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의 출국장 게이트에서 ‘박 과장’이 나를 보자마자“아이고! 사장님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꺼?”라는 사연은 이랬다. 내가‘박 과장’이 다니는 회사와의 빚 청산을 끝내고 잠적한 뒤, 그 역시 1년여 그 회사를 다니다가, 현재‘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회사에 스카웃 되어(사실 그는 해외를 오가며 무역이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세일즈맨(무역)으로 변신을 했는데, 우리 공장에서 제조 했던 아이템이 떠올랐고 그 제품을 장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밀린 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다가 그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중국(천진)에 진출하여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의 얘기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래! 중국! 중국,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한. 중 수교는 1992년에 이루어졌다. 발 빠른 이들은 한. 중 수교 이전에 중국으로 진출을 했지만, 내 경우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둘 수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박 과장’을 김포공항에서 조우하고 기회의 땅 중국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든 때가 1994년이며 다음해인 1995년 4월에‘박 과장’의 도움으로 중국에 진출할 줄이야 꿈엔들...생각인들... 해 보았겠는가?
프랑크 후르트 박람회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나의 머릿속에는 항상‘중국’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그래! 어떻게든 기회의 땅 중국으로 진출하는 거야!’실로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미지의 세계 더구나 공산국가 중국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 이판사판 아니던가? 내 입장에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잖아?’. 마음을 다 잡아 먹은 다음 나는‘박 과장’을 아니 ‘박 이사’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 인간이 때로는 무데뽀로 놀 필요도 있다. 즉 사력을 다해 죽기 아니면 까물치기로 덤벼들 필요도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모든 아웃소싱은 물론이고 믿을만한 지인(박 이사의...)을 통하여 현지 공장세울(‘박 이사’네 회사는 천진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귀찮아하지 않고...)곳이라든가, 아무튼 그의 도움으로 중국하고도 산동성 칭따오의 외곽도시인 교남이라는 곳에 자리를 하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이었던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와‘박 이사’와의 관계를 볼 때 내가 무슨 적선(積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죄를 짓지 않았기에 그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지대한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오늘의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죄를 짓겠는가? 죄를 짓지 말아야할 얘기는 계속 된다.
나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왠지 빨/갱/이들이 상투적으로 써먹는 아니 어쩌면 민족이라는 단어를 앞 세워 어쭙잖게도 저들의 야욕을 채우려는 앞잡이 역할을 하는 단어 같기 때문이다. 하긴 한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나 뭐라나 하며 우수성과 정통성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게 오히려 우리민족을 더욱 계승발전 시키지 못하게 하는 저해 요소요 독소이기도 하다.
가령 단일민족을 자랑하다보니 적게는 세 사람 많게는 다섯 사람이면 학연. 지연. 혈연 그 어느 것 하나에라도 연결이 되는 특수성이 있다. 그런데 이 특수성이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만 거치면 대통령과도 또는 그 어떤 권력자와도 연이 닿을 수 있으니 주고받고 닥치고 먹고 뒤통수치는 뇌물공화국, 비리공화국, 부패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놈의 단일민족, 배달의 민족이 사람 잡고 나라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서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그래서 또 부지불식간이든 뭣이든 간에 죄를 짓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사실 컴맹이긴 하지만 인터넷을 십분 활용하는 편이다. 아니 어쩌면 인터넷으로 하여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삶을 살 지우는 이기가 되겠지만 그 반대일 경우 악연은 물론이고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터넷하고도 블로그에서“죄를 짓지 맙시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아주 비근한 예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성공적인 사돈관계를 맺었고, 가끔 내 블로그에 들려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아이디‘막일꾼’이라는 분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집의 전 주인어른이시다. 이분 역시 인터넷을 통해 연을 맺고 거액의 주택을 정말 좋은 조건에 사고팔고 할 정도의 아름다운 인연을 지금껏 맺고 있는 것이며, 당장 지금은 생각이 미치지 않지만 크고 작은 사연을 가진 인터넷 벗님(선후배)들이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