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내 입장은 이미 모든 일은‘도급’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돼지 똥 뿌리기는 잊어 버렸다. 당연히 오늘 중으로 끝 날 줄 알고 있었는데, 어째 이상하다. 윗 밭에서 일 하는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곧 시작 하겠지...?? 얼마 간 관망을 했으나 역시 조용하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 보자. 열 시가 다 되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어제 식으로 일을 하기로 한다면 1시간 여 후면 점심시간이다. 그런데 그 때 트랙터 한 대가 우리 밭쪽으로 향한다. 부르지도 않은 트랙터가 우리 밭으로 갈 리가 없기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럴 때 나와 아내는 집 뒤꼍의 작은 채마밭에서 상추와 여타의 모종을 심고 있었는데, 10여 분 쯤 흘렀을까? 좀 전 굉음을 울리며 위쪽으로 사라졌던 트랙터가 발걸음도 가벼운 듯 쏜살같이 내려가는 모습이 목격된다. “거 봐! 우리 밭에 간 게 아니었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갈 리가 없잖아!?”그 모습을 보고 아내와 함께 한 대화의 일부다.
농번기에 접어든 때이라 천등산에 봄이 왔다 간 줄도 몰랐을 만큼 바빴다. 이제야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젖은 땀을 닦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아내의 점심 차리기를 기다리며 정말 무심결에 위쪽의 밭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있어야할 돼지 똥 한 차 분이 보이질 않고 로터리 친 자국이 선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어!? 자기야! 일루 와봐! 저거 봐! 거름이 없어지고 누가 로터리를 쳤나 봐!”, “에에이! 설마! ‘이 반장’아저씨도 안 오셨고 누가 거름을 치우고 로터리를 쳐!?”의아해 하는 아내를 크 소리쳐 불러 현장을 손끝으로 가리키자 그 때서야 아내도“어머나! 그럼! 아까 그 트랙터가?”하는 것이었다. 급히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가 볼 수밖에. 역시 거름은 깨끗이 뿌려지고 트랙터가 평탄작업을 하고 갔다.
요즘은 뿌리고 심고의 고난(?)은 끝났지만 물 대기 등 영농 뒷처리에 그래도 바쁜 나날이다.
순간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이런 장난을 친 놈은‘이 반장’밖에 없는 생각이 들며“이런! 개새끼가 있나”라는 육두가 튀어 나오며 ‘이 반장’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온‘이 반장’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 재끼고 곤히 잠든‘이 반장’을 향해 “형님! 좀 일어나봐!”천등산이 뭉그러질 정도로 큰소리로 그를 깨웠다. 그리고 아직도 일장춘몽에서 덜 깨어 비몽사몽간인 그를 향해“형님! 이런 씨팔! 이걸 일 따위라고 하는 거요 뭐요!”, “누가 로타리 친 거요? 누가 하라 한 거요!?”뒤 꼭지 뚜껑이 열리고 성질이 나니 눈에 뵈는 게 없다. 어제의 마을 형님이 씨팔 새끼로 변해 버린 거다. 나의 호통에‘이 반장’은 넋이 나간 모양이다. “ 이~이~! 오 사장 그런 게 아니고...”, “그 씨팔 안이고 밖이고 간에 저거 어떤 놈이 한 짓이냐 이거요”다그치는 나의 거친 행동에‘이 반장’은 잠시 들어오라며 안내를 한다. 육두를 몇 마디 뱉어내고 나니 약간 직성이 풀리며 좀은 미안한 생각도 든다. 어쨌건 호형호제 했던 사이가 아니던가.
망중한. 그 바쁜 와중에도 집 주위에 핀 봄꽃 향연을 즐길 수 있음은 귀촌의 보너스가 아닐까?
그의 방에 좌정하자 그가 그랬다. 어제 돼지 똥 1.5차 분량의 작업을 마치고‘지씨 형님’이 몸살이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입에서 한 차 정도가 딱 알맞은 하루 분량의 작업이었다며 어제 자신의 남편 되는 사람을 너무 혹사 시켰다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의 입에서“이런! #$#% 것들이 있나!?, 누가 그 작업을 억지로 시켰어!? 저들 벌어 처먹겠다고 저들이 한 거지 내가 시킨 거야!?”잠시 안정 되었던 나의 심사가 다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반장’을 향해“이게 다 형님 농간이고 책임이요!”, “아! 또 왜 그랴!?”, “왜 그랴!?”, “씨팔! 생각 좀 해 보우!” 이젠 말끝마다‘씨팔’이 붙어 다닌다.“오늘 낼 오늘 낼 하는 팔십 먹은 노인네를 일시키는 것도 그렇고 그나마 몸으로 때우는 일은 그 노인네 혼자 하니 몸살 아니라 진짜 오늘 낼 중으로 아주 가는 거 아뇨!?, 첨부터 기계로 할 것이지 한 푼이라도 어떻게 해 보겠다는 형님 농간 탓이 아니고 누구 탓이란 거요!?” 내 입에서 더 이상 예의범절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머쓱해 하며 아무 말도 못하는‘이 반장’을 향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형님! 이제 손 떼시오!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그리고 나는 그의 방을 나왔다. 물론 그 전날의 하루치 인건비와 식대 24만원을 집어 던지다시피 하고.....
이곳에서의 첫 봄을 맞았을 때,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온 마을에'두릅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음에도 수확(?)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있는자의 여유 같은 거라고. 그런데 이즈음에야 알았다. 농번기라 한가하게 '두릅'따위는 엄두를 못 내는 거라고. 나 역시 집 뒤꼍에 널려 있는 그것들을 어찌 하다보니 수확을 못 했다. 이제 먹을 수 없을 만치 웃자라 버렸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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