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문제
2003년 10월 15일 정부보고서가 최종적으로 확정 의결되고,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내도하여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4ㆍ3사건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혔다.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표명하였으며, 2005년 4월 3일 제58주년 제주4ㆍ3사건 희생자유령제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여 사과를 재천명하였다. 그 후 여야 대표나 대통령 후보, 경찰청장 등이 참배하는 등 모든 문제가 형식상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과를 함에 있어서 반드시 전제되고 유념해야할 사항은, 노무현 정부도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대한민국 정부의 후계체임을 자각하고 우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주동자의 행위를 나무라고, 건국 희생자 영령에 대한 추념과 그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다음,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선량한 많은 도민들의 유족에게 사과하였다면 문제가 쉽게 풀렸을 것이다.
대통령 사과 직전에 (당시)청와대 비서관 한 분이 내도하여 필자를 찾아왔을 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으나 반영되지 않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최소한)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회견에서 밝힌 수준이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와 3ㆍ1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던 시대'라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폄하하고, 6월 10일에는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필자는 개인적으로 공산당 허용은 남북통일 후 사회가 안정된 다음에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함)
6월 13일 일본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고, 7월 10일 중국에서는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으며, 10월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송두율(宋斗律, 가명 김철수, 제주시 도두동 출신, 재독학자, 북한 노동당정치국후보위원, 김일성장위위원 서열 23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같은 시각에서 사과한 것으로 비쳐졌다.
연이어 장정구 교수가 북한에 가서 '만경대정신을 이어받자'고 방명록에 서명하고 '맥아더는 전쟁광','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민지'라고 기고한 행위 등에 대하여 검찰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 수사하려 할 때, 천정배 법무장관이 난데없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2005년 12월 23일 불구속 기소하면서 김종빈 검찰총장이 항의 사퇴하는 사태를 야기했다.
또한 2004년 9월 5일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발언과 2005년 8월 15일 조총련 거물 간첩인 박용의의 국내 입국을 허용함은 물론, 간첩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하고 거액을 보상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지켜 보면서, 4ㆍ3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시각이 동일선상에 있으므로 그렇게 사과한 것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하는 민초들과 북핵 개발과 남북대치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은 승복할 수 없었지만, 막강한 권력 앞에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으며 안으로 곪고 있었다. 반면에 좌편향 단체들은 이런 흐름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십이분 이용하였고 일부 기관단체도 동조 또는 연계하면서 한발 앞서 항쟁으로 굳히기에 급급했다. 지역적 정서는 여기에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했다가 마치 외계에서 온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고립무원으로 어디에 호소할 방법이나 창구도 없었다.
과잉진압과정에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였고, 그중에는 무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데도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국군 통수권자라면 4ㆍ3이 진압되지 않았을 경우 대한민국 건국에 많은 지장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4ㆍ3주동자들의 의도대로 제주도를 그들이 장악하여 해방구가 되었을 때 6ㆍ25가 터졌다면 큰일 날 뻔한 사실도 정확히 인정해서 그때 유공자(엄연히 국가에서 만든 충혼묘지에 안장되어 있음)를 먼저 껴안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했다.
필자는 당연히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반드시 바로 잡혀져야겠다는 단계롤 발전하였다.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의 넋에 대해 명복을 빌고 그 유족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대통령이 이 분들께 사과한 것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과내용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중요사항이 누락되어 건국 유공자를 껴안지 못하고 무시하여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과는 문제를 마무리한 게 아니라 새 불씨를 남긴 셈이 되었다.
제쥬도 출신 유망 검사였던 김원치 변호사가 쓴「법과 인생」179쪽에는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 나라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체성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