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아가는 게 서로 다르고 집안의 가풍이랄까? 뭐 그런 것도 역시 모두 다르고 자식교육 가정교육 또한 다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무심코 한마디 던진 게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그만 이웃의 가정사를 간섭한 꼴이 되 버렸던 것이다. 아차! 싶어 그 자리에서 정중히 사과를 했고, 본인들 역시 괜찮다고 얘기는 하지만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소릴 듣고 가만히 있었을까? 후회스러움으로 꼭지가 막 간지럽다 못해 전신에 쫘르르 전율이 인다. 아이고! 입이 방정이지...내가 왜 그 순간에 그 딴 소릴 해서..... 그래서 할 수없이 어제 날을 잡아 두 내외를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며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렸던 것이다.
개울건너 이PD와이프는 몇 달 전에 비해 얼굴이 반쪽이다. 원래‘씨스터(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출신의 가수여서 한 미모 했는데 그만 얼굴이 반쪽이 되고 말았으니 그 미모가 많이 퇴색했다. 사실 그녀는 가수(지금도 노래 부를 때보면 폭발적이고 대단한 가창력을 지녔다)보다는 지난 날‘산 까치’ 또는 ‘방울 새’등등의 국민가요 여러 곡을 작시한 작사가 겸 시인이다. 언젠가 몇 권 없는 책장에서 그녀의 시집을 보긴 했다.
이PD네는 남매를 두었다. 누나인 딸아이는 미군 현역이다. 얼마 전까지 용산 미8군에서 근무하다 본국(시민권자다. 미국공연 갔다가 그 아이를 낳았단다)으로 가서 열심히 살고 있다. 무슨 시험인가를 쳐서 장교가 되겠다고 벼르는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아이와 식사를 함께 했지만 아이가 남자처럼 씩씩하고 시원시원했다. 군인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다. 서른 두셋인가? 그렇단다. 이놈이 제 엄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는 모양이다. 무슨 싸움을 하거나 못된 짓을 해서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청년백수가 그러하듯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 나이 먹도록 아직 백수생활을 하며 용돈이며 제 생활에 드는 제비용을 부모로부터 공급받는‘캥거루 족’인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결혼을 시켜야 하는데 상대 처녀의 부모가 그 결혼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이 사귄 것은 벌써 5-6년 되었고 거의 동거하다시피 이PD네 본가에서 지내고 있어서 볼 장 다 본 사이임에도 아들놈이 그 처녀 아니면 죽고 못 산다는 것이다. 처녀의 집안은 점집인지 철학관인지 하는...그러면서 결혼을 극구 반대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들놈의 그런 태도에 어쩔 수없이 이번 9월에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답답하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모습으로 사는 청년백수가 한둘도 아니고 오죽했으면 캥거루족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 이해하는 입장이었는데, 이 백수 아들놈이 결혼까지 시켜주었으면 제 마누라와 둘이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볼 생각은 않고 첨부터 떡 벌어지게 무슨 가게든지 하나를 차려 달라고 보챈다는 것이다.
무슨 가게가 되었든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아이템이나 업종도 말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차려만 달란다는 것이었다. 치킨 집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아는 치킨 집에 견습을 보내면 뜨거운 기름이 튀어 싫다며 한 이틀 하다가 나오고, 무슨 프랜차이즈 업종을 시켜볼까? 하면 실컷 시간을 보내다가 그것도 싫다, 어느 날인가는“사장님! 우리 아들 좀 중국에 데리고 다니며 장사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되시겠어요?”얼마나 답답하면 다 늙은 나 같은 놈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힐까? 생각하고 나는 이미 은퇴를 하였거니와 우리 아들과 진지하게 상의를 해 보라고 해도 며칠 뒤 돌아오는 대답은‘별로 생각이 없나 봐요’란다. 뭐 솔직히 내 일도 내 자식 일도 아니기에 크게 안달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났는데....
“저희 저 위에 땅 좀 팔아야겠어요.” 이PD 와이프가 저녁식사를 겸한 초졸 한 술자리에서 우리 부부에게 하는 얘기다. 그들은 은퇴하고(내년2월이면 정년퇴직이란다)노후를 위해 약2천 평의 땅을 지금 사는 곳 보다 약간 위쪽에 사 둔 게 있다. 경관도 좋고 야산과 바로 연결 되는 아주 쓸 만한 좋은 땅이다. 시간 있을 때마다 그 땅을 자랑하며 앞날을 설계했던 터였는데 결국 자식 때문에 팔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을 두고 이PD는 죽어도 못 팔겠다고 하고, 그의 와이프는 아들놈 가게 차려주기 위해 팔아야 한다며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던 터라 이번에도 저러다 넘어가겠지? 치부하고,“그래! 아드님께서 어떤 가게를 할지 생각은 해 두었답니까?(내가 이PD와이프에게 던진 질문이다.)”
“아니에요! 아직도 정해 진 건 없어요!”란다. 그 소리에 그만 나의 더럽고 불같은 성정이 폭발하고 만다.“아니! 여태 정해진 아이템도 없이 땅 팔아서 아드님 가게 차려주면 그게 제대로 될 성 싶습니까? 연구하고 연구를 해도 자영업이라는 게 폭삭 망하기 일수 인데 연구는커녕 생각도 않은 장사를 시켜요? 그런 놈(순전히 화가 나서 무심결에 지껄인...)은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런 친구는 말아먹으면 또 손 벌릴 친굽니다. 또 손 벌리면 또 다른 거 해 줄 능력은 되시고요? 어디 다른 곳에 또 땅 사두신 거 있습니까? 내 아무리 봐도 아드님 같은 친구는 나중에 용돈 궁하면 부모라도 팰 위인 같습니다. 아드님 버릇을 어째 그렇게 가르치십니까? 결혼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렇게 죽자 사자 하지만 직업도 제대로 없고 결국 부모가 뒷바라지 해 주지 않으면 저희끼리 치고 박다가 사네 못 사네 하지 않겠어요? 저는요 우리 아이들 키울 때 학비는 몰라도 용돈은 제 엄마 가게에서 알바를 해야 주었습니다. 절대 헛돈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래서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마는 아이들 그렇게 키우지 않았습니다. 듣기로 이PD님 퇴직해도 미리 돈을 다 땡겨 써서 연금도 별로 못 탄다면서요. 노후는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이밖에 방정맞은 내 입은 계속 두 부부를 향해 질타를 멈추지 않았다. 듣다듣다 못한 이PD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만 자기 집으로 먼저 가버린다.
아이고! 또 이놈의 조디가 오두방정을 떨고 만 것이다. 마누라가 옆에서 옆구리를 여러 차례 찌를 때 그만뒀어야 하는데... 그날 저녁의 요지를 정리하면, 아무리 그런 식으로 자식 사랑을 해봐도 절대 효도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효도씩이나 바라지 않더라도 스스로 살아나갈 힘이 없을 것이다. 육신이 멀쩡한 자식이 자립심 없이 부모슬하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비극이다. 그 비극을 아주머니가 만들고 있다. 약간의 취기가 올라 할 말 못할 말 지껄이고 그녀마저 돌아간 뒤 이번엔 마누라에게 내가 뜯기고 말았다. 남의 집 가정사에 자기가 왜 밤 놔라! 대추 놔라! 했느냐며.
다음 날 아직 덜 익은(그래도 먹을 만한...) 옥수수 20여 자루를 따가지고 이PD집으로 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엊저녁은 제가 술이 좀 과 했나 봅니다.”,“아이고! 아니 예요! 전부 옳으신 말씀인대요!”그리고 이런저런 농 같지 않은 농을 몇 마디 더 하고 물러났지만 그래도 마음이 깨름 하다. 그래서 어제는 마누라도 없고 하여 이PD에게 전화를 했다.“점심 어떡하실 참입니까? 안 하셨으면 제가 오늘 점심 쏘겠습니다.”그래서 제천에서 제일 비싼 음식점으로 그들을 모시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소원했던 며칠간의 감정들을 털고 왔다. 그러나 저러나“대갈빡 다 굵은 아 새끼 버르장머리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닙니다.”라며 식사를 하는 내내 그리고 헤어지면서도 내 생각은 변치 않았다.(속으로...)아이고! 아이고! 당신들 노후는 어쩌시려고..???? 참, 참,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