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입원하고 있던 병실은 웬만한 호텔 룸 같이 정결하고 호화(?)스러웠다. 그런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나 가족이나 불만이 있을 리 없지만, 왠지 송구하다 못해 황송한 마음이 든다.“이 병실 하루 입원비가 얼마...냐?”별 게 다 궁금하지만, 일주일 열흘...시간이 갈수록 위에 표현한 것들이 그런 질문을 유도케 한다. “잘은 모르지만 입원비만 50-60만원 하나 봐요!”,“허걱!(요즘 아이들 놀라움을 표시하는 문자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어쩐지 호텔 방 같더라니....나의 놀라움에 며느리와 아들이 이구동성으로“그러게요! 저희도 괜히 부담이 가요.”이런 대화를 나눈 며칠 후 며느리는 퇴원하여 저희 집으로 돌아왔다.(물론 이 이야기는 나중의 이야기다.)
어쨌든 며느리의 귀환은 가족들의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고, 그 되찾은 웃음 끝에 평안한 농담“너! 만약‘예솔(손녀이름)’이와 ‘숙영(며느리)’이가 똑같은 조건의 위급함이 닥쳤을 때 누굴 구 할래!?”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사고 당일 다급한 전화를 했을 때“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라는 대답 뒤에 더 다급한 질문은“예솔이는..?”하고 손녀딸을 외치자“예솔이는 안 데리고 왔어요. 이모한테 맡겼어요.”라는 대답에‘휴우~!’하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 냈던 것이다. 어린 핏줄의 안전도 그러했지만....
만약 ‘예솔’이를 데리고 갔다면? 그 아비규환 속에서 예솔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을까? 또 안전했을지라도 어린 것부터 먼저 안고 탈출해야 하지 않았을까?(이 부분에서'숙영'이 또는 마누라에게 좀 미안하지만 네가 그런 경우였다면 그랬을 것이다.)예솔이가 없었기에 아들은 부담(?)없이 제 처의 생사를 챙길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며느리는 살리는 기적이 되었고, 어째서 그날은 이 아비가 그토록 싫어하는 공짜 비행기를 타고 제 처와 동행을 했을까? 만약 아들이 사고현장에 없었다면 슬라이드의 압력에 사경을 헤매는 제 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며느리가 지금 저희 집에서 편히 누워있을까? 기적은 일부러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만 그날의 기적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즉 예솔이와 동행 하지 않았다는 것과 아들놈의 불필요한(?)공짜 여행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지금쯤 그 어떤 슬픔에 잠겨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라의 대통령의 아시아나 그룹의 홍복과 기적도 되지만 이번 사고는 우리 집안의 홍복이자 기적이 일어나는 사건이자 계기가 되는 것이다.
지금 며느리는 저희 집으로 퇴원해 있다. 증세가 완화 되어서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퇴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며느리의 증세는 사고당일 요추 두 군데를 다쳤고 늑골 두 개가 금이 갔다는 것이다. 사실 이 증세는 특별하게 쓰이는 약이 없단다.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게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배려는 아낌없이 정말 좋았다. 며느리가 귀국하던 날 공항까지 회장(사장?)님 되시는 분이 나오셨다는 전갈과 병원에 도착해보니 그룹차원 사고대책반의 높은 분들이 모두 나와 있었던 것으로 그만하면 의전(?)이나 예우에 소흘 함이 없었다. 병실도 하루 입원비만 50-60만원 호가하는 특실과 간병인을 배정 해 주었고, 그런데 특별한 증상 없이 꼼짝없이 2-3개월 누워있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집으로 들어와 있는 게 심리적으로 나을 것이고 또 아무리 회사의 예우지만 별다른 치료도 할 수없는 상황에서 비싼 입원실을 이용한다는 것은 낭비라는 결론을 내리고 퇴원을 결정지은 것이다. 현재 일주일가량 된 며느리의 증세는 손녀 예솔 이와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병원 있을 때 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솔’이는 제 어미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말 수도 그렇고 이전 보다 한 차원 높은 발음과 어휘력을 보이는 것이다. 다만 사고기에 탔다가 그 악몽의 순간을 맞아야 했던 아들부부(하긴 어찌 두 사람뿐 이랴마는...)는 아직도 꿈속에서 화들짝 놀라는‘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이런 증상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치유 될 것이다.
기적(奇蹟), 보편적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 그 기적이 우리 오가(吳哥)네 가문에 일어난 것이다. 아마도 덕을 쌓고 차카게 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아닐까? 아울러 그런 기적 속의 후유증(?)에 대해 아낌없이 배려를 해 주신 회사와 담당 관계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 하고 싶다.
덧붙임,
“좀 어떠냐?” 매일 똑같은 질문이다.
“네, 아버님! 많아 좋아졌어요!”역시 똑 같은 대답이고,,,
“오! 그래!?... 빨리 일어나야지...”
“네, 감사해요! 아버님!”
어제(늘 같은..)며느리와 주고받은 통화내역이다.
통상적으로 주고받는 내역이지만 며느리는 지금 정말 많이 좋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며느리의 쾌활한 목소리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