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 또는 처가에다 아이를 맡겨 놓고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들이 대세다. 아니면 어쩌다 원행을 하거나 급하게 시집 또는 친정에 잠시 맡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부모(친가 또는 처가)입장에서는 정서상 백이면 백, 내 새끼 기를 때보다 더 신경을 쓰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눈을 다른 곳에 돌린 부지불식간 아이가 약간의 상처를 입거나 요즘같이 여름철엔 모기에 물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퇴근을 하고 아니면 외출에 돌아온 부부가 아이를 보고 대뜸 노기를 띠었든 나직한 어조이든“애를 어떻게 봤기에 이 지경을 만들었어요!?”한다면.... 뭐, 목숨 걸고 아이를 돌 본 건 아니겠지만‘배신감, 당혹감, 미안함’등등이 뒤범벅 되어 와락 분함과 노여움으로 변 할 것이다. 나름 최선을 다 했는데 그걸 몰라주고. ‘망할 것들 다시는 애 봐 주나봐라!’
아시아나 사고기의 승무원이었든 며늘애의 귀국이 자꾸 늦어진다. 병원에 누워 있으니 제 맘대로 하지는 못할 줄 알지만, 견디다 못한 사돈(일찍이 안사돈을 사별하신...)과 친정언니가 병원에 누워 있는 며늘애를 보러 간다는 것이다. 제 남편이 돌보고 있어도 조바심이 왜 안 나시겠나.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말은 전해 드렸지만 문제는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보든 내 친손녀‘예솔’이가 문제다. 아들놈과 며늘애의 뜻에 따라(사실은 진즉 우리 부부가 천등산 자락에서 돌보겠다고 했지만 자주 볼 수 없다며 저희들 집에서 가까운 친정언니에게 일정의 수고비를 주며...)‘예솔’이는 친정언니가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국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불가분 아니 당연히 우리 부부차지다.
자주 못 보니 사실 보고 싶기도 했고, 어쩌다 만나면 살갑게 달려들지 않는 어린 것이 약간 섭섭하기도 했는데 마침 이번 기회에 서먹한 관계를 정상화시켜 보자는 생각을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물론 금이야 옥이야 빨고 씻기고 정성을 다하니‘하부지! 하부지!’를 입에 달고 완전한 친손녀로서의 면모와 예를 갖추며 캐나다의 쌍둥이 못지않게 곰살궂게 군다. 이런 모습에 나도 마누라도 친손녀 찾았다는 보람과 즐거움을 만끽 하고 있다.
호사다마라든가? 2-3일 보고만 오시겠다든 또 만약 귀국이 늦어지면‘오 서방’은 먼저 귀국을 시켜 생업에 소흘함이 없도록 하시겠다든 사돈과 친정언니의 귀국이 늦어진다. 그만큼 며느리의 상태가 안 좋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병상에 누워 있는 며느리는 며느리대로‘예솔’이가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그래서인지 아들로부터 문자가 들어온다.“‘예솔’이가 보고 싶으니 사진 좀 많이 보내 주세요!” 싫다고 할 이유 없다. 소위 스냅으로 이런 것 저런 것, 누워 있는 것 매달려 있는 것 ...신이 나서 마구마구 보내 주었다.
마누라는 며칠 전 아동의류 가게를 지나다‘예솔’이에게 어울릴 듯한, 몇 점의 속옷과 컬러풀한 망사치마를 사와서 입혔던 것이다. 그 야한(?) 망사치마가 또 두 살 박이 마음에 들었는지 ‘예솔’이는 영 벗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야한 망사치마 입은 모습도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전송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엄마! 애 좀 잘 봐요! 숙영이가 좀 섭섭한 모양이에요!”, ‘이상은 큰딸 아이에게서 온 전화고 그 전화를 받고 씩씩거리는 마누라에게 들은 얘기다. 야한망사를 포함한 여러 장의 사진들이 전송되고 반나절 뒤 딸아이에게로 며느리로부터 아주 짧은 문자가 들어왔단다.“언니!(얘들은 이렇게 호칭을 하며 잘 지낸다.)옷도 그렇고 엄마가 직접 돌보지 않아서 그런지 애가 꾀죄죄한 게 거지꼴이에요!”라는. 그리고 딸아이는 기왕 아이를 볼 거면 좀 잘 보라는 조언을 제 엄마에게 했던 것인데.....
내 마누라 자랑이 아니라 웬만하면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나한테만 빼고...)정적이고 차분한 여자다. 그런데“뭐!? 꾀죄죄! 거지꼴!?”다른 거 다 빼고 이 대목만 강조하며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다. “애를 어떻게 더 잘 봐! ‘현씨’피도 아니고‘오씨’핀데 내가 저 보다 아니면 지 언니만 못하겠어!? 그럼! 집안에서 이 더운 여름날 성장(盛裝)을 시킬까?”등등...결국 불똥이 아들놈에게도 튀고 만다.“너! 이 새끼! 니 처 빨리 귀국 못하면 너라도 먼저 당장 귀국해! 사돈도 지 언니도 있는데...#$%^$#@&*&*%$@”한마디로 마누라가 뿔났다. 그것도 왕창!!!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펄쩍 뛰며“엄마! 제발 그러지 마요! 이거 내가 일러바친 거로 올케가 오해하면 우리 사이 금가요! 제발!”그런데 지금으로 봐선 마누라의 열린 뚜껑은 쉽게 닫힐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며늘애의 거지꼴 같다는 표현은 단어의 선택을 순간적으로 잘못했을 뿐 마누라를 향한 불만은 아닐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듣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을 뿐인 것이다. 설마! 제 시어미의 정성도 모르고 그딴 소리를 했을 라고..???
마누라의 대폭발이 있는 탓인지 오늘 오후 다섯 시에 일행은 귀국을 한단다. 그리고 바로 S대학부속병원으로 이송 된단다. 또 얼마나 더 병원에 누워 있어야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귀국을 한다니 기분이 좋다. 그나저나 난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허~얼!!!!
덧붙임,
그 사이 우리 마누라의 분노가 숨이 많이 죽었다.
돌아오면 당장 요절을 낼 듯 하지만, 마누라는 늘 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