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탈린의 비밀 지령문
(가) 스탈린은 1945년 9월 21일 '최고기밀'로 분류된 지령문 '북조선에서 민주정당-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블록에 기반을 둔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창설하라'고 지령하여 '소련은 최소한 점령지에서만이라도 소련의 국가 이익을 지킬 인물로 구성된 정부의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즉 소련은 북한 점령 초기부터 북한만이라도 소련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이익을 보장하는 정부를 수립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 참고로「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이인호 외 2인 저, 85~86쪽)에 의하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레닌의 '연속2단계혁명론'에 의거,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면 제1단계로 혁명역량이 열악한 경우 대중을 널리 규합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그대로 내세우는 것을 피하고, 파시즘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옹호하려는 진보적 부르조아 계층까지 포함한 계층을 혁명의 주체역량으로 설정하여 먼저 지배체제를 타도한다. 즉 주(主)타도 대상을 제외한 대부분을 동맹세력으로 포섭하여 혁명을 한 다음, 제2단계로 부(副)타도 대상(전술상 일시적 동맹세력으로 포섭한 진보적 부르조아 세력)을 제거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한다.'라고 했다.
(나) 1946년 7월 하순 스탈린은 김일성(박헌영과 함께)을 재차 모스크바로 불러 '소련군정의 협력을 받아 북조선의 소비에트화 정책을 조기에 실현토록 투쟁하라'고 지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북한의 토지개혁을 비롯한 소위 민주개혁, 헌법, 내각구성, 제1-2차 남북연석회의 등 모든 문제에 대하여 매우 국체적인 지령을 내렸고, 이를 검토, 승인, 조종하여 김일성 이름으로 추진하게 하였다.
북한이 소련에 완전 종속되었다는 예로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가 끝나고 김구 선생이 '내가 평양(平壤)으로 떠나는 날 김일성(金日成)氏다려(더러) "오늘 조 선생(曹 先生)(조만식)을 다리고(데리고) 가고 싶으니 갓히(같이) 가게 해 주구려"했더니 김일성씨는 "아! 제 마음이야 얼마든지 갓치(같이) 가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마는 어듸(어디) 제가 무슨 권한이 있어요? 주둔군 당국의 양해가 있어야 됩니다"하였다. 나는 "그대들의 권한이 그뿐인가? 그래서야 어듸(어디) 자주정권인가?"하며 농담하였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다) 특히 1948년 7월 31일 김일성과 박헌영이 내각과 최고인민회의 의장단 명단을 소련군정 레베데프 장군에게 제출하였다. 소련군정의 세밀한 조사를 거쳐 극동군군구 사령부와 모스크바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냈으며, 모스크바로부터 내각 구성에 남조선 대표를 늘리라는 지령을 받고 이를 수정하여 다시 승인을 받은 후 확정하였다.(스티코프 비망록에도 소군정은 각 성(省)의 간부인선까지 개입했다는 기록이 있다.(300쪽)
이때 외형상으로 상(相)이 해당 부처를 대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련파(소련의 명령으로 입북한 소련 거주 고려인) 부상(副相)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이중구조의 내각이 편성되었는데 이는 소련이 부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각을 감시하고 지휘하겠다는 '위성국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며, 실제로 중요 내각 부상에 소련파 8명을 배치하였다. 이상과 같은 자료들은 남북분단의 책임을 소련과 김일성에게 먼저 물을 수 있는 명백한 증거라 할 것이다.
(라) 이외에 1945년 9월 10일 평양 주둔 소련군정사령부 정치지도원 그로차르 중좌가 각 지역 위수사령부에 지령한 '독립조선의 인민정부 수립요강' 6개항을 하달하였다.
(마) 1945년 9월 14일 소련 점령군사령부 정치부원 그로치코의 '독립조선의 인민정부수립요강'이라는 문서에 '소련군이 노동자 농민정권수립을 원조하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2) 슈킨 보고서
소련의 서열 3위 붉은 군대 총정치국장 슈킨 대장의 1945년 12월 25일자 보고서에 의하면, 1945년 9월 21일자 최고사령부 훈령 즉 스탈린이 언급한 '북조선에서 민주 정당 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블록에 기초한 부르조아 민주주의 정권 창설'을 목표로 한 노선이 절대적으로 미흡하고, 소련의 국가 이익을 보장할 정치-경제적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소련의 국가이익을 지킬 수 있는 인물 양성을 위해 중앙집권화하고, 반대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농지개혁을 시행하며, 소련에 호의적이고 소련의 정치적 입장을 굳건히 지켜줄 간부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가 9월 21일자 스탈린 지령을 거론한 점과 미-소공위 개최 직전에 나온 점 등으로 보아 처음부터 미-소공위에 대한 소련 최고위의 방침은 이미 북한 단정을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