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의 구조가, 터가 꽤 넓고 마당에 30여 평의 농가주택격인 아래채가 하나 있다. 원래 이 아래채를 두고 새롭게 집터를 잡아 집을 지었는데, 비록 아래채는 농가주택이라고는 하지만 넓고 살만하여 부시거나 없애기엔 아까웠다. 새집으로 세간을 옮기고 본 즉 빈 집이 덩그마니 자리하고 있으니 미관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좀 거시기 했다.
누군가… 육친이나 친인척 가운데 지치고 힘든 이가 있으면 다 내려놓고 조용한 산골에서 힐링 겸 여생을 이곳에서 나와 함께 했으면 했다. 처음엔 독거노인으로 지내는 형님께‘내려오십사…’여러 차례 청을 드렸지만 별로 내켜 하지 않은 고로‘평양감사도..’하는 식으로 포기를 했는데, 그런 과정 속에 큰누나 내외가 얼핏 의사를 비치기로 보다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펼친 결과 누나와 매형이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주를 했던 것이다.
나름 꿈도 야무지게 꾸며 아예 집 구조를 리모델링하여 형님까지 함께 모실 계획으로 말을 맞추었는데 중간에 그만 어떤 가정적 불상사로 인해 누나 내외만 이주한 게 작년5월이었다. 이제 하는 얘기지만 정말 마음이 흡족했고 거주하는 누나 내외도 나만큼 흡족해 했었다. 매형은 이미 백수이고 누나가 서울의 어떤 빌딩청소를 하며 경기도 성남 빈민가 어딘가에 사글세방으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대궐 같은 공짜 집에 마냥 흡족했을 것이다.
사실 누나는 위암선고를 받았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기도와 약으로 다스린다며 한 달에 한 번 서울의 병원을 오갔는데 그렇게 맑은 공기 마시며 마음을 다 잡았는지 암세포가 더 자라지 않고 얼굴도 화색이 돌던 어느 날, 도저히 이곳 생활을 할 수 없다며 성남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 도저히 라는 이유가 너무도 황당했다.
즉, 교회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과 면소재지에 소재한 교회는 약5k가 된다. 일요일이든 특별 기도가 있는 날이든 교회의 차량이 집 앞 마당까지 들어와 모셔가고 모셔다 준다. 그러나 누나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누나의 믿음은 다락방인지 하는 보통교회와는 좀 다른 곳이라고들 한다. 그런 교회를 살림도 팽개치고 30년 가까이 다녔고 매일 새벽기도를 버스를 타고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다고 자랑했는데… 아마도 목사님의 설교나 교리가 마음에 안 찼는지 모르지만 이유는 새벽기도 다닐 수 없어 상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광신도가 된 누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떠나간 누나는 8순이 가까운 매형을 짐짝처럼 버려둔 채 홀로 떠난 것이다. 함께 여생을 재미나게 보내자는 철석같은 약속을 파기하고 홀로 떠나며 그렇게 짐을 남긴 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옛날 다니던 직장에 다시 복직을 했다며 홀로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나는 그때 이미 누나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위암 선배로서 저런 식의 삶(생활)을 사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미리 예견을 하였고, 비록 누나이지만‘저.. 탐욕 고집’이 누나를 망칠 것이라며 저주 비슷한 예견을 했던 것이다.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는(심지어 남편인 매형의 충고도..)고집불통의 누나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나는‘산골일기: 누나 이거는 인사가 아니잖아?’라는 썰을 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홀로 남은 매형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 세끼 술로 시작하여 술로 잠이 드는 알콜 중독자나 다름 아닌 매형. 솔직히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기엔 나도 7순이 내일인데… 내 부모에게도 그런 효를 해 본 적도 없는데…. 혹시라도 눈에 뜨이지 않으면 밤새 무슨 일인가 하고 아래채로 달려가야 하는… 그야말로 전혀 예기치 않았던 부담100%의 짐짝 같은 존재가 매형이었던 것이다.
사실 누나가 이곳에 함께 할 때부터 매형은 내게 실수를 엄청 했었다. 내가 방황했던 소시 적의 일, 사춘기 소년이 한 번쯤 겪었을 보편적 방황을 가족 누군가에 들었는지 이곳 이웃주민들만 만나면‘내가 쟤를 인간으로 안 봤는데 요즘 저렇게 잘 산다.’며 아예 방송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도 나이 70먹은 노인인데 함께 늙어가며‘얘 쟤..’하는 것도 문제지만 술만 입에 들어가고 취기가 돌면 그 따위 소리를 하니 동네가 창피했었다. ‘매형 그 소리 좀 그만 하세요! 동네 창피하게…’호소를 하면 ‘응! 알았어! 미안하이..’하지만 술(이웃들과 막걸리 잔을 나눌 때 꼭 매형도 모셔와 함께 했다)만 들어가면 대중 앞에서‘내가 쟤를….’로 시작하는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또 참았다. 한 번은 둘째 딸아이의 시부모 되시는 김포사돈내외가 이곳에서 하룻밤 주무신다며 내려 오셨는데, 그날도 주안상을 마련하고 매형을 초대해 함께 일 배 부 일 배 술잔을 기우리는데 느닷없이 예의 그‘내가 쟤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는데..’라는 원고를 또 읽기에 참고 참았던 분노가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매형에게 대 들었다.‘매형이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은 이유나 원인 뭐요!? 내 걱정 말고 평생을 백수로 보낸 매형 걱정이나 하시요!’사돈내외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집이 떠나가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우리 매형 성질은 있어 가지고 자신이 한 행위는 아랑곳 않고‘들은 얘기다! 왜? 나머지 6남매가 너를 아주 잡놈이라 카더라’라며 그 길로 아래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딸아이의 시부모 앞에서 인간취급도 안했다고 하지를 않나 종래엔 내 형제자매가 잡놈으로 취급하는 인간 말자가 되었으니 나는 고사하고 내 딸아이의 입장은 어떻게 될지…. 명색KS 출신이라며 대가리에 먹물 좀 들었다는 인사가 제 처남의, 그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나름 성심껏 돕겠다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모멸감을 주는 것이었다. 돌이켜 나 자신을 반추해 보면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게 결국 형제자매에게 잡놈 취급을 받았다니… 나름 형제간 돕는다고 도왔는데… 내가 저들에게 단 돈 일 원을 갈취하거나 사기 친 일이 없는데 잡놈이라니….분하고 억울하고…. 아마도 내 자신이 정말 악독하거나 잡놈이었다면 그날 매형 아니라 그 누구라도 살인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취중이로 어떻게 딸아이의 시부모님 앞에서 그런 개망나니 같은 행태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날로 매형을 술주정꾼 미친 인간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아예 눈에 벗어난 미운털로 치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형과는 두 번 다시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다.(실제 그 후론 단 한 번도 술자리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작심을 하고 나니 매형의 얼굴 보는 것조차도 뱀처럼 싫고 두려웠다. 또한 매형이 하는 행동들이 눈에 도드라지게 보이기 시작하며 미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래채에 옆 마당에 풀이 자라지만 단 한포기도 풀 뽑지 않아 초원을 이루고, 고추가 열릴 쯤 익지도 않은 어린 것들을 따다먹는가 하면, 울안의 어린 유실수 따서 술 담그기, 채마밭의 아직 자라지도 않은 어린 싹들을 따다가 쌈 싸먹기, 돈도 주지 않으며 소주를 박스 채 사오라고 심부름시키기, 화장실에 불이 나갔다며 전구 갈라는 명령, 심지어 자신이 마신 술병이 산더미처럼 쌓이자 마트에 가서 병을 팔아오라는 명령,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 밖의 미운털 박기에 골몰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매형의 행동은 얄밉고 기분이 나빴다. 물론 위에 열거한 매형의 행동들이 그 사건 이전엔 그냥…매형이니까 이해하고 묻혀 왔던 것이었다.
정말 도저히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는 어느 날, 누나에게 전화를 하여 매형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던지 무슨 방법을 모색해 달라고 애원을 한 얼마 후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집을 비워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아래채에 홀로 사는 매형과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어느 날, 하늘을 두고 맹세컨대 일을 일부러 꾸민 것은 아니고, 바로 그 즈음에 이번 산골일기의 주인공이신 우리 장모님 문제가 불거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작은처남 곁에서 보호(솔직히 효도는 아니고…관찰이랄까?)를 받고 사시든 장모님이 당신 특유의 성깔을 나타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역시‘대가리에 똥밖에 안 찬 며느리 욕’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데 지칠 대로 지친 작은처남 내외가 더 이상은 받아 주지를 않자 큰아들에게 전화를 하여‘이젠 이곳(방화동)에서 도저히 살 수 없으니 나 좀 데려가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얘기를 좀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장모님은 십 수 년 전에 이미 작은 처남과 앙앙불락 하다가 전세를 마련해 주면 친정인 온양 근처에서 살겠다고 하여 작은 처남이 2천만 원인가하는 전세를 얻어 그곳에 터를 잡아 주었었다. 그런데 그 마을의 노인회관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어찌 싸움이 벌어져 형사입건이(다른 할머니를 패서…) 되고 결국 합의를 본 끝에 그곳에 더 이상 거주 하지 못하고 친정 조카가 사는 옥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1년 정도 생활을 하시다가 또 친정조카(질녀)와도 대판하시고 다시 작은처남이 있는 방화동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작은처남이 마련해 준 전세 보증금 2천만 원을 다 까먹고 달랑 200만원을 남겨 왔던 것이다.
당시 투덜거리는 작은처남 대신 나와 아내가 1800만원을 보태고 2천만 원에 30만 원짜리 사글세방(처남, 아내, 처제 3남매가 공동분담)을 얻어 드렸는데, 이번에 처형이라는 계집이 어떻게 쏘삭거렸는지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며 제 어미(장모)와 함께 산다며 보증금은 같지만 월세가 50만 원짜리인 곳으로 옮겼는데 몇 달은 월세를 보탠다고 보태더니 결국 1년 가까이 월세 뿐 아니라 공과금까지 내지 않아 주인과 다투다가 결국주인에게 소송 당하고 쫓겨나는 입장이 된 것이다.
BY SS8000 ON 9. 25, 2016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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