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람 소감을 쓴다는 게 그만 진某라는 천하밉상의 비판기로 변했지만 아주 무관한 것만은 아니다. 내가‘국제시장’을 42년 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가게 된 것은 순전히 그자의 관람 평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과연 그러한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다시‘국제시장 관람記’로 돌아가 보자. 관람記1부 마지막을 다시 상기해봐야 하겠다. 우리네 가정사의 장남이라는 명사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보살피고 자신을 희생하며 뒷바라지 하는 영화 속 덕수形 장남, 가부장적 제도(?)아래 오로지 부모님의 과도한 보살핌을 받고 동생들은 어찌되든 저만 호의호식하며 집안을(家傳之物) 말아먹는 파락호形 장남. 나는 덕수 형의 아버지가 당부하는 그 장면에서 눈과 코로 민망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액체가 쏟아져 내렸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덕수씨는 조용히 독백한다.“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내 개인적으로, 영화 속 덕수씨와 동년배인 나의형님이 625때 아군의 오폭으로 다리가 절단되어 불구가 되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차남인 나더러‘니가 장남 노릇 해야 한다. 장남은 부모 맞잡이다.’라며 얘기들을 했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차츰 철이 들어가며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나로 하여 중압감을 주었던지....어떤 철딱서니 없는 양반들은 다리/병/신인 형님이 옆에 있음에도 아예 대 놓고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어린 마음에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머리 좋은 우리 형님(자신이 불구라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1등상만 타 왔던...)그런 소릴 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소외감 상실감에 더하여 무력감을 가졌을까를 생각하면 장남 노릇 하고 싶어도 불가항력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덕수씨는 달랐다. 그 시절이라고 파락호 같은 장남이 없을 리 없었지만 그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하여 독일의 막장에서 죽음을 맛보고, 포탄이 작렬하는 베트남의 전장에서 총을 맞아 불구가 되면서까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그야말로 부모 맞잡이로서의 장남 상을 구축(?)해 내는 것이었다. 그 장남의 위치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소회했을까?
이런 영화, 이런 우리 이웃의 진실 된 이야기를 시궁창 보다 더 더러운 주둥이로 폄훼하는 인간들의 대가리 속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덕수씨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독일의 막장으로 달려갔지만, 어떤 놈은 그 꼴에 공부를 한다고 독일을 갔던 모양이다. 내가 이 관람기를 올리는 동안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 요즘은 잘 살펴보면 똑똑한 강아지도 물고 다닐 그 흔해 빠진 박사학위 하나 못 받고 유학 갔다는 놈들은 유학이 아니라 관광을 간 거라고. 외화낭비를 하며 독일 관광을 수년씩이나 다녀온 놈이 가족과 국가를 위해 외화를 벌어온 애국자를 폄훼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우리의 이웃 덕수씨의 얘기를 잔잔히 엮어낸‘국제시장’. 나라가 아무리 발전하고 국민의 소득이 아무리 높아졌어도 우리네의 현실엔 아직도 덕수씨가 존재한다. 오늘 3부는 또 다른 우리의 덕수씨 그리고 그의 다짐 얘기를 끝으로 해야겠다. (계속...)
아버지의 핸드폰 글귀
고등학교 무렵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실패와 부모님의 별거로
벌써 7년째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자입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옥 같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자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또한 살아보려고 안 해 보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많은 일을 전전하시다 지금은 퀵서비스를 하고 계십니다.
퀵서비스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배달은 빨리 해야 하고, 그래서 빨리 달려야 하고,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제가 아는 것만도 네 번째 사고가 나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진 엄마 잘 챙겨드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하셨습니다.
며칠간 연락 안 될 거란 말도 덧붙여서요.
며칠 후, 만나보면 어김없이 얼굴과 팔에 긁힌 상처...
울컥하지만 아버지 속상하실 까봐 참고 또 참곤 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 생신이었습니다.
큼 맘먹고 티셔츠 한 장 사드리려고 매장을 갔지만
몇 천원 차이에 망설이는 제 자신이 서있더라고요
남들은 몇 십 만원도 큰 망설임 없이 사는데
저는 아빠 선물임에도 몇 천원에 고민을 하다니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그 날 저녁, 동생과 함께 식당 앞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어요.
낡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아버지의 오토바이..
또 울컥 해왔지만, 잠시 누르고 맛있게 고기를 먹었습니다.
생신 축하도 해드리고 선물도 드렸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계속 미소만 짓고 계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고기 한입 싸주신 고기를 오물거리며
식탁 위에 있던 아버지의 핸드폰 액정을 무심코 봤어요.
액정에 써있던 글귀..
"그만 가고 싶다"
숨이 턱 하고 막혀왔습니다.
또, 머릿속이 온통 하얘졌습니다.
많은 빚에, 자식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얼마나 지치고 힘드셨으면
액정에 그런 글을 남기셨을까..
그날은 모른 척하며, 애써 웃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컥함을 참느라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즐겁게 살아가려 합니다.
정말 사는 것이 힘들고 지옥 같아도,
그 때마다 더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빚 다 갚아드릴 거에요.
우리 부모님은 오늘도
자식을 위해 죽고 싶은 거, 힘든 거, 서러운 거, 아픈 거
꾹꾹 참아가며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데,
자식이 돼서 더 힘들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덧붙임,
제게는 매일 아침'따뜻한 하루'라는 편지가 배달 됩니다.
오늘 편지 내용이 바로'아버지의 핸드폰 글귀'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덕수씨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런 분들이 폄훼 당해선 안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덕수씨의 얘기를 그린 '국제시장'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냥 영화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