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
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흘립니다
동서남북 방방곡곡 구름은 흘러가도
생일없는 어린넋은 어디메가 고향이요
어머님 아버지 왜 말이 없습니까
모진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
그리워라 우리부모 어디메 계시온지
꿈에라도 다시한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이상은 원로 가수 김용만 선생의‘생일 없는 소년’이라는 노래 가사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아도 소년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안다.
매년 음력으로 11월 1일은 내가 세상을 향해 고고지성을 지른 날이다. 생일, 솔직히 생일이라는 단어에 둔감하다. 굳이 이 날을 기억해야할 일은 이런저런 서류나 룸펜생활 할 때 이곳저곳 이력서 낼 때 그날을 꼭 기입해야 하기 때문일 뿐. 사실 어릴 적 생일상을 받은 기억이 없다. 정말 아주 가끔 우리 어머니 기분 좋은날, 다른 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미역국을 얻어먹은 기억은 있다. 그런 즉 생일날에 대한 애틋함(?)이나 존경심(?)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다만 그날이 그날이라는 기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고‘생일 없는 소년’에 비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자긍심까지 느끼는 것이다. 그런 즉 누군가가‘오늘이 네 생일이다’라고 하기 전엔 아예 염두조차도 두지 않고 살았다.
아내는 나와 달리‘생일 잘 차려 먹는 사람이 윤택한(?)한 삶을 산다.’는 주장이다. 뭐, 윤택함이라는 게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생일상(?)을 장가갔던 첫 해, 그날 아침 아내로부터 미역국을 얻어먹고 출근을 했는데(사실 미역국은 먹었지만 그 후로는 생일날이라는 걸 잊어 먹은...)저녁 퇴근을 해보니, 선물용 넥타이(지금도 보관하고 있음)와 소위 생일 케익이라는 걸 난생처음 받아보고 감동의 눈물까지 찔끔거렸던 추억이 있다. 감동의 맛을 본 그 이후로 뻑적찌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꼭 기념하는 버릇이 그 때부터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지금도 이런 걸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론자다. 수년 전 회갑 때도 조촐하게 잔치를 하자 커니 자식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라 커니 했지만‘이거뜰이 누굴 노인네 취급하냐?’며 호통으로 잠재우고 간단한 외식으로 대신했었다. 그런 즉 생일날이라고 호들갑을 떨거나 특별 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애들은 다른가 보다. 하긴 우리 때는 보릿고개 넘어가는 것도 큰 행사요 행운인데 뭐...언감생심 생일씩이나?
삼남매 시집장가 보내고 또 그 아래 식솔들이 딸리니 매년 귀찮을 정도로 생일날을 저희들이 들고 나온다. 그러지 말래도... ‘생일이 별거냐?’고...‘쓸데없는 짓 하지마라!’고 하지만 저희들이 더 난리를 친다. 정말 허튼 소리가 아니라 아침 아내가 끓여주는 미역국이면, 그것도 고기 따위는 넣지 않은 순전한 미역국이면 족하고 저녁에 맥주 한 깡통씩 따서‘건배!’그것으로 족하다. 정말로....진짜로...
금년에도 그렇다. 지난 주말을 기하여 삼남매가 저희 식솔을 데리고 몽땅 이곳으로 오겠다는 계획이 서 있는 모양이다. 아내와 공개적으로 전화를 주고받는 걸 보고‘절대 오지마라! 너희들 오면 나 성질 낼 꺼다’며 엄포를 놓았다. 진심으로. 그게 통했는지 아들과 며느리는 지난 주말에 저희끼리만 내려와 그래도 그런 게 아니라고 뵈러 왔다며 온 김에 봉투까지 두고 갔다.(오호! 그 아이들 가고난 뒤 확인해 보니 조금 보태면 동남아 정도는 다녀올 금액이다. 금년 콩 농사 지어 200여만 원 적자났는데 반은 채울...)
아들 며느리 다녀가고 딸아이 둘과 사위들은 저희들도 주말에 내려오겠다는 걸 이곳에‘폭설이 내렸으니 절대 오지마라!’다짐을 받고 대신‘우리가 올라가마!’라고 극구 말렸는데, 어제 새벽 깨어보니 설상가상이 아니라 폭설 위에 또 눈이 잔뜩 내렸다. “전화 해! 오늘 이곳에 또 눈이 많이 내려 못 올라간다고...”아내는 딸아이들에게 이곳 실상을 얘기하며 전화를 한다.
그리고 생일이고 뭐고.... 그런데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 전화가 울린다. ‘오잉! 며느리다.’,“그래! 숙영아! 어쩐 일이냐?”하는데, 며느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생일song이 들려온다. 친손녀‘예솔’이다. 그리고 발음도 부정확한 축하 노래를 다 부르자마“하야버지! 생신 축하드려요!”장가 간 첫해에 아내가 차려준 생일상 이후 가장 감동을 먹은 생일날이다. “예솔아! 엄마 바꿔라!” 그리고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을 담아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과 큰 사위가 또 전화가 온다. 물론....
“진이 엄마! 볼펜이랑 종이 좀 가져와!”, “뭣하게요?”, “아~! 그냥 가져와봐!”엉뚱한 나의 요구에 아내는 그것들을 준비해 온다.“명단 적어!”,“웬 명단?”,“아! 잔말 말고 적으라니까, 오진이, 오선이, 박종관(둘째 사위), 강은비(제일 큰 외손녀), 박수아 그리고 박주아(쌍둥이 외손녀)”그렇게 명단이 작성 되자“맨 아래 생일축하 전화 안 한 애들...”이라고 적어. 순간 아내는 뒤집어진다.
10분쯤 지났나? 작은 딸아이가 전화 온다.“아빠! 죄송해요! 전화 막 드리려 했는데...”,“알았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숙영이는 지난번에 와서 뭔 봉투를 주고 가더라!”,“아이고! 아빠! 저희도 많은 건 아니지만 준비해 뒀슈!”,“오! 그래!?”그리고 작은 사위의 인사와 보너스로 쌍둥이의 축하song도....얼마지 않아 큰 딸아이가 또....큰 딸아이 역시 현금봉투는 잘 보관하고 있겠다며 사랑하는‘은비’의 축하 노래까지.
엊저녁 잠자리 들기 전“진이엄마! 그 명단 다 지워!”
고 하노니, 귀농. 귀촌을 두려워 말라!
농사를 짓다가 적자가 나면 이렇게 메우는 방법도 있나니.....
귀빠진 날을 기억하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