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꼭 이맘 이었다. 하루도 틀리지 않는 5월25일 올린 그림이다. 당시 말인즉 대공사라고 했지만, 무슨 궁궐을 짓는 것도 아닌데 꼭 1년 만에 소년시절부터 꾸어왔던 꿈속의 전원주택이 드디어 천등산 박달재 인근에 완공이 되었다. 하기야 좀 더 일찍 입주가 가능했으나 약간의 시행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 달 가까이 늦은 입주를 하게 되었다.


작년 5월25일 대공사(?)의 서막을 올리는 사진들.
꼭 일주일 전 김포 사돈어른 내외분을 비롯하여 몇몇 이웃사촌들께서 다녀가신 후 시공업자인'고 사장'을 채근하여 가구는 들여 놓지 않더라도 잠이라도(사실 이곳은 아직도 조석으로 군불을 지펴야 할만큼 일교차가 심하다. 이 심한 일교차로 나의 남은 여생을 위한 소일꺼리를 만들 계획이 있지만....)잘 수 있게 하라며 압력(?)을 가한 덕분에 지난 수요일부터 잠을 자고 있다.


1년 전 오늘 황량했던 모습이 나름 번듯한 별장으로 변모 했다. 주택의 겉모습 찍은 것이 없어 김포 사돈어른댁에서 뚱쳐 왔다.
막상 구옥에서 이사(?)를 하자니 좀은 답답한 입장에 빠졌다. 가구는 없지만 그래도 1년여를 생활 했는데 이것저것 자잘한 것들(짐)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전문 이사꾼들을 부를 수도 없고....조오~타!(요오씨!)하나를 나르든 둘을 나르든 마누라와 둘이서 하기로 했다.


사실 젊은 시절부터 이삿짐을 수도 없이 쌌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책'들이다. 언제나 책이 이삿짐의 반을 차지 했다. 위의 책은 서울집을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가져오고 있는 것들이다. 책을 위로 옮기고 살림살이를 옮기는 동안 컴을 전혀 연결 시키지 않았다. 책을 다 옮긴 후에야 컴을 연결 했다.
우보천리(牛步千里), 느릿느릿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내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주위의 조경은 살아가며 꾸미겠지만, 1년여를 지은 환경이 그렇고 약 일주일 간 컴도 포기하고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짐들을 직접 옮긴 것이 우보천리라 하겠다. 하여 그 동안 애써 지은 집 자랑 좀 해야 겠다.


거실. 아주 넓게 만들었다. 대충 25평 정도로....아직 가구를 들여 놓지 않은 거실엔 노래방 기계도 덩그마니 있다.
주방.


식당. 주방과 별도로 식당을 꾸몄다. 식당에서 바라 본 주방.

거실에서 바라 본 주방과 주방 위의 다락방. 요즘 대세가 다락방이 없으면 손자 손녀들이 시골 집에 잘 안 온다고 해서... 은비, 수아, 주아, 예솔이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그 안쪽으로는 다용도 실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이층 발코니.

이 집의 백미는 뭐니 해도 2층 테라스 이다. 일망무제의 전망대 이기도 하다. 천등산은 물론이요 온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산골 정취가 다 그러 하겠지만,,,왠만하면 창문을 최대한 크게 했다. 창틀이 곧 프레임(frame)이고 그 프레임 속으로 바라보는 정경들이 모두 한 폭의 수채화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정경.

김포 사돈댁엔 장군바위의 전설이 있다. 그 때 그 전설을 상기하고, 나 역시 대형의 장군바위(?)를 현관 앞 테라스에 꾸며 보았다. 우리 집의 최고 명물이 될 것이다.
이 며칠 이삿짐을 아래채에서 옮겨 오느라 몹시 피곤한 나머지 저녁 수저만 놓으면 잠자리에 든다. 오늘도 그러 했는데 개울 건너 이 반장네 개가 무엇에 놀랐는지 그리 짖어댄다. 그 바람에 잠이 깨어 오랜만에 블로그를 한다.
아무튼 한두 해 아니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서울 살림을 완전 정리하고 이곳에 아주 정착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남은여생을 천등산 골짜기에서 평안히 보냈으면 하는 바람 크다.