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맞지 않아 해 본 소린대, 아내는 온갖 인상을 구겨서 마치 반찬 투정하는 자식에게 소리 지르듯“그냥 좀 먹으면 안 돼요?”란다. 그런 아내의 반응에 나 역시 그러려니 했으면 좋을 걸, 구겨진 아내의 표정이 결코 곱지 않았고 그만 폭발한다.“뭬야!? 그냥 먹으면 안 되냐고? 그냥 먹지 데쳐먹고 볶아 먹나? 그리고 내가 분명히 얘기 했지? 내 입맛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입맛 달라진 거도 얘기 못하나? 너(사실‘너’라는 호칭은 웬만큼 화가 안 나면 잘 써먹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경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뚜껑이 활짝 열린 때다.)도 아침에 봤지? 어떤X(괜히 애꿎은 분에게 화풀이 했다. 죄송하다.)은 제 서방 암에 걸리자 지극정성으로 온갖 식이요법으로 간호하여 살려 놓고 그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까지 흘리던데, 내가 고기를 좋아하나 생선을 좋아하나 즐기는 건 오로지 풀 종류밖에 없는데 그거 하나도 간을 못 맞추나?” 이미 모든 뚜껑이 완전히 열려 김정은이가 현영철을 쏴 죽였다는 무슨 속사포처럼 쏘아댔는데,,,, 옴마! 적반하장. 거두절미. 일언지하“아이고! 고기랑 생선 안 먹는 걸 무슨 자랑이라고...그게 난 더 어렵다고!”암에 걸린 남편과 자상한 부인의 미담은 송두리 채 빠지고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파고든다.

주방의 대형 냉장고도,,,
아침TV에서 보았던 일편단심. 일부종사. 낙화유수 같았던 부부애를 상기시켜 이참에 호되게 몰아붙여 기를 좀 꺾어 놓겠다고 시작한 게 이쯤 하면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생각 같아선 식탁이라도 번쩍 들어 패대기를 치고 싶지만 이젠 그럴 힘도 내겐 없다. 그리고 뭐,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껏 살아오며 자식을 포함해 가정폭력을 행사해 본 적은 없다. 거두절미“아이고! 고기랑 생선 안 먹는 걸 무슨 자랑이라고...”이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며 나는 깊은 내상을 입고 만다. 자칫 더 버티면 버틸수록 내상이 깊어짐을 나는 안다. 애꿎은 젓가락만 개수통으로 날리고 상처치료를 위한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보조 주방의 김치 냉장고도 식탁(식탁 이건 정말 한꺼번에 옮길 수 없어 해체를 해야 한다. 그리고 판의 무게가 둘이 들어도 버겁다. 그럼에도 아내는 어떡하든 옮긴다.)도...
서재로 돌아와 상처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잠긴다. 사실 그랬다. 나 역시 위암 판정을 받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아내는 냉정할 정도로 당당했고 무심할 정도로 침착했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저 여편네가 저리 냉정하고 무심한 걸 보니 나 죽으면 내 무덤의 봉분에 잔디 돋기 전 아니면 뼈 가루가 진토도 되기 전, 딴 놈이랑...???’하며 눈길을 보낼 만큼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살아야 된다고 어떻게든 위암을 극복해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고 또 그렇게 처절한 투쟁 끝에 암을 극복을 했던 것이다.

이 소파의 무게야 말로 힘 좀 쓰는 남정네 둘이도 버겁다. 이 놈도 가로로 놓였다가 다시 세로로 놓여지기도 한다. 그 탓에 거실 바닥에 스크레치가 많이 났다.
솔직히 가방끈이 짧은 탓에 이런 부분을 좀 더 아름답게 아니면 적절한 미사여구가 생각나지 않지만 아내는 내게 항상 충격요법을 쓰며 보다 강인한 나를 만들었던 것 같다. 내가 슬퍼 할 때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내가 나 자신을 억제치 못하고 소란 할 때 오히려 냉정을 요구 했고, 정말 힘들어 할 때 위로 보다는‘사나이가 그까짓 걸...’하는 식으로 지청구를 해대며 강해지기를 요구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형 냉장고가, 소파가, 식탁 등 이런저런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는 가구들이 가뿐히 또는 거침없이 제 갈길(?)을 오가는 그 근저(根底)에는 사나이 대장부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여장부의 또 다른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작'아내의 힘'은 바퀴 달린 요놈과 홋이불 이나 대형 타올 한 장이면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힘이 된단다.
누군가는‘여우와는 살아도 곰 하고는 못 산다.’고 한다. 때론 미련 곰탱이 같은 아내지만 어쩌면 아니 확실히 이나마 나와 내 가정이 존속하는 건 우락부락 하지 않으면서도 힘이 장사인 아내 덕이다. 그런 아내가 제 마음에 들도록 가구를 이리저리 재배치하는 것을, 그것 때문에 점심이 좀 늦었다고 괜히 심술을 부린 내가 쪼잔한 놈이지....계절의 여왕 5월이 너무 뜨겁다. 정성을 다 해 심어둔 농작물이 타 들어갈듯 한다. 비가 좀 와야 할 텐데.....기우제를 대신한 푸닥거리가 되었다. 나만 꼬리 내리면 만사가 형통한다니까.
결혼생활 40년 되도록‘여보’라는 호칭을 써 보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쑥스럽게 해 본다. ‘천하장사 우리 여보~! 사랑해!^,^;;;’(사실 아내는 인터넷도 블로그도 취미가 없어 내 썰을 보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