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3관련 나의 희망사항
4ㆍ3과 관련하여 도민의 화합을 위해 어떤 해법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소견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가. 도민들은
제발 피해 일방주의의 지역주의에서 탈피하여 피해 측면만큼, 대한민국 국가 차원에서 조명하고, 우리 스스로 독립을 전취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해방된 격동기에 최초로 건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객관성과 냉정함을 주문한다. 당시 주동자들의 주의(主義) 주장과 거취, 달성하려 했던 목표 등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 남북한의 현실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접근 비교 평가해야 한다.
미ㆍ소 강대세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과업은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민주주의 정치가 완성된 위에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념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남한은 공산주의 이념을 배척하고, 북한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배척하여 남북한 공히 자기 이념을 국가의 기초이념으로 삼으려는, 한 치의 양보 없는 격렬한 정치투쟁, 체제선택의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가 사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나 제주 4ㆍ3의 진실에 접근하려면 민중운동사 위주의 사고(思考), 국지적 지역적 관점에서 벗어나, 국제 정치학적 관점, 국제적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객관적 자세라야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4ㆍ3은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일어난 사태라고만 보지 말고 소련의 세계전략과 실체도 미국과 똑같은 차원에서 바라봐야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은 소련의 지령에 따라 공산체제로 건국을 시도했다.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처형, 숙청, 전향, 월남하였고 남한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하려 했다. 이에 무력으로 반대한 것이 4ㆍ3사건이며 그 주동자들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정도를 초월한 과잉진압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사건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 주동자 유족들은
아무런 직접 행동책임 없이 오직 주동자의 가족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엄청난 슬픔과 말 못할 고난을 당한 억울함이 존재하고 이를 공감하지만 그들 자신들도 현재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한 행위에 앞장섰던 사람 유족 앞에 나서서 항쟁이라고 외치지는 말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성공하고, 북한이 대한민국보다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며 경제적 풍요를 누리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모범을 보이고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와 반대라면 주동자의 주장과 폭력을 항쟁이라 규정할 근거는 없다고 본다.
다수의 힘이나 위력을 통하여 항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들도 비례해서 확대되고, 정직하지 않은 자들이 진실을 더 외치는 위선으로 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항쟁이라 주장하기 이전에 왜 그들은 적기가를 부르고, 인공기를 내걸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면서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전제해야 한다.
에를 들면 6ㆍ25직후 한반도 동남쪽 일부와 제주도만 남았을 때, 제주읍을 비롯한 각 면별로 '인민군지원환영회'가 조직되었다. 지금 그 멤버가 자신의 전력(前歷)을 당당히 밝히고 4ㆍ3은 항쟁이라고 주장한다면 비전향 장기수처럼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신념에 수긍이라도 하겠지만, 항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하게 죽었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먼 훗날이면 모를까 최소한 2010년 현재까지는 누가 무고한 희생자이고 누가 당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많은 경험세대들이 '밤에는 산사람들이 무섭고 낮에는 토벌대가 무서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토벌대 못지않게 산사람들도 선량한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많이 납치하였다. 이들이 도주하거나 배반하지 못하도록 갖가지 모진 방법으로 피랍자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했다. 4ㆍ3주동자였던 '고승옥, 백창원, 송원병은 인민군이 목포까지 왔으니 제주도에 상륙한 이후에 나가야 한다고 말 한마디 했다가 허영삼, 김성규 등이 이튿날 위 3명을 인민재판에 부쳐 살해하였다.(그런데 이들도 희생자로 결정됨) 이 사실 하나만 봐도 인민재판이란 실체를 알 수 있으며 그들 지도부 간에도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이처럼 잔혹하였으니 부대원들이나 특히 피랍자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잘못된 일이지만 전쟁의 실상이란 피차간 인간이 동물 이하로 전락하는 비이성적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엄격히 비판은 하되 양쪽을 공평하게 봐야 하며 지금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 어려운 건국기 혼란 상황도 있었음을 감안핳 필요가 있다.
다. 무고한 희생자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과 4ㆍ3사건의 실체를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민중항쟁론에 입각하여 항쟁하다 죽었으니 억울하다면, 그는 분명히 반(反)대한민국 편에 섰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항쟁이라는 시각은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인정)과 폭동 주동자들의 잘못을 인정함과 동시에 진압과정에서 과잉진압으로 인해 선량한 주민 다수가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항쟁이라는 주장에 현혹되어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한다면, 억울한 죽음이 희석되고 오해받기 쉽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참혹함, 사망 날짜도 모르고 시체도 찾지 못한 한(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으나, 여기에만 집착하여 한풀이식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한 단계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
토벌대의 과잉 진압은 엄히 비판하더라도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진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당시 상황은 지금과 같은 수준의 사법제도나 모든 체제가 정비된 안정된 시기기 아니었다는 점과 4ㆍ3주동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에 어떤 자세를 견지하고,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선량한 도민들을 어떻게 선동ㆍ협박했는지, 그들이 왜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협조했는지, 그들이 바라는대로 제주도가 해방구가 되었다면 국내외적 정세로 보아 제주도민의 피해가 보다 더 막심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건국의 어려움과 6ㆍ25 때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들이 원했던 공산주의 북한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어느 나라 국민인지, 4ㆍ3위령제 때도 태극기에 경례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음을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면서 인공기를 내걸고 적기가를 부르며 조선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른 폭동과 반란을 항쟁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에 경례를 하며 애국가를 제창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수 있는가? 남북 분단 현실 앞에서 주동자들을 어떻게 국가 유공자처럼 대우할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친북수구좌파 반미단체나 대한민국 반역사범(反逆事犯) 미전향장기수를 4ㆍ3행사에 끌어들일게 아니라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라고 권한다. 그런 사람을 불러들이며 유족들의 주장을 이해했던 사람들조차도 자칫 오해와 의구심을 품게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결론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런 나라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진압과정과 4ㆍ3주동자의 잘못도 지적하면서 선량하고 억울한 희생자에 대해서는 명예회복에 노력하고 화해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 인권침해에 대한 형평성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인명피해는 통탄스런 일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대량 희생은 인권 차원에서 진상이 규명되어 후세에 경계해야 마땅하다. 같은 차원에서 그 반대편에 섰던 폭동세력권하에서 이루어진 잔학행위도 비록 토벌대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실대로 노출시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정남국(일명 정남휴 1916년생)은 남원리 민보단장이라는 이유로 1948년 11월 28일 임신 6개월이 된 그의 처 김영선(31세)를 비롯하여 장남 태언(10세), 장녀 태희(8세), 차남 태인(6세), 누이동생 정양(17세), 계양(25세), 계양의 장녀 고성춘(3세), 동 차녀 고양춘(2세), 동 삼녀 고계춘(1세), 그리고 집에서 심부름하는 외가 쪽 아이 오복길(15세) 등 10명(태아 포함 11명)이 납치 살해되어 구덩이에 파묻혔다. 부인 시체는 몇 년 후 개천가 나뭇가지에 머리 유골이 걸려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가서 확인한 결과 마누라 유골로 짐작되어 이를 수습 장례를 치른 적이 있다.
4ㆍ3당시 조천면 조천리에 거주하던 이월색(당시 13세 여)은 아버지가 돈과 쌀 그리고 '지까다비'(신발)을 보내라는 공비들의 요구에 잘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 이장원, 어머니 남금례, 숙부 이수남, 남동생 이만국(9세), 이만선(7세), 이만복(4세), 여동생 '어진이' 2명(3세와 2세) 등 8명이 하룻밤에 무참히 몰살당하는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다. 그 역시 온 몸에 총상과 창칼로 찔린 8군데의 상처를 안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함에도 불구하고 완전 무시당하고 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어린이나 노약자에 대한 피해도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토벌대에 의한 피해가 절대 다수지만 유격대의 만행도 분명 존재했다.
마. 관계당국ㆍ언론기관ㆍ유관단체에서는
전 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령제 및 4ㆍ3관련 회의 때의 각종 홍보물과 모든 전시물, 언론보도 내용도 쌍방 피해상황을 공평하게 취급해야 한다. 지금처럼 토벌대의 비행만 일방통행식으로 보도 전시한다면, 진실 왜곡은 물론 형평성이 없다는 비판과 반발에 직면한다. 4ㆍ3평화공원 내 위패 봉안실에는 무장대에 희생된 1,764명의 위패도 진열되어 있을 것이다. 화해와 상생이라고 선전하면서 토벌대의 잘못만 일방적으로 방영하면 아마도 1,764위 영령은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다.
지난날 어느 방송에서 내보낸 4ㆍ3위령제 영상물에는 여ㆍ순반란사건 당시 제14연대 반란군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경찰관 시체 중 남편 시체를 찾는 한 여인의 사진을 마치 4ㆍ3토벌대의 만행인 양 보도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분노하였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제발 문제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켜 양측 주장을 공평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다. 어렵다면 희생자 비율이라도 배려해야 하는데 완전히 일방적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선입견을 가지고 항쟁 일변도 또는 토벌대의 과오나 인권침해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은 항쟁 굳히기라는 인상을 받게 되며, 그 내용 중 일부는 검증없이 보도하여 허구나 변명이 진실인 양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었다. 신문 등 인터뷰 대도 반드시 교차 검증을 통하여 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경찰에 오래 근무한 필자의 경험상 나에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나쁜 경우도 없지 않았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바. 교육기관에서는
제주도교육청은 각종 4ㆍ3교육자료를 만들어 초ㆍ중ㆍ고교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그 자료는 미완이며 왜곡된 정부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의 국가관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걱정되며, 순진한 학생들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반만년 역사 이래 중국보다 더 잘 산 때는 지금 우리들이 처음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승만 대통령의 선견지명으로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자유ㆍ민주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그 기반 위에서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합심 노력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데서 비롯되었으므로 이 점을 교육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인정하고 있다.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교육해야 하며 좌ㆍ우 양쪽 시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과 균형된 지식을 전수해야 한다.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초ㆍ중ㆍ고교생들에게는 양쪽 시각을 균형있게 소개하고 판단은 학생들에게 맡겨야 하며 편향적 시각을 주입시켜서는 안된다. 학생들은 장치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갈 주인공들이다. 이들에게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교육해야 한다. 물론 잘못은 미화할 필요는 없다. 어린이들은 조국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야 희망과 긍지가 있고 진취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어두운 면이 분명 있었다. 이것 또한 밝히고 철저히 반성할 일이다. 그러나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다. 단점만을 부각시켜 역사를 매도하거나 부정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새뮤얼 스마일스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자신이 우수한 민족의 후손이며 고국의 위대함을 물려받았고 그러한 영광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자각으로부터 힘과 용기를 얻는다'라고 말했다. 교육자들이 한번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끝으로 필자가 4ㆍ3의 성격에 대해 위에 소개한바와 같이 일관되게 주장하는데 대하여 좌파시각을 가졌거나 유족회 측이나 혹자는 왜 무고하게 죽은 4ㆍ3희생자들을 폭도로 몰아 멍든 가슴에 못질을 하느냐고 항의하는 분이 있다. 그것은 오해이다. 다행히 필자의 가족 중에는 양측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거나 양쪽에 섰던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으니 무슨 억하심정이 있을 턱도 없다.
특히 폭동을 주동하다가 사망한 사람일지라도 인간적 미운 감정은 추호도 없다. 이미 지나간 역사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건국되고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상승한 유일한 국가다. 나는 다만 역사적으로 비판할 뿐이다. 하물며 억울하게 숨진 많은 사람들을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필자는 오직 자랑스러운 대하민국의 국민이요, 국가 안보와 공공의 안녕질서를 책임졌던 경찰 고위공무원 출신으로서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부정을 부정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부정하는 자기부정의 역사, 자학의 역사관, 반(反)대한민국 역사관, 외세 반대와 저항적 민족주의를 근저에 깔고 잇는 좌파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사(史)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이라고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 류(類)의 시각이나, 주체사상에 경도된 세력의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진상을 후세들에게 전파하려는 필자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밝히려는 것뿐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인정하더라도 단군 이래 최고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는 마땅히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킬 책임이 있으며, 대한민국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이를 부정왜곡하거나 더 나아가서 3대 세습에 자유와 인권을 짓밟고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북한의 논리에 동조하는 반(反)대한민국적 논리와 행태는 억지이며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