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돌아 간 뒤, 그의 말대로 차라리 불법사냥꾼들이기를......하고 희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은 프로야구KS 5차전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들은 아니지만 워낙 게임이 초반부터 익사이팅하게 전개된 관계로 TV중계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대충 열 시 반 전후, 잠자리에 들기 전 뒤꼍의 보일러실과 타들어가는 화목을 점검하고, 순간적으로 맡았던 매캐한 연기의 냄새를 없이하기 위해 현관 앞으로 나와 코끝이 알알할 정도로 차가운 가을밤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하는데 천등산지류의 5-6부 능선쯤에 불빛이 요란하다.
순간적으로 ‘아니? 이 밤에 장씨가...?’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의 위치에 개울건너 장씨네 약초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려는데‘아니? 그래도 그렇지? 장씨인들 이 밤에 달밤체조 하는 것도 아니고..?’부쩍 의구심이 든다. ‘별일일세.... 별일이야..’그리고 장씨의 약초밭 위치를 머리로 그려내 보니 위치가 장씨의 약초밭이 아니라 훨씬 위쪽이다. 이번엔 제대로 의심이 든다. 도대체 뭘까? 웬일일까? 의심과 함께 아까보다 그곳을 눈여겨본즉 불빛이 하나둘이 아니고 여럿이다. 더욱이 장씨의 약초밭이라면 저렇게 많은 차량들이 올라갈 수 없는 위치임을 직감하자 그곳이 임도(林道)임이 확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자마 바람으로 나왔던 관계로 밤공기가 몹시 찼기에 용수철 튀기듯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하니 좀 전 임도의 불빛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시 벌떡 일어나 안방의 창문을 열고 그곳을 바라보니 불빛은 여전하다. ‘도대체 저 불빛은 뭐지? 왜 그러지?’ 별의 별 잡스런 생각이 머릿속을 유영한다. 살인, 구덩이, 시체유기, 간첩, 접선..등등. 이미 온몸으로 전이된 의심 때문에‘신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발전됐다.
나는 상상력이 너무 지나치고, 사돈어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어서 탈이야....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잠자리를 빠져나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조용히‘112’를 누른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 위치와 천등산자락의 자랑스러운 주민임을 밝히고 여차여차 약시약시한 관계로 신고를 하노라고 고하자, 알겠다며 근무 중인 경찰을 급파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큰 일 또는 작전을 전개하는 기분으로 10여 분 정도 기다리니 핸폰이 울린다. 정확하게 우리 집 앞에 경찰이 타고 온 차량이 서있고 나와 전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달려온 경찰들은 나와 우리 집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전화를 한다.
혹시라도 잠재적 범인(?)들에게 들킬 새라 목소리를 죽여 가며‘뒤쪽이요! 아! 뒤를 돌아보시라니까! 2층집 안보여요?’그러면서 핸폰을 흔들어보이자 그때서야 나 있는 쪽을 바라보며‘불빛이 어디 쯤 있다는 겁니까? 나는 안 보이는데요?’라며 핸드폰이 아닌 육성으로 들릴 정도로 얘기를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목소리를 죽여 가며‘아! 정면으로 보지 말고 11시 방향을 보세욧!’눈치 없는 경찰에게 짜증을 내듯 소리를 질렀다.‘안 보이는데요? 나는...’따는 생각해 보니 나는 높은 곳에 있고 출동한 경찰은 나 보다 훨씬 저지대에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의 통화하는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는지? 차량들이 산 아래로 내려온다. ‘아! 아저씨! 저 놈들이 도망가는 가 봅니다. 어라!? 헤드라이트 까지 끄고 내려가는데요!’사실 통화하는 동안 헤드라이트 불빛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이었다.‘에~에이! 다 도망갔나봐욧! 빨리 임도 입구 쪽으로 가보세욧!’, ‘임도 입구가 어딥니까?’이런 젠장 할,...관내 파출소 경찰이라며 저희 관내 마을의 임도 입구도 모른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짜증을 내고 있는 나도 평소 임도가 그쯤 있는 것은 알지만 정확하게 입구는 모른다. 그래서 급한 김에‘아! 내가 이곳에 정착한 지가 얼마돼지 않아 임도입구를 모릅니다. 마을 입구쯤 아니겠어요?’그러자 경찰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 마을 입구 쪽으로 급히 사라진다.
잠시 후 마을 입구 쪽으로 사라졌든 경찰이 되돌아와 내게 또 전화를 하기에, 이미 도망 친 범인들이 무엇이 두려우랴? 하며 전화를 받지 않고 큰 소리로‘이쪽으로 오세요! 여깁니다.’라며 현관과 외등을 켜 주자(사실 그 동안은 혹시 잠재적 범인들에게 위치 파악이 될 것 같아 불을 켜지 않았다.)경찰이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런데...옴마! 경찰관(운전자) 한 명이 차에서 내린다. 차 속을 바라며‘혼자 오셨어요?’,‘예, 저희는 혼자서 출동합니다.’이란다. ‘세상에~~ 무슨 공권력이 이래? 아니, 차량 불빛이 하나둘도 아니고 다섯 여섯까지 세다가 헷갈려 그만두었는데...(112 신고할 때 그쪽에서 불빛이 하나냐? 둘이냐? 물어왔기에 숫자를 세었었다.)혼자서 출동한단 말예요?’,‘네, 근무를 그렇게 합니다.’,‘도둑(범인)을 잡자는 겁니까? 아예 맞아죽으려고 하는 겁니까?’라며 혀를 끌끌 차자,‘저희가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얘기는 이어진다. 사실 자신은 면사무소 대각선으로 있는 파출소의 김(또는 이, 박)순경이 아니란다. 이곳과는 약15K 떨어진 제천시 관내 B읍(邑)의 파출소에서 출동했다는 것이다. 면사무소 파출소는 낮에만 한 명의 경찰관이 근무할 뿐 저녁에는 철수(퇴근)함으로 빈 파출소에 불만 켜 놓는 단다. 그러면서 말을 잇기를‘저희는 그냥 죽기 살기로 출동합니다.’,‘죽기 살기요? 살기는커녕 못 죽어서 환장한 게 아니면 범인(?)대여섯에 혼자 출동을 해요? 죽자고 하는 짓이지....’
그런 언짢은 대거리를 해가며 밝은 불빛아래 찬찬히 그를 훑어보니 달랑 오른쪽 옆구리에 전자총인지 공기총인지가 매달려 있을 뿐. 만약 잠재적 범인이 날뛰기라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인사불성이 되기 딱 좋은 무장이다. 그것도 혼자서.....
순간 화가 치민다. 그것은 출동한 경찰에 대한 울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공권력 아니 대한민국 공권력에 대한 처우에 화가 치미는 것이다. 저렇게 허술한 무장과 인력부족을 빙자하여 파트너도 없이 심야의 산골짜기 범죄현장(?)으로 내 보낸단 말인가? 이게 대한민국 공권력의 진면목인가 아니면 강단 있는 위상인가?
형편무인지경의 공권력 모습에 이번엔 분노보다 겁이 덜컥 난다. 처음부터 신고를 하지도 이 야밤에 소란도 피우지 말걸. 솔직하게 나의 심정을 그에게 얘기했다.‘이런 공권력의 모습이라면 첨부터 신고를 안 했을 것이다.’라고. 나의 이런 불만 아닌 불만어린 투정을 듣고 그가 하는 얘기‘아마 사냥꾼일 겁니다. 요즘 우리 지역이 4년 만에 풀린 순회 사냥터거든요.’, ‘그렇다면 총소리는 안 들리고 불빛만 요란합니까?’,‘불법사냥꾼들 아니겠어요?’아예 지 혼자 예단하고 결론까지 내려준다. 이런 공권력과 무슨 대화를 더 나누리.... 인사치레로 몇 마디 더 나누다 그를 돌려보냈지만.,.....
중국 상주할 때 느낀 점이지만, 공산국가이지만 정말 치안 하나는 세계 최강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구가 많으니 노동력(?)이 풍부한 건지 소위 공안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일단 잠재적 범인을 잡았을 때 그 범인이 날뛰거나 비딱하면 그 자리에서 반은 죽여 놓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물론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안이 공급자라면 소비자인 인민 입장에서는 약간의 반민주라는 불량(품)적 요소가 있지만 치안이라는 안전한 상품을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치안상품은 어떤가? 어쭙잖은 인권이라는 상품검색대 때문에 제대로 된 상품을 공급받기 전 거의 파산에 가까운 부실한 공급자를 먼저 만나야 한다면 무슨 수로 제대로 된 치안이라는 상품을 만날 수 있겠는가? 상품은 고사하고 공급자 자체가 불량하고 비실거려 보인다면? 공권력이라는 공급자를 생산하는 정부라는 공장을 탓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니 밤이면 밤마다 취객에 의해 파출소가 습격을 당하고, 애꿎은 경찰이 당하고 죽고, 어쩌다 흉악범에게 발포 했다고 공권력 전체를 매도하고, 이런저런 부당한 처우에 입도 벙긋 못하니 치안이 제대로 되겠는가?
아무튼 그는 돌아갔다. ‘불법사냥꾼들 아니겠어요?’라는 궤변으로 나를 안심시키고. 그러나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112신고는 하지 않겠다는....차라리 숨죽여 지켜보기만 하겠노라고. 그리고 그의 말대로 차라리 불법사냥꾼들이기를......하고 희망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덧붙임,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보니, 그 밤에 저 홀로 출동한 경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부실 공급자 불량 공장에 대한 원망만 하느라,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죽기 살기로 출동한 그에게 따끈한 커피 한 잔 대접 못한 게 못내 미안하다. 마음속으로 112신고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그런 기회는 두 번 다시없을 것을 생각하니 더 미안하다. 이 나라의 모든 치안 공급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