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증보판>김영중의 내가 보는 제주4.3사건
12. 친일청산문제
4.3주동자들이 건국과정에서 친일파 미청산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유 있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이나 이에 따라 공식적인 수사 재판 처벌이 행해진 바 없고 오직 지주 기업가 중산층 관료들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초법적인 인민재판과 그에 따른 처형이 있을 뿐인데 반하여 남한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친일파의 기준을 정한 후 법치의 원리에 따라 체포 구금 수사 기소 재판 처벌하였다’
(반민특위는 총 682건을 취급, 559건을 검찰에 송치, 221건을 기소했다. 305명이 체포되고 38건의 재판결과 13건의 체형을 받고 18건의 공민권 정지가 이뤄졌다.)
어느 쪽이 민주적이고 정당한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친일청산을 하겠다고 인민유격대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바로 이덕구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군 육군 소위였다. 그가 일본군에 입대하게 된 동기와 그 후의 행적은 밝혀진 게 없으며, 군복무 중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도 없고 도민들이 그에게 친일파 단죄를 위임한 사실도 없다. 인민항쟁론자들의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려면 독립운동가 이도종 목사를 생매장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친일파 청산은 당연한 일이지만 혼란한 건국 초기였고, 이웃 중국이 공산화와 6.25를 겪으면서 분명 어려움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초기내각과 요인 명단을 살펴보면 내각에 친일파는 없었다. 남북 갈등이 없고 지금과 같은 국민 수준이었다면 우리도 친일파를 응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극도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민도(民度)는 낮았고 새 국가의 건국과 경영을 위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곧 터진 6.25를 겪으면서 사회발전에 필요한 인재라면 일제시대 약점이 있더라도 등용이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이것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는 오직 정적 제거와 사회주의혁명 완수를 위해 친일파 청산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 좋은 예가 만주에서 일본군 통역으로 친일행각을 했던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북한 서열 2위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했다. 친일활동을 한 북한 시인 박세영에게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공로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을, 이 찬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썼다고 혁명 시인 칭호를 부여했다. 북한도 나라의 기초를 마련하자니 별 수 없이 친일 행적이 있는 자라도 능력이 있고 체제에 순응하면 과거를 불문하고 등용하였던 것이다.
(강양욱 일제하 도의원(김일성의 외삼촌, 북한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이극로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무임소상, 조평통위원장), 이활, 이흥부, 박경욱, 허민국, 서주필 등은 일본군 경력자이나 북한 공군 및 인민군에 중용, 이외에도 친일행적이 있는 장헌근, 이승엽, 정국은, 김정제, 조일명, 홍명희, 강치우, 최승희, 박팔양, 한낙규, 정준택, 한희진 등을 중용하였음.)
남북한 정부 초기 요인 명단
(북한이 기초한 첫 내각과 모스크바의 승인과정에서 일부 교체 지시를 받아 새로 조각한 내각명단은「평양의소련군정」)
미래의 얘기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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