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아들이 귀국한 얼마 후 평안한 농담이지만“너! 만약‘예솔(손녀이름)’이와 ‘숙영(며느리)’이가 똑같은 조건의 위급함이 닥쳤을 때 누굴 구 할래!?”라는 나의 난처한 질문에(제 처가 옆에 있었으니 더 난처했을 터...)씨~익 웃기만 했던 아들이다. 그러나 그 난처한 질문이 꼭 농담이기만 했을까?
잠시 아들이 전하는 사고 당시 상황을 그려보자. 착륙을 하려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갑자기 무엇인가에 세게 부딪히는가했는데 다시 공중으로 부상하는 순간 아들은 찰나적으로‘아!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얼핏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기내는 공포에 질린 아우성과 걷잡을 수없는 혼란 바로 아비규환 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헌신적인 구조를 펼쳐 영웅의 호칭을 받았던 승무원‘이윤혜 과장’과 그나마 무사했던 승무원들의 탈출명령(?)에도 아들은 탈출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 착륙절차 안내를 마치고 다소곳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안전벨트를 매던 제 처(숙영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령(?)을 무시하고 제 처가 있었던 쪽을 바라보니 사람은 없고 거대한 비상탈출 슬라이드(미끄럼틀)가 있더라는 것이다.(사실 이 부분이 문제는 문제다. 비상탈출 슬라이드는 비상시 인위적으로 조작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밖으로 터지며 미끄럼틀化 되어야 하는데 이놈이 안으로 터지며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여객기 사고 역사상(?)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단다. 기체의 이상?)그리고 자세히 다시 한 번 살펴본즉 제 처가 거대한 미끄럼틀에 깔려 그 압력에 질식을 해가며 자그맣든 얼굴이 두 배정도는 부풀어 오르더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눈앞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간다면 절규할 수밖에. ‘사람 살리라!’는 그 절규를 듣고 영웅‘이윤혜 과장’이 급한 김에 포크를 구해와 슬라이드를 내리 찍었으나 역부족(이 부분은 인터뷰에서도 나왔다는 마누라의 전언이다. 그리고 그 슬라이드에 깔린 승무원이 내 며느리인 줄도 몰랐던...)이었고, 마침 승객탈출을 돕던 기장 한 분이 비상함에서 손도끼를 가져와 슬라이드를 터트려 며느리는 호흡을 하게 되었고 아들은 그때서야 제 처를 들쳐 없고 사고현장을 탈출 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다른 쪽으로 돌려야겠다. 그날 영웅‘이윤혜 과장’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나는 그날 사고기에 탔던 승무원 모두가 영웅이지 어째서 그녀만 영웅시 하는가? 라는 항의 비슷한 썰을 이곳에 풀었었다. 그것을 현지에서 본 아들놈이“아버지! 그 글 좀 내리세요!”라는 나직한 협박(?)에 그만 내리고 말았지만, 위의 정황으로 보면 내 며느리는 영웅적 행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내 며느리와 같은 조건의 승무원이 여럿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따라서 정확한 내용도 모르며 잠시라도 그날의 영웅들에 대한 의혹 부러움을 동반한 질투 등등...따위를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다.(지금은 퇴원 했는지 모르지만 며느리가 귀국한 후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하던 그 영웅이 며느리의 병실을 찾아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모쪼록 빠른 쾌유로 퇴원 하셨기를 기원해 본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친정아버지 친정언니 그리고 제 남편과 함께 며느리는 귀국했고 나와 아내는 그립고 반가움을 안은 채 며느리의 병실을 들어섰을 때 며느리의 모습이 섬뜩할 정도로 참담했던 것이다. 매년 여름만 되면 각 방송국마다‘납량시리즈’라는 걸 한다. 대체적으로‘불여우와 인간’ 뭐 그런 아류가 등장한다. 그리고 인간으로 가장했던 괴수나 여우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이 눈알이 빨갛게 변하는...판에 박은 듯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장면.
그랬다. 며느리의 눈이 그랬다. 흰자위를 거의 볼 수 없고 동공의 모든 핏줄이 안정(眼精)밖으로 외출을 나온, 그야말로‘납량시리즈’의 거시기의 눈동자처럼 새빨갛게 하고 있었고 안구가 평소보다 많이 돌출하고 있었으니 어찌 아니 놀라지 않고 참담한 생각을 갖지 않겠는가. 부풀어 오르는 비상탈출용 슬라이드의 압력에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