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성상을 살아오며 소원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하긴 춘궁기를 겪을 땐 이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었으면, 월사금(사친회비)걱정 않고 학교 좀 다녔으면(이 부분에서는 정말 할 말이 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시절 월사금 고지서만 나오면 정말 주눅이 들었다. 월사금을 제 때 못 내면 선생님으로부터 얻어맞고…그래서 학교가기 싫으면 또 저놈이 공부하기 싫어 그런다며 아버지 어머니에게 얻어맞고 안팎으로 박해를 받든 눈물 나는 시절이 있었다)하는 바람이 컸지만, 이런 거야 유독 나 혼자 겪은 것은 아니니 논외로 하고….
그런 시절 이후는 부모와 사회의 간섭을 덜 받고 제 멋대로(법의 저촉이 안 되는 범주 내에서)살아왔으니 크게 바랄 게 없었다. 장가가서 아이들 낳고 그럭저럭 가정을 꾸리며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런 어려움은 소원하고 바란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좌절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앞만 보고 내처 달려왔으니 또한 바랄 게 크게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 소원은 존재한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은76년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운전이라는 것이 부유층 또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선택이었지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필수(?)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자가용이 생길 것이고 그리되면 폼 나게 운전하며 이곳저곳 여행 다닐 것이라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또 하나는3-4년 직장생활을 해 보니 소위 월급쟁이는 생리에 맞질 않았다. 부모님은 물론 마누라를 포함한 온 가족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그해에 잘 다니던 꽤 괜찮은(지금은 재벌기업이 된)직장을 감연히 그만두고 독립을 했다.(결과는 1년을 못 채우고 알거지가 되었지만….)직장을 그만두고 나름 독립을 했으나 불완전의 시기였다. 그리하여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운전을 배워두면 운전기사라도 하겠다는 야무진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야무진 목적의 꿈이 깨진 것은 면허시험 보기 전의 신체검사에서‘색약판정’을 받고‘2종 보통’밖에 취득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무튼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산1호 터널 아래 한남동 면허시험장에서 코티나인지 코로나인지 하는 기억도 가물거리는 차량으로 진짜 딱 한 번에 면허증을 받아냈다. 그러나 자가용 생기면 여행 다니는 야무진 꿈은 고사하고 생계를 위협받을 처지에도 그 면허증으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결국 한남동면허증은 소위 장롱 면허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깊숙이 박아둔 장롱면허가 생각 난 것은 갱신기간이 훨씬 지난85년도였다.
알거지가 된 사업을 어찌할 방법이 없어 다시 직장을 들어가2년여를 버텼지만, 태생적으로 월급쟁이는 할 수 없는 팔자였는지 또 뛰쳐나와 모처에‘보따리장사’사무실을 차렸는데1차의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았더니 이번엔 그런대로 여유가 좀 생길 즈음 내 사무실에 방문한 현대차 영업사원의 포니2선전에 그만 홀딱 넘어가 재도전하여 도봉동 면허를 취득했던 것이다.
지난달 중순이었던가? 김포사돈어른 내외분께서 조블의 벗님 몇 분과 이곳을 다녀가셨다. 비단 이번 뿐 만 아니고 늘 그러했지만, 두 분을 뵐 때마다 부러운 게 딱 하나있다. 어떤 모임이든 또는 우리만의 만남이든 술잔이 두어 순배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나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 때면 귀가길 핸들은 언제나 사부인께서 잡으신다. 나는 이게 그렇게 부러운 것 이다. 그런 광경을 보면‘난 언제나 술 한 잔 먹고 마누라가 모는 차 타보나?’를 노래불렀다. 동부인하여 어떤 모임엘 가면 아예 술 마시기전‘대리운전’부터 부탁을 하고 술을 마셨기도 했지만, 술 취한 남편을 태우고 정속주행을 하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는 장면을 연상하면 옛날 연애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무척 낭만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날 아내는 사부인과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사부인 말씀 중에“같은 직장의 지인은 운전학원 등록하고 나흘 만에 면허증 땄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고 사돈어른을 대신하여 핸들을 잡으시고 귀경을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두 분이 떠나신 후 다음날 아내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당장 운전면허에 도전해 보겠다는 당찬(?)포부를 밝힘과 동시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걸더니 운전학원을 결정지었다며 다음날부터 운전학원엘 간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날 병아리 색깔의 운전학원차가 아내를 모시러 집 앞마당까지 들어오고 이내 아내는 그 차를 타고 학원을 갔으며 오후에 돌아온 아내는 내일 경험삼아 학과시험을 보겠다며 흰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BY SS8000 ON 6. 6, 2012 씀.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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