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준비’라는 화두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사실‘노후준비’라는 화두는 호랑이 담배피던 옛날 옛적에도 있었던 일이다.
밀양 손씨의 시조인 손순(孫順)의 효는 국효(國孝)로 지금까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손순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어린 아들놈이 항상 할머니 몫의 음식까지 빼앗아 먹어 버리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손순은 아내와 상의를 했다. “자식은 또 얻으면 되나 부모는 다시 모실 수 없나니 저 새끼를 죽여 버리자.” 결국 아이를 업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파묻기 위해 땅을 파는데 갑자기 삽 끝에 딱딱한 물체의 감촉이 있는 것이다. 파보니 다름 아닌 석종(石鐘)이다. “이는 하늘이 아이를 죽이지 말라는 계시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는 아이를 데리고 석종을 안고 하산을 하였다. 그 종을 처마 끝에 매달고 치니...석종임에도 불구하고 청아하고 오묘한 소리가 온 장안에 퍼졌다. 석종만 있는 게 아니다. 즉 자초지종도 있었고 그 사연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효자문을 세워주고 넉넉하게 돈과 양식을 주어 손순을 치하했다는 전설이다.
찾아보면 이런 미담은 삼천리에 수두룩할 것이다. 효자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 반대 입장을 생각해 보자. 손순이 생활이 넉넉하거나 입에 풀 칠 할 입장만 되었어도 자식을 죽여 묻어 버리자고 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자식마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손씨 집안의 얘기는 미담으로 전해져 내려오지만 우리가 아는 또 하나의 진실은 바로 ‘고려장’인 것이다.
이 땅에서 고려장을 처음 시도했던 인물도 또 고려장을 당한 부모도 결국‘노후준비’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준비가 되어 있었더라면 자신들이 쓸 만큼 쓰고, 얼마가 되었던 갈 때 물려주었으면 될 것을 앞뒤 재지 않았다가 끔찍하게 ‘고려장’을 당한 것이다. 또 자식 입장으로 볼 때 부모가 물려 준 가전지물(家傳之物)즉, 유산이 얼마라도 있었다면 제 부모를 함부로 내다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쯤 하면 어떤 분은 가전지물을 물려주었음에도 고려장을 당하는 부모는 뭐냐? 고 질문하시겠지만, 그러니 새끼들 가정교육 제대로 시키지 못한 죄 받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전지물은 죽기 전 함부로 쪼개는 게 아닌 것이다. 만약 얼마라도 물려 줄 게 있다면 죽는 그날까지 기름종이 한 장 또는 녹취록으로 남겨 두는 지혜를 발휘해야 될 것이다.
그렇게 했음에도 통장에 수억씩이나 잔고를 남겨 두고도 제 마누라와 자식을 죽인 짐승만도 못한 개새끼도 나올 수 있고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살해하는 역시 금수만도 못한 겉모습만 인간인 악마가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또한 그 짐승과 금수의 부모의 죄업인 것이다. 그런 패륜적 집안은 하느님도 언터쳐블(untouchable)인 집구석이니 논외로 하자. 이 땅의 부모나 자식이 다 그런(패륜)게 아닌 것이니......
또 어떤 분은, 억만금의 재산을 가진 재벌이 죽고 나면 자식들이 아귀다툼을 하는 것은 뭐냐고 꼬투리 잡으시겠지만, 그들이 대갈빡 터지게 싸우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 ‘노후준비’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거나 집착하는 부류는 재벌도 부자도 아닌 서민들이지 억만금을 가지고 있다 죽는 사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우리 일부터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노후준비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노후준비’를 어떻게 할까? 보다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는 부류부터 알아보자. 다큐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아프리카 밀림이나 초원의 동물생활상을 그린 다큐는 그 어떤 것보다 끔찍이도 좋아한다.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그들의 세계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것이 있다. 동물(인간포함)들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먹이사슬의 상위 자리를 차지하는 동물 특히 백수의 제왕 사자는 물론이고 맹수의 한 끼 식사꺼리밖에 안 되는 연약한 동물도 공통된 법칙이자 진리가 하나 있다.
부모들은 나름의 육아를 끝낸 뒤 그 동안 길러주었던 새끼들을 우리나 둥지에서 강제로 쫓아내는 것이다. 그냥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이빨이나 부리를 들어내며 당장이라도 찢거나 쪼아 죽일 것처럼 포악하게 밀어내는 것이다. 결국 쫓겨난 자식들은 제 영토와 삶의 터전을 스스로 득하며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그게 곧 독립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차마 인두겁을 쓰고 어찌.... 하겠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게 온당하고 합리적인 삶의 수단인 것이다.
얼핏 진화가 덜 된 동물의 관습 같지만 인간 세계에도 서양 쪽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식들 양육이 끝나면 스스로 독립하기를 종용하는 것이다. 또 자식들도 능력이 되든 아니든 부모의 뜻에 따라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게 그들의 세계다. 물론 서양이라고 무조건 막무가내로 쫓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뼈 빠지게 대학공부까지 시켰더니 취직은 고사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부모의 고혈을 빠는 흡혈귀나 캥거루족이 양산되고, 그것도 부족하여 제 부모에게 위해를 가하는 패륜아가 생기는 것이다. 진화가 덜 된 동물적 습관을 가졌다고 서양 사람들에게 미개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려 끼고 살다가 그 새끼에게 죽임을 당하는 쪽이 미개인 아닐까?
몇 달 전 약간의 소란스런 뉴스가 있었다. 어떤 현직 국회의원 아들이 24시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꽤 많은 양의 담배를 빼 돌렸다는 뉴스 말이다. 결국 유야무야 되었지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도난(도둑)이라는 문제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아들이 알바를 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가장 썩어빠진 집단의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다른 곳도 아닌 24시간 편의점의 알바를 했다니, 담배 몇 갑 없어진 것은 차치하고 자식의 알바를 허가한 국회의원이 이 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 왔던 것이다. 내 말이, 자식을 저 정도로 교육 시킬 수 있는 부모라면 일단‘노후준비’기초는 잘 닦고 있다고 할 것이다. 저 정도면 가전지물이 있거나 없거나 자식 손에 맞아 죽지 않고 제 명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미운 놈 떡 하나고 귀여운 자식일수록 매 한 대 더 라는 얘기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자식이 어느 정도 자랐으면 주려 끼지 말고 밖으로 내 치라는 것이다. 이게 노후준비의 1단계다.
한 달 여전 재작년 여름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시던 아랫마을 지씨 형님의 얘기를‘성공한 인생’이라는 제하의 썰로 풀었지만, 그 썰을 풀고 딱 열흘 만에 지씨 형님은 돌아가셨다. 슬하의 4형제에 대해 그 때의 얘기가 좀 오도된 것도 있었다. 그 형님 돌아가시기 며칠 전 4형제를 모조리 슬하로 불러 모아 기왕 아비는 가지만 남은 엄마를 간곡히 부탁하고 가셨다는 이웃의 전언이다. 그날 밤 4형제는 눈물 콧물 쏙 뽑아내고 아비의 간절한 부탁에 맹세를 했다는 뒷얘기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뒤 동네에 이런저런 얘기가 떠돈다. 사실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열심히 일만 한 지씨 형님은 많지는 않지만, 이런 산골에 몇 필지의 전답을 마련했고 그 전답들은 이미 4형제에게 고루 분배를 시켰는데 그 중의 일부는 아주머니 앞으로 남겨 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4형제는 어미 몫의 전답을 욕심 내지 않은 관계로 그 땅을 이번에 처분했단다. 어차피 낭군님 하늘나라에 보낸 아주머니 혼자 힘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며 자신 몫의 전답 일부를 팔기로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