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선(單選) 단정(單政) 반대(Ⅳ)
월북한 4-3주동자들의 거취와 말로
소련군정사령부는 남한에서 활동한 혁명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강동정치학원 개설을 지령하여, 1948년 1월 1일 평양근교 평남 강동군 승호면 대성리에 학원을 개소하였다. '강동정치학원생들은 지하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고, 여-순반란사건 당시 180명이 밀파되었으며' 6-25 후 김달삼은 강동정치학원 출신 300명을 인솔하여 태백산지구에 남파되었다.
이상과 같이 제주4-3주동세력들은 남한보다 먼저 단정(單政)을 수립한 북한의 단정에 대해서는 같은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다고 무조건 찬양 수용하면서도, 뒤늦게 UN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남한의 단선(單選)-단정(單政)만 반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주의 통일을 반대함은 물론) 바로 그들의 공산통일투쟁이지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의한 저항이나 항쟁이 아님을 웅변한다.
북한은 인적 청산을 위해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처형, 투옥하였다. 일부는 전향하였고 나머지는 월남하게 되었는데 1946년 1월 5일 조선민주당 당수 조만식의 연금을 마지막으로 북한 내 비공산주의 세력은 일소되었다.
북한 김일성은 6-25 전쟁에 실패하자 1인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고, 패전의 책임을 전가할 구실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단행했다. 국내파 박헌영은 1953년 3월 11일 체포되어 3년 동안 온갖 고문을 버티다가 종내에는 세 번째 부인 윤레나와 어린 두 자식을 외국으로 보내 준다는 김일성의 약속을 믿고(약속이 지켜졌는지는 미상) 스스로 미국에 고용된 스파이였음을 자인하여 1956년 7월 19일 방학세가 쏜 권총 2발을 머리에 맞고 숨을 거뒀다.
필자의 상상이지만 박헌영은 지금 지하에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루고자 한 공산주의 통일국가 건설도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1946년 3월 26일 서울에서 UP통신(UPI통신 전신) 호이트 기자와 가진 '역사 진행에 역행하는 반동분자는 몰락한다'는 제목의 일문일답에서 '조선민주주의임시정부가 창설될 때 대통령으로 김일성을 지지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당은 인민과 함께 지지한다'고 할 정도로 김일성을 추종했던 박헌영이 미국의 고용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무자비하게 빼앗겼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북한정권 탄생에 헌신하고 김일성에게 충성하였으나 자신은 물론 월북 열성 남로당원들이 철저히 숙청당하였으며,(참고로 확인된 제주 출신 숙청자는 강문석, 고경흠, 김응빈, 송성철, 김택수 등으로 알려져 있다) 현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는 상황과 한반도 남쪽의 발전상을 비교해 보면서 내뿜는 후회와 한숨소리가 필자의 귀에 들려 오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4-3을 일으킨 남로당이 남북분단 책임을 미국과 이승만에게 돌리는 '단선단정 반대 통일항쟁'이란 주장은 잘못이며 오히려 그 책임을 소련과 김일성에게 먼저 추궁해야 순서일 것 같다.
반면 남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한 4개월 후인 1946년 6월 3일 비로소 이승만 정읍발언(미-소공위가 교착상태이고 통일정부가 여의치 않으니 일단 남한이라도 단독정부수립을 해야한다는 요지)이 있었고, UN결의에 따라 선거 기능지역에서 보통선거에 의해 대표가 선출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어 12월 12일 유엔 제3차 총회에서 유엔 결의안 195호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았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경제 13위권에 속하고 이만한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것은 현재 북한이 처한 실정에 비추어 볼 때 백번은 옳은 선택이고 잘한 처사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3선 개헌을 시도하는 등 결함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확고한 반공주의자로서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공산주의를 막지 않으면 스탈린의 폭압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안 유일무이한 선각자이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기초를 마련한 제1유공자이다. 미-소 합의에 의한 5년간 신탁통치를 무산시키고 3년 만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소련의 전략에 따라 북한이 사실상 단독정권을 수립한 이상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현명한 선택이였다.
건국(建國) 대통령으로서 '농지개혁을 성공리에 수행하였고,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침입을 방어하였으며,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을 맺어 안보기반을 공고히 하였고, 전쟁중에도 자유보통선거를 실시함으로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정착시켰다. 교육에도 많은 투자을 하여 인재를 육성하는데 기초를 다졌고 기간산업 건설에 매진한 공로자다.
이러한 공적은 그가 (후반기 말년에)독재를 하였다는 단점을 내세워 무조건 매도할 수 없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독재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국가라는 가정(假定)에서 탈피하여 남북한에 군대를 진주한 미-소 냉전대립과 국내적으로 좌-우가 첨예하게 대결하는 혼란기에 건국되었고, 기초를 다지기도 전에 6-25전쟁이라는 특수사정이 있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 근대국민국가 건설과정에서 일본, 터키, 이스라엘, 싱가포르, 타이완의 경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은 소련의 치밀한 계획과 조종하에 정부가 출발하였고, 1인세습 독재와 우상화, 심한 주민감시와 통제로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북한의 현실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수용소 군도」나 조지 오엘의 소설「1984년」에 다름이 아니다.
이승만을 비판하는 만큼 그 수십배나 되는 김일성의 독재와 잔혹사(殘酷史)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할 것이다. (불행중)다행히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절반만이라도 혹독한 공산주의 실험을 면했고, 김일성체제에서 처참한 숙청과 참혹한 배고픔을 면했다. 이것이 항쟁이 아니라는 두 번째 큰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좋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을 방해하려는 폭동을 미화하여 민중항쟁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영광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가 건설되어 (그 옛날처럼)소련의 위성국으로 고생하다가 지금 북한이나 (한때)동구공산권과 같은 나라가되었기를 바라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