구출하려던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였으며 동원되었던 민간선박이 귀환 중 선원 9명 전원이 사망한 천안함 폭침사건
⒃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으로 우리 해병 2명 전사 6명 중상 10명 경상,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사건
북한 문제에 관해 이 정도로 학습했으면 충분하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한 번 때리고, 얼마 있다가 대화를 제의하고, 그 대가를 두둑이 챙겨가는 일을 반복해 왔다. 뭘 더 배워야 깨달을 것인가?
이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북한이 300만 명을 굶겨죽이면서 개발한 핵을 쉽게 포기하겠는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이 가진 것은 그것 하나뿐인데, 하나밖에 없는 당신 목숨, 돈과 쌀을 줄 테니 내놓으라면 내놓겠는가? 이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 국민이나 정치지도자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산타냐는 외쳤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다시 반복하도록 저주 받는다’라고.
통일을 원하지 않거나 북한은 언제인가 통일해서 함께 살아야 할 동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대남적화전략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이 휴전선 북쪽에 결사옹위 정신과 중무장한 120만 병력을 가지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정신무장만큼은 공고히 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들은 북한과 협상하고 대화해야 하지만 통일될 때까지는 이념을 버릴게 아니라 더 공고히 하여 확실한 안보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념을 버려도 되는 경우는 대한민국과 적대적 관계가 아닌 나라와의 문제로 한정해야 한다. 대북관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 받아 드리되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북한이 잘할 때 더 많은 보상을 주고, 잘못할 때, 보다 많은 불이익을 주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수립 실천해야 한다.
레닌은 ‘약속을 지키는 것은 바보다, 적과 약속을 지키는 자는 혁명을 포기한 자이다’라고 말했다. 이점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현대가 투자한 금강산 관광시설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사실 하나만 봐도 충분히 증명된다. 그리고 우리들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760만 이산가족들 간의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및 희망자 전원이 만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상봉을 꾸준히 요구하고, 찔끔찔끔 그것도 돈을 줘가면서 소수의 이벤트성 상봉은 재고해야 한다.
6.25당시 납북자 82,959명에 대한 생사확인과 사망자 유해는 즉시 송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6.25후 납북생존자 487명과 미귀환국군포로 560명에 대해서 즉각 송환을 정정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김정일 앞에 가서 주눅 들 이유가 없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대북정책담당자 및 여야 정치인에게 묻는다. 하나밖에 없는 당신 아들이 천안함에 탔다가 수장되었을 때에도 당신들은 북한으로부터 재발방지 약속이나 아무런 사과도 받지 않고 돈과 쌀을 퍼주겠는가? 그러면서 국민에게 세금을 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순국한 영령들에 대한 모독이고 국민 사기와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대한민국은 1993년 3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이 이인모를, 2000년 9월 2일 김대중 대통령이 비전향장기수 간첩 63명을 조건 없이 북한에 보내줬다. 이러면서 왜 국군포로 송환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가? 이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이러고도 60만 국군에게 목숨바쳐 나라를 지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2006년 6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군 소속 길라드 샬리트 병장을 2011년 10월 구하기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취한 조치와 애국 애군(愛軍)정신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제주도 출신 유망 검사였던 김원치 변호사가 쓴「법과 인생」179쪽에는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 나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체성이다.’라고 했다. 끝으로 이념논쟁이 지속되는 것은 정부보고서에 정확한 성격규명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집필진이나 4.3특위 위원의 책임이 막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