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산골일기: 죄짓지 맙시다!”를 부르짖는 계기가 된 사건(?)을 끝맺기 위해 먼저 지난날 인터넷(블로그)에 올렸던 또 하나의 기막힌 인연을 올려 본다. 아래의 썰은 재작년 설날 즈음해서 일어났던 일화이다. 이미 읽으신 분이 많지만, 인터넷 인연과 인터넷일지언정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다는 의미로 다시 한 번 더 올려 본다.
역시 인생은 드라마다. 2010/01/18 07:46
'xx초등학교죠?, xx선생님 계시지요?, 6학년 담임이라던데...’상대방이 대답도 하긴 전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조금 전114에 문의하고 바로 연결시킨 전화번호를 잊어먹으면 큰일이라도 날듯 한 그런 기분으로....
정말 다행으로 그 학교에는 내가 찾는 xx선생이 근무를 했으며, 나의 간절한 사연(오래 전 헤어진 막역지우의 딸)을 들은 양반이(너무 흥분한 나머지 또 다른 선생님인지 아닌지는 미확인)내가 찾는 선생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고, 지체할 것도 없이 나는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 신호음이 들리고‘여보세요!?’하며 xx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짜고짜‘xx냐?’고 물으니 어김없이‘네~!’란다. 그 아이로 확신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뜸‘나는....음~..., 아니다! 엄마 옆에 계시지?’다급히 그녀의 엄마를 찾았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근 20년 전의 일들을 그 아이가 기억하기 힘들 것 같았고 설령 기억을 한다 해도 그녀의 기억을 살리기엔 나의 장황한 설명이 불필요할 만큼 나는 조바심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수 초 후 그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오병귭 니다’그리곤 말을 잇지 못하겠다. 상대방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세상에~! 세상에~!’만을 연발하다가 그예 흐느끼며‘살아계셨네~ 살아 계셨어~!’ 그리고는‘애들 아빠가 정말 보고 싶어 했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1995년이다. 나는 그해 어떻게든 재기해 보겠다고 마치 정복자들이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나서 듯 희망의 땅 중국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곤 그들과는 연락이 두절 되고 만 것이다.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면 다시 7-8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88올림픽이 열리기 한두 해 전, 나와 송이(xx선생의 본명)아빠와는 비즈니스관계로 만나게 된다. 송이 아빠는 내 공장에 부품과 완제품 일부를 조달해 주는 하청공장 사장님이셨던 것이다.
나와 그는 단순한 원. 하청이 아닌 정말 가족과 같은 관계를 유지해오며 공장을 운영해 왔으나 시나브로 나의 공장운영이 어려워지며 나는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집도 절도 다 넘어가고 정말 몸뚱이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으로 쫓기는 신세였었으며 물론 송이 아빠도 내가 발행한 거액의 부도난 수표의 피해자였다.
당시의 기막힌 일들을 모두‘썰’할 수는 없고,,,, 어쨌든 내가 스스로 자수하기 전까지 몇 개월 간 그는 자신의 집에 나를 숨겨주며 보살폈고, 일주일에 한번 씩은 마치 독립군가족들의 면회인양 뿔뿔이 흩어진 내 가족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눈물의 상봉을 하게 해 주었다.
얼마 후 더 이상은 숨어살 수 없다는 결론 끝에 나는 자수를 했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형사책임만이라도 마무리 지었을 때 송이 아빠는 내게 재기해 보라며 자신의 집을 저당 잡힌 금액을 내 손에 쥐어 주었으나 이미 기운 나의 사업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2-3년이 흐르고 송이 아빠는 저당 잡힌 자신의 집은 열심히 일한 끝에 되찾았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주었고, 얼마 후(1994년)나 역시 엘도라도의 땅 중국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기~인 이별 후 어제의 전화 통화가 있었다.
일요일엔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두 개있다. ‘진품명품’과 ‘퀴즈 대한민국’이라는 프로다. ‘진품명품’은 가끔씩 국보급 문화재가 나오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즐겨 보고, ‘퀴즈 대한민국’은 태생이 내기를 좋아하는지 워낙 퀴즈를 좋아한다.
과거에는 신문에 나오는 퍼즐을 즐겨 풀었는데 근간엔 시각도 만족 시키는 TV퀴즈를 좋아한다. 사실 이런 퀴즈는 나이 들어 녹슬기 시작하는 머리의 윤활제 노릇을 하기도 하고 어휘력 함양에 도움이 된다. 솔직히 자랑을 좀 하자면, 정답 90% 이상의 안방불패다. 비록 안방 우등생에 불과 하지만, 이 역시 퀴즈를 품으로 잊혀 졌든 지식이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어 권장할만한 프로그램이다.
작년엔 안방에서만 큰소리친다는 마누라의 핀잔에 직접 참가하여 예심에 합격까지 했다. 그런데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본선에 부름이 없다. 6개월 넘으면 시효가 끝장이라는데...아무튼 다른 짓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면 자연스레 TV앞에 앉는다. 그제(지난 일요일)도 그랬다.‘퀴즈 대한민국’의 시그널 뮤직과 화면이 뜨고, 첫 번째 여성손님(? 출연자)을 소개하는데 그 여성이 너무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본인 소개와 함께 잠시 후 화면에 자막으로 그녀의 성명과 직업(근무처)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특이(?)한 이름(이송이)이 뇌리를 때린다.
사실 젊은 시절‘송이버섯(마스다께)’을 일본에 수출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 땐, 계절이 되면 약 두 달간‘경동시장’에 진을 치고 송이와 함께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내가 송이 아빠와의 처음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송이라는 이름부터가 무척 정겨운 아이였고, 더구나 성이‘이씨’였기 때문에 어릴 적 그 아이에게‘한 송이도 아니고 두 송이’라며 귀여워했던 터라 그 아이의 이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송이’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온몸으로 전율하며 주방의 아내에게 긴급구호(?)요청을 했다. 자지러질 듯 한 나의 부름에 하던 일을 멈추고 TV앞에 앉은 아내를 향해 마냥 흥분한 목소리로‘쟤 이사장 딸내미 송이 맞지?, 틀림없지?‘라며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대판 싸움이라도 걸겠다는 식으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송이’이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리곤‘가만 있어봐! 가만 있어봐!’를 외치고 내 자신을 추스르며 냉정을 찾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출연자의 소개가 있은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출연자의‘응원단’ 또한 소개하는 시간이 있고, 응원단은 대체적으로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따라서 보다 확실한 물증(가족)을 얻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TV를 뚫어져라 응시 했던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한 바탕 풀고, 드디어 사회자의 진행(출연자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에 따라 출연자들과의 대화시간이다. 사회자는 첫 번째 출연자인‘송이’에게 출연하게 된 동기를 물었고, ‘송이’는 어릴 적부터 아빠가 늘 맛 나는 음식이나 과자가 있으면 문제를 맞혀야 그것을 하나씩 주셨고, 맞히지 못하면 아빠가 전부 혼자 잡수셨다는 표현을 익살스럽게 하여 좌중을 웃겼다. 그리고 그런 아빠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며 눈가로 이슬이 맺히며 얼굴을 붉힘과 동시에 방청석의 응원단(가족)쪽으로 카메라가 비춰질 때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중년의 여성이.....
이구동성이라는 말이 이럴 때 인가? 순간‘아! 아!’하는 탄성이 나와 아내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으며‘맞아! 송이 엄마네..’라는 말 또한 동시에 거침없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송이’ 아빠가.... 어째서 이 사장이 세상을 등지다니....그렇게 찾고 싶고 보고 싶었던 이 사장이....지금 이‘썰’을 풀면서도 콧날이 시큰 하고 눈가가 젖어 온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정말 우연치 않게‘송이’를 TV화면에서 발견 하고 통화를 하고 옛 은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저는 요 며칠 간 마음이 들뜨고 흥분해 있었습니다. 당장 달려가서 지난날의 쌓인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그럴 사정이 아니었습니다.
월요일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송이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경기도 모처로 공사를 나가야 하고 이틀은 그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사람을 기다린다는 게 이토록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이틀간을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드디어 어제 저녁에‘송이 엄마’가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집안을 대청소 했습니다. 앞뒤 마당의 흩어져 있던 쓰레기나 재활용품도 간결하게 묶거나 정리하고, 겨우내 찌든 현관도 닦아내고, 거실의 유리창도 닦고, 오랜만에 스팀청소기도 돌리고,,,,아무튼 귀한 손님 맞을 준비를 착실히 했습니다.
가끔씩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광경을 보곤 합니다. 반세기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을 헤어져 있다가 오열(嗚咽)과 통곡으로 얼싸안는 그들의 모습에 함께 흐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저희가 그랬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송이 엄마는 거실로 들어서마자 껴안고 한참을 훌쩍였습니다.
근 20년 간 흩어져 있었던 일들을 어찌 몇 시간 만에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어찌 필설로 표현하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많은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사이사이 눈물을 흘리기도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며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너무도 슬픈 사연은, 저의 은인‘이 사장’은 제게 자신의 집을 저당 잡혀주고도 제가 권토중래하지 못하자, 그 역시 도장(塗裝:페인트)하는 일을 배우고 두 부부가 그 일을 전업으로 삼고 열심히 살았고 그런 가운데 좀 살만하자, 어느 날 폐암 3기를 진단 받고 4년여를 투병했어나 온 몸으로 전이되는 바람에, 그만 지난 7월에 세상을 등졌다는 것입니다. 저희부부와 송이 엄마는 이 부분에서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1부에서던가요? 저당 잡힌 자신의 집은 열심히 일한 끝에 되찾았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송이 아빠가 했었다는...그런데 어제 얘기를 듣고 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은행 빚을 갚은 게 아니라, 송이네가 살던 동네 일대가 재개발 사업이 벌어졌답니다. 그래서 그 보상금으로 은행 빚을 갚고 보니 달동네 비슷한 곳에 허름한 빌라 하나는 살 수 있더랍니다.
부부가 열심히 막노동을 해가며 키운 아이(남매)들 중 다행히‘송이’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오빠 되는 아이는 장가도 가서 손녀를 둘씩이나 안겨 주었지만, 4년여의 이 사장 병구완으로 보상금으로 샀던 빌라는 넘어가고, 지금은 그 근처에서 전세를 살며‘송이 엄마’는 아직도 그 막노동의 현장을 뛰어 다니며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모든 일들이 저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아파왔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은원(恩怨)관계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마는, 지난날의 은인이 고통 속에 살다가 세상을 등졌고, 그 유족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면(그렇지 아니할 지라도...)받은 은혜를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이‘썰’을 끝내며 아시겠지만, 저희 부부는 그 은인을 처음부터 백방(?)으로 찾으려 했다는 것만은 알아주십시오.^^;;; 진심입니다. 허접한‘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뒤풀이 이야기.
사실 어제 좀 취했습니다. 몇 시간의 쌓인 정담을 나눈 뒤 ‘송이 엄마’를 데리고 아주 맛 나는(굳이 음식 맛이라기보다는 헤어졌던 이산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라 무엇인들 맛이 안 나겠습니까)저녁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자‘송이 엄마’가 술 한 잔 했으면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 옛날 송이 아빠는 술을 전혀 못했지만 대신 송이엄마가 술을 조금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잘 마시진 않습니다마는 저희 집이 다양한 술이 많습니다. 어제 그 귀한 손님을 위해‘박연차 회장’이 마신다는 술을 한 병 땄습니다.^^* 우와! 송이엄마 소위 노가다를 다녀서 그런지 술을 어찌나 잘 마시던지....약간 취기가 오르자 하루 밤 유숙하고 가라는 저희 부부의 간청을 물리치고 오늘 출근 때문에 꼭 가야 한다고 나서기에 결국 대리기사를 불러 귀가를 시켰습니다. 어제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송이엄마’에게 그랬습니다. “자네는 하나를 잃었지만 대신‘오빠와 언니’둘을 얻었으니 너무 슬퍼 말자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호칭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사장님 어쩌고...사모님 저쩌고...’하던 것을 ‘오빠와 언니’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막노동 다니는 게 지겹다고 하기에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얻어 줄까? 라고 물으니 본인도 흡족해 하기에 꼭 그럴 계획입니다. 또 아니면 보따리 장사를 시켜 보던가. 이제 착실히 갚아 나가야죠.......암요!!!!
세상에 그런 반가움도 없을 것이다. 박차를 가한다고나 할까? 전원주택의 마지막 손질을 하는 공사 팀에게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독려와 잔소리를 하고 있다. 지난해12.12에 첫 삽을 뜬 게 벌써 5개월이 넘어 반년 째다. 무슨 아방궁을 짓는 것도 아니면서...
평소엔 일주일에 4-5일 이곳에 머물고 2-3일은 서울 집에서 보내며 손녀들의 재롱을 벗 삼았는데 이달 초에 내려와 아직 못 올라갔다. 다행인 것은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집의 마무리를 보겠다고 아내도 이곳에 거함으로 외롭진 않다. 그러나 주변의 흩어진 모습들이 정말 복잡하고 골치 아프긴 하다.
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현장(?)을 그분은 동부인하여 오시겠다는 것이다. 지난주에도 오시겠다는 것을 현장이 워낙 어지러워 적당히 에둘러 거절을 드렸는데 이번에 또 오시겠다는 것을 두 번은 거절(?)하지 못하고 그리 하시라고 했다. 특히 이곳 천등산과 멀지 않은 곳에 경계를 하고 계시기에 더는 거절을 못했다. 사실 집이나 완성되고 천천히 모시며 박채안주나마 주안상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더구나 빈손으로 오신 것도 아니고 참고하라시며 전원주택 짓기 참고도서와 새집 처마 밑에 달라고 풍경까지 사 오셨다. 특히 풍경은 서울 인사동까지 몸소 가셔서 사오셨다니...그 수고로움을 어찌 감사드려야 할지 난감하다.
필명“좋은날”, “매양이 좋은날”...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그야말로 생면부지의 블로그상의 벗님이시다. 사실‘블로그’활동을 하시는 모든 분이 벗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분 한분의 정서와 표현이 다른 만큼 글로서 선뜻 다가간다는 게 용이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활약상과 그 분들의 글을 보노라면, 참으로 외람되지만 대충은 그 분들의 정신세계 또는 정서를 느낄 수 있고 따라서 어떤 분은 쉽게 동화(?)되거나 살갑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다. 그런 연고로 그 어렵다는 사돈관계를 맺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분의 글(표현)이 그랬고 그분이 그랬다. 비록 생면부지이긴 하지만 정말 삼가 옷깃을 여미고 배울 점이 많으신 분이었다. 더구나 존경받는 현직 선생님이시니 마음 놓고 다가선 게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10년은 더 사귄 벗님 같았다. 그분이 동부인하시고 오셨다. 그것도 부담 주지 않으시겠다며 점심식사시간을 훨씬 넘기고....
어쨌든 달랑 커피 한 잔씩이 앞에 놓여지고 첫 번째 만남이지만 10년을 아니 그 이상을 사귄 듯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무슨 대목에선가 고향 얘기가 나오며 각자의 고향을 밝히는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우리 두 쌍의 부부는 반가움을 넘어 놀라움을 나누게 된 것이다.
선생님 사모님의 고향이 나와는 도. 시. 면. 동. 리까지 일치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와는 초등학교7년 후배라는 것과 나의 친인척 모두를...별반 내세울 것 없는 우리 오가 가문의 내력까지 소상히 알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반가움이란? 그 놀라움이란? 두 분이 겨우 차 한 잔을 마시고 이곳의 혼란함을 눈치 채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는 아쉽기만 한 상면이었으나 그 분들이 돌아간 후 얼마지 않아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 마을의 집성촌에서 우리 집안이야 증조부 때부터 한양에 계시다 625를 맞아 피난 겸 낙향을 한 관계로 마을이나 근동에 폐를 끼치고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내 자신이 과문하여 조부모님으로부터 들은 바 없는 죄(실수)같은 것은 없었는지? 돌아가신 아버지는 천출효자(사실 좋은날 선생님께서는 천출효자같은 기분이 든다.)는 아니시지만 그래도 근동에선 효자로 이름이 자자하여 오히려 한 팔 못쓰시는 우리 어머니 시집살이만 더 고되게 하셨는데...혹시 우리집안에 이런저런 흉한 소문이 아직 고향마을에 있지는 않았는지? 벼라 별 걱정이 앞선다.
정말 다행히도...우리 집안이 동리에 남겨 놓고 올만큼의 죄라든가 구설수는 없음을 장담하고 확신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어떠한 죄라도 저질렀다면??? 그리고 우연이라도 이런 인연을 만났다면? 아! 이 얼마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장면이 될까? 그래서 그분들이 다녀가신 후 작심하고 이 썰을 푸는 것이다. 그래!!!“죄짓지 맙시다!!!”라며....
덧붙임,
““죄짓지 맙시다!!!”라며, 큰 소릴 쳤지만, 막상 끝맺음이 허무 개그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어떤 경우에라도 죄를 짓고 누군가에 의해 그 죄지은 것이 밝혀지고 알려진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전 선생님(“좋은날”)내외분이 이곳을 다녀 가신 후 그런 생각이 더더욱 크게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졸필을 들어““죄짓지 맙시다!!!”라며 외쳤든 것입니다. 지루한 썰 끝까지 경청 아니 정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