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에는 1980년대부터 제주4.3사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제주4.3연구소가 있고 그 외로 학계나 문화계 언론계 기타 관련단체에서도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상의 여러 기관 단체들이나 연구 논문이 주장하는 4.3논조는 민중항쟁이라는 시각이 많고, 대구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신상준 박사가 만 9년 동안 연구 끝에「제주 4.3사건」상·하권이라는 저서와 제주산업정보대에 재직했던 고문승 교수가 펴낸「박헌영과 4.3사건」「제주사람들의 설움」그 외 경험세대 몇 사람이 단편적 저서에서 폭동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나는 4.3을 '항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며, 주위에는 특히 연령이 많을수록 나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보이지 않는 위압적 분위기에 눌려서인지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요즘 4.3이 묘하게 돌아간다' 또는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해방 직후와 똑같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들이 걱정하는 내용을 자세히 들어 보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4.3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이문교 제주관광대학 교수도 2008년 11월 12일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개최한 '제주4.3희생자 배상에 관한 도민토론회' 사회를 보면서 '도민 중 나이가 많은 분일수록 4.3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실토했는데, 그 이유는 직접 현장을 체험한 세대로서 원인과 실상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4.3을 전혀 경험하지 않고 현장에도 없었던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보다 더 4.3을 아는 것처럼 항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연령층으로 보면 젊은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다. 아마도 수정주의 사관으로 집필된 책에 의존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역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지만 최근 4.3을 '항쟁'으로 고착화하려는 조짐을 보면서 이는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를 방관하는 것은 양심상 온당치 못하다는 판단 하에 4.3미경험세대, 4.3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 4.3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바로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감히 이 글을 쓴다. 모두들 겁을 먹고 몸을 사리니 필자라도 나서야겠다는 우직한 생각과 언론 출판 양심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나의 주장을 발표하여 토론의 한쪽 주제를 제기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다.
또 한 가지, 나를 이렇게 내모는 이유는「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하 정부보고서)에 '항쟁'이란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내용이나 안내자들의 설명, 영상물, 제주시청 앞마당에 설치한 '4.3저항정신' 표현, 조형물, 한라산 탐방안내소 내 한라산 안내문 등 곳곳에 거침없이 '항쟁'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점으로 보아 제주도정(道政)도 시류에 편승하여 항쟁으로 굳히려는 조직적 움직임에 동조 내지 묵인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한라산 탐방안내소에 있는 '4.3항쟁' 안내문은 2009. 11.14. 현장 방문 결과 삭제 수정되었음)
제주도 역시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하의 제주도임을 인식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후세들에 대한 역사교육이 왜곡되지 말아야 하며, 역사적 진실은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다수결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금과 같이 일방통행식이 아닌 양방향에서 폭 넓은 연구를 기대하고 양식(良識)있는 학자에 의해 바로 잡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한민국에서 항쟁 일색인 지역 정서는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라면 모르되 항쟁론자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건강하지 못한 현상이다.
역사를 '춘추(春秋)'라고 하는 이유는 춘분, 추분 때 밤과 낮 길이가 같아지는 것을 비유해서 역사는 형평성,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음을 새겨야 한다. 윽박지르거나 왜곡된 사실을 굳히려고 억지를 부리면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부작용이 크다. 그간 거론조차 못하게 했던 억눌림의 반작용인지 모르겠으나 너무 좌편향적인 주장이 진실인 양 전파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비록 비전공자이지만 주요 쟁점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소개해 보겠다.
2. 제주4.3사건에 대한 명칭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기념관에는 제주4.3에 대한 정명(正名)이 없다고 백비(白碑-무자비(無字碑)를 눕혀 놓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항쟁'이라 명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몹시 걱정된다. 그래서 필자는 제주4.3에 대한 명칭은「제주4.3사건」이라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➀ 지금까지 도민 대부분이 사용해 왔고 ➁ 제주4.3특별법에도 규정되었으며 ➂ 폭동이나 항쟁이 아닌 가치중립적이어서 그렇다. 제주4.3사건은 워낙 엄청나고 복잡하여 시각에 따라 그 명칭이 '제주4.3사건' '제주4.3폭동사건' '제주4.3반란사건' '제주4.3무장봉기' '제주4.3인민(민중)항쟁' 등으로 불리어 왔다.
북한은 시종일관 제주4.3사건을 '인민항쟁' 또는 '인민봉기'라 하고 있다.「순간북조선통신」1948년 5월 중순호에는 '단선(單選)을 반대하는 인민항쟁이..' 5월 20일 박헌영은 '5월 10일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 총 결과 금후의 당면 임무'라는 문건에서 '제주도에서 인민항쟁이..' 5월 25일「로력인민」에는 이 사건을 '인민봉기‘ 또는 '인민항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5월 28일「로력인민」에는 '구국인민항쟁 만세' 7월 9일 김일성이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찬동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시에 관하여’라는 연설에는 '제주도와 기타 지역에서는 강제적 선거를 반대하는 인민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등이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북한 김덕호가 1965년 4월「력사과학」지에 실린 '제주도인민들의 4.3봉기'나 박설영이 1991년 4월「력사과학」지에 게재한 5.10단선를 반대한 제주도 인민들의 4.3봉기'라는 논문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민봉기가 제주4.3사건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인 명칭이요 성격규정이고 인식이다.
2000년 1월 12일 법률 제6117호호로 제정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과 동법 제2조(정의)에는 '제주4.3사건이라 함은...'이라 되어 있다. 또 이 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특위) 및 이 법에 근거하여 2003년 12월 15일 4.3특위(위원장 국무총리 고건)가 발행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 모두 '제주4.3사건' 이라 하고 있다.
아무튼 제주4.3사건에 대한 성격 부분을 분리해서 그 명칭만을 놓고 논할 때「제주4.3사건」이라 이름함이 마땅하고, 따라서 제주4.3평화기념관 평화공원에 있는 백비(白碑)에도 그 필요성을 차치하고 굳이 이름을 생긴다면「제주4.3사건」이라 새겨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