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발발 후 남로당 지원
(1) 남로당 중앙당 및 전남도당 올구의 활동
1948년 10월 24일 남로당제주도당 구국투쟁위원회는 제주읍 월평리에서 회합하여 9연대에서 탈영한 군인들을 투입한 구국투쟁위원회를 '혁명투쟁위원회'로 개편하였는데, 혁명투쟁위원회 편성은 중앙파견 올구 김서옥을 정점으로 바로 밑에 전남파견 올구 이창욱을 두고 그 밑에 투쟁지도부(김용관, 김양근, 김석환)와 위원장(김용관, 기동대장 김두선 무장대원 30명)을 두어 군사령(이덕구), 인사과(김대진), 총무과(김두봉), 선전과(김석환), 조직부(김양근)을 지휘하였다. 4.3상황이 긴박해지자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앙당이 파견한 올구가 제2의 위치에서 최상부층에 위치하여 직접 지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남로당중앙당과 전남도당 올구가 제주도당 최고위직에 앉아 직접 지휘하였으니 제주도당 단독행위로 축소하는 것은 왜곡이다.
(2) 조직 수습책 파견
(1949년 6월 7일 이덕구가 사살된 후) '조직 체제를 수습하기 위하여 인천, 여수지구에 김두옥, 김서옥을 파견(동년 6월경)'하였다. 제주도당 지휘부가 궤멸되자 조직 수습책으로 전남도당에서는 산하 여수지구에서 김서옥을, 중앙당에서는 인천지구에서 김두옥을 각각 제주도에 파견하였던 것이니 중앙당이나 전남도당 책임을 면할 수 없다.
(3) 노력 인민 보도
1948년 7월 남로당제주도위원회 명의로 중앙당에 보낸 답신 중 '조국의 민족주권 방어의 초소를 문자 그대로 사수하려는 우리들의 불굴의 투지는 상급당부의 옳은 지도 밑에'라고 상급당(전남도당과 중앙당)의 지도(지령)를 실토했다. 이 답신 말미에 '남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가 있음은 물론이다.
(4) 북한 인민군 체제 도입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 의하면 1948년 6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제5차 조직정비를 하면서 유격대원은 501명으로 대폭 확대하고 무기 148정, 실탄 7,740발로 무장을 강화하는 한편, 남로당제주도당(도 군사령부)과 산하 30지대, 3.1지대, 4.3지대, 50지대에 각각 정치부원을 배치했다.
'정치부원들은 배치된 부대사령관이나 부대장들의 사상을 검토함과 동시에 부대에서 중앙당의 지령을 준하는 지 감시하였다. 정치부원들은 1948년 2월 8일 북한 인민군이 소련 군사체제를 도입하여 생겨난 부산물이며 제주도인민유격대 내 정치부원의 등장은 남로당중앙당의 직접적 개입을 보여준다. 남로당중앙당은 북한 인민군의 새로운 군사체제를 제주도 인민유격대에 도입하였다. 남로당전남도당은 북한의 군사체제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5) 남로당중앙당 지도자 내도 후의 상황 전개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 의하면 1948년 5월 7일 남로당중앙당 지도자가 제주도당에 파견되었다. 그 직후인 5월 10일 제주읍에서 김달삼과 국경측 오일균 대대장 등 5인이 회담하여 국경프락치 지도문제, 국경(국방경비대)의 사보타주 전술, 상호 정보교환, 무기 공급, 탈영병 추진, 박진경 연대장 암살릏 결정했고 결정된 내용은 착착 실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