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아침 두 눈에 눈물을 철철 흘리며 자판을 두드린다. 사실 오늘은‘산골일기’를 쉬고 싶었는데.... 지난 토요일 수아와 주아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데려올 때 수아만 감기가 잔뜩 들었었는데 그예 주아까지 옮기고 말았다. 두 어린 것이 밤새 어찌나 보채는지 아내와 잠을 통 잘 수 없었다. 잠시 눈을 붙이기 전 컴을 열고 기사를 보다가 그만 나도 몰래 두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눈물이 많은 놈이 나이가 먹을수록 눈물이 더 많아진다. 나이 들수록 어린애가 된다더니....
얼마 전 계모가 초등생 아이를 때려죽인 사건으로 세간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 있었지만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기사가 나를 울린다.
"집에서 쫓겨났다"는 7세 아이의 옷을 들추자…
부모가 폭행… 경찰서 온 엄마 "집에 오면 또 맞을 줄 알아"
빗자루로 때리고, 발로 밟고… 아이 "네살·한살 동생도 맞았다"
경찰, 폭행 혐의로 엄마 입건, 아이들은 보호시설로 보내
엄마 "훈육 차원, 학대는 아냐"
온몸에 멍이 든 P(7)군은 지난 12일 정오쯤 서울 강서구의 한 골목길에서 경찰관에게 발견됐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이필성(34) 경장에게 P군은 "집에서 쫓겨났다. 목동에 할머니 집이 있는데 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P군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 경장은 P군의 얼굴에서 여러 개의 멍을 확인했다. 눈두덩에는 생긴 지 오래된 듯한 회색 멍, 이마에는 방금 생긴 듯한 붉은 멍이 있었다. 광대뼈 부위는 날카로운 물건에 긁혔는지 4㎝가량 찢어져 있었다.(하략)
이 기사를 읽으며 나의 두 눈으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흘러내린다. 지난 번 사건은 계모였기에 분노와 공분을 느꼈지만 이번엔 친부모라니...뭔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랬다. 내 어머니가 그랬었다.
전쟁이 터지고 휴전이 되고... 세상이 몽땅 어려운 그 시기의 부모님들 모다 생활이 팍팍하고 힘드셨겠지만 그 고난의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내 어머니는 더욱 힘이 드셨을 게다. 그래서 그랬던지 어머니는 훈육(훈육이라니...)에 몰두 하신 것 같았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내가 무엇을 어느 정도 잘못 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는 나이까지 어머니는 과한 훈육을 하셨다.
어머니의 훈육은 좀 독특하셨다. 때리면 아플 것이고 아프면 우는 게 당연한 것임에도 울음소리가 이웃에 새 나가지 못하게 수건이나 걸레로 입을 틀어막고 무릎으로 가슴을 짓누르며 때리셨다. 차라리 몽둥이나 회초리로 그냥 패면 좋을 텐데...정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횟수를 세어 본 적은 없으나 기절을 몇 차례 했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입안에 물을 머금은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곤 했었다. 내가 어머니의 그런 훈육방법에서 벗어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쯤 이었다. 늘 어머니 방식대로 훈육지도를 받던 나는 무심결에 입을 막으려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버텼는데, 아! 세상에...어머니는 나의 버티는 힘을 버거워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 힘으로 충분히 어머니를 이길(?)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어머니의 훈육방법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정신적 고문으로 바뀌고 말지만.
중학교를 갓 들어가서인가? 하루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진지하게 여쭤 본 일이 있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제 친부모님은 따로 계신거죠?’라고. 그 얘기 했다가 그날 저녁 또 본전도 못 찾았지만. 친부모라면 그런 식의 린치는 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의 집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남의 집 아이 대갈빡 빵꾸낸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조금만 성에 차지 않으면 훈육을 하셨던 것이다. 아이고! 이아침 어머니를 욕되게 하려던 것은 아닌데.. 그놈의 신문에 난 기사 때문에... 각설하고.....
미아리 일대의 맥주홀 두세 군데에서 알바를 하며, 언제고 음반도 내며 정식 가수로 데뷔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한 편으로는 퇴계로5가 모처에 있는 음악학원에서 당시로는 꽤 명망이 있던 분에게 개인 적으로 사사를 받아가며 꿈을 키워가던 어느 날, 그 날도 네온이 깜빡이는 맥주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입에 담지도 못할 쌍욕과 함께 맥주병이 날아온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가슴을 후벼 파는“그것도 노래냐?”라는...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은 그 한마디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알바를 하기가 싫었다.
돈을 목적으로 알바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사실 무대 매너 또는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담력을 키운다는 목적이 더 컸다.)그 소리를 듣고 나니 무대에 오른다는 게 겁이 났다. 그리고 회의가 오기 시작했다.“도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머니를 돈방석에 앉혀 드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다른 것은 다해도 그 짓(딴따라)만은 절대 용납 못하겠다는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